[한국일보 사설-20110622수] 월급 13만원 대학도 대학이라니

 

교직원 월급 13만원 대학은 우리나라 부실사학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이 대학 설립자는 교수 채용 대가로 거액을 받아 처벌을 받은 외에 교비 횡령 등으로 재판에 계류돼 있다. 이사장, 총장은 전원 가족으로 구성돼 전횡을 견제할 어떤 방법도 없다. 교수들에게 이 월급을 줄 정도면 학생교육의 질이야 어떨지 안 봐도 뻔하다. 그런데도 이 학교 홈페이지는 '세계화, 선진화, 정보화를 이끄는 21세기 서남권 중심대학'이라는 황당한 과대광고들로 도배돼 있다. 기막힌 현실이다.

 

이른바 '반값 등록금'논리의 타당성과 현실적 가능성은 잠시 접어두더라도 이 문제 제기는 우리사회가 차마 어쩌지 못해 오랫동안 덮어둔 부실대학 정리의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 의미를 갖는다. 등록금 부담을 대폭 줄여주고 그 재원의 일부를 정부가 부담할 수밖에 없다면 반드시 부실대학 퇴출이 전제돼야 한다는 데는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돼 있다.

 

실제로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 안에 부실대학 50곳을 추가 퇴출하는 한편, 하위 15% 국ㆍ공립 대학에 대해서도 학자금 대출을 제한하는 등 구조조정을 압박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사립대 경영진단에서 전체 292개 대학 중 무려 36%가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없을 정도라고 드러난 마당이다.

 

그러나 정부 의지만으로는 구조조정이 쉽지 않다. 법적 뒷받침이 필요한데, 학교 소유주의 재산보전 여부를 놓고 견해가 맞서는 바람에 사립대구조개선특별법 등이 장기 표류하고 있다. 학생과 사회에 심대한 피해를 끼친 부실대학 소유주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함은 원칙이다. 다만, 퇴출 촉진을 위한 현실적 수단으로 최소한의 포기명분만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절충할 필요는 있다.

 

명분과 방향이 타당하면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지금과 같은 부실대학 양산사태는 과거 정부가 학교운영을 사회 기여가 아닌, 돈 버는 교육비즈니스로 인식하게끔 정책을 운영해온 때문이다. 마땅히 책임을 지고 해결 노력에 나서야 한다. 월급 13만원 대학이 그 당위성을 다시금 분명하게 확인해 준다.

 

 

[한겨레신문 사설-20110622수] 미디어렙법은 뭉개고 KBS 수신료만 올리나

 

한나라당이 엊그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한국방송>(KBS) 수신료 인상안을 기습처리했다. 2009년 7월 온갖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언론관련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데 이어 이번에는 의사봉도 두드리지 않고 인상안을 가결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시급한 민생현안도 아니고 국민 여론마저 부정적인 사안인데도 한나라당은 언론 문제만 나오면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드니 혀를 찰 노릇이다.

 

한나라당의 한국방송 수신료 인상안 날치기 처리는 여당 신임 지도부에 대한 기대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취임 뒤 “(국회 운영에서) 일방 강행으로 극한까지 가는 일은 절대 피해야 한다”고 말해왔고, 야당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야당을 존중하고 두려워하며 걸어가겠다”는 말까지 했다. 황 대표가 이번 사태에 격노해 뒤늦게 당직자들을 강하게 질책했다고 하지만 결코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게다가 이번 의회 폭거는 민생 살리기를 놓고 여야 사이에 모처럼 조성된 대화 분위기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수신료 인상은 국민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중요한 사안인 만큼 국회가 타당성을 철저히 따져보는 게 필수적이다. 하지만 아직은 수신료 인상의 전제조건도 충족되지 않은데다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은 상태다. 오히려 현 정권 출범 이후 한국방송이 자임해온 정권 나팔수 노릇을 보면서 ‘지금 내는 수신료도 아깝다’고 여기는 시청자들이 늘어나는 형편이다. 한국방송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이 확보되고, 경영 효율성에 대한 꼼꼼한 진단이 전제되지 않는 한 수신료 인상은 결코 밀어붙여서는 안 될 사안이다.

 

한국방송 수신료 인상보다 오히려 더 시급한 것은 올해 연말 출범하는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의 광고영업과 관련한 미디어렙 법안의 마련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미디어렙 법안에 대한 당론 확정마저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런 한나라당의 태도를 보면 종편에 참여한 보수언론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한국방송 수신료 인상은 밀어붙이고 미디어렙 법안 처리는 뭉개고 넘어가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한나라당이 만약 이런 잔꾀를 부릴 요량이라면 일찌감치 포기하기 바란다. 무리수에 따른 국회 파행 사태와 민생 실종의 책임은 고스란히 한나라당에 돌아오며, 여당에서 등 돌린 유권자들을 더욱 멀어지게 할 뿐이다.

 

 

[조선일보 사설-20110622수] 토건업자 배만 불리는 지방자치 언제까지

 

지난해 지방세 수입으로 공무원 인건비조차 감당 못하는 지자체가 전체 246개 중 55.7%인 137곳으로 집계됐다. 강원도 18곳 시·군 가운데 12곳, 전북 14곳 가운데 10곳, 전남 22곳 가운데 16곳의 재정자립도가 20%가 안 됐다. 전남의 8개 군은 10% 아래로 차마 '자치(自治)'라는 말을 붙이기 힘든 수준이다. 전국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1.9%로 2004년 57.2%를 기록한 이래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그런데도 시장·군수들은 중앙 부처로부터 교부금·보조금을 타내고 거기에다 지자체 재정으론 감당키 어려운 지방비를 보태 건물만 지어대고 있다. 경남 산청군은 재정자립도가 14.6%밖에 안 되는데도 2007년 국비 6억원과 지방비 14억원을 들여 박물관을, 2009년엔 국비 6억원·지방비 13억원으로 무형문화재전수관을 지었다. 하지만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휴관 중이다가 최근 한두 달 사이 가까스로 문을 다시 열었다. 강원도 태백시 경우 국비·지방비를 합쳐 130억원을 투입해 2006년 13만㎡나 되는 체험공원의 문을 열었지만 작년 입장객이 하루 평균 12명이었다.

 

재정에 여유 있는 지자체들이 돈을 흥청망청 써대는 것은 더 꼴불견이다. 경기 성남시는 3200억원을 들여 최신형 비행기 모양을 본떴다는 호화청사를 지었다. 서울 용산구도 연간 예산의 절반이 넘는 1500억원을 들여 휘황찬란한 청사를 지었다. 이런 호화청사들은 유리로 건물을 덮어씌우다시피 해 여름엔 불지옥이고 겨울엔 기름을 먹는 기름도둑이다.

 

2009년 경우 지자체들이 치른 지역축제가 937건에 달한다. 충무공을 주제로 해 남해안 일대 시·군들이 열고 있는 축제가 6가지다. 인구 5만명짜리, 10만명짜리 지자체들까지 너나없이 공설운동장·시민회관·문화예술원을 이미 지었거나 짓겠다고 나서고 있다. 2009년 지자체 전체 예산이 137조원이었는데 그 가운데 60조7000억원이 '자본지출'이었다. 자본지출 항목의 90% 이상이 시설을 짓는 건설예산이라고 한다.

 

시장·군수들이 으리으리한 건물들을 지으면서 펑펑 쓴 예산은 건설업자·토건업자들 배를 불렸을 것이고, 그중 일부분이 시장·군수와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뇌물·정치자금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4기(2006~2010년) 민선 기초단체장 230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13명이 비리·부정으로 사법당국에 걸려들었고, 그때마다 보궐선거를 치르느라 예산을 낭비해왔다.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주민들의 생활을 더 윤택하게 만들자고 16년 전 시작한 지방자치제도가 이대로 굴러가면 지자체의 파산을 넘어서서 언젠가는 국가를 주저앉히고 말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10622수] 목사직 매매하는 교회에 구원은 있는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교회, 특히 대형 개신교회에서는 성경 구절처럼 ‘힘들고 짐진 자’들이 ‘편안히 쉬는’ 공간을 찾기 힘들다. 일부 유명 목사 등 ‘교회 권력자’들은 교회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대통령 선거에 개입해 관직 등 ‘전리품’을 챙기며, 현직 대통령을 무릎 꿇릴 정도의 위세를 과시한다. 그뿐인가. 어떤 신도들은 사찰에 난입해 불상을 훼손하는 등 다른 종교를 모욕·멸시하기도 한다. 교회가 공동체를 걱정하고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다수 성원이 교회를 염려하고 질책하는 기막힌 전도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현직 개신교회 목사가 교회 내에서 횡행하고 있는 담임목사직 매매 실태를 고발하면서 자신의 목사직을 반납했다고 한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밝은세상교회의 김성학 교육목사가 엊그제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은 충격적이라기보다는 ‘공공연한 비밀’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A목사는 B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수억원의 ‘헌금’을 냈다. 이 돈은 이 교회에서 물러나는 목사의 ‘은퇴금’으로 사용됐다. 몇 년 뒤 성 추문에 휘말린 A목사는 수억원의 은퇴금을 받았다. 이 돈은 당연히 그의 후임자가 납입한 것이다. A목사는 은퇴금에 웃돈을 얹어 헌금으로 바치면서 C교회의 담임목사가 됐다. 이 돈 역시 C교회에서 물러나는 목사의 은퇴금으로 쓰였다. 목사직을 고리로 수억원의 큰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래된 셈이다. 김 목사는 교인을 포함해 교회를 통째로 사고파는 악습도 고발했다.

 

배금주의, 성장지상주의, 극우반공주의, 공격적·호전적 선교 방식, 타종교에 대한 적대감 등 한국 개신교계가 앓고 있는 병증은 너무 많고 깊어서 어디부터 메스를 들이대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그러나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현 상황을 애써 무시하거나 개탄만 해서는 희망이 없다. 교회 구성원들은 교회가 사회의 빛과 소금이기보다는 사회의 병인(病因)으로 지목받는 현실에 대해 전면적·근본적으로 성찰한 뒤 교회 개혁을 위한 구체적 실천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 이런 점에서 규모지상주의를 극복하고, 교회 운영의 형식과 내용을 민주적·수평적으로 일신하자는 ‘작은 교회 운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목사직을 포기하면서까지 내부고발에 나선 김 목사의 결단에서 역설적으로 개신교회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한다. 그가 제기한 문제의 시작은 미미할지 모르겠지만, 그 결과는 창대할 것이라고 믿는다.

 

 

[서울신문 사설-20110622수] 노래방 골프장에서 법인카드 펑펑 쓴 공공기관

 

일부 공공기관 직원들이 사용이 금지된 골프장과 유흥주점에서 법인카드를 펑펑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어제 발표한 일부 공공기관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 행태는 한마디로 가관이다. A기관 직원들은 지난 2009년 1월부터 8개월간 골프장과 노래방에서 법인카드로 1억 2000만원을 사용했다. B기관 직원들은 퇴임 직원의 환송회 명목으로 유흥주점에서 2000만원을 결제했다. 정부 부처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들은 골프장과 유흥주점에서는 결제가 불가능한 소위 클린카드를 사용한다. 그런데도 일부 공공기관 직원들은 카드사에 요청, 골프장과 유흥주점에서도 클린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범죄행위와 다를 바 없다.

 

C기관 직원들은 2008년 7월부터 1년 6개월간 대부분 업무와 관련 없는 토요일과 공휴일에 1억 2000만원을 결제했다. 구체적인 내역도 없이 심야시간이나 휴일에 결제한 것은 사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주인이 확실히 있는 일반 기업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 공공기관에서는 아무 일도 아닌 양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인 없는 공공기관이어서 이러한 일탈이 죄의식 없이 이뤄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과도한 접대비를 숨기려고 분할결제(쪼개기)하거나 허위 증빙서를 만드는 등의 탈법행위도 여전하다. 국민권익위가 지난해 9개 기관의 카드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 문제가 발견됐고, 공무원보다 공공기관에서 더 심각했다.

 

법인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곳에 쓴 직원은 징계하고 해당금액은 물어내도록 해야 한다. 클린카드를 골프장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 카드사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명단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감사원은 이번 기회에 전수조사를 벌여 규정에 어긋나게 법인카드를 사용한 경우 철저히 책임을 물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법인카드 탈·편법 사용 징후를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는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도 있다.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공람토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타율적인 규제나 감시에 앞서 스스로 규정을 지키려는 공공기관 직원들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10622수] 높은 모빌리티와 개방성, 역시 미국이다

 

포천지가 선정한 미국내 500대 기업 가운데 41%가 이민자나 이민자 자녀가 설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경제조사기관인 '새로운 미국 경제를 위한 파트너(PNAE)'가 '뉴 아메리칸 포천 500' 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이 비율은 1850년 이후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태어난 미국인 인구의 비중이 평균 10.5%인 점을 감안하면 월등히 높은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의 높은 사회적 모빌리티,그리고 개방과 보편 가치를 추구하는 미국의 힘을 증명하는 지표들이다.

 

이민자 출신으로 거부로 성장한 사람들이 미국처럼 많은 나라도 없다. 매년 미국 최고의 부자 400명을 선정하는 포브스 400에 이민자들이 대거 포함된다는 것은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지난 25년 동안 포브스 400대 부호에 포함된 1320명 중 해외 이민자는 100명에 이를 정도다. 이민자들의 높은 사회적 성취는 빈부 격차에 대한 일부 수치들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의 장래를 낙관하기에 충분하다.

 

밀려들고 있는 유학생 역시 미국 경제에 수많은 혁신을 가져다 주었다. 실리콘밸리의 성공도 그렇고 IT혁명을 가능케 한 애플 인텔 구글 아마존닷컴 오라클 등 수많은 기업들도 이민자와 유학생 그리고 그 자녀들에 의해 탄생한 것들이다. 역시 미국이 갖는 높은 수준의 개방성이 관건이다. 이는 이방인을 배척하고 과거 식민지 출신 이민자들을 다시 내부 식민화하는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과는 수준이 다른 것이다.

 

미국의 사례는 우리가 직면한 심각한 현실을 반추시켜주고도 있다. 저출산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이민 문제에는 여전히 배타적이다. 고급인력은 국외로 빠져나가고 본국 회귀는 줄어든다. 기업가 정신이 추락하면서 창업 1세대가 당대에 대기업가로 성장한 사례가 STX 정도에 불과하다. 사회 모빌리티가 점차 떨어지고 있다. 규제와 보호가 생태계를 죽이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지만 미국의 높은 개방성과 역동성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매일경제신문 사설-20110622수] 모의평가 `물수능` 본시험 때는 시정하라

 

지난 2일 실시한 수능 6월 모의평가 채점 결과 교육당국이 당초 내세웠던 목표보다 훨씬 많은 만점자가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수리 가(이과생용)는 만점자가 3.34%, 수리 나(문과생용)는 3.1%였고 언어는 2.18%에 달했다. 외국어(영어)만 만점자가 0.72%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올해 수능에서 목표로 삼은 영역별 만점자 비율인 1%를 밑돌았을 뿐이다. 내년 총선ㆍ대선을 앞두고 ’수능 포퓰리즘’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지난해 치러진 2011학년도 수능에서 영역별 만점자 비율은 언어 0.06%, 수리 가형 0.02%, 외국어 0.21% 등으로 낮아 매우 어려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능이 너무 까다롭게 출제되면 학교 수업이나 EBS 강의만으로 대비하기 어렵게 되니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수능을 무턱대고 쉽게 출제하는 것은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것임을 외면해선 안 된다.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중ㆍ하위권 대학보다는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려는 열망이 크기 때문이다. ’물수능’이 예고됨에 따라 수험생들 사이에 한 문제만 틀려도 상위권 대학 진학의 꿈을 아예 접어야 한다는 불안감이 커지면서 여름방학을 앞둔 학원가는 특수를 맞고 있다고 한다. 특히 대규모 강의보다는 개인별로 부족한 부분을 빈틈없이 파악해 메우는 데 유리한 그룹과외에 고액을 감수하면서까지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들도 우수 수험생을 뽑기 위해 논술이나 구술 고사를 중시할 수밖에 없을 테니 지나치게 쉬운 수능이 되레 사교육 수요를 부추기는 부작용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쉬운 수능은 점수 인플레이션을 조장해 상위권 대학 진학 경쟁을 더 뜨겁게 할 가능성이 크다. 기대치만 잔뜩 높아진 수험생들이 현실을 냉정하게 못 보고 재수나 반수에 매달릴 게 뻔하니 사회적 비용도 커지게 될 것이다.

 

수능 점수가 우수 학생을 가리는 완벽한 지표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잠재력 있는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다양한 평가 요소 중 하나로 가치 있게 활용할 수 있는 수능 변별력을 굳이 없애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시험 당일 실수 하나로 수험생 운명이 갈리는 불합리를 막기 위해서도 ’만점자 1%’ 물수능은 재고해야 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뉴스테이션/동아논평/정성희(논설위원)-20110622수] 부실사학 솎아내는 일이 먼저다

 

전남 강진군 성화대가 이달 교수 월급으로 13만여 원을 지급해 물의를 빚고 있습니다. 성화대는 미지급된 월급을 학생 등록금을 받아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최근 교직원에게 보내왔다고 합니다. 이 대학 이사장은 2008년부터 2년 동안 교비 58억원을 횡령해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학생 등록금으로 교직원 월급을 주겠다는 것은 부실경영 책임을 학생들에게 전가하는 모럴해저드의 전형입니다.

 

성화대는 학생 등록금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여러 부실사학의 한 곳일 뿐입니다. 주로 지방에 소재하고 있는 이런 부실사학들의 기상천외한 비리에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광주 모 대학의 교수 2명은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생들에게 지급한 장학금의 절반 이상을 자신의 계좌로 빼돌렸습니다. 교수들은 해당 학과 사무실에 허위 장학금 신청을 하기 위한 도장세트까지 구비해 놓았습니다. 이들은 빼돌린 돈을 신입생 모집을 위한, 고3 진학 담당 교사들의 인사비용으로 썼다고 주장했습니다. 물정 모르는 신입생을 모집해 부실사학을 연명시킬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일단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또 다른 광주 모 대학의 총장 부부는 2007년부터 약 4년간 교비 5000여만을 자신의 집 가사도우미 월급으로 지급했다고 합니다. 학생 등록금이 주요 재원인 교비를 총장이 구멍가게 쌈짓돈 쓰듯 해온 것입니다.

 

이런 대학들이 등록금을 올리겠다고 하면 과연 학생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에 따르면 학생모집이 어려워 당장 퇴출해야 할 대학이 100여 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이 높은 것은 등록금 의존도가 90%가 넘는 부실사학이 많고 대학진학률이 높은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런 부실사학을 퇴출시켜 비리재단에 응분의 책임을 묻는 것은 등록금 문제가 아니라 대학교육을 정상화시키는 차원에서 중요합니다. 막대한 재정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반값 등록금 문제는 부실사학을 솎아낸 뒤에 논의해야 올바른 해법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동아논평이었습니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박종권(선임기자·논설위원)-20110622수] 미봉책<彌縫策>

 

소크라테스는 논쟁의 달인이었다. 문답 형식으로 상대를 자기모순에 빠지도록 한다. 그럼으로써 스스로 성찰하게 만든다. 바로 ‘산파술’이다. 인간이 아는 것은 오직 ‘모른다’는 사실뿐이다.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의 함의(含意)다. 하지만 변론의 귀재 소크라테스도 ‘악법(惡法)도 법’이라며 죽음의 독배를 피하지 못한다.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설득의 달인이었다. 전국시대 강력한 진(秦)에 맞서 초·연·제·한·위·조 6국이 동맹을 맺도록 한 것이 소진의 ‘합종(合從)’이다. 그런데 이를 깨고 6국이 각각 진(秦)과 횡적 동맹을 맺게 한 것이 장의의 연횡(連衡)이다. 서로 창과 방패, 모순(矛盾)의 논리를 편 셈이다. 서양식 접근으로는 ‘통일전선’과 ‘분할통치’의 대결이다. 역사는 변증법이 그렇듯이 ‘합(合)’으로 귀결됐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합한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토론의 달인이었다. 저서 『토론의 법칙』에서 논쟁과 토론에서 이기는 38가지 기술을 제시한다. 강하게 공격하려면 “자신의 권위를 최대한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더불어 ‘예’라는 대답을 얻어낼 수 있는 질문을 던지라고 한다. 반박 기술로 “상대방 주장을 최대한 넓게 해석해서 과장하라”고 한다. 위기에 빠지면 “이론상으로는 맞지만 실제는 다르다”고 억지를 쓰며, 그래도 안 되면 “인신공격을 하라”고 한다.

 

최근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 조정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서로 논쟁과 토론, 설득전을 펼치다 높은 분 한마디에 어정쩡하게 봉합된 모양새다. 그런데 검찰의 전략이 어쩐지 쇼펜하우어와 닮았다. 기득권 활용이나 현실론, 인권보호와 자질론을 내세운 우회적 인신공격까지. 더욱이 ‘예’와 ‘아니요’로만 대답하도록 하며 허점을 짚는 것은 검찰의 전문분야 아닌가.

 

그런 점에서 서강대 손호철 교수의 통찰이 번뜩인다. “검찰의 탐욕을 경찰의 탐욕으로, 경찰의 탐욕을 검찰의 탐욕으로 견제하는 것이 답이다.” 하지만 현실 정치권은 미봉책(彌縫策)을 택했다. 임시변통으로 적당히 꿰맨 것이다. 연암 박지원은 만년에 ‘인순고식(因循姑息) 구차미봉(苟且彌縫)’ 여덟 자를 병풍에 썼다. 낡은 습관을 따르고 편안함만 좇으면서 잘못된 것을 고치지 않고 임시변통으로 둘러댄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천하만사가 이로부터 잘못된다”고 경계했다. ‘미봉(彌縫)’이 ‘책(策)’이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유병선(논설위원)-20110622수] 회장님은 출장 중

 

요즘 대기업 총수의 해외출장은 여간해선 뉴스에 오르지도 않는다. 사업 영역과 기회가 세계로 넓어지다 보니 출장이 일상화되기도 했거니와 총수들의 발로 뛰는 경영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도 한몫하기 때문이다. 물론 비즈니스와 무관한 해외출장도 없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거철이면 신문지상에는 ‘회장님은 출장중’이란 표제어가 단골로 등장했다. 정치헌금으로부터의 도피성 출장이었다. 검은 돈줄을 막은 2004년 정치자금법 개정 이후 선거철 총수의 집단 해외출장은 옛날 이야기가 됐다.

 

선거철 말고도 총수의 해외출장 사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패턴이 있다. 1988년 국정감사가 도입된 이래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회에 출석해야 할 상황이 닥치면 대기업 총수들은 거의 예외없이 해외로 출장을 떠나는 것이다. 2002년에는 현대그룹 특혜 지원과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2004년엔 대생 인수 문제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2007년에는 비정규직 대량해고와 관련해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이 해외출장을 이유로 국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갑자기 해외출장을 떠난다고 국회에 통보했다고 한다. 국회는 6개월째 극심한 노사갈등을 겪고 있는 한진중 사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22일로 예정된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조 회장을 참고인으로 불렀다. 조 회장도 지난 17일 환노위에 나가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회의 이틀을 앞두고 20일 느닷없이 말을 바꾼 것이다. 3일 사이에 국회와의 약속을 뒤집을 만큼 다급한 해외출장건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한진중은 해명도 하지 않았다.

 

조 회장이 환노위 출석을 약속했을 때만 해도 한진중 노동자들은 귀를 의심했다. 지난해 12월 사측의 400명 정리해고 발표로 파업이 시작됐고,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35m 크레인 위에서 22일 현재 168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지만, 조 회장은 노조와 단 한차례도 대화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조 회장과 노조의 첫 대면이 기대됐다. 노조를 응원하는 시민의 ‘희망버스’가 방문하고, 국회가 중재에 나서고, 김 위원과 170명의 해고 노동자가 “회장님, 제발 우리 얘기 좀 들어주세요”라고 외치고 있다. 그런데 한진중의 대답은 ‘회장님은 출장중’이다.

 

 

[서울경제신문 칼럼-기자의 눈/나윤석(사회부 기자)-20110622수] '짱돌'과 '열공' 사이

 

“총투표의 가부결 여부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학생들에게 우리의 뜻을 알리기 위한 상징적인 조치일 뿐입니다.”

 

최근 서울지역 4개 대학이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동맹휴업 선포식을 한 직후 이화여대 총학생회 관계자가 한 말이다. ‘파편화’된 요즘의 학생들을 동맹휴업 대열에 대거 동참시키긴 힘들 거라는 체념 때문이었을까. 이틀 후 실시된 총투표는 정말‘상징적인 조치’로만 끝났다. 고려대와 서강대는 투표함을 열기 위한 최소한의 유효투표도 얻지 못했다.

 

서강대의 한 학생은 “시험기간과 겹치는 바람에 투표를 못했다”며 “등록금이 내리기를 누구보다 바라지만, 공부하랴 생활비 마련하랴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 행동에는 나서지 못했다”고 말했다.

 

동맹휴업이 무산된 뒤인 지난 10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집회에는 5,000명 가량만 참석했다. 집회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만, 참여인원은 1,000명 안팎 수준이다. 등록금이 동맹휴업에 나설 정도로 중요한 문제임을 생각하면 이처럼 소수의 학생들만 행동에 나선 게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

 

거리로 나서지 않은 대학생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집회 참가자가 촛불을 들고 있는 이 순간, 누군가는 장학금을 타기 위해 악착같이 도서관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알바’ 현장을 부리나케 누비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래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은 커녕 사는 것 자체를 걱정해야 되는, 그래서 거리로 나설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우리는 어떤 시선을 줘야 할까.

 

반값 등록금은 대학생들에게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다. 살고 죽는 문제에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할 만큼 요즘 대학생들은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의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건 대학과 정치권의 고심(苦心)과 합심(合心)뿐이다.

 

그 결과물이 나올 때 그 공(功)은 짱돌과 바리케이드에만 돌아가선 안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삶을 이어나간 모든 젊은이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훈장을 달아줘야 한다.





[한국일보 사설-20110623목] 이렇게 쓰는 게 무슨 클린 카드인가

 

'클린카드'라는 이름이 부끄럽다. 공공기관 법인카드 사용에 온갖 부정과 비리가 난무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실태조사를 보면 영업상 필요하다며 8개월 동안 골프장과 노래방에서 1억 2,000만원을 쓰는가 하면, 퇴임직원 환송회로 유흥주점에서 2,000만원을 결제했다. 주말과 공휴일에 업무와 관련 없이 989차례에 걸쳐 1억2,000만원을 사용했다. 모두 규정된 용도를 위반한 것으로, 불과 6곳에서 1년 반 동안 10억원의 부당사용이 적발됐으니 법인카드의 전체 비리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클린카드는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투명하고 건전한 회계, 재정 운영과 신뢰회복을 위해 2005년 도입했지만 편법과 부정, 사적 사용이 끊이질 않았다. 카드 사용이 안 되는 제한업종을 대폭 늘리는 등 규정을 강화했지만 별 효과가 없음이 드러났다. 각 기관은 카드사에 금지업종 해제를 요청한 뒤 유흥업소에서도 클린카드를 쓰는 편법을 썼다. 권익위가 이번에 적발된 기관들에게 해당 직원 징계와 부당사용 금액의 환수조치를 요구해도 꿈쩍도 않고 있다.

 

보다 못한 국민권익위원회가 법인카드 비리 방지를 위해 앞으로 상시 모니터링시스템을 도입, 적발되면 해당 기관 감사관실에 통보하고, 연말에 100곳 이상을 대상으로 사용내역을 강도 높게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것으로 법인카드 비리가 근절될 리 만무하다. 잠시 주춤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고개를 들 것이 뻔하다. 기관들은 더 교묘한 방법을 찾을 것이고, 발각되더라도 제 식구 감싸기로 적당히 깔아 뭉개면 그만이다. 법인카드를 개인카드인 양 사우나 미용실 등에서 펑펑 쓰고, 과다접대를 숨기기 위해 분할 결제하고, 허위 증명서를 만들어도 제재할 법적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공직자 부정과 비리 척결 차원에서라도 법인카드 비리는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고, 비리사실을 외부 공개하고, 기관과 기관장 평가에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 큰 도둑도 잡아야 하지만, 온갖 편법으로 나라 살림 축내는 작은 도둑들을 없애는 것도 중요하다.

 

 

[한겨레신문 사설-20110623목] ‘뽀로로’ 수출까지 위협하는 미국의 대북제재 강화

 

미국의 새로운 대북제재 행정명령 시행령이 엊그제 발효됐다. 북한산 완제품뿐 아니라 북한의 부품·기술 등이 들어간 제품의 대미 수출까지 막겠다는 것으로, 기존 대북제재 조처보다 한층 강화됐다. 이에 따라 비준을 앞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의 개성공단 제품은 물론 북-중 경협 생산품의 대미 수출도 전면 금지된다. 110여개 나라에 수출된 유아용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를 비롯한 남북합작 영화 등도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북 압박 강도를 더 높였다고 해서 얼마나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대북 경협을 생존전략의 돌파구로 삼고 있는 우리 기업들을 궁지로 모는 데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더라도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을 수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한국에 분명히 밝혔다”고 강조했다. 북한산 대미 직수출이 차단된 지는 이미 오래다. 따라서 이번 조처의 최대 피해자는 중소기업 등 우리 한계기업들이 될 공산이 크다. ‘뽀로로’의 경우 1기 52편의 작품 중 22편만 북의 삼천리총회사에서 제작한 것이어서 어느 정도 타격을 받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이와 비슷한 모든 남북합작물들의 대미 수출이 사안마다 미국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대북제재 강화는 남북 접촉면을 제한해 긴장을 조성하고 북의 고립보다는 오히려 북-중 결탁을 재촉해 남북의 냉전적 대결을 부추김으로써 한반도 주민 전체를 피해자로 만들 공산이 크다. 그뿐만 아니라 북-중 경협 방해까지 겨냥한 이번 조처는 중국과의 패권경쟁을 염두에 둔 속내까지 의심하게 한다. 딕 낸토 미 의회조사국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대북제재가 북-중의 황금평·나선특구 개발과 대미 수출을 막는 “가장 큰 장애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쯤 되면 미국이 평화의 중재자인지 훼방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대북제재 강화가 주요 2개국(G2) 헤게모니 다툼의 연장이라면 우리가 애먼 피해자가 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캠벨 차관보의 발언에 “북한산인지 한국산인지는 수입국이 판단할 문제”라고 응대했다. 자국민의 피해에 이토록 무심한 이가 장관이라니 딱한 노릇이다.

 

 

[조선일보 사설-20110623목] 홀로 살다 홀로 죽는 일본인, 내일 우리들의 모습

 

그제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 일본' 특집은 독자를 으스스하게 만든다. 일본에선 사망 후 4일 이상 지나 발견되는 고독사가 한 해 1만5600명에 달하고, 죽어도 시신을 인수할 가족이 없는 무(無)연고 사망자가 3만2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도쿄에선 죽는 이 10명 가운데 3명은 이른바 직장(直葬), 장례식 없이 곧바로 화장터로 가고 있다. 현재 일본 30대 남성 10명 가운데 3명, 여성 10명 중 2명은 50대가 될 때까지 결혼을 못할 거라고도 한다. 결국 일본은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가족 울타리'가 약해지고, 급속하게 진행된 저출산·고령화로 돌봐줄 자식이 없거나, 자식이 있다 해도 20년 경기침체로 부모를 보살필 경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인구 구성 비율은 일본을 10~15년 차이를 두고 뒤따라가고 있다. 오늘 일본의 스산한 모습이 내일의 우리 모습이라는 이야기다.

 

일본은 지난 20년 인구가 감소하면서 기업 매출이 떨어지고, 일자리가 줄고, 그것이 다시 소비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겪어왔다. 작년 일본의 226개 백화점 가운데 매출이 늘어난 건 3곳뿐이었다. 어린이 인구(0~14세)가 1990년 2248만명에서 작년엔 1648만명으로 줄면서 제과점 파산이 속출했다. 청년실업이 늘어나면서 1990년 780만대였던 신차 판매가 2009년 488만대로 감소했다. 금융자산의 75%(1125조엔·약 1경5000조원)를 가진 노인들은 여생이 불안하다며 갈수록 지갑을 닫고, 일자리를 갖지 못한 젊은이들은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다.

 

젊은이들 성격도 변했고 이에 따라 사회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직장도 학교도 안 다니면서 하릴 없이 시간을 죽이는 니트족, 뚜렷한 일자리 없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프리터족이 늘면서 자기 체념을 뜻하는 '하류지향(下流指向)'이란 말이 유행어가 돼버렸다. 30~34세의 직장인 가운데 결혼한 비율은 정규직 60%, 비정규직 30%, 프리터 17%다. 일자리가 불안한 젊은이들은 결혼을 기피하고 이것이 다시 저출산과 경기침체를 악화시키고 있다.

 

일본은 1996년부터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2008년부터는 총인구 자체가 감소했다. 우리도 2017년 생산연령인구가 줄기 시작하고 2019년부터 총인구가 감소할 것이다. 일본의 65세 이상 노인이 1990년 1489만명에서 2010년 2941만명(전체 1억2800만명의 22.9%)으로 늘었다. 지난해 우리의 노인 인구는 535만명이었는데, 2030년엔 1180만명(전체 4860만명의 24.3%)이 된다.

 

일본의 경우 노인요양보험인 개호(介護)보험 지출액이 2000년 3조8000억엔에서 작년 7조9000억엔으로 2배 늘었다. 우리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작년 지급액이 2조5000억원이었는데 2030년엔 15조6000억원으로 6배 늘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있다. 저출산·고령화가 이런 식으로 경제활력을 떨어뜨리면 잠재성장률은 현재 4.1%에서 2020년 1.9%까지 낮아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렇게 되면 작아진 파이를 서로 더 많이 먹겠다고 다투는 계층 간, 직업 간, 세대 간 갈등은 더 심해진다.

 

저출산·고령화는 한 번 추세가 형성되면 되돌려놓기가 힘들다. 일본도 온갖 몸부림을 쳤지만 실패했다.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고착(固着)되기 전에 흐름을 돌려놓아야 한다. 지금 하늘을 찌를 기세로 부풀어 오르는 중국의 미래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가장 큰 요인도 중국의 급속한 노령화다. 역사상 저출산·고령화의 흐름에 떠밀려가면서도 번영을 누렸던 나라는 한 나라도 없다.

 

우리 정부는 저출산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 GDP의 0.7% 예산을 쓰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시한폭탄의 뇌관(雷管)을 제거하기에는 어림도 없는 예산이다. OECD 평균이 2.3%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장관들에게만 맡겨놓기에는 너무나 중대한 문제다. 대통령이 10년 후, 20년 후 나라의 운명을 바로 보고 역사적 문제의식을 갖고 임해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10623목] 아프간 파병부대 철군 계획 세울 때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한국 시간으로 오늘 새벽에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군 계획을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계획에 따라 미군은 당장 다음달부터 차례로 아프간에서 철수할 계획이다. 미국이 지난 10년 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아프간에서 본격적으로 발을 빼기 시작하는 것이다. 미국의 중대한 전략변화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해 7월 지방재건팀(PRT) 보호를 명목으로 파견한 오쉬노 부대에 대해 아무런 철군 계획을 세우지 않고 기약 없이 주둔시키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PRT를 파견할 때 내세운 표면적 이유는 유엔 안보리 결의와 아프간 재건활동 지원이었다. 하지만 당시 유명환 외교장관도 인정했다시피 PRT 파견은 주한미군 문제와 연계되어 있었다. 각국의 잇따른 철군으로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곤경에 처한 오바마 대통령을 돕기 위해 이명박 정부가 PRT 요원 100여명과 함께 오쉬노 부대원 300여명을 보낸 것이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철군에 들어간 만큼 우리도 군을 철수시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철군계획을 전혀 마련하지 않고 미군 철수만 지켜보는 것은 매우 이상하지 않은가.

 

특히 PRT가 있는 파르완주 차리카 기지는 지난 20일 밤에도 로켓포 공격을 받는 등 올해 들어서만 무려 10차례나 군사공격을 받았을 정도로 치안상태가 열악한 지역이다. 그래서 주둔 1년이 다 되어 가도록 자재조달 문제 등으로 기지 내 사업시설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진척이 지지부진하다. PRT 주둔이 상징적 의미 이상을 찾기 힘들다는 뜻이다. 더욱이 기지 방호는 미군과의 협조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미군이 철수한다면 오쉬노 부대만으로 PRT를 지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철군 계획을 세우지 않고 젊은이들을 위험 속에 방치하는 것은 자국민 보호라는 국가의 책무 포기다.

 

미국의 철군계획 발표는 우리에게 오쉬노 부대를 철수할 명분과 기회를 주고 있다. 한국에 파병을 요청한 미국이 자국 군대를 철수하는데 우리가 철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부는 국회가 파견에 동의해준 시한인 내년 12월 말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오쉬노 부대의 출구전략을 세워 이른 시일 내에 실행에 옮겨야 한다. 자칫 미국의 눈치만 보다가는 예기치 않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 수도 있다. 만일 오쉬노 부대의 철군으로 인해 민간인들로 구성된 PRT의 방호에 문제가 있다면 PRT도 철수시키는 게 마땅하다.

 

 

[서울신문 사설-20110623목] 연임된 반기문 총장 남북관계에도 기여하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어제 유엔 총회에서 연임이 확정됐다. 북한을 포함한 모든 회원국의 만장일치였다. 분단국 출신 첫 유엔 수장으로서 한국 외교사에 길이 남을 족적이다. 지난 4년 반의 활동을 통해 유엔 수장으로서의 리더십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자랑스러운 일이다. 1946년 유엔 창설 후 여덟번째 사무총장인 반 총장의 첫 5년 임기는 올해 12월 말 끝나며, 2기는 내년 1월 1일 시작한다. “연임에 필요한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는 유엔 지도자들의 찬사는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반 사무총장은 연임 확정 뒤 수단, 콩고,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중동 등지의 인권 상황 등을 언급하며 “유엔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인간을 보호하고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최전선에 서 있다.”며 인권 감시 활동 강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특히 “유엔의 회원국 사이, 또 유엔과 다양한 국제파트너 사이에 조화를 이루는 사람, 가교를 만드는 사람으로 일할 것”이라고 중재자 역할을 다짐해 기대를 갖게 한다. 지구촌도 분단국 출신 반 총장이 정의와 평화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는 업적을 남기는 것은 물론 격차와 갈등을 줄여주길 기대하고 있다.

 

반 총장의 재선 가도는 순탄치 않았다. 2009년 유엔 주재 노르웨이 차석대사가 “반 총장은 카리스마가 부족한 방관자”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본국 정부에 보내자 미국·유럽 등 서방 언론들이 이를 보도하며 반 총장을 흔들어댔다. 유엔 사무국 개혁 과정에서는 내부 반발에 부딪혔다. 하지만 ‘조용한 리더십’의 반 총장은 동요하지 않았다. 설득하고 타협했다. 분쟁과 갈등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해외 순방만 200여 차례다. 지구 50바퀴 거리다. 마침내 세계가 그를 인정했다.

 

우리 국민도 반 총장을 응원하고 도와야 한다. 반 총장도 2기째는 만장일치 추대의 힘으로 세계 평화와 강한 유엔을 위해 과감하게 움직여야 한다. 기후변화 협약, 국제 분쟁, 유엔 개혁 등 현안에 적극 개입해 풀어야 한다. 내년엔 한·미·중·러 모두 권력교체기다. 6자회담 재개를 비롯한 북핵 협상서 반 총장이 활약할 공간도 넓어진다. 특히 반 총장이 어제 기자회견에서 “북한 당국은 나의 방문에 대해 언제든지 환영한다는 입장”이라며 여건 충족 시 방북 의지를 재확인했다. 반 총장이 한반도 긴장 완화를 포함, 남북관계에도 기여하길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10623목] 포퓰리즘과 싸우겠다는 전경련 회장을 지지한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앞으로 포퓰리즘 정책에 제대로 반대의견을 내겠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 내년 총선을 겨냥해 반값 등록금 같은 즉흥적인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뜻이다. 허 회장이 감세 철회에 반대하고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대해서도 중기 지원은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분명하게 입장을 밝힌 것은 그런 의지의 시발점일 것이다.

 

전경련이 이례적으로 제 목소리를 낸 것은 돌아가는 사정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야 가릴 것없이 발표하는 정책들이 온통 공짜 아니면 반값이다. 허구에 찬 감언이설만 난무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 국민연금을 동원해 기업 경영에 개입하려 하고, 전 · 월세 상한제로 도시를 슬럼화시키며 금리상한을 더 낮춰 결과적으로 서민금융을 초토화시키는 반시장적 입법도 쏟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경련 회장의 충정에 찬 우려를 비판하면서 포퓰리즘이 마치 시대정신이요 시대의 흐름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으니 실로 개탄스럽다. 서민과 중기가 어려우니 재벌이 내놓으라는 식이라면 국가 경영은 민주 시장질서의 법치를 떠나 협동조합 수준으로 돌아가고 만다. 이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본질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릴수록 시장경제는 침몰하고 국가 재정은 허약해지며 정치는 인민주의적으로 회귀하게 된다. 선의(善意)에 기반한 온정주의적 정책이 결국은 국가의 법치 기반을 흔들게 된다는 점도 재인식해야 마땅하다.

 

경제계가 직접 정치 권력에 맞서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업가 단체가 용기를 갖고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은 국가를 위해서도 좋다. 허창수 회장의 용기있는 발언을 지지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10623목] 기대 큰 '한국형 특허전문기업'

 

민관 합동으로 한국형 특허 풀인 창의자본주식회사(인텔렉추얼 디스커버리ㆍID)가 오는 8월 공식 출범할 예정이어서 해외 특허괴물로부터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해외 경쟁사와 특허괴물들의 특허공세에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특허 전문기업의 등장은 국내 기업들의 특허관리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창의자본주식회사는 일단 반도체와 LCD 등 국내 주력산업, 미래 신성장동력과 관련된 분야의 특허를 국내외 기업 및 연구소 등에서 매입해 관리에 나서며 특허소송에도 대비하게 된다. 특허매입 등에 사용할 펀드 규모도 오는 2015년까지 5,000억원 규모로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미국 등 각국에서 특허를 대거 매입한 뒤 관리하는 특허괴물들의 공세에 대한 대응범위를 단계적으로 적극 확대해나가겠다는 의지다.

 

글로벌시장에서 경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기술이고 그러한 기술은 특허라는 지적재산권의 형태로 보호된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특허괴물이 기승을 부리는 데도 이러한 배경을 깔고 있다. 특허괴물에 대응하기 위한 각국의 노력도 강화되고 있다. 프랑스와 일본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은 특허괴물에 대응하기 위한 특허펀드 조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자 IT 분야를 중심으로 상당수 대기업들이 이미 특허괴물은 물론 해외 경쟁업체들로부터 집중적인 특허침해 공세에 휘말리면서 경영에 직간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다 보니 일부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특허괴물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특허 풀에 대한 기대가 큰 것도 이 때문이다.

 

특허 풀 출범을 계기로 특허의 중요성과 특허경영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져야 한다. 글로벌시장에서 특허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관련인력을 보강해나가는 등 특허경영을 강화해야 한다. 특허 풀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창의자본회사의 규모를 글로벌 수준으로 확대해나가는 한편 90%가량이 사장되고 있는 기업들의 특허권이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도록 지적재산권 생태계 조성 노력도 아울러 강화돼야 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횡설수설/홍권희(논설위원)-20110623목] 클린카드, 더티카드

 

공공기관들이 사용하는 ‘클린카드’라는 법인카드의 오른쪽엔 청홍의 태극 문양, 왼쪽에는 괘의 일부가 그려져 있다. 카드를 긁으면 세금을 쓰는 것이므로 꼭 필요한 곳에 아껴 쓰라는 국민의 주문이 반영된 것이다. 공공기관들이 이른 곳은 2005년, 늦어도 2008년 도입한 클린카드는 유흥업소 같은 곳이나 개인적인 용도로 법인카드를 쓰지 못하게 했다. 나이트클럽에서 클린카드를 긁으면 ‘거래 제한 업종’이라는 메시지가 뜬다.

 

▷국민권익위 조사 결과 2009년 일부 공공기관의 클린카드 편법·탈법 사용 실태가 드러났다. 카드회사로 공문을 보내 골프장 노래방 등을 제한 업종에서 뺀 뒤 클린카드를 쓰거나 술집에서 자기들끼리 마시고 놀다가 회의를 했다고 보고한 경우도 있었다. 2009년이면 수협 직원들이 2년 8개월간 유흥업소에서 클린카드로 약 9억 원을 쓴 것으로 드러나 시끄러웠던 때였다. 이름만 그럴듯해 클린카드지, 온갖 편법을 동원해 술 냄새와 분 냄새가 어우러진 곳에서 쓰는 더티카드(dirty card)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해 1월 법인카드 모니터링 시스템을 가동했다. 감사용 컴퓨터프로그램인 ACL을 일부 수정해 금지 업종에서는 물론이고 주말이나 휴가 중 또는 업무와 무관하게 카드가 사용되면 감사팀 컴퓨터에 자동으로 뜨도록 해놓았다. 금지 업종은 정부가 권고한 단란주점 등 20종에 골프연습장 당구장 등 12종을 추가했다. 김세종 경영감사팀장은 “담당자가 소명하지 못하는 잘못된 카드 사용에 대해서는 회수 또는 징계 조치를 해 임직원들이 클린카드라면 잔뜩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은 한국전력공사 코레일 등 일부 대형 공기업 위주로 도입됐다. 권익위는 이 시스템을 전 공공기관으로 확산시킬 계획이다. 시스템이 못 잡아내는 사례도 있다. 유흥업소에서 쓰고 식당 영수증을 받아 가거나 식당이나 마트 같은 곳에서 사용한 것처럼 ‘카드깡’을 하는 경우다. 일부 공공기관 직원들이 죄의식 없이 서로 눈을 감아주기 때문에 계속되는 비리다. 현장 밀착형 공직기강 감시로 국민세금으로 유흥을 즐기는 양심불량자들을 잡아내야 한다. 기관장의 부정 척결 의지는 물론 중요하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고대훈(논설위원)-20110623목] 내사<內査>

 

미국 연방수사국(FBI)에는 ‘G-men’이란 별칭이 있다. ‘Government Men’의 약자다. 동네 경찰이 아니라 연방정부의 요원이란 뜻이다. 1930년대에는 알 카포네 등 갱들이 판쳤다. 일반 경찰은 부패했다. FBI가 갱들을 ‘공공의 적’으로 선포하고 소탕에 나섰다.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ies)’란 영화로 만들어진 존 딜린저 은행강도 사건 등을 해결하면서 G-men으로 불렸다. 협박과 타협이 통하지 않는 수사관들이란 존경의 의미가 담겼다. 그런 FBI의 명성은 오늘날로 이어졌다.

 

FBI의 진짜 힘은 내사(內査)에서 나왔다. 존 에드거 후버(John Edgar Hoover·1895~1972)는 29세이던 1924년부터 죽을 때까지 48년간 FBI 국장으로 재직했다. 리처드 닉슨까지 8명의 대통령이 거쳐갔지만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후버 파일’ 때문이었다. 대통령 등 정치인의 뒤를 캔 내사 자료가 그것이다. 닉슨은 “후버는 나까지 끌어안고 자폭할 사람”이라며 두려움을 토로했다.

 

우리나라도 FBI의 내사에 유혹을 느꼈다. 72년 ‘FBI 같은 조직을 만들라’는 당시 내무장관의 지시로 치안본부 특별수사대가 조직됐다. 청와대 하명(下命) 사건을 전담한 팀이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위치하면서 ‘사직동팀’으로 통했다.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에 관한 정보를 주로 수집했다. 내사 자료는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통해 대통령에게 직보됐다. 불법 감청·미행에다 청부 내사 의혹까지 드러나 2000년 10월 해체됐다. 28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내사 내용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경험했다.

 

내사는 범죄 혐의가 있는지 알아보는 수사의 전(前) 단계다. 수사기관은 범죄정보 수집 차원에서 수시로 내사를 벌인다. 인지(認知), 신문·방송 보도, 익명의 신고·제보·진정, 인터넷 글 등 모든 걸로 단초로 삼는다. 미행, 사진 촬영, 돈 흐름 추적 등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게 보통이다.

 

내사의 개시와 종결 권한을 놓고 검찰과 경찰이 힘겨루기 중이다. 경찰의 독자적인 내사권과 검찰의 통제권이 맞선다. 내사는 정보 축적 과정이다. 정보가 많은 곳이 권력기관이 된다. 마구잡이 내사는 판옵티콘(Panopticon) 사회를 불러올 수 있다. 모든 것을 감시 받는 원형감옥의 사회는 위험하다. 누군가 나의 뒤를 캐고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섬뜩하다. 내사권 논쟁을 잘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경향신문 칼럼-여적/노응근(논설위원)-20110623목] 클린카드

 

1990년대 초 국세청이 직원들에게 ‘동석작배(同席作配)’ 업소 출입을 금지한 적이 있다. 접대를 받을 때 여종업원이 옆에 앉아 시중을 드는 룸살롱이나 요정에 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시 세무공무원 비리가 잇따라 적발되자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내놓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 뒤 2003년 ‘공무원 행동강령’이 시행되고 직무관련자와 밥을 먹거나 편의를 제공받을 때 3만원을 넘으면 안되고, 경조금품은 5만원을 넘지 못한다는 세무기준까지 마련됐다. 그러나 이런 행동강령이 시행된 지 8년이 됐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 국민권익위원회가 개최한 주한 외국기업 최고경영자 초청 정책설명회에서 “한국 공무원을 초대해 3만원 이내로 접대하면 기분나빠 한다. 현실적으로 고쳐 달라” “한국의 공공기관은 행동강령 교육이 안돼 있다”는 불만이 나왔다고 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무원 행동강령이 접대를 받을 때 적용하는 기준이라면, 2005년 도입된 공공기관의 ‘클린카드’ 제도는 접대할 때 업무추진비의 씀씀이를 규제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공식적인 직무수행과 관련이 적은 특정 업소에서는 쓸 수 없는 법인카드다. 정부 예산집행지침상 유흥주점이나 안마시술소, 노래방, 골프장, 오락실 등 약 20개 업종에서 사용이 제한되고 있다. 그러나 클린카드도 유흥 목적 사용, 사적 사용 등 위법·부당한 집행 사례가 고질적으로 반복되면서 정착되지 않고 있다. 국민 세금인 업무추진비를 쌈짓돈처럼 무분별하게 쓰는 사례가 많은 것이다. 국민권익위가 매년 실시하는 청렴도 평가에서 하위권에 속한 공기업 6곳을 대상으로 2008년 6월부터 1년6개월간 클린카드 사용 실태를 조사했더니 10억원을 부당하게 사용한 사실이 적발됐다고 한다.

 

행동강령 준수나 클린카드 사용에서 드러나는 문제는 최근 잇따르는 공직자의 비리와 직결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공직사회의 부패는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지난해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 평가에서 한국은 10점 만점에 5.4점으로 178개국 중 39위에 머물렀다. 절대 부패(5점)에서 조금 벗어난 수준이다. 공직사회 부패부터 척결해야 한다. 끊임없는 감시활동과 함께 엄중한 처벌로 경각심을 높이는 길밖에 없다.

 

 

[매일경제신문 칼럼-장용성 칼럼/장용성(주필)-20110623목] 왜 성공한 전임 대통령이 없나요?

 

얼마 전 서울에 주재하고 있는 한 외교관의 질문이 귓가에 맴돈다. 언론인 몇 명과의 오찬 자리에서 그는 "한국은 그동안 민주주의에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단 한가지 부족한 것은 성공적으로 안착한 전임 대통령(Ex-President)이 없는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 외교관은 곧이어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은 어떨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함께 자리한 언론인으로서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전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논란이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씨의 뒤늦은 저서(`운명`) 출간을 계기로 다시 일고 있다.

 

우리는 세계무대에서 다른 국가들과 릴레이 게임을 하고 있다. 대통령은 우리 국민을 대리해서 달리는 선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릴레이 선수가 끝까지 잘 뛰어주고 바톤을 이을 출중한 후임 선수를 고르는 일이다. 달리는 선수가 막판에 절름발이가 되면 릴레이에서 뒤처지게 되고 손해는 대한민국과 국민이 보게 된다.

 

우리 현실을 보면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마저도 국민의 대표선수 뒷다리를 잡아당기는 행태가 부쩍 늘고 있다. 나라 안팎의 불길한 사정을 보면 대통령이 국정의 조종간을 확실히 잡지 않으면 안 된다. 대통령도 주주인 국민의 뜻과 달리 자기 이해를 챙기는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에 빠져드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

 

성공한 전임 대통령으로 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감정의 바람`을 차단해야 한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의 반값 등록금 발언은 날로 세를 불려 가면서 한국판 문화혁명처럼 대학가를 강타하고 있다. 학생데모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고, 차기 대통령 정부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일부 대학의 몰염치와 장삿속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아탑과 교수들을 탐욕의 집단으로 몰매를 주는 것은 국가의 장래를 생각할 때 불행스러운 일이다. 청와대는 황 대표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제동을 걸었어야 했다. 대통령 공약인 법인세 감세 철회 발언에도 좀 더 강력한 대응을 했어야 한다. 앞으로 무슨 포퓰리즘적인 헛소리들이 나올지 모르지만 청와대와 해당 부처에서는 확실한 쐐기를 박아야 한다. 언론과 시민단체들도 나서야 한다. 매일경제신문이 국내 최초로 `포퓰리즘정책감시단`을 발족한 것도 그 때문이다.

 

대통령은 지난 주말 장차관을 모아 놓고 워크숍을 하면서 `나라가 썩었다`고 강도 높은 질책을 했다. 강력한 사정정국이 예고된다. 대통령의 발언은 그렇지 않아도 정권 말기 `낙지부동`인 공무원들에게 1년만 더 참으면 된다는 식의 냉소적이고 방관자적인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다. 사정분위기보다는 그동안 추진해왔던 정책과 국책사업들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등을 떠밀며 구슬리는 게 실속이 있을 수 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분쟁이나 표류하는 사법개혁에서 볼 수 있듯이 기관 이기주의는 앞으로도 더욱 기승을 부릴 수 있다. 부처 이기주의에는 청와대가 단호해야 한다.

 

부산저축은행의 불법 비리 상황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 썩을 수 있고 오래 방치되어 왔는지 이해가 안 된다. 누가 됐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단죄해야 한다. 문제가 되는 금융권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인낸싱)는 중도금 대출까지 포함하면 실제론 130조원 규모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중수부 수사가 자칫 잘못해 뱅크런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 내 공조가 필요하다. 이런 때일수록 경제팀과 금융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잠을 못 잔다는 1000조원 규모의 개인부채가 부동산 경기 침체, 유럽발 위기 및 미국 중국 경제 주춤 등과 증폭되면 제3의 경제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심각한 내수 침체는 장차관 세미나 탁상공론으로는 어림없다. 경제대통령을 외치며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어려운 숙제는 과연 자신의 브랜드를 지켜낼 수 있을지에 달려 있는 것 같다.

 

 



한국일보 사설-20110627월] 태풍 '메아리'는 큰 탈없이 지나갔지만

 

예년보다 일찍 시작된 장마에 의외의 6월 태풍이 겹쳐 온 국민이 긴장했으나 심각한 피해 없이 지나갔으니 천만다행이다. 5호 태풍 '메아리'는 당초 27일 수도권 지역을 강타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진로가 바뀌고 속도가 빨라져 우리나라에 직접 상륙하지 않았다. 하지만 간접적 영향권에 머물렀던 상황만으로도 적지 않은 피해가 발생해 앞으로 더욱 철저한 대비가 필요함을 새삼 일깨웠다.

 

우리는 지금 여느 때와 달리 강풍과 폭우, 특히 집중호우에 취약할 것으로 예상되는 요인들을 안고 있다. 4대강 사업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고, 구제역 창궐로 전국 4,700여 곳에 가축 매몰지를 서둘러 만들어 놓았다. 경북 칠곡군 왜관철교(호국의 다리)가 물살을 이기지 못해 붕괴됐는데, 문화재로 지정(406호)돼 보호ㆍ관리를 받고 있었고 50년 이상 이번보다 더한 호우도 견뎌냈던 점으로 미루어 4대강 공사와 전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또 일부 가축 매몰지에서 새롭게 침술수가 새어 나왔다는 주장들도 무심하게 넘기기 어렵다.

 

좀 더 조심하고 미리 대비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피해들이 여전했다는 대목은 참으로 안타깝다. 강풍과 호우의 직접 피해로 10여명의 사망ㆍ실종자가 발생했는데, 피해자의 대부분이 호우로 불어난 물가에서 물놀이와 낚시를 즐기다 화를 당했다고 한다. 또 무성해진 가로수가 강풍에 쓰러지면서 전신주를 덮치는 바람에 정전이 되어 인근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기도 했다. 관리 당국이 평소 주의를 기울였다면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들이었다.

 

막 시작된 장마에, 서해상으로 비껴간 태풍에 이만한 피해가 발생했으니 유난히 길다는 이번 여름을 나는 일이 걱정스럽다. 공정의 5% 정도가 남아있는 4대강 사업의 경우 '수로 관련 공사는 마무리 단계가 가장 위험하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가축매몰지 문제도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한다. 아울러 강풍과 호우에 대해 당국의 예보나 경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국민 개개인이 충분한 경각심을 갖는 일이다.

 

 

[한겨레신문 사설-20110627월] 태풍·장마 사고 잇따르는데도 “4대강 사업과 무관”만 외칠 텐가

 

걱정했던 대로 4대강 공사 현장에서 장마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엊그제 경북 칠곡군의 석전리와 관호리를 연결하는 옛 왜관철교(호국의 다리) 2번 교각이 무너져 내렸고, 어제는 상주보 제방 수백 미터가 유실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옛 왜관철교 사고는 새벽이 아니었다면 인명피해가 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지난달 초 남한강 강천보와 이포보 사고를 시작으로 경북 구미 광역취수장 임시물막이 붕괴, 영산강 승촌보 상수관로 붕괴사고가 잇따랐을 때부터 전문가들은 대규모 준설 때문에 이런 사고가 재발할 것이라고 우려해왔다. 그럼에도 정부는 오불관언의 태도로 안전점검을 소홀히 한 채 공사를 밀어붙였고 결국 이런 결과를 맞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앞으로 태풍과 장마가 이어지면 더 큰 사고와 인명피해가 우려되는데도 국토해양부는 계속 딴전만 부리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은 옛 왜관철교 사고에 대해 “교각이 있는 부분은 (4대강 공사) 준설라인에서 벗어난 곳으로, 강물이 아닌 둔치 위에 있어 교량보호공 설치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4대강 사업과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이 스스로 작성한 자료를 봐도 이는 사실과 다르다. 부산청이 만든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철교의 9개 다릿발(교각) 가운데 2~8번까지 7개에 교량보호공을 설치하도록 돼 있으나, 3~6번까지 4개 다릿발에만 보호공을 설치했다. 또 부산청의 설명과 달리 낙동강지키기 부산본부가 지난 3일 항공촬영한 사진을 보면, 문제의 2번 다릿발은 둔치가 아닌 강물에 박혀 있다. 4대강 공사를 서두르느라 스스로 정해놓은 안전기준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이런 사례는 이곳만이 아니어서 앞으로도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곳곳에 널려 있다. 같은 환경영향평가서에는 경북 고령의 우곡교 다릿발 가운데 4~8번 다릿발에 보호공을 설치하도록 돼 있으나 8번 다릿발에 보호공을 설치하지 않았다. 경북 상주에 있는 경천교의 경우에도 수중에 있는 다릿발에 보호공이 설치되지 않아 붕괴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토부는 4대강 준설공사로 인한 역행침식 우려가 나오자 “하상유지공 설치 등을 통해 적절히 대비하면 문제가 없다”는 태도로 일관해왔다. 그러나 4대강 준설공사 전에 설치를 끝냈어야 할 하상유지공을 뒤늦게 올해 초에야 설치 계획을 세운다고 부산을 떤 것만 봐도 정부가 얼마나 졸속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는지가 잘 드러난다.

 

정부는 4대강 공사로 인한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전국의 공사 현장에 대한 안전점검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그리고 4대강 사업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의견들에 지금이라도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그러지 않으면 4대강 속도전은 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 큰 불행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조선일보 사설-20110627월] 對北 원칙론의 도덕적 근거 확장하려면

 

한·미(韓美) 양국이 25일 워싱턴에서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북핵(北核) 6자 회담이 재개되려면 남북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우리는 북한과의 직접대화에 대해선 열린 입장이지만, 북한이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야만 한다는 결심과 공통된 입장을 확고히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달 초 "이명박 정부와 상종하지 않겠다"며 남북 비밀접촉 사실까지 공개한다면서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만들어 내기까지 했다. 어떻게 해서든 작년에 자신들이 저지른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한 시인과 사과 요구를 피하면서 내년 선거정국을 통해 남남(南南) 갈등을 유발해보려는 책략이다. 북한은 이와 함께 국제사회를 향해 여차하면 또다시 핵실험 등을 할 것처럼 시위하며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자신들과의 선(先)대화 쪽으로 돌리려는 전술을 병행하고 있다.

 

클린턴 장관은 대북식량 지원과 관련, "북한은 지원식량이 실제 어떻게 쓰이느냐는 모니터링 문제와 과거 식량지원 당시 해결되지 않았던 의문점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해소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2007년 식량지원 중단 때 북에 남겨둔 2만여t의 식량이 군용(軍用)으로 전용됐을 가능성을 의심해왔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두고 우리를 무력으로 공격하는 인민군의 전력 증강에 쓰일 쌀 등 전략물자를 지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 원칙론을 견지하면서도 이 같은 원칙론이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에서 이의(異意) 없이 받아들여지도록 지지 토대를 확장하기 위해서도 인도적 접근은 필요하다. 강성대국 운운하며 정권 수명 연장용 정치쇼에만 매달린 북한은 5세 미만 어린이의 32%가 발육부진, 저체중이 19%에 달하며 1세 미만 영아 1000명당 19.3명이 사망하고, 2세 미만 어린이를 둔 15~49세 어머니 26%가 영양실조 상태(2009년 UNICEF)에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만도 못한 수준이다. 노인들은 전력부족으로 고층아파트 승강기 운행이 중단돼 집안에서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가기도 한다. 북한의 결핵 발병률은 10만명당 370명으로 세계 7위다.

 

정부는 물론 민간단체들도 북한 주민의 이런 처참한 형편을더 따뜻한 눈으로 살필 때 대북원칙론의 도덕적 근거가 굳건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10627월] 한·EU FTA ‘개성공단 특혜’ 철회 배경 규명돼야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EU 측이 개성공단 생산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할 의향이 있었으나 한국 정부가 소극적으로 나와 무산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글린 포드 전 유럽의회 의원은 최근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2008년 말 내가 유럽의회 의원일 때 개성공단 생산품을 한·EU FTA의 특혜관세 대상에 포함시키자고 제안해 결의안을 채택했다”며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에 관심을 잃었고, 최종적으로 협정문에서 빠졌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을 정부가 스스로 포기했다는 얘기다.

 

그의 증언은 협상 경과와 일치한다. 2007년 4월 한·EU FTA 협상을 시작할 때 정부는 FTA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로 개성공단 생산품의 수출을 들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2008년 5월 7차 협상 때까지도 개성공단이 FTA에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최종 8차 협상 때인 2009년 3월부터 태도가 달라졌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이 일어나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던 시점이다. 최석영 외교통상부 FTA교섭대표는 “협상 과정에 대한 부분이라 (우리가)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그러나 남북관계 악화로 개성공단을 양보하는 대신 자동차 관세환급 등 다른 무엇을 받았을지 모른다는 일각의 의구심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다.

 

명시적 규정을 넣지는 못했어도 역외가공위가 매년 한국산 인정 여부를 결정토록 해 개성공단 제품이 한국산과 같은 특혜관세를 부여받을 수 있는 틀을 마련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개성공단 생산품이라도 한국을 거칠 경우 한국산으로 인정하는 2006년 3월의 한·싱가포르 FTA보다 후퇴한 것이다. 한·미 FTA에서는 비핵화 진전이나 남북관계 영향, 환경·노동 기준 등을 한국산으로 인정할 수 있는 조건으로 달았다. 개성공단이 경제적 판단보다 정치적 풍향에 따라 휘둘릴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진 것이다.

 

며칠 전 미국의 새로운 대북제재 행정명령 시행령으로 한·미 FTA가 발효되더라도 110여개 나라에 수출된 유아용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를 비롯한 남북 합작 영화 등을 규제할 수 있다는 해석을 미국 쪽에서 내놨다. 대북제재가 북쪽만이 아니라 남쪽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남북관계 악화를 이유로 ‘개성공단 특혜’마저 저버리는 정부라면 그 어떤 대북 제스처를 내놔도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 특혜’의 자진철회는 뒤늦게라도 그 배경이 규명돼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10627월] 포퓰리즘 공방 갈등 대화로 풀어라

 

정치권과 재계가 날 선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서로를 향해 독설을 쏟아내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져 가는 형국이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재계를 대표해 연일 쓴소리를 내뱉으며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지난주 금요일 열린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경제5단체장 첫 간담회에서도 정치권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드높였다. 29일로 예정된 대·중소기업 상생 공청회의 출석도 사실상 거부했으며 다른 경제단체장들도 모두 불참할 것이라고 한다.

 

재계는 초과이익공유제, 감세 철회와 ‘반값 등록금’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감세 철회는 국가 경쟁력보다는 내년 선거를 의식한 불순한 의도에서 추진되고 있으며 ‘대기업 때리기’로 민심을 얻으려는 정치권의 의도적인 행동은 재계는 물론 국가경제에도 손상을 입힐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앞세웠던 현 정부가 초심을 잃고 경제단체장들의 국회 출석 요구 등 정치권의 무리한 요구에 침묵하고 있다며 더 이상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사사건건 각을 세웠던 여야는 재계의 반발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로 공세를 높이고 있다. 정치권의 친서민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근거에 대해 분명한 해명이 필요하다며 공청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국정조사에 불러내겠다고 재계를 압박하고 있다. 그동안 감세와 고환율·저금리정책의 혜택을 누려 온 재계가 민생을 보듬으려는 정치권의 대안 제시를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는 것은 후안무치라는 것이다.

 

표를 좇는 정치권과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재계의 갈등은 어쩌면 당연하다. 자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하지만 서민들을 위한다면서 정작 서민들은 구경꾼으로 전락한 이러한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선심성 정책이 남발돼서도 안 되겠지만 정치권의 주장을 무작정 폄하하는 것도 잘못된 접근법이다. 지금은 감정을 가라앉히고 스스로의 허물을 먼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면 해법은 쉽게 도출할 수 있다. 정치권과 재계, 양측의 자제를 촉구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10627월] 사회보험원칙에 안 맞는 예술인복지법안

 

고용노동부가 일부 예술인들에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적용하기로 한 이른바 예술인복지법안에 대해 반대입장을 밝힌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법안의 내용이 사회보험제도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근로자의 특성상 발생하는 실업과 산업재해의 위험으로부터 근로자의 생계를 보호하고 노사갈등 예방 및 생산성 제고를 위한 노사 간 합의의 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같은 사회보험제도 적용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은 바로 근로자성이다. 특히 고용보험의 경우 사용자와 사용 종속관게에 있는 근로자를 실업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문제는 예술인의 경우 이 같은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다수 예술인은 보험료를 부과할 사업주가 없기 때문이다. 또 보험을 적용할 경우 언제 얼마나 소득을 올리는지, 언제 일하고 언제 쉬는지 정확한 정보를 수시로 제공해야 하지만 고정적인 사업주가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정보자료의 제공과 획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술적으로도 사회보험의 적용 및 운영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을 관할하는 법률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다른 개별법을 통해 이들 사항을 다룬다면 법체계상으로 심각한 혼선이 불가피하다. 일반 근로자에 비해 예술인에 대한 실업급여 기준이 휠씬 유리하게 돼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대목이다. 근로자는 6개월, 현재 추진 중인 자영업자의 경우 1년간 일을 하거나 영업활동을 해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데 반해 예술인은 3개월만 일해도 급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만약 이 같은 예술인복지법안이 시행될 경우 고용보험에서 기업과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부담만도 연간 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산재보험의 경우 비용추계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의 심각한 재정악화 요인이 되는 셈이다. 예술인을 위한 복지의 필요성은 인정된다. 그러나 다른 근로자와 기업에 부담을 주는 방식은 사회보험제도의 원칙에 부합되지 않을 뿐더러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고돼야 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횡설수설/권순활(논설위원)-20110627월] 잘못된 경제교육

 

김일성과 박헌영은 1950년 남침 전쟁을 일으키면서 남한 주민의 자발적 봉기가 잇따를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물거품으로 끝났다. 1948년과 1950년 1, 2차 농지개혁으로 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우리 농민의 애정이 커진 것도 결정적 원인으로 꼽힌다. 군부 내 좌익세력이 6·25전쟁 이전에 척결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북한도 토지개혁을 했지만 나중에 다시 국가가 빼앗아가 실제 농민에게 돌아간 혜택은 남한이 더 컸다. 역사적 진실이 이런데도 한국의 일부 교과서는 우리 농지개혁이 북한보다 못한 것처럼 기술(記述)하고 있다.

 

▷한국은 1960년대 이후 경이적 경제성장으로 개발도상국의 부러움을 사는 나라로 도약했다. 일부 부작용도 있었지만 대다수 한국인의 생활수준과 국가 위상은 지난 50여 년간 획기적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상당수 교과서는 외국자본 의존, 대외의존, 산업 불균형, 빈부격차, 근로자와 농민의 희생이라는 좌파 운동권의 경제관을 되풀이한다. 경제성장을 견인한 대기업에 대해서도 부정적 측면만 부각하고 해외시장 개척, 민족자본 형성, 고용과 소득창출 같은 긍정적 기여는 무시했다.

 

▷서울대 박효종 전상인 교수, 홍익대 김종석 교수가 전경련의 의뢰를 받아 고교 한국사 교과서들에 실린 경제 관련 현대사를 분석해보니 좌편향성, 불공정성, 사실 관계 오류가 많았다. 반(反)시장경제 이념을 부추기는 내용도 적지 않았다. 분석을 맡았던 교수들은 “일부 한국사 교과서가 한국경제 발전과정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공정하게 소개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이 균형 있는 시각을 갖추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보릿고개를 몸으로 겪은 세대가 줄어들면서 성장과 분배, 효율과 공평 사이에서 다양한 사회적 요구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아무리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지만 불과 두 세대 만에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나타난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편향된 경제관을 가르치는 것은 잘못이다. 미래 한국을 이끌어갈 어린 학생들을 정확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경제교육으로 오염시키는 것은 개인의 건강한 성장에도 해롭고 국가 선진화의 장애물로 작용할 것이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남정호(국제 선임기자)-20110627월] 로빈후드 포퓰리즘

 

춘추시대 정나라 재상 자산은 강에 발이 묶인 백성을 보곤 수레에 태워 건네준다. 이에 맹자가 꾸짖는다. “은혜롭지만 정치가의 일은 아니다(惠而不知爲政)”라고. 정치가면 촌음을 아껴 다리 놓는 일부터 헤아리라는 거다. 근본 해결 아닌 포퓰리즘적 대처에 대한 호된 질책이었다.

 

기록상 서양에서 포퓰리즘이 등장하는 건 로마시대 때다. 기원전 2세기 호민관이던 그라쿠스 형제는 시민에게 땅을 나눠주고 옥수수도 시가보다 싸게 판다. 개혁을 위한 지지 확보 차원이었다. 하나 로마인들은 독재자가 되려 한다며 이들을 사형시킨다.

 

이런 비극적 출발에도 불구하고 포퓰리즘은 시공을 초월해 퍼져나갔다. 숱한 인기영합주의가 창궐했지만 압권은 1940·50년대 아르헨티나 후안 페론 전 대통령 부부가 펼친 정책이다. 페론은 국토의 3분의 1을 몰수해 서민들에게 나눠줬다. 의적을 흉내 낸 ‘로빈후드 포퓰리즘’이었다. 황당한 정책도 많았다. 지방분권을 돕는다며 TV공장을 수도에서 3000㎞ 떨어진 남극 옆에 세웠다.

 

아내 에바도 못지않았다. 뮤지컬 ‘에비타’의 소재가 될 정도로 극적인 삶을 살았던 그는 “나는 남편과 국민을 섬기기 위해 사는 여자”라며 밤낮없이 빈민들을 만났다. 나환자들의 상처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이들과 입을 맞췄다. 자궁암으로 33세에 숨지자 성자로 모시자는 요청이 교황청에 쇄도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나 에바는 포퓰리즘의 화신이란 욕도 먹는다. 빈자를 돕는다고 트럭 가득 돈을 싣고 다니며 뿌려댄 탓이다.

 

포퓰리즘이 페론의 전유물은 아니다. 파격적 의료정책을 폈던 탁신 전 태국 총리, 막대한 원유 판매 자금을 뿌렸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그랬다. 그럼에도 아르헨티나인들은 누구보다 선심정책에 길들여져 있다. 최근 열 번의 선거에서 여덟 번 페론주의자가 이긴 것도 이 때문이다. 현 페르난데스 정권도 값싼 내수용 빵·쇠고기를 확보한다며 수출세를 매기고 가격을 통제한다. 그러자 농민들은 마진이 박해진 목축과 밀 재배를 포기하고 있다. 농업천국 아르헨티나에서 쇠고기·밀이 부족해질 판이다. 데모를 하면 시위대에게 금품이 쥐어진다. 어그러진 포퓰리즘의 단적인 모습이다.

 

최근 ‘반값 등록금’ ‘무상급식’ 등으로 포퓰리즘 논란이 뜨겁다. 바람직한 복지정책인지, 포퓰리즘적 선심공세인지는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다만 어느 쪽이든 아르헨티나의 전철을 밟지 않게 조심하는 건 백번 마땅한 일이다.

 

 


 

 

[매일경제신문 칼럼-기고/김성철(주콩고민주공화국 대사)-20110627월] 왜 아프리카인가 ?

 

요즘은 아프리카를 더 이상 가난과 원조에만 결부시켜 보지는 않는다. 미국이 국가안보 차원에서 원유 확보원을 다변화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중요성을 새삼 인식하기 시작했고,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국 경제 성장에 필수적인 광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이들 외에 선진국과 브라질 러시아 인도 등 신흥 경제대국들 입장도 이들 두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동안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를 운영했던 선진국들이 하나같이 아프리카 자원을 일방적으로 수탈해간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점을 재빨리 파악한 중국은 자신들은 아프리카 국가들에 필요한 인프라스트럭처를 건설해 주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자원을 가져가므로 서로에게 모두 득이 되는 `윈-윈` 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아프리카 지도자들에게 환영을 받아왔다.

 

자원이라고 별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우리나라로서도 아프리카에서 필요한 자원을 확보해야 하고, 또 남아도는 국내 건설 역량 수출처도 찾아야 하지만 우리 접근 방법은 이들과 많이 다르고 독특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OECD 원조위원회 가입과 작년 말 서울에서 개최한 G20 정상회의 등을 통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들 아프리카 국가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실제 필자가 근무하는 콩고에서는 우리 전문가들이 콩고 전문가들과 함께 콩고 국가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또 이들에게 시급히 필요한 농촌개발, 보건의료, 직업훈련, 교육지원 사업들을 수행하고 있다.

 

이 같은 원조 방식은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던져주듯이 종래에 해왔던 원조 방식을 떠나 이들이 자기 발로 일어나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진정성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식 자원-인프라스트럭처 외교`는 일방적인 `수탈`이나 일대일로 주고받는 `윈-윈`과는 그 격을 달리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이 때문에 선진국과 제3세계 양쪽에서 지지와 존경을 받는다.

 

한국은 대부분 아프리카 나라들과 같이 식민지와 내전이라는 과거를 가졌지만 오늘날과 같은 세계 무대에서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OECD 국가 중에서는 유일하게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를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사례로 꼽힌다. 이 때문에 한국경제 발전 과정은 모든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따라 배우고 싶어하는 희망의 등대와도 같은 발전 모델이다.

 

콩고는 7000만 인구와 서유럽 국가를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 광활한 국토, 그리고 자원의 보고라고 불릴 정도로 온갖 광물자원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이들이 경제 발전 궤도에 올라설 수 있다면 아프리카의 지도국으로 부상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 우리에게 강한 신뢰와 기대를 보이고 있다. 요즘에는 킨샤사 인근 농촌개발 현장에 가면 동네 꼬마들이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안녕하세요"를 연발하며 몰려온다.

 

최근 우리나라가 아프리카에서 확보하고 있는 이와 같은 튼튼한 신뢰를 이제 정상외교를 통해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야 할 시기가 왔다고 본다. 주변 경쟁국들이 아프리카에 대한 정상외교에 공을 들이는 것은 나라에 따라 특별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국익에 도움이 되는 사업들을 성사시키고 개발하는 데 있어서 정상외교만큼 효과적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10억명에 달하는 역동적인 인구와 무진장한 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세계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부상하는 대륙이라는 점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국제무대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위해서도 이들을 가까운 친구로 만들어야 하며, 더 이상 그 첫걸음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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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5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10705화] 강화도 해병 총기참사 근본원인 해소를

 

강화도 해병 2사단 해안초소 생활관에서 4일 오전 김모 상병이 총기를 난사, 부사관 등 4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그는 범행 후 수류탄 자폭을 기도, 경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경기 연천 전방초소에서 총기 난동으로 8명이 숨진 이후 가장 피해가 크다. 해병대의 잇단 추문과 변고를 예사롭게 볼 수 없다.

 

군의 조사를 기다려 봐야겠지만 통상 생활관, 내무반의 실탄 반입이 금지된 사실에 비춰 계획된 범행으로 보인다. 범인은 초소 근무를 이탈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짐작된다. 또 군 총기난동 사건이 대개 상급자나 선임병의 구타 가혹행위 언어폭력에 대한 반감과 자포자기에서 비롯되는 틀을 벗어나지 않을 성싶다.

 

상식적 추론을 넘어 서해 도서를 지키는 해병부대라는 점을 특히 주목한다. 접적지역인 강화도와 연평도 백령도 등 북방 5도의 해병사단은 지난해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 이후 경계태세와 훈련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흔히 군의 기강 해이를 탓하지만, 전투태세와 군기를 강조할수록 지휘계통 말단, 일선 내무반에서는 억압과 반감이 쌓이기 쉽다. 나 어린 병사들의 지속적 긴장과 스트레스, 지나친 통제와 억압이 각종'군기 사고'를 부른다. 지난 달 강화 교동도 대공초소의 민항기 오인사격이나 백령도 해병대원 자살사건도 그런 맥락에서 볼 만하다.

 

게다가 해병대는 상습적 구타와 가혹행위, 은폐와 허위보고 등 낡은 관행을 척결하지 못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3월 구체적 사례를 근거로 근절대책을 촉구한 것은 상징적이다. 연평도 도발 때의 '용감한 해병'칭송과 인기 연예인 입대, 젊은이들의 열광에 가려진 어두운 구석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해병대 지휘부가 진급 로비 추문에 휘말린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2005년 연천 사건을 계기로 군이'병영문화 개선'에 매달렸던 데서 알 수 있듯, 혹독한 훈육과 군기만으로 결코 강한 전투력을 유지할 수 없다. 필승의 전투태세 확립에 앞서 병사들의 처우를 돌봐야 한다. 해병대는 비상한 개혁이 필요하다.

 

 

[한겨레신문 사설-20110705화] ‘1만원 정당 후원금’에 기소 남발하는 검찰

 

찰이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낸 교사와 공무원들에 대한 재수사에 나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소속 교사와 공무원 6명을 기소했다. 이는 단지 시작일 뿐, 수사 대상에 오른 교사·공무원이 무려 1900명에 이른다고 하니 또 한차례 ‘기소 광풍’이 불어닥칠 모양이다.

 

이번 사건은 검찰의 국가형벌권 남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다시 한번 극명히 보여 다. 공소장을 보면, 기소된 교사 한아무개씨의 경우 민노당 계좌에 당비 명목으로 넣은 돈이 1만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현행 정치자금법이나 국가공무원법상 교사·공무원이 정당에 가입하거나 당비를 내는 게 실정법 위반인 것은 맞다. 하지만 당비 1만원을 낸 행위가 과연 기소 대상이 될 만큼 중대한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는 실로 의문이다. 고작해야 ‘경고’ 정도로 넘어갈 사안에 검찰은 무자비한 법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검찰이 치졸한 법 해석을 앞세워 칼춤을 추는 의도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번 기회에 눈엣가시와 같은 전교조와 전공노 등을 손보고, 진보정당의 숨통을 조이겠다는 생각에서다. 결국 검찰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확립이라는 미명 아래 스스로 정치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기소 결정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어긋난다. 검찰은 지난해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에게 후원금을 낸 교사들은 무혐의 처분했다. ‘정당 후원금은 불법, 국회의원 후원금은 합법’이라는 기괴한 논리가 만들어진 셈이다. 하지만 좀더 정확히 말하면 ‘한나라당 관련은 무죄, 진보정당 관련은 유죄’가 검찰이 정한 불변의 법칙이다. 게다가 검찰의 이번 수사는 2009년 시국선언 사건 때 전교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몽땅 가져간 컴퓨터 서버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자체가 편법이다.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참여를 금지한 현행법이 지나친 기본권 제약이라는 것은 전문가들 사이에 이미 정설로 굳어 있다. 특히 정당 가입 자체를 형벌의 대상으로 삼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우리가 유일하다. 검찰은 정당성 자체도 인정받지 못하는 민노당 후원금 수사를 당장 중단하기 바란다. 부산저축은행 로비 사건 등 구조적인 부정부패는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면서 쓸데없는 수사에나 힘을 쏟으니 검찰이 자꾸만 국민의 눈 밖에 나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20110705화] 국민 共感 얻기 힘든 검찰총장 사퇴

 

김준규 검찰총장이 수사권 조정에 관한 검찰과 경찰의 합의안이 국회에서 수정돼 통과된 것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약속은 지켜져야 하고 일단 합의가 이뤄졌으면 그대로 이행돼야 한다"며 "합의가 파기되면 어긴 쪽에 책임이 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검찰총장인 저라도 책임을 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회는 지난달 말 검찰의 경찰 수사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안을 법무부령으로 정하도록 한 검·경 합의안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고쳐 통과시켰다.

 

김 총장은 사퇴 성명서에서 "이번 사태의 핵심은 (검찰의 경찰 수사 지휘 범위를) 법무부령로 정할 것이냐 대통령령으로 할 것이냐 하는 게 아니라 '합의의 파기'에 있다"고 했다. 국회가 정부 관련 부처들의 의견이 충돌하는 입법 현안에 대해 관련 부처들의 합의안을 존중할 필요는 있다. 더구나 이번 수사권 조정 합의안은 국회 사법개혁특위가 결론을 못 내려 총리실이 개입하고 거기서도 검·경 의견 대립이 심해 청와대까지 나서서 우여곡절 끝에 나왔다.

 

그렇다 해도 정부 관련 부처 사이의 합의는 어디까지나 정부 안에서의 합의일 뿐, 정부와 국회 간의 합의가 아니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정부 합의안을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합의를 지켜야 한다는 김 총장 주장은 국회는 정부 관련 부처 사이의 합의안과 다른 내용의 법을 만들지 말거나 만들었을 경우 합의에 참여한 부처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 거나 같다.

 

김 총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 협의 과정에서 검찰 권한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검찰 내부의 반발에 검찰 최고 책임자로서 부담을 느꼈을 법하다. 그러나 그건 검찰 내부의 문제다. 국민 눈엔 2년 임기가 다음 달 19일 끝나 임기를 40여일밖에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총장직을 사퇴하는 게 무책임하게 보일 뿐이다. 검찰총장의 사퇴가 국민 박수를 받는 유일한 경우는 검찰 수사에 대한 정권의 압력에 맞서 검찰권을 지키기 위해 총장직을 던질 때뿐이다. 김 총장에게도 그렇게 했어야 할 때가 몇 번 있었다. 이번 김 총장 사퇴는 부적절하다.

 

 

[경향신문 사설-20110705화] 국세청 전관예우 없앨 특단조치 내놔야

 

SK그룹으로부터 자문료 명목으로 30억원을 받은 이희완 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장에 대한 검찰 수사와 한상률 전 국세청장 재판 과정에서 국세청 고위 간부에 대한 전관예우 실태와 비리 의혹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기업과 공식 자문계약을 맺어 자문료조로 거액을 받고, 현직 간부가 나서서 선배의 자문계약을 챙겨주는 식의 전관예우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그제 이 전 국장을 김영학원의 대표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3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한 데 이어 SK그룹과 관련해 두 갈래로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국세청이 올해 3월 끝낸 SK그룹 세무조사에서 형사고발 없이 1000억원의 세금을 추징하는 과정에서 이 국장이 무마 로비를 벌였는지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30억원의 자문료에 대해서는 이 전 국장이 현직에 있을 때 SK그룹 세무조사를 봐줬는지 대가성 여부를 따져 ‘부정처사 후 수뢰죄’를 적용할 방침이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현직 때 세무조사 편의 등을 봐주고 퇴직 후 자문계약 형태로 사례를 받는 ‘신종 뇌물수수’가 된다.

 

주정업체로부터 자문료 6000만원을 받아 불구속 기소된 한 전 청장의 재판에서는 국세청과 주정업체와의 유착 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주정업체 간부는 검찰에서 “국세청 현직 직원이 전직 간부에 대한 자문계약을 주선하면 불이익이 걱정돼 거절할 수 없다” “국세청장은 퇴임 후 3년까지는 현직에게 영향력이 있어 자문료를 줄 수밖에 없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국세청은 주정·주류제조 인허가권은 물론 주정 생산량, 출고·판매가격까지 지정하는 등 업계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 전직 국세청 간부들이 주정·주류업계의 임원 자리를 대거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런 먹이사슬 구조를 잘 보여준다.

 

국세청은 업무 성격상 비리 가능성이 커 일반 공무원보다 훨씬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직원들의 각종 비리가 끊이지 않고 금품 수수 규모는 커지는 추세다. 고위직을 지낸 선배가 현직 후배의 도움으로 자문계약을 맺고 거액을 챙기는 현실에서 아랫물이 맑아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일반 공무원의 전관예우와도 유형이 달라 공직자윤리법으로 막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국세청은 얼마 전 자정결의를 했다지만 그리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실상을 잘 아는 국세청이 ‘퇴직자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스스로의 명예를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10705화] 복지 남발보다는 사각지대 해소가 먼저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 경쟁이 치열하다.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보육과 반값 대학등록금 등 올 들어 정치권 등에서 제기한 복지정책을 모두 시행하려면 연간 최대 60조원의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복지부문에서만 올해 전체 예산의 20%가량을 더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감세 철회’ 등으로 재원 조달이 가능하다지만 턱도 없는 얘기다. 세금을 엄청나게 더 걷든지,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겨야 하지만 조세 저항이나 세대 간 갈등을 우려해 언급을 피한다. 우선 듣기 좋은 얘기로 표만 얻고 보자는 심사다.

 

더 얹어주고 부담을 덜어주겠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 결국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다면 우선순위를 따져봐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가장 기초적이고 보편적인 사회안전망에도 가입하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자가 382만명이나 된다. 이들 중 75%가 10인 미만 사업장에 속한 노동자다. 3조원 이상을 투입해 대학등록금을 절반으로 낮추는 것보다 7000억원을 들여 이들에게 최소한의 보호망을 갖춰주는 게 먼저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조만간 닥칠 노인 빈곤과 저출산 세대의 부담 경감을 위해서도 사회안전망 사각지대 해소는 시급한 과제다. 더구나 소득 양극화 심화로 올해 1분기 저소득층의 건강·고용·산재보험과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료 부담률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지 않는가.

 

우리는 한나라당 중심으로 논의 중인 사회안전망 사각지대 해소 방안에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방치되고 있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와 가사노동자, 영세자영업자도 포함돼야 한다고 본다. 이들 중 59%에 이르는 507만명이 돈이 없어 사회보험료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들을 방치하다가는 더 많은 비용을 결국 공적부조 형태로 지출해야 한다. 선진국들이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의 비용을 재정에서 떠맡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치권은 퍼주기식 복지 경쟁을 멈추고 그늘진 곳에 방치되고 있는 사회적 약자에게로 눈을 돌려야 한다. 정치권이 합심하면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10705화] 자원 공기업 과다부채는 자원 콤플렉스의 결과

 

정권마다 반복되는 에너지 · 자원 비리사건이 또 터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석유공사 가스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등 자원개발 공기업 3사의 내년 부채규모가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2008년보다 2배 이상인 53조원을 넘어선다는 것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이른바 자주개발률에 대한 집착 때문에 공기업들이 무리하게 해외기업의 인수 · 합병에 나서면서 대규모로 외부차입을 감행한 탓이다. 이미 국제 자원개발 메이저 사이에서는 한국이 '봉'이라는 얘기가 파다할 정도다.

 

우리나라는 자원 문제에 대해 과도한 콤플렉스에 빠져있는 것이 사실이다. 총성 없는 자원전쟁, 자원 민족주의 등의 용어들이 난무하면서 당장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원을 확보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과장된 아우성을 내지르기 일쑤였다. 물론 에너지와 자원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처지이고 보면 끊임없이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수급이나 가격 전망 등을 따져 경제적 논리로 접근하기보다는 지나치게 정치적 · 지정학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자원과 관련한 온갖 비리와 부정 등은 모두 여기서 비롯된다. 국내에서도 자원개발 사기가 판을 치고 현란한 이름의 자원펀드들이 투자자를 현혹하고 있다.

 

그러나 자원도 경제재에 다름 아니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줄어 하락 압력이 발생하는 것이고,가격이 상승하면 공급이 증가하면서 대체재를 찾는 노력도 높아진다. 자원은 필연적으로 고갈돼 언제나 고공행진할 것이라는 그럴 듯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원의 희소성이 낮아지고 실질가격이 떨어지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1970년대 1차 석유위기를 계기로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론'이 크게 주목을 받았지만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석유 매장량과 가채연수는 오히려 계속 늘어나고 있다. 자주개발률만 높이면 된다는 발상은 그래서 언제나 위험하다. 정부가 원자재 콤플렉스에 사로잡히게 되면 아껴써야 할 진짜 미래 자원을 모두 엉뚱한 곳에 낭비하게 된다. 지금 자원 공기업의 과도한 부채 문제는 바로 그런 일단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10705화] 저축은행 구조조정 신속 과감하게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등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저축은행 경영정상화 방안에 따르면 85개 저축은행의 경영진단 결과를 토대로 자산건전성 분류 등을 통해 회생 가능성이 있는 곳은 금융안정기금을 투입, 자본확충을 지원하되 정상화가 어려운 곳은 과감하게 정리해나가기로 했다.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저축은행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건전한 경영환경을 정착시키는 제도적 틀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저축은행 구조조정의 기본원칙은 저축은행의 옥석구분을 통해 선별적 지원에 나선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이 5%를 넘는 곳에는 공적자금을 수혈해 경영정상화를 유도하되 이를 밑도는 저축은행은 경영개선권고 등의 절차를 통해 정리할 방침이다. 금융당국이 즉각 대부분의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특별점검에 나서는 한편 구조조정을 위해 공적자금을 전격 투입하기로 한 것은 그만큼 저축은행 부실이 예상보다 광범위하고 부실규모도 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저축은행의 전체 프로젝트파이낸싱(PF) 채권액 7조원의 절반 정도인 3조4,000억원 규모가 사실상 부실상태로 밝혀짐에 따라 공적자금 투입을 포함한 고강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경영건전화 방안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외부 압력이나 저항 등에 흔들리지 않고 저축은행의 경영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토대로 정상화가 가능한 곳은 과감히 지원하고 대신 가망이 없는 곳은 신속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매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 저축은행에 대한 불안감을 하루빨리 해소하기 위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부실 저축은행을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대주주의 불법과 도덕적 해이 등에 대한 책임도 철저하게 물어야 한다. 공적자금 투입과 연계해 증자 또는 배당제한 등의 조건을 부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구조조정이 지연될수록 부실은 심화되고 시장의 불신도 커지기 마련이다. 벼랑 끝에 몰린 저축은행을 살리기 위해서는 과감한 구조조정과 경영개선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뉴스테이션/동아논평/홍찬식(논설위원)-20110705화] 정부, 학업성취도 평가 거부 엄벌해야

 

서울과 경기 지역은 지난해 전국적으로 치러진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최하위권을 기록했습니다. 서울 고교생들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6.3%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습니다. 경기 고교생 가운데 영어 과목에서 '보통 이상'의 점수를 받은 학생은 전체의 59.4%에 그쳤습니다. 광주 고교생의 75.1%와는 큰 격차를 보였습니다. 서울과 경기 지역은 좌파 성향의 곽노현 김상곤 교육감이 각각 교육정책을 이끌고 있는 곳입니다.

 

좌파 성향의 6개 시도 교육감들이 오는 12일과 13일에 실시되는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좌파 교육감들은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이번 평가에서도 일부 교육감들은 시험을 보지 않는 학생들에게 대체 프로그램 제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좌파 교육감들은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해 '학생들을 줄 세우는 시험'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시험을 보지 않은 채 서울과 경기도처럼 학력이 낮은 학생들을 끌어올릴 방법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일부 교육청과 전교조 교사들이 시험을 거부하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닌지도 의심됩니다. 즉 학업성취도 평가를 하게 되면 각 학교와 교사들의 가르치는 능력이 곧바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평소 저소득층의 학생들을 가장 걱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저소득층의 학력은 갈수록 뒤쳐지고 있습니다. 학력과 경제적 지위의 상관관계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학업성취도 평가를 통해 어느 지역, 어느 학교의 학력이 저조한지 우선 파악한 뒤 그에 맞는 처방을 내려야 저소득층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교육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좌파 교육감들이 이런 일을 회피한다면 진정으로 저소득층을 위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교과부는 "시험을 거부하는 학교장과 교사들을 징계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로만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좌파 교육감들에게도 평가의 중요성을 설득하고 이들이 끝까지 거부하면 적절한 조치를 통해 평가를 실시하는 추진력을 보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동아논평이었습니다.

 

 

[중앙일보 칼럼-취재일기/송지혜(사회부문 기자)-20110705화] 등록금에 쓰러지는 대학생 더는 없어야

 

“내 나이 스물셋, 내년 복학을 앞두고 학비를 모으려고 전역한 지 5일 만에 일을 시작해 어느새 3개월째입니다. 호텔에서 터보냉동기, 보일러, 냉온수기 그외 모든 기계를 담당하고 있지요. 그래서인지 고인의 얘기가 남의 일 같지 않네요.”(네티즌 안현준씨)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형마트 냉동기를 점검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고로 안타깝게 숨진 황승원(22)씨의 사연이 본지에 실리자 인터넷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본지 7월 4일자 18면> 고인을 애도하고 그를 구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댓글이 수백 건 달렸다.

 

황씨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도 배움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 고입·대입 검정고시를 통과해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09학번이 됐다. 자신처럼 학교를 다니지 못해 고입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여동생(16)에게 그는 희망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그는 전역 후 이틀 만에 월급을 많이 준다는 냉동기 점검 아르바이트에 뛰어들었다. 2학기 등록금을 제 힘으로 마련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차가운 기계 점검실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서울시립대 경제학부의 2학기 등록금은 204만4000원. 사립대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식당일 등으로 벌어오는 월 100만원의 수입이 전부인 황씨에겐 너무 큰 부담이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립대 학생들의 절박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일부에선 “황씨 죽음의 본질은 안전사고”라고 지적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등록금을 벌기 위해 위험한 아르바이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한 청년의 상황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최근 한 시민단체가 대학생 3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심한 스트레스와 자살 충동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14%나 됐다. 지난 2월 강원도 강릉에선 한 대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숨진 학생 옆에는 즉석 복권과 학자금 대출 서류가 놓여 있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청운의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대학생들에게 우리 사회가 어떻게 손을 내밀지 진지한 모색이 필요한 때다. 대학생들이 등록금 부담에 목숨을 끊고, 위험한 아르바이트에 나섰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모습을 언제까지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할 것인가.

 

 

[경향신문 칼럼-여적/이승철(논설위원)-20110705화] 웬디 셔먼

 

2000년 11월 평양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은 아프리카 순방길에 올랐다. 그런데 아프리카와는 관련이 없는 대북정책조정관 웬디 셔먼이 줄곧 그를 수행했다. 미국 플로리다주 선거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판결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 중단 약속에 대한 북한의 제의를 시시각각 지켜보면서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을 지체없이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셔먼은 북한에서 긍정적 신호가 올 경우 클린턴 대통령 방북실무협의단을 이끌고 재차 방북할 예정이었다. 그의 재방북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치권에서 맴돌던 셔먼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11월 미국이 대북정책 전면 재검토를 위해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을 책임자로 구성한 이른바 ‘페리 위원회’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올브라이트 장관의 보좌관이었던 셔먼은 대북 포용정책을 핵심으로 한 ‘페리보고서’ 작성에 깊이 개입했으며 이후 대북 포용론의 대변자가 됐다. 그는 2000년 9월 페리 전 장관의 대북정책 조정관 자리도 물려받았다.

 

그가 한국 언론의 주목을 다시 받은 것은 2009년 초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의 인수위에 참여 하면서다. 힐러리 클린턴 현 국무장관의 대선 경선 캠프에서 활약했던 셔먼이 인수위에서 국무부를 담당하자 그가 대북특사로 임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나돌았다. 하지만 그는 오바마 대통령의 부름을 받지 못했으며,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은 그의 평소 소신과 달랐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일 셔먼을 국무부 정무차관으로 지명하면서 당장 관심은 그의 역할로 쏠린다. 일부에서는 국무부 부장관으로 승진한 빌 번스가 중동통인 만큼 셔먼은 아시아 문제를 주관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대북정책의 궤도 수정을 점치고 있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이들은 대북정책 등 동아시아 문제는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의 장악력이 확실한 만큼 셔먼의 영향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셔먼이 대북정책에 목소리를 내려 할 경우 성격이 강한 캠벨 차관보와 심한 갈등을 빚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가 실제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결국 백악관과 클린턴 장관의 의중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10년 남짓만에 외교무대로 돌아올 셔먼이 과연 어떠한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다.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포럼/온기운(논설위원)-20110705화] 原電 놓고 갈라지는 세계

 

"세계가 원전 찬·반으로 양분TMI나 체르노빌 사고 후여론 악화됐으나 다시 회복한국 에너지믹스 다시 짜고 중장기 대응책 강구해야"

 

3월 11일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자연재해가 인간이 상정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이른바 `베키분포`에 따라 발생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를테면 규모 8의 최대 지진이 있고, 규모 1의 최소 지진이 있다면 그 중간인 4 정도의 지진이 주로 발생할 것이라는 관념은 여지없이 깨졌다.

 

자연 현상이 과거 200년 동안 과학자들의 사고를 지배해온 정규 분포에 따라 발생하는 게 아니라 프랑스 수학자 베누아 만델브로가 강조한 것처럼 통상의 확률 분포를 벗어난 범위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류가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원으로 사용해온 원자력에 대해 새삼 겁을 집어먹게 됐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은 사고 발생 직후 원전 폐기 정책을 서둘러 발표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주선거(3월 27일) 패배 후 종전 견지했던 원전 지지 입장을 폐쇄 쪽으로 180도 바꿨다. 인접국인 스위스 정부는 5월 "2034년까지 국내 5개 모든 원자력발전소 문을 닫는다"고 발표했다. 이탈리아는 6월 국민투표를 통해 원전 재추진 정책을 백지화했다. 유권자의 94%가 원전에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프랑스 러시아는 원전 기치를 더욱 높이 치켜들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3일 만에 "탈(脫)원전은 논외다"고 선언했다. 프랑스는 오히려 원전 증설 추진으로 탈원전을 선언한 국가에 전력을 팔아 외화를 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탈원전 움직임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인류가 가까운 장래에 원전을 중단할 수 없다. 요구되는 것은 안전성 확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2025년까지 세계에서 30기 이상의 원전을 건설해 세계시장 점유율 20%를 차지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미국과 중국도 원전 정책 불변 입장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6일 만에 성명을 발표하고 "원자력은 장래 중요한 에너지원 중 하나"라며 원전을 유지할 방침을 밝혔다. 그 대신 안전성 기준 강화를 강조했다. 중국은 지진 발생 가능성이 높은 내륙지역 원전계획 수정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원전 지지 입장이다. 실제로 최근 장더장 부총리 등 정부 고위 관리들이 원전 확대 방침에 흔들림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잇달아 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는 갈라져 있다. 일본 원전 사고 이전과 비교해 보면 반대 여론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 미국 스리마일 섬(TMI) 원전 사고(1979년)나 옛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1986년) 후 각국의 여론이 일제히 악화되다가 2000년대 들어 국제 유가 급등 속에서 여론이 호전되고 `원전 르네상스`가 전개됐던 점을 감안하면 반대 분위기가 어느 정도 지속될지 지켜볼 일이다.

 

한국은 아직 정부가 원전 정책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고 국민 여론조사 결과도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한국은 원전 21기를 가동하고 있는 세계 5위의 원전 대국이다. 전력 공급의 40%를 원전이 담당하고 있다. 원전을 중단한다면 화력발전이나 신재생에너지로 전력 공급을 충당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수단은 전력생산비가 높기 때문에 전력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세계에서 가장 싸게 전력을 소비하고 있는 국민은 경제적 부담 증가를 감수해야 한다.

 

일본 국민이 전력 부족으로 올여름 찜통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너무 편안하다. 정부는 전력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에너지믹스를 다시 짜고 그 안에서 원전을 어떻게 할지 장기 마스터플랜을 제시해야 한다. 자연재해나 인재, 테러 등에 대한 안전 대책을 철저히 강구하는 게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원전 문제를 악용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한국일보 사설-20110706수] 보이지 않는 빈곤 탈출 사다리

 

'미꾸라지 용 된다.''부지런하면 작은 부자는 될 수 있다(小富在勤ㆍ소부재근).'도 옛말이 되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든 세상이 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강신욱 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소득 이동성의 변화추이'를 보면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빈곤층 열에 셋(31.1%)만이 겨우 상위계층으로 올라갔을 뿐이다. 이전 5년(1998~2002년)의 43.5%에 비교하면 크게 줄었다.

 

중하층도 비슷하다. 같은 기간 계층상승 비율이 줄어들어 28.2%에 불과했다. 반면 17.7%가 빈곤층으로 떨어져 전체 빈곤층의 비율이 12.3%로 늘어났다. 우리사회에 '빈곤의 악순환''소득 양극화'가 고착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통계이다. 이유야 뻔하다. 비정규직 양산으로 근로소득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경제불황은 영세 자영업자들까지 중하위층에서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다. 가난은 교육 기회의 박탈로 이어져 미래의 상승 사다리까지 없애 버리고 있다.

 

소득 양극화와 빈민층의 확대는 심각한 사회불안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는 소득 재분배와 저소득 복지정책의 확대로 이를 해소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를 보면 그 반대다. 올해 1분기 1분위(소득하위 20% 이하) 가구의 월평균 사회보험료 지출이 총소득(110만6,259원)의 3.56%(3만9,332원)로, 200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들의 보험료지출 비중이 어느 계층보다 높다는 데 있다. 최고소득층인 5분위 가구(2.2%)의 1.62배이다. 보험료 지출비중 역시 갈수록 고소득층은 줄어 들고, 저소득층은 높아지고 있다.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컸기 때문이라는 변명은 군색하다. 그만큼 소득이 늘어난 고소득층의 보험료 부과에는 너그러웠다는 얘기다. 이러니 '부자들을 위한 정부'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평생 고생해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사회보험 부담을 더 지우면서 복지국가라고 할 텐가.

 

 

[한겨레신문 사설-20110706수] 대북 식량지원 물꼬 트는 유럽연합

 

유럽연합이 1000만유로 규모의 긴급 구호식량을 북한에 지원한다고 엊그제 발표했다. 1차분이 다음달 북한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북 식량지원 재개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뒤 지원 식량의 군사 전용 여부를 둘러싼 갈등으로 중단된 지 3년 만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올해 들어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여온 국제사회가 본격적인 대북 식량지원에 나서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제사회의 지원이 본격화할 경우, 대북 교역·교류 전면 중단을 선언한 5·24 조처는 사실상 효력을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유엔이 현지 조사를 토대로 610만명의 북한 주민이 기아상태라며 43만t의 긴급 식량지원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게 지난 3월이다. 5월에 러시아가 5만t의 곡물을 북한에 지원하겠다고 했고, 6월 초에는 로버트 킹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가 한국 정부가 반대하더라도 필요하다면 대북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뒤이어 6월6~17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인도지원사무국의 식량평가단이 북한에 갔다. 평가단에 따르면, 북한의 배급 곡물은 4월 초까지 1인당 하루 400g씩 나오다가 6월엔 150g으로 줄었다고 한다. 밥 1공기쯤의 그 열량은 하루 평균 필요 열량의 5분의 1인 400㎉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연합은 이번 지원이 5살 이하 어린이, 임신부와 수유중인 산모, 노약자 등 “식량부족으로 죽어가는, 최소한 65만명의 북한 주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매월 400곳 이상의 배급 현장을 무작위로 방문해 확인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킹 특사도 이런 전용 방지 조처들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따라서 식량부족을 가장한 위장전술, 구호식량의 군사 전용을 우려해온 정부의 지원 거부 논리는 더욱 설득력을 잃게 됐다. 정부는 지난 3월 민간단체의 인도적 지원 재개를 허용했지만 곡물 지원은 여전히 막았고 물자 반출, 방북 신청도 줄줄이 불허했다. 유럽연합 발표 뒤에도 5·24 조처가 여전히 유효하다며 북의 태도 변화 없이 지원은 없다고 거듭 밝혔다. 이런 완강한 태도가 국제사회의 대북 접근도 막아왔다. 이제 그 벽이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정부도 국제사회의 이런 흐름을 언제까지나 나몰라라 할 수는 없다. 이제라도 스스로 시대착오적인 5·24 조처의 굴레를 풀어버리기 바란다.

 

 

[조선일보 사설-20110706수] 한국 내 중국 동포 50만명 돌파의 빛과 그림자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중국 동포(조선족)가 50만명을 넘어섰다. 5월 말 현재 중국 국적을 갖고 체류 중인 동포가 45만2000여명, 한국 국적을 회복하거나 귀화한 중국 동포가 7만5000여명으로 합치면 52만7000여명에 달한다. 중국 동포들은 건설현장 노동자, 가사 도우미, 식당 종업원 같은 3D 업종의 노동력 공백을 메우고 있고, 이들이 없으면 이런 업종은 제대로 돌아가기 힘들 정도로 의존도가 크다. 그런가 하면 1992년 한·중 수교 당시 200만명이던 중국 내 조선족 인구는 최근 180만명 수준으로 줄었다. 옌볜 조선족자치주의 조선족 비율은 1949년 63%에서 2009년 37%로 뚝 떨어졌다. 현지 동포 사이에선 이러다간 '조선족 자치주'라는 간판을 내리게 되는 사태가 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다.

 

조선족 연원(淵源)은 조선조(朝) 말인 18세기 후반 무렵 기근을 피해 그때까지도 우리 땅으로 여겨지던 새섬(사잇섬) 간도(間島)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이후 일본에 의해 나라가 망하자 독립 투쟁의 근거지를 마련하려고 혹은 일제의 수탈을 피해 새 운명을 개척하려던 사람들이 그 뒤를 이었다.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이 만들어진 이후에는 조선총독부가 앞장서 만주의 산업 인력 보충을 위해 소작농민들의 등을 떠밀기도 했다. 중국 동포는 굴곡 많은 민족사가 만들어낸 아픔의 소산인 셈이다. 중국 동포를 대하는 우리 정책은 중국 동포의 역사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깔려 있어야 한다.

 

중국 동포의 눈앞에 닥친 숙제는 비자 시한 문제다. 정부는 2007년 중국과 옛 소련 지역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편하게 우리나라를 드나들거나 취업할 수 있도록 방문 취업제를 도입했다. 올 3월 말 현재 중국 동포 29만7000명이 방문 취업 비자를 받았다. 2007년 받았던 5년 비자 시한이 올해 말로 끝난다. 중국 동포들이 내년부터 해마다 6만~7만명씩 우리나라를 떠나야 한다는 이야기다. 상당수 중국 동포들은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라도 더 머물며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과 건설현장 등에서는 이들이 떠난 이후의 인력난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외국인 관리 원칙과 중국 동포의 현실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경향신문 사설-20110706수] 왜 동물보호인가

 

내년부터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은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거나 부당하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 등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처벌을 강화했다. 국내에서 동물학대죄에 징역형이 도입된 것은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었다. 또 2013년부터 개 등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은 지방자치단체에 동물 정보를 등록해야 한다. 동물이 함부로 버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등록을 의무화했다.

 

법을 개정한 취지는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급증함에 따라 날로 늘어나는 동물학대 및 유기 행위를 줄인다는 것이다. 지금도 기르는 개, 고양이를 끔찍하게 살해하거나 학대하는 일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심심치 않게 공개되고 있다. 또 유기동물은 지난해 10만899마리로 늘어 2003년 2만5278마리의 네 배에 이른다. 따라서 이번 법 개정은 만시지탄인 느낌이 있다. 주변의 동물에 대한 법적 배려가 이렇게 지지부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사람 먹고 살기도 버거운 세상에 웬 동물보호냐’는 생각이 넓게 퍼져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앞으로 개정된 법의 시행에서도 두고두고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우리는 법 개정에 즈음하여 다시금 “왜 지금 동물보호인가”를 묻고 성찰할 필요를 느낀다. 그것은 생명존중, 상생, 인간존중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동물보호는 생명존중 정신의 발로이며 그것은 곧 인간과 동물의 상생, 그리하여 인간존중의 정신으로 연결된다는 뜻이다. 인간존중과 다른 생명체에 대한 윤리적 배려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가령 올해 초 구제역이 창궐했을 때 인간은 수많은 돼지들을 산 채로 땅에 묻어야 했다. 돼지들이 생매장 당하며 비명을 지를 때 현장 사람들도, 나중에 TV화면을 본 사람들도 끔찍함에 몸을 떨었다. 돼지를 비인도적으로 학살하는 사회,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것을 기계적으로 답습하는 사회, 돼지에게 안락사라는 최소한의 배려조차 못하는 사회, 그곳이 다름아닌 인간 상실의 사회인 것이다. 따뜻한 인간애가 자리할 곳이 사라진 사회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법개정은 우리 사회의 동물보호 의식이 의미있는 첫걸음을 내딛는 것으로 평가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가축 생매장 금지 같은 조항이 정부 반대로 채택되지 못하는 등 보완해야 할 점들이 수두룩하다. 어쨌거나 이번 법제화가 ‘동물복지’ 의식 확산의 전기가 되기 바란다.

 

 

[서울신문 사설-20110706수] 軍부적응 병사 체계적 관리 적극 나서라

 

그제 인천 강화도 해병대에서 김모 상병이 전우를 향해 총격을 가해 4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학업과 생업을 중단하고 나라를 지키고자 군에 입대한 젊은이들이 동료가 무차별 가한 총격에 숨지고 다쳤다니 안타까운 심정 금할 길이 없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문제 사병 한명이 저지른 돌발행동으로 치부하고,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징병단계부터 정확한 인성검사를 실시하고 부적응자들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김 상병은 이미 입대 전 인성검사에서 위험도가 높거나 군 부대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들을 일컫는 ‘관심사병’으로 분류됐다. 이런 요주의 인물은 적절한 보살핌과 관리를 받았어야 했다. 몇년 전 국방부의 조사결과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가 10%가 넘는다고 한다. 결코 적은 비율이 아니다. 군내 자살사고나 총기사고가 대부분 이런 군 복무 부적응 병사들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부적응 병사들의 경우 군 입대 전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입대 후 선임병들의 끊임없는 구타와 가혹행위 등 폭력적인 문화로 인한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런 부적응 병사들이 어디 가서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제대로 털어놓고 상담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국군 장병 60만명 가운데 심리상담사는 고작 95명에 불과하다. 이제 예산상의 이유로 심리상담사 확충을 더 이상 미룰 상황이 아니다. 연대 단위로 1명 정도의 전문가가 배치되려면 심리상담사를 적어도 300~400명으로 늘리고, 이들이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군만 하더라도 사고와 관련한 특수한 상황, 업무수행 능력 문제, 제대 후 직업 선택 등으로 나눠 체계적인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군에서 심리적 위기를 겪는 ‘관심사병’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체계적인 관리 구축이 가장 긴요한 과제다. 이번 기회에 군 부적응 병사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군당국은 전투력과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무고한 젊은이들의 희생을 가져오는 군 부적응 병사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마라.

 

 

[한국경제신문 사설-20110706수] 기름값? 에너지 쇼크땐 어쩌려고…

 

정유사들의 기름값 한시 인하가 6일 자정으로 끝난다. ℓ당 100원씩 일률적으로 인하됐던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다시 원상태로 올라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는 소비자들의 부담을 줄이겠다며 조금이라도 인상폭을 낮추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정유사들에 가격을 단계적으로 올리도록 요청하면서 기획재정부와는 수입관세도 낮추는 방안을 협의중이다. 이렇게 해서 기름값이 ℓ당 2000원을 넘지 않도록 잡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책들은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유사들이 아무리 휘발유값을 천천히 올려도 세계 가격과 연동해 공급가격을 정하는 이상 감내할 수 있는 가격통제의 폭과 시간은 당연히 한계가 있다. 관세율을 현행 3%에서 제로(0)로 낮추더라도 휘발유값을 ℓ당 21원 떨어뜨릴 수 있을 뿐이다. 이는 하루 등락폭도 안된다. 더욱이 유류세 인하는 국제 원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웃돌지 않는 한 시행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다. 이렇게 보면 서울의 경우 현재 ℓ당 1994원인 평균 휘발유값은 곧 2000원을 훌쩍 뛰어넘을 게 틀림없다. 기름값을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발상은 애초부터 실현이 불가능하다.

 

더욱이 고유가시대에 기름값을 규제하는 것이 미덕이 될 수는 없다. 소비 절감이 필요한 시기에 오히려 과소비를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점에서 그렇다. 가뜩이나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에너지과소비 국가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GDP 1000달러를 올리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 원단위는 한국이 0.30toe(석유환산톤 · 2008년 기준)로 일본(0.10)의 3배, 미국(0.19)의 1.5배나 된다. OECD 평균치(0.18)보다도 높다. 같은 부가가치를 만드는 데 훨씬 에너지를 많이 쓴다는 얘기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에너지 원단위는 2008년 이후 다시 증가 추세다. 요금이 싼 전력사용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앞으로 에너지 쇼크가 닥칠 경우 리스크는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파티는 끝났다. 그리고 폭염이 다가올 것이다. 기름값 통제가 능사 아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10706수] 공공부채 관리대책 시급하다

 

우리 경제가 빚더미에 짓눌려 휘청거리고 있다. 정부ㆍ공기업ㆍ지방자치단체ㆍ가계 등 모든 경제주체들의 부채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를 비롯한 공공 부문의 부채가 빠른 속도로 늘어 이대로 가다가는 중남미 국가들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39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올해는 42조7,000억원 늘어난 435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해 이자만도 22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286개 공기업과 공공기관들이 안고 있는 부채는 388조6,000억원에 달한다.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공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지자체들이 선심성 사업을 남발하면서 떠안은 부채가 75조원을 넘어섰다. 지난 한해 동안 무려 24조원이 급증했다. 재정능력과 사업성 등을 감안하지 않고 무리하게 선심성을 사업을 벌인 결과 지자체와 지방공기업의 부채는 갈수록 불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제는 앞으로 이 같은 부채가 줄어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노령화 사회가 진행됨에 따라 국민연금ㆍ노령연금ㆍ건강보험 등의 재정악화가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치권이 선거를 겨냥해 반값 등록금, 무상급식 등 포퓰리즘 경쟁을 벌이면서 국가재정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대학등록금 인하와 관련, 1조5,000억원의 정부예산 편성을 요구해놓은 실정이다.

 

우리 경제의 최대 강점 가운데 하나는 건실한 재정이었다. 그러나 대규모 재정적자에다 이자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획재정부 국가재정운용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재정수입을 증대하거나 지출을 조정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오는 205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37.7%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번 수렁에 빠지면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빚이다. 부채의 수렁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재정적자를 비롯한 공공부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횡설수설/권순활(논설위원)-20110706수] 포퓰리즘 거부 서약

 

영국 저널리스트 찰스 윌런의 저서 ‘벌거벗은 경제학’에는 곱씹어볼 만한 경구(警句)가 많다. 그는 ‘불황에 빠지면 직장에서 해고되는 노동자가 가장 큰 피해를 본다’고 썼다. ‘현실에서는 양심보다 호주머니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경쟁은 늘 자기와 무관할 때만 좋다’ ‘브랜드는 때로 제품 자체보다 중요하다’는 말도 밑줄을 그을 만하다. 윌런은 “잠시 대중의 비위를 맞추는 연설을 해서 박수를 받는 것과, 진실을 이야기해서 비난을 받는 것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는 박수를 받는 쪽을 택하고 싶다”는 전직 미국 상원의원의 발언도 소개했다.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정치인의 속성을 꼬집은 내용이다.

 

▷자유기업원,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들 등 34개 단체가 참여한 ‘포퓰리즘 입법감시 시민단체연합’은 지난달 1일부터 국회의원 297명을 상대로 ‘포퓰리즘과 세금낭비 입법 안 하기 서약’을 받았다. 서약식이 열린 어제까지 서명한 의원은 전체의 13.5%인 40명에 그쳤다. 그나마 1차 마감일인 6월 17일까지는 16명만 서약했으나 일부 언론이 문제를 지적한 뒤 24명이 추가로 동참했다.

 

▷국정의 일차적 책임을 진 집권여당인 한나라당 의원 169명 중 강길부 나경원 나성린 신지호 이경재 이종구 조전혁 차명진 의원 등 37명(21.9%)만 포퓰리즘 입법을 안 하겠다고 약속했다. 제1야당 민주당 의원 87명 중에는 김우남 의원만 서명했고, 자유선진당에선 이명수 의원만 동참했다. 포퓰리즘 거부를 선언한 40명, 특히 야당인 김우남 이명수 의원의 소신은 돋보인다. 반면에 유력 정치인이나 과거 포퓰리즘의 폐해를 역설했던 경제장관 출신 의원들은 외면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제 “내년 정치 일정 전후로 각종 지출 요구가 분출하고 재정 포퓰리즘이 확산돼 재정 건전성 관리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의 말이 아니라도 지금은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하는 베짱이가 아니라, 미래 수요에 대비해 어떻게 돈을 아끼고 모을 것인지 고민하는 개미의 자세가 요구된다. 내년 말까지 우리 경제의 핵심 화두는 정치권의 ‘포퓰리즘 표(票) 장사’가 나라를 망치는 수준까지 가지 못하도록 어떻게 적정 수위로 통제할 것인가에 모아질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박종권(논설위원)-20110706수] ‘알바 지옥’

 

외국어를 축약하는 데 일본이 으뜸이다. 편의점이란 뜻의 ‘콤비니’는 영어 ‘컨비니언트 스토어’를 줄인 것이다. 빌딩은 ‘비루’다. ‘딩’이란 발음은 아예 뺐다. 종종 맥주를 뜻하는 ‘비루’와 헷갈리는 이유다. ‘바이토’는 노동을 뜻하는 독일어 ‘아르바이트(Arbeit)’를 줄인 거다. 이것만은 우리가 더 간명하다. 바로 ‘알바’다.

 

‘아르바이트’는 전후 독일에서 학비를 버는 일이란 뜻으로도 쓰이게 됐다. 폐허 속에서 제대로 공부할 수 있겠나. 휴학하는 학생이 늘자 대학과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를 구해준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인 것이다. ‘라인강의 기적’ 이후 시간제 용돈벌이로까지 의미가 확장됐지만.

 

우리에겐 고학(苦學)이다. 학비를 스스로 벌면서 고생해 배운다는 뜻이다. 일본 강점기에 성행했나. 1923년 신문에 ‘고학을 목적하고 일본으로 오시려 하시는 여러 형님께’란 글이 보인다. 내용인즉, “신문배달은 조석간을 배달하고 이십원 내외. 밥 사먹고 나면 오륙원으로 근근이 학비는 조달할 수 있다. 우유배달은 먹고 6~7원이지만 아침저녁으로 일하니 복습이나 예습할 시간이 없다. 변소소제는 집마다 10~50전을 주지만 창피와 모욕이 말로 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력거는 한 달에 10여 차 하면 학비는 되나 “단잠을 못 자고 학교에 간들 강의가 뇌(腦)에 들어갈 이치가 있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고학(苦學)에 고(苦)는 있어도 학(學)은 없다”고 했다.

 

6·25전쟁 이후도 마찬가지다. 당시 신문에 1959년 입학해 1965년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전쟁고아 이야기가 실렸다. 신문팔이·구두닦이를 전전하다 고려대에 입학해 서대문 호떡집에서 빵을 굽고 점심은 굶어가며 졸업했다는 감동 스토리다. 1969년 미국의 국제교육연구소가 파악한 한국 유학생 수는 3765명. 이 가운데 64%가 대부분 ‘접시닦이’ 고학생으로 파악됐다.

 

‘알바 천국’이란 구직 알선업체가 호황이란다. 하지만 실제는 ‘알바 지옥’이다. 구하기도 어렵지만 시간급도 짜다. 등록금 충당하기조차 어려워 ‘청년 백수, 만년 빚쟁이’ 신세다. 여전히 고(苦)는 있지만 학(學)은 어렵다. 독일 아우슈비츠는 ‘아르바이트는 자유를 준다(Arbeit Macht Frei)’고 했지만, 자유는 없었다. 젊음에게 주경야독(晝耕夜讀)이 아니면 야경주독(夜耕晝讀)의 의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알바’가 희망 없는 ‘젊음의 수용소’가 돼선 곤란하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태관(논설위원)-20110706수] 예스, 평창

 

강원도 평창에는 여름이 없다. ‘여름인 체하는 계절’이 있을 뿐이다. 대관령면 횡계리의 어느 음식점 주인의 표현이다. “여기는 일년 내내 겨울이에요. 한여름에도 응달에 얼음이 남아 있어요. 이곳 계절은 삼복 때나 잠시 여름인 체하다가 바로 겨울이 되지요.” 그의 식당에서는 8월에도 뒤뜰에 묻은 김장김치를 내놓는다고 한다. 평창군의 연평균 기온은 섭씨 10.3도, 고원지대인 횡계리는 6.1도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한국의 알프스’로 불리는 평창군은 해발 700m 이상인 곳이 전체의 약 60%를 차지한다. 태백산맥과 차령산맥의 1000m가 넘는 험한 산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산이 높으면 하늘이 낮아진다. “평창은 하늘이 낮아 재 위에서는 높이가 석자에 불과하다.” 삼봉 정도전의 표현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한때 난리를 피하기에는 좋으나 오래 살기에는 적당치 않다”고 적기도 했다. 하지만 두메산골인 평창지역은 구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되는 등 오래전부터 인류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골이 깊으면 유서도 깊게 마련이다. 평창지역에는 골짜기마다 무수한 이야기가 쌓여 있다. 용평면 속사리에 내려오는 전설이다. 옛날에 재를 사이에 두고 친정아버지와 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병들어 친정에 가야 하는데, 그 재에는 여자가 넘어가면 호랑이가 잡아간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래도 딸은 밤길에 나서 재를 넘는데, 과연 호랑이가 나타나 으르렁거렸다. 딸은 횃불을 입에 물고 재빨리 물구나무를 섰다. 그러자 호랑이는 “얼굴 없는 짐승은 처음 본다”며 그냥 물러갔다고 한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얘기다. 다음은 언제 얘기일까.

 

평창에는 아침이 오지 않았다. 해는 떠올랐지만 날은 어두웠다. 하늘에는 금이 가고, 땅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산골짜기마다 눈물이 흘러내려, 평창군청 앞마당은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개최도시가 발표되는 순간 “예스 평창”을 외치던 군중은 숨이 멎었다. 여름날인데도 평창은 한겨울처럼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4년 전, 2007년 7월5일의 이야기다.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은 이제 전설로 흘려보내야 한다. 그날의 아픔을 딛고 평창은 오늘밤 세 번째로 새 역사에 도전한다. 평창에 과연 새날은 올 것인가.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 데스크/진성기(과학기술부장)-20110706수] 노벨상과 `관치과학`

 

"기사 잘 봤습니다. 실제 정책에 반영이 되어 한국의 연구자들이 자신의 전공 분야에 일관성을 가지고 집중할 수있는 환경이 될 것을 상상해보니 참 즐겁습니다. 이런 좋은 기획 많이 하셔서, 정말 연구하기 좋은 환경으로 이끌어주신다면 연구하는 사람의 하나로 너무 감사할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미국 코넬의대에 있는 한국인 박사 연구원이 보내온 이메일 내용이다. 매일경제신문이 `노벨상 못타는 한국과학`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기획기사에 대한 코멘트였다. 또 다른 과학자는 "한국 과학계의 현주소와 문제점, 앞으로 나갈 방향을 잘 짚었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기사를 통해 드러난 국내 환경은 노벨과학상 수상과는 한참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상당수 과학자들이 유행을 좇아 수시로 연구주제를 바꿨고, 국책과제를 따러 밖으로 다니느라 툭하면 실험실을 비웠다. 박사급 연구원들은 실험실 관리에 과제 신청자료 작성, 강의준비까지 `잡일`의 연속이었다.

 

젊은 과학자 양성도 말뿐이었다. `신진연구지원사업` 중 35세 미만 과학자에게 돌아간 것은 5%에 불과했다. 원로ㆍ중진 과학자가 거의 다 챙겨간 것이다. 한국 과학의 현실은 이렇게 뒤틀렸다. 한우물만 팔 수 있도록 연구환경을 만들어주는 선진국과는 대조적이다.

 

노벨상 후보자로 거론되는 미국 록펠러대학 랄프 스타인만 박사는 바이러스나 세균을 잡는 파수꾼인 `수지상세포`만 30년 이상 파고들었다고 한다. 그는 매경 기자에게 "20~30년간 필요한 시간만큼 오랫동안 지원받을 수 있었다는 게 행운이었다. 또 뛰어난 멘토(지도 교수)와 똑똑한 학생들이 있었기에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했다.

 

기사가 나간 뒤 과학자들은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응용ㆍ개발연구 중심에서 기초연구로, 대형에서 소규모 연구로, 단기에서 장기 연구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문제의 뿌리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른바 `관치(官治)과학`이다.

 

"관료들은 자리에 있는 동안 눈에 보이는 단기성과를 내보이기 위해 대형사업을 만들어냅니다. 이들은 친분 있는 교수나 출연연구소 간부급 연구원에 의존해 대형 국책과제를 기획하죠. 관료의 위임을 받은 과학자는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과제 내용을 짜게 됩니다. 대형사업단은 다 이런 식입니다. 사업단 밑에는 소규모 사업단들을 두는데, 여기에 참여하기 위해 과학자들 간에 치열한 경쟁이 일어납니다. 사실상, 대형과제 책임자 선정 단계부터 치열한 로비와 줄서기가 이어지는 셈이죠. 나이 50대의 사업단장은 3년+3년+2년 등 다단계 구조로 되어 있는 사업에서 다음 단계에 배정되는 예산이 깎이지 않도록 30대의 젊은 사무관에게 잘 보이려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경제개발을 지원하는 수단으로 R&D 정책을 짜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선진국은 개발연구 비중이 많아야 20%인데 우리는 50%나 됩니다."

 

문제점 지적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대안도 제시했다. "연구비 배분ㆍ관리 체계를 관료로부터 독립시켜야 합니다. 한국연구재단 등 국가 연구비 관리기관을 학계 중심으로 운영하고, 투명성 확보를 위해 철저한 감사를 해야 합니다. 대형사업단 중심의 연구비 배분은 대폭 줄이고, 개별 연구책임자의 창의력에 의존하는 1인 연구과제가 국책연구의 주류가 돼야 합니다. 또한 캐치업(catch-up) 방식의 중진국형 투자에서 벗어나 창조형으로 전환해야 하고요."

 

이런 지적을 하면서도 과학자들은 특정 관료 또는 특정 과학자를 부도덕하거나 무능하다고 탓하지는 않았다. 공무원이 교수에게 줄서라고 한 적도 없고, 교수도 제자 같은 공무원에게 자존심 죽여가며 비위를 맞추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관료 주도로 모든 것이 이뤄지는 국가 R&D 정책 결정 시스템이 문제의 시작이고 끝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엘리트 공무원과 의욕에 찬 과학자를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에 빠져들게 하는 그런 시스템 말이다.

2011년 7월 20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10720수] 수능 출제관리 이렇게 허술했다니

 

수험생 자녀를 둔 교수와 교사들이 대학 수학능력시험 출제ㆍ검토 위원으로 참여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로 뒤늦게 드러난 것은 어처구니 없다. 규정 위반 여부를 떠나 유관기관들의 기강 해이가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일깨운다. 무엇보다 감독 책임이 있는 교육과학기술부는 도대체 뭘 했는지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감사원이 수능 출제를 맡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감사한 데 따르면, 자녀가 대입 수험생인 대학교수와 고교 교사들이 수능 출제 및 검토위원으로 참여한 사례는 한두 건이 아니다. 또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이나 계속됐다. 1차적 책임은'수능 응시 자녀가 없다'고 거짓 확인서를 제출한 위원들에게 있다. 민감하기 짝이 없는 수능 출제를 맡은 공적 책임을 저버린 잘못이 크다.

 

그러나 더 큰 잘못은 70만 수험생의 운명을 가를 수능 출제 관리자로서 규정준수 여부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교육과정평가원에 있다, 그런데도 평가원은 "적발된 11명 중 검토위원 9명은 늦게 합류했고, 출제위원 2명의 자녀는 해당과목을 선택하지 않아 문제 유출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문제 될 게 없으니 부실관리 책임도 어물쩍 넘기자는 얘기다. 게다가 교과부는"해당 위원들이 업무를 방해했다면 평가원장이 고발할 수 있다"며 마치 강 건너 불구경 하는 투다.

 

교과부와 유관기관의 무책임한 행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얼마 전 민요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선정됐다는 인터넷 루머가 국정교과서에 실린 일에 대해서도 끝내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교과부 관계자는 "관련 내용이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근거가 없기 때문에 내년부터 관련 부분을 수정하기로 했다"는 해괴한 주장을 펴며 "명확한 규정이 없어 징계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정교과서의 치명적 오류와 수능 출제의 구멍을 이런 식으로 얼버무린다면 국민이 어떻게 교육행정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이주호 장관이 책임진다는 자세로 직접 나서 바로 잡아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10720수] 한-미 자유무역협정, 전면 재검증 필요하다

 

민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10+2 재재협상안’을 내놨다. 이 안은 미국과 재재협상을 해야 할 10가지와 국내 보완과제 2가지로 구성됐다. 반면에 한나라당은 8월 임시국회에서 비준동의 절차를 마무리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혀 야당과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놓고 정치권이 정략적 공방만 벌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국회가 그동안 제기된 비판과 문제의식을 수렴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끄는 생산적 토론의 장을 열 때다.

 

민주당은 최근까지 ‘참여정부가 맞춰놓은 이익의 균형이 이명박 정부 들어 추진한 재협상에서 깨졌다’며 재재협상을 통해 원점으로 되돌려놓을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어제 낸 제안은 한발 더 나아갔다. 애초 타결된 협정문 가운데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ISD) 등 이른바 ‘독소조항’으로 지적된 내용도 미국과 재재협상을 통해 폐기 또는 수정하도록 요구했다. 이는 민주당 스스로 처음부터 잘못된 협정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주권국가라면 자유무역협정은 선택의 문제인 만큼 필요하면 재재협상도 요구할 수 있다. 미국도 자국 자동차산업이 위기를 맞자 재협상을 요구해 핵심 조항을 대폭 수정한 바 있다. 민주당은 애초 잘못된 협상안을 받아들였던 과오를 바로잡는다는 뜻에서라도 재재협상안 관철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정부·여당 역시 미국 의회가 이미 이행법률안 심의에 들어갔다는 이유 등을 들며 비준동의 절차를 서두르는 대신 국익의 관점에서 재고해야 한다. 특히 국내 보완과제, 즉 통상절차법 개정과 무역조정지원제도의 강화는 여당도 반대할 명분이 없다. 민주적이고 투명한 통상조약 심의·의결 절차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부터 적용할 필요가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은 국회에서 통과되면 곧바로 특별법의 효력을 갖게 된다. 협정은 두 나라 사이의 교역 질서뿐 아니라 공공정책과 국민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분량만 무려 763쪽에 이르는 또하나의 큰 법전이다. 협정과 충돌하는 국내 법률이 정부 쪽 추산으로도 30가지가 넘는다. 그런데 주요 내용에 대한 정부의 설명은 달랑 3쪽이다. 이런 상태에서도 한나라당이 8월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 의견을 무시하고 강행처리하려 한다면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각오해야 한다. 전면 재검증은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20110720수] 호화청사에 예산 낭비 말고 호텔급 분만실 갖춰야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 병·의원이 없는 시·군이 전국 228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49곳이나 된다. 전남의 경우 17개 군 단위 지역 가운데 6개 군은 산부인과 병·의원이 없거나 있더라도 분만실이 없고, 8개 군은 1시간 안에 분만 가능한 병·의원으로 가기 힘든 '분만 취약지'이다. 전남 장흥의 산모는 작년 12월 갑작스러운 출혈로 지역 병원 구급차를 타고 광주 대학병원까지 1시간 50분을 달려가야 했다.

 

국 3600개 산부인과 병·의원 가운데 분만실이 있는 곳은 17.6%인 634곳에 불과하다. 분만실은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산부인과 의사 2명에 간호사 6명, 그리고 언제라도 와서 도와줄 수 있는 마취과·소아과 의사가 있어야 하고 산모 식당도 갖춰야 한다. 이런 부담을 걸머지면서 수지(收支)를 맞추려면 한 달에 적어도 20~30건의 출산을 채워야 하지만, 저출산 경향 때문에 농·어촌 산부인과에선 한 달 10건도 힘든 실정이다. 그런 데다가 산부인과 의사들이 고(高)위험 시술인 분만 진료 때문에 의료분쟁에 휘말리는 걸 기피해 분만실을 없애고 외래진료만 하려는 경향도 있다. 전남 강진군은 2억5000만원의 전세보증금을 대신 부담하고 월 600만원씩 지원하겠다는 조건으로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 병·의원을 유치하려 했지만 신청이 없었다고 한다.

 

이것이 저출산 극복을 최우선 국가 과제 중 하나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태아와 산모 보호에 필요한 분만실 하나 제대로 갖춰놓지 않고서 육아수당·출산축하금을 줄 테니 아이를 낳아달라고 호소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도 지자체들은 주민에게 가장 절박한 곳보다 자기들 업적으로 과시할 호화청사·공설운동장·실내체육관·박물관·문화예술원 같은 으리으리한 시설을 짓는 경쟁에 돈을 퍼쓰고 있다. 시장·군수들은 구멍 뚫린 시루에 돈을 퍼부을 것이 아니라 그 돈으로 공공 의료시설에 호텔급 분만실부터 설치해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10720수] 공신력 잃은 교육과정평가원 이대론 안된다

 

대입수학능력시험을 비롯한 시험업무를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위탁받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시험관리가 부실하기 짝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이 2008~2011학년도 평가원에 대한 기관운영감사를 실시했더니 대입 수능과 고입선발고사 출제과정에서 수험생을 둔 학부모가 부당하게 참가한 사실이 밝혀졌다. 4년간 대입 수능 출제과정에 부적격자 11명이 ‘수능 응시 자녀가 없다’는 허위 확인서를 쓰고 참여했다고 한다. 또 비평준화 지역 고입선발고사에서도 5명의 교사들이 자신의 자녀가 응시할 시험의 출제과정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출제 규정상 수험생 자녀가 있는 교수나 교사의 참여가 금지되어 있는데도 평가원은 허위 확인서를 걸러내지 못한 것이다. 고입과 대입의 당락을 좌우하는 국가시험이 이처럼 허술하게 관리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이번 감사에서 드러난 ‘허위 확인서’는 참으로 어이가 없다. 수험생 부모를 출제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문제의 사전 유출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통상 출제·검토위원으로 선정되면 합숙에 앞서 2~3주 신변정리 기간을 갖는데, 이때 출제경향이나 문제유형을 자녀에게 알려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지난 4년 출제과정 참여자 가운데 허위 확인서를 쓴 부적격자가 적발됐다. 이는 해당 출제·검토 위원이 고의적으로 허위 기재했거나, 해마다 수백명의 출제요원을 확보해야 하는 평가원 측이 관행상 임의로 확인서를 조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평가원은 책임을 피할 길이 없다. 출제·검토 위원의 가족관계를 확인하지 못했다면 직무유기일 터이고, 허위를 묵인했다면 시험 사전유출을 방조했다는 뜻인 까닭이다.

 

이번에 적발된 수능과 고입선발고사 출제과정의 부적격자 비율은 높지 않다. 하지만 사전유출 가능성도 없어 공정성을 심각히 훼손할 정도는 아니라며 유야무야해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고입과 대입의 국가시험은 공정성이 생명이다. 지난해 수능의 샤프펜슬 불량도 평가원의 관리부실이 원인인 것으로 이번 감사에서 드러났다. 평가원의 공신력은 땅에 떨어졌다. 평가원의 부실한 관리를 4년이나 방치한 교과부도 책임을 피하기 힘들다. 교과부와 평가원은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신을 씻어주는 후속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부적격자의 참여 경위를 철저히 추궁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시험관리의 공신력을 떨어뜨린 평가원에 대해 인적 쇄신을 단행하는 일이다.

 

 

[서울신문 사설-20110720수] 독도문제 차분·단호하게 대응한다지만…

 

일본 외무성이 대한항공의 독도 항로 시험비행을 이유로 그 이용을 자제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자민당 의원 4명이 다음 달 2일 울릉도를 방문한다는 계획이 보도되면서 독도 문제가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갈수록 노골화, 치밀화, 지능화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도 그동안의 대응책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다시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독도 대응책은 줄곧 ‘조용한 외교’ 전략을 유지해 오다가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차분하고 단호한’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명박 정부는 독도와 관련된 구체적인 정책을 밝히지 않아 기존의 대응책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런데 확실한 대응책이 제시되지 않다 보니 외교통상부 등 관련 부처에서 단호한 대응과 차분한 대응 간의 이견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와는 별도로 정치권에서는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때마다 즉각적이고, 강력한 대응을 해왔다. 자민당 의원들의 울릉도 방문 계획에 대해서도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크다. 일본 측의 치졸한 계산을 모르지는 않지만, 이들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등 과격한 대응을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유력지 월스트리트저널이 15일 독도 관련 기사에 처음으로 다케시마라는 명칭을 병기한 것은 여러 가지로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대로 우리 정부의 대응이 국내와 일본에만 국한돼 미국 등 국제사회에서의 대응이 미흡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월스트리트저널의 이번 조치가 우리 민간 측의 뉴욕타임스 광고, 타임스퀘어 광고 등에 대한 역작용이라는 지적도 경청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정말로 걱정되는 것은 10년 뒤에 나타날 현상이다. 현재 일본에는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고 믿고, 말하는 양심적인 인사들도 많다. 그러나 일본의 10대들은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왜곡된 역사 교과서로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이 성인이 된 뒤에는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잘못된 신념을 머릿속에 새긴 채 독도 문제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정부로서는 이런 문제까지 포함해 장기적이고 전반적인 독도 대응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10720수] 4대강 저주하던 자들은 지금도 말이 많고…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성과가 입증되었다. 기록적 장마에도 불구하고 4대강 유역에서는 농경지와 가옥 침수 소식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사업에 반대하던 일부 농민들도 이제는 홍수 걱정에서 해방됐다며 이 사업에 대한 종전의 인색한 평가를 바꾸고 있다. 이번 장마는 강우기간이 평년보다 1주일이나 길었고 강우량도 642㎜에 달해 동일기간 평균 강우량 249㎜의 2.5배에 달했다. 강우량이 평년의 5배가 넘는 곳도 허다했고 특히 한 시간에 30㎜ 이상 내리는 폭우가 전국에서 65차례나 쏟아졌다. 예년 같으면 강이 범람하고 농경지와 가옥이 침수하는 피해가 엄청난 규모였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흔히 물받이라고 불렸던 지역들에도 피해가 적었고 하천 유역 근처 농경지나 가옥들의 피해도 보고된 사례가 눈에 띄게 줄었다.

 

피해 총액도 1500억원(17일 기준)에 불과하다. 1999년에는 10일 동안 95~633㎜의 호우로 1조원이 넘는 피해가,2004년엔 불과 300㎜의 비로 2041억원의 피해가 있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의 결과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세세한 설명이 필요없다. 현재 4대강 준설량은 7일 기준 4억3000만㎡로 목표의 94%를 완료한 상태다. 4대강 사업의 성과가 아니라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홍수기에 두고보자"며 4대강 꼬투리 잡기에 몰두해온 사이비 자연정령 숭배자들은 지금도 반성은커녕 사소한 문제들을 침소봉대하며 거짓을 전파하기에 여념이 없다. 일부 지역에 토사가 다시 쌓이는 현상이나 지류의 제방이 유실되는 등의 부분적인 문제를 마치 전체의 문제인양 호도하는 낡은 선전 수법에 머리를 박고 꼬투리 잡기에 골몰하고 있다. 대체로 이들은 처음부터 과학적 방법론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드러난 증거를 외면하고-이는 천안함도 마찬가지다-주술적 자연정령주의를 환경철학으로 가장하면서 반대 투쟁만 해왔을 뿐이다. 호우가 닥치면 두고보자던 뒤틀린 자들의 태도가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이다. 국민들이 사실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10720수] 은행권의 고졸채용 확대가 갖는 의미

 

일부 은행들을 중심으로 고졸 행원 채용이 늘고 있어 고졸자들의 취업기회 확대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은행과 국민은행에 이어 산업은행도 15년 만에 고졸채용제를 부활해 하반기 채용 예정인 신입사원의 3분의1을 고졸자로 채우기로 했다. 양질의 일자리라는 평가를 받는 은행들이 이처럼 고졸자 채용을 늘릴 경우 고등학교만 나와도 질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줌으로써 무조건 대학에 진학하는 풍조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교육열이 높은 것이 문제될 것은 없지만 80%를 넘는 과도한 대학진학률은 높은 청년실업률로 이어져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이 병적으로 높은 것은 대학졸업장이 있어야 취업이 되고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풍토 때문이다. 또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은 물론 기업들도 대졸자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굳이 고졸자를 채용할 필요가 없어 고졸자가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게 된 것이다. 학력에 따른 임금격차가 클 뿐 아니라 승진속도 등에서의 불이익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다 보니 직장에서는 고졸자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직무를 대졸자들이 담당하는 학력 인플레이션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은행ㆍ보험 등 국내 금융회사 일선 창구에서 근무하는 창구직원 가운데 고졸 사원의 비중은 34%에 불과해 미국(83%)보다 절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현재 근무 중인 은행 등 금융권 종사자 가운데 고졸 출신 사원은 대부분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전 입사자들이다.

 

은행을 비롯한 기업들의 인력채용 정책은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업무의 난이도와 직무특성에 가장 적합한 인력을 확보해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일부러 대졸자를 기피하고 고졸자를 우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고졸자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직무에 굳이 대졸자를 쓸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인건비 부담이 클 뿐 아니라 업무만족도 등도 오히려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고졸 채용 분위기가 공기업 등으로 확산돼 학력 인플레이션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횡설수설/송평인(논설위원)-20110720수] 사회참여 연예인

 

미국 홈쇼핑 채널 QVC은 최근 베트남전 반대운동으로 유명한 미국 여배우 제인 폰다의 신간 ‘프라임 타임’을 홍보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그의 반전운동 경력을 비판하는 시청자들의 항의 때문이었다. 폰다는 당시 베트콩의 대공포 위에 앉아 웃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미국 참전 용사들로부터 맹비난을 받았다. 폰다는 나중에 여러 차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지만 전쟁에 반대한다는 주장은 굽히지 않았다.

 

한국에서 최근 다시 사회참여 연예인이 주목받은 것은 여배우 김여진 씨의 반값등록금 1인 시위부터다. 그 전에 홍대 청소용역 노동자 농성장을 방문하는 활동을 할 때만 해도 김 씨는 기성 언론이 소홀히 한 분야에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반값등록금 시위 이후 한진중공업 파업사태 등 곳곳에 얼굴을 비추면서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뉴스 현장에 더 자주 나타나는 배우’라는 비아냥도 받는다.

 

▷MBC가 “사회적 쟁점에 대해 특정단체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지지 또는 반대하는 발언이나 행위”를 한 경우 고정출연을 제한하는 새 심의규정을 만들었다. 이 규정으로 김 씨의 라디오 고정패널 내정이 취소됐다. 즉각 조국 서울대 교수, 소설가 공지영 이외수 씨 등이 반발해 MBC 출연거부를 선언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대립된 이슈에서 한쪽 편을 든 연예인을 출연시키면 MBC가 그런 극단적인 견I해를 지지하는 것으로 시청차들이 오해할 수도 있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교수 의사 등에도 해당하니까 연예인을 특별히 차별대우하는 것도 아니다.

 

▷판단력이 흐린 청소년들에게 연예인의 발언은 파급력이 크다. 광우병 파동 때도 몇몇 연예인들이 비과학적인 선동을 해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쳤다. 공중의 전파를 사용하는 방송은 개인이 돈을 투자해 만드는 영화나 공연과는 달리 출연 연예인의 선정기준에서 더 엄격한 것이 당연하다. 사회참여 연예인이라는 뜻으로 소셜테이너(socialtainer)란 말이 한국에서 유행한다. 영어에도 없는 국적불명의 말이다. 우리처럼 국내의 정치적 이슈만 따라다니는 연예인이 아니라 수단 다르푸르 평화활동을 펴는 조지 클루니 같은 진정한 사회참여 연예인을 보고 싶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박종권(논설위원)-20110720수] ‘꿈꾸는 쪽방’

 

“단칸 쪽방에 식구들이 살을 붙여 포개어 살다, 창문 달린 집으로 이사한 날 밤 하늘이 참 예쁘고 넓다는 걸 알았다.” 시인 장시아의 『까치집 사람들』 중 한 대목이다. ‘까치집’은 산동네에 위치한 쪽방의 별칭이다. 말 그대로 쪼갠 방이 쪽방이다. 넓이는 한 평 남짓. 최저 주거기준 9.9㎡에 못 미친다. 두 명이면 새우잠을 자야 한다.

 

서울 돈의동은 쪽방촌으로 유명하다. 일제시대에는 땔감을 팔던 시장이었다. 해방과 6·25를 거치며 ‘종삼’이 된다. 도심 사창가다. 1968년 속칭 ‘나비작전’으로 된서리를 맞고, 품팔이 노동자가 자리를 대신한다. “늘어 처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박노해 『노동의 새벽』) 기어드는 노숙 직전 마지막 주거 양식이다. 서울 종로·용산·영등포·중구에 아직도 쪽방 3508가구가 몰려 있다.

 

조개의 상처가 진주를 맺고, 진흙에서 연꽃이 피는가. 조세희의 소설에서 난쟁이가 작은 공을 쏘아 올린 ‘낙원구 행복동’도 쪽방촌이다. 소설가 신경숙이 10대 후반의 아픈 영혼을 추스른 『외딴 방』 역시 구로공단의 쪽방이다. 비록 손수건만 한 햇볕이 아쉬운 공간이지만, 꿈만은 세상을 덮는 보자기만 했던 셈이다. ‘꿈꾸는 쪽방’이랄까.

 

다락은 부엌 위에 이층을 만들어 물건을 두는 곳이다. 확장된 개념이 다락방이다. 그래도 여기는 좀 낫다. 밖으로 난 창이 있다. 소설 『소공녀』에서 하녀로 전락한 주인공 사라의 다락방. 창문은 행복한 꿈이 실제로 이뤄지는 통로다. 그래선지 소녀들은 유난히 다락방을 좋아한다. 노래도 있다. “우리 집 제일 높은 곳, 조그만 다락방. 난 그곳이 좋아요.” 그 바람에 다락방을 낸 아파트가 유행이고, 다락방 인테리어도 성업이다.

 

이런 쪽방과 다락방이 요즘 품귀란다. 대학가 월세대란 때문이다. 서울 홍제동 노인요양시설을 개조한 대학생 임대주택 ‘꿈꾸는 다락방’에 8대1의 입주 경쟁이 벌어졌다. 고려대 근처의 월세 15만원짜리 ‘쪽방’은 방학인데도 꽉 차 있다고 한다. 쪽방의 주역이 노동자에서 등록금 빚에 몰린 대학생으로 교체된 것인가.

 

이지성씨는 저서 『꿈꾸는 다락방』에서 ‘R=VD’란 공식을 주장했다. 생생하게(Vivid) 꿈꾸면(Dream) 현실화(Realization)한다는 것이다. 등록금 장사에 혈안이 된 대학들이 그대들을 쪽방으로 내몰았어도 꿈마저 쪼가리일 수는 없지 않은가. 드넓은 쪽방의 꿈, 하늘 높은 다락방의 꿈을 위하여.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태관(논설위원)-20110720수] 여름 화로

 

쓸모없는 짓이나 불필요한 물건을 가리켜 흔히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고 한다. 여름날의 화로나 한겨울의 부채질은 생각만 해도 뜬금없다. 그런데 선가(禪家)에 들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름 화로와 겨울 부채는 ‘병 속의 새’처럼 쉽게 깨치기 힘든 화두가 된다. 중국 당나라의 선승 동산양개 화상의 일화다.

 

어느 학인이 양개 스님에게 물었다. “더위나 추위는 어떻게 피해야 합니까?” 스님이 답했다. “더위도 추위도 없는 곳으로 가거라.” “네?” “더울 때는 그대를 덥게 하고, 추울 때는 춥게 하라. 그러면 더위도 추위도 없다!” 더위 속에는 더위가 없고, 추위 속에는 추위가 없다는 것이다. 비슷한 선문답이 또 있다. 어느 선사에게 피서법을 묻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끓는 가마솥과 타는 화로 속에서 더위를 피하라. 거기에는 어떤 고통도 없느니라.”

 

더위를 피하는 길은 더위 속에 숨어 있다. 더우면 더위 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은 마음으로 들어야 들린다. 여름나기에 몸이 지친 선인(先人)들은 마음으로 더위를 다스리고자 했다. ‘여름 화로’는 선방의 수행자뿐만 아니라 옛사람들은 누구나 품었던 공통 화두이기도 하다. 조상들의 피서법을 들여다보면 한 줄기 선풍(禪風)이 느껴진다. 가령 다산 정약용의 ‘소서팔사(消暑八事)’는 상상만 해도 마음에 삽상한 바람이 인다. 다산은 1824년 여름에 쓴 시에서 ‘8가지 피서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즉 솔밭에서 활쏘기, 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타기, 빈 누각에서 투호놀이하기, 대자리 깔고 바둑두기,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비오는 날 시짓기, 달밤에 탁족하기, 숲 속에서 매미소리 듣기가 그것이다. 가히 선경(仙境)이라고 할 여름날의 풍경이다.

 

부채는 땀을 식히지만 매미소리는 마음을 식힌다. 마음이 시원하면 몸도 시원해진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다.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이리저리 다니지만/ 항(恒) 선사는 홀로 방에서 나오지도 않네/ 선방엔들 무더위가 없으랴만/ 단지 마음이 안정되면 몸도 시원한 것을!” 더위를 다스리려면 마음을 다스리라고 백거이는 노래하고 있다.

 

긴 장마가 끝나자 폭염이 전국을 덮쳤다. 열대야에 잠을 설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화로를 끌어안은 듯 뜨거운 나날이다. ‘여름 화로’는 저리도 맹렬한데 이를 다스릴 ‘겨울 부채’는 어디서 구해야 하나.

 

 

[매일경제신문 칼럼-테마진단/김진수(건국대 행정대학원 교수)-20110720수] 공공관리제도 1년을 돌아보며

 

서울시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한 도시ㆍ주거환경정비사업 공공관리제도가 도입된 지 1년이 지났다. 도입 초기 대부분 전문가가 취지에는 공감하나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던 대로 1년이 지난 지금 공공관리 부작용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재개발ㆍ재건축사업 투명성 제고에는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현장 만족도는 매우 낮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공공관리제가 각 현장에 대한 관리ㆍ감독은 강화하면서 정작 사업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원책이 거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과 사단법인 주거환경연합이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현 공공관리제도에 만족한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불만족이라는 의견이 76.1%로 나왔다. 물론 이는 추진위ㆍ조합 임원과 관련 업계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였기 때문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면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재개발ㆍ재건축 일선 현장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당사자와 관련 업계 전문가 평가가 이 정도라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공공관리 도입 당시 가장 큰 목표는 투명성 제고와 사업비 절감이었다. 투명성 제고에서는 선거를 통한 추진위 구성, 클린업시스템 도입을 통한 정보 공개 등으로 상당 부분이 개선됐다고 볼 수 있다. 사업비 절감에 대해서는 아직 공공관리를 통해 사업이 완료된 곳이 없기 때문에 검증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어찌 보면 공공관리제는 당초 목적을 충실히 이행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관계자들 인식은 왜 좋지 않은 것일까.

 

긍정적 효과를 거두고 있는 부문에서도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고 예기치 않았던 문제점도 속속 생기고 있으며 지원책은 없이 오히려 사업 진행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선거를 통해 추진위 구성 시기를 단축했지만 추진위 구성 이후에 주민 갈등으로 홍역을 겪는 사례도 발생하고 클린업시스템으로 정보를 공개해야 하지만 일부 반대 세력에서는 이를 이용해 집행부를 흠집 내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정확하지 못한 사업비ㆍ분담금 산정 프로그램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기도 했으며, 이에 대한 책임 소재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업체 선정에서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시공사 선정을 사업인가 이후로 늦춘 상태에서 추진위ㆍ조합 운영비 조달에 대한 불만 목소리가 매우 높다. 담보대출은 애당초 쉽지 않은 문제고 과거 보증인을 5명에서 1명으로 줄였다고는 하지만 일선 조합 처지에선 자기 개인사업도 아닌데 자기 재산을 담보로 보증에 의한 신용대출을 받아 사업경비로 충당하기란 어불성설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선 현장에서는 공공관리제도를 `해주는 것은 없이 참견만 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뉴타운사업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고 공공관리제도를 흠집 내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가뜩이나 현장 여론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재개발ㆍ재건축ㆍ뉴타운사업 등 도시재생사업은 도심 내 부족한 질 좋은 주택을 공급하고 효율적인 도시 공간 재구조화와 경제 활성화, 고용 창출 등 도시 경제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도시정비사업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공공관리제를 올바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공공관리`만이 아닌 `공공지원`이 적극적으로 강구돼야 한다.










[한국일보 사설-20110804목] 도요타와 어깨를 겨루는 현대-기아차

 

현대ㆍ기아차가 올 상반기 일본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4위 자동차메이커로 자리한 실적이 놀랍다. 도요타가 중국 생산 판매분을 합할 경우 여전히 앞선 것으로 수정 확인됐으나 이 역시 간발의 차여서 현대ㆍ기아차가 도요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1999년 합병 당시 세계 7위를 목표로 내건 지 10여 년 만에 거둔 비약적인 초과 성과다.

 

현대ㆍ기아차의 약진은 지난해 도요타가 미국에서 대규모 리콜 사태를 맞으면서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그러나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실적으로 연결한 마케팅과 품질 제고 노력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움직이는 국가 홍보관인 자동차 분야에서 도요타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는 사실은 TV 냉장고 등에서 국내 기업이 일본 소니를 제친 것과는 전혀 의미가 다르다.

 

하지만 현대ㆍ기아차의 최근 실적은 도요타의 부진에 따른 반사이익인 데다 국제 시장의 최근 변화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는 점에서 마냥 박수만 보낼 수는 없는 상황이다. 도요타는 이미 리콜의 후유증을 이겨내고 지진의 여파에서도 벗어나 생산능력을 거의 회복, 신형 캠리 등을 앞세워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최대 시장 미국에서 내성을 키운 도요타와 언제 어떤 어려움에 봉착할지 모르는 현대ㆍ기아차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국내시장에 몰려오는 유럽차를 보면 국내 시장도 더 이상 현대ㆍ기아차의 독무대는 아니다. 국내외 시장 모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글로벌 전략이 필요하다.

 

정몽구 현대ㆍ기아차회장은 품질 면에서는 그 어떤 양보가 없고 우수 마케팅 직원만큼은 통 크게 관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런 경영방식이 현대ㆍ기아차의 고속성장을 주도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현대ㆍ기아차가 도요타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고질적인 노사관계 불안, 협력업체와의 진정한 동반성장에도 통 큰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번 실적이 현대ㆍ기아차와 정 회장에게 스마트한 한국의 대표 글로벌 기업, 대표 경영인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치밀한 검증과 전략 개발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10804목] 기초노령연금 대상자 섣부른 축소 안 된다

 

정부가 65살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 하위 70%’로 돼 있는 기초노령연금 수령 대상자를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보건복지부는 그제 국회 연금제도개선특위에 이런 방침을 보고하고 ‘최저생계비 150% 이하 노인’을 유력한 대안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현재 70% 수준인 수령 대상자가 2030년엔 51% 정도로 줄 것으로 예측돼, 노인층의 대량 빈곤이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현행 기초노령연금이 저소득층 노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앞으로 국민연금 수령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 등을 제도 개편이 필요한 이유로 꼽는다. 기초노령연금액은 국민연금 가입자 월평균 소득액의 5%로 산정하는데, 올해의 경우 1인 가구가 9만1200원으로 1인당 최저생계비 53만원의 17% 수준에 불과하다. 이 정도론 노인층의 경제적 어려움 해소에 도움이 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2028년까지 국민연금 평균소득액의 10%로 높일 예정이라지만, 더 일찍 지원 규모를 현실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복지부는 기초노령연금 수령 대상자를 줄인다는 방침만 밝혔을 뿐, 지원액을 늘릴지 여부에 대해선 보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국민연금의 경우 2007년 국민연금법이 개정돼 당시 60%(중간소득자 기준)였던 소득대체율이 해마다 낮아져 2028년엔 40%로 떨어지게 돼 있다. 노후빈곤 예방 기능에 상당한 구멍이 뚫려 있는 셈이다.

 

기초노령연금은 한국 사회의 오늘을 일궈낸 60~70대들이 빈곤에 신음하지 않도록 2007년 도입됐다. ‘세대간 부의 재분배’라는 철학이 상당히 배어 있는 제도다. 이들은 죽어라 일했지만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자식들의 부양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2000년대 중반 우리나라 노년층의 상대적 빈곤율(중위가구소득 절반 미만의 소득자 비율)은 45%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인 13.3%보다 월등히 높다. 지난해 536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1%였던 노인 인구는 2030년엔 1181만명으로 늘어나 전체 인구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게 된다.

 

재정 부담 등의 문제가 있지만 기초노령연금 대상자를 줄이는 게 능사는 아니다. 정부는 노인층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 대상과 규모를 늘리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옳다.

 

 

[조선일보 사설-20110804목] '납북' 피해자의 恨 많은 세월

 

정부가 김상덕 전 반민특위위원장 등 6·25전쟁 기간 중 자기 의사에 반해 강제로 북으로 끌려간 민간인 55명을 '납북(拉北) 피해자'로 결정했다. 우리 정부가 '납북 피해자'를 공식 인정하고 인적사항과 납북 일시(日時)·장소를 구체적으로 조사해 밝힌 것은 61년 만에 처음이다.

 

이번 결정으로 그동안 납북·월북(越北) 구분 없이 '북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당하며 한(恨)의 세월을 살아온 납북 당사자와 그 가족의 명예가 조금이나마 회복될 길이 열렸다. 납북자 가족들은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을 당하고서도 '신원특이자' 가족으로 분류돼 오랫동안 공직 진출이나 해외여행 등 사회활동에서 많은 제약을 받았다.

 

북한은 그동안 6·25 민간인 납북 문제와 관련해 "납치된 사람은 없고 모두 자유 의지로 북에 온 사람들"이라고 억지 주장을 펴왔다. 그러나 8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 6·25 납북자의 절대다수가 북한군과 부역(附逆) 세력에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이다. 이번에 납북자로 인정된 55명 중 53%인 29명은 서울 출신으로 이들은 북한의 남침 이틀 만에 정부가 피란을 가는 바람에 정부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북에 끌려갔다.

 

북한의 민간인 납북은 전시(戰時) 민간인 보호 의무를 규정한 제네바 협약에 저촉되는 전쟁범죄 행위다. 그러나 역대 우리 정부는 민간인 납북의 진실을 밝히고 필요한 사후 조치를 취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에 따라 남한의 북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돌려보내면서도 북한에 억류된 우리 납북자 송환은 요구조차 하지 않았다.

 

국무총리실 산하 6·25전쟁납북진상규명위원회는 각 시·도에서 받고 있는 납북 피해자 신고 절차와 방법을 더 널리 홍보할 필요가 있다. 활동시한도 2013년까지로 못박지 말고 보다 적극적으로 납북 피해자를 찾아내야 한다. 6·25 납북자들은 대부분 영양실조와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이미 세상을 떴거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에 접어들었다. 납북 피해자 가족들의 한결같은 꿈은 한시라도 빨리 북에 있는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는 일이다. 정부는 생존해 있는 납북자들의 경우엔 한국의 가족들과 편지 교환이나 상봉(相逢)이 가능하도록 북에 요구하고, 세상을 뜬 경우엔 유해라도 가족 품에 안길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10804목] 양화대교에서 드러낸 서울시의 위험 불감증

 

서울 양화대교 구조 개선 공사를 하기 위해 설치 중인 임시다리(가교) 철주 177개 중 2개가 최근 폭우에 5도가량 기울어졌다고 한다. 다른 철주들과의 연결 작업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거센 물살과 상류에서 떠내려온 부유물의 힘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양화대교 공사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서해뱃길 사업의 일부다. 6000t급 크루즈가 다닐 수 있도록 교각 간격을 넓히고 상판을 아치 형태로 만드는 공사다. 아직 가교가 완공되기 전이라 차량이 통행하지 않고 있어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번 일을 대수롭지 않게 보면서 위험 불감증을 그대로 드러내는 서울시의 자세에 있다. 최근 누구도 예상치 못한 우면산 산사태를 겪은 터라 더욱 그렇다.

 

가교 설치 시공업체부터 문제가 있다고 한다. 감사원은 지난 6월 가교 설치공사가 면허가 없는 하도급 업체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며 업체를 교체하고 원청업체는 영업정지처분을 하라고 통보한 바 있다. 관련법상 교량 철구조물을 제작하려면 철강재 설치 공사업 면허가 있어야 하나, 실제 시공업체는 조립·설치만 할 수 있는 강구조물 공사업 면허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서울시의 해명은 걸작이다. 최근 2년간 전국적으로 15개 강구조물 공사업 면허업체가 72건의 가교를 시공한 반면, 철강재 설치 공사업 면허업체는 시공 실적이 없다는 것이다. 자격이 없는 업체라도 실적만 많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서울시는 문제의 하도급 업체가 철구조물을 제작하지는 않고 납품받아 조립만 하기 때문에 위법하지 않다는 주장도 한다. 감사원의 지적이 틀렸다는 것이다.

 

가교 철주가 기운 사실도 서울시가 아니라 공사 현장에서 서해뱃길 사업 반대운동을 벌이던 시민단체에 의해 그제 발견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강 수위가 높아 한 달 가까이 공사가 중단된 상황이라 철주가 기운 사실을 인지했는지 여부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한다. 공사 현장도 제대로 감독하지 않고 있었다는 얘기다. 서울시는 또 이번 일은 공사 중 수위 상승 등으로 일어난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완 공사를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안이하고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서울시는 시의 그런 자세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과 불신을 헤아려야 한다. 서해뱃길 사업도 문제이지만 시민 안전을 위해서라도 양화대교 구조 개선 공사를 중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신문 사설-20110804목] 룸살롱서 업무보고 받은 지경부 엄단하라

 

국토해양부의 ‘놀자판 연찬회’ 파문 이후에도 공무원들의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식경제부 과장급을 포함한 공무원 11명이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수차례에 걸쳐 산하기관들로부터 룸살롱 접대를 받았다가 총리실 공직복무관리실에 적발됐다. 이들은 업무보고를 받겠다면서 대전에 있는 한국기계연구원과 경주에 있는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직원들을 과천 청사로 불러들인 뒤 룸살롱에서 향응을 받았다고 한다. 일부는 성접대 의혹까지 거론된다니 비리 요지경이 따로 없다. 연루된 산하기관 간부 2명은 최근 사표를 내는 등 죗값을 치렀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접대를 받은, 죄질이 더 나쁜 지경부는 “사실무근이다.”라는 설익은 해명만 하기 바쁘지 비리 공무원들에게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공사 관련 업무가 많은 국토부의 비리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수해가 나면 속으로 웃는 공직자도 있다는, 믿기 어려운 황당한 얘기까지 들린다. “수해 복구는 긴급 예산이 투입되는 공사이기에 입찰 없이 수의계약을 할 수 있어 그동안 돈 받은 업자들에게 나눠줄 공사가 늘어난다.”는 것이 감찰에 나섰던 총리실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국민의 시름을 깊게 하는 수해가 일부 공무원들에게는 돈벌이 호재로 받아들여진다니 공직사회가 썩어도 너무 썩은 것이 아닌가. 지난해 10월 말 제주도에서 워크숍을 가졌던 환경부의 한 공무원은 내연녀까지 동행해 산하기관으로부터 접대를 받았다고 하니 이쯤 되면 공직자의 자질을 논하기도 부끄러운 일이다.

 

총리실을 비롯해 감사원까지 대대적으로 공직비리 척결에 나섰다는 소식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공직사회에서 여전히 사정기관의 감찰 의지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비리를 저지르는 간 큰 공무원들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공직기강 해이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비리를 저지른 공무원들에게는 분명 그에 상응하는 엄한 징계가 있어야 한다. 사정기관에 적발돼도 일단은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서는 정부 부처의 온정주의가 있는 한 공직사회에서 비리를 뿌리 뽑기 어렵다. 비위 공무원들이 다시는 발을 못 붙이도록 일벌백계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10804목] 사상 최고 기름값, 물가장관들은 말이 없으시고…

 

서울시내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가격이 어제 ℓ당 2028원97전으로 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억지 인하가 종료된 지난달 7일(1991원33전)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오름세다. 정유사에 '성의표시'를 요구하고 주유소 회계장부를 들춰보겠다던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나,ℓ당 2000원은 안 넘을 것이라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설상가상으로 낙농업자들은 3년간 동결된 원유(原乳) 가격을 올려달라며 어제 하루 납품을 중단했다. 앞으로 우유값은 물론 아이스크림 과자 빵까지 덩달아 오를 게 뻔하다.

 

7월 소비자물가는 4.7% 뛰었다. 올 들어 7개월째 4%대 고공행진이다. 야당에선 이를 두고 MB정부의 '747 공약'이 실현됐다고 쾌재를 부르는 판이다. 문제는 8월 이후에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는 점이다. 이미 전기료가 오른 데다 전 · 월세,대학등록금,가스 · 상수도 · 교통요금까지 들썩이고 있다. 가뜩이나 이른 추석(9월12일)에다 수해가 겹쳐 과일 · 채소대란도 염려된다. 당장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공공요금 인상시기를 늦추는 것 외에 뾰족한 게 없다. 급기야 박 장관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물가를 잡을 아이디어를 공모하겠다고 나섰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음을 실토한 셈이다.

 

우리는 작금의 물가대란이 시장원리를 무시한 정부에 대한 시장의 보복이라고 본다. 업자를 망신 주고 윽박지르고,안 되니 성의표시라도 하라는 '완장 장관'들의 자업자득이다. 금리인상은 뒷북만 치고 환율정책은 진퇴양난이니 최악의 결과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거시정책과 미시정책이 엇박자를 내는데 아이디어도 없는 장관들이 현장에 나가본들 장사 안돼 울상인 상인들만 귀찮게 할 뿐이다.

 

본란에서 누차 지적했듯이 시장원리 말고는 뛰는 물가를 잡을 수 있는 왕도(王道)란 있을 수 없다. 정부가 원가 들여다보고 가격을 강제로 눌러 성공했다는 얘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들어본 적이 없다. 차라리 내버려두느니만 못한 짓은 그만두는 게 낫다. 우유값에 대해선 로베스피에르를 단두대로 보낸 그 유명한 반값 우유 파동을 모르진 않으실 테고….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광화문에서/유윤종(동아일보 기자)-20110804목] 장엄

 

한밤, 헤드폰을 끼고 앰프의 볼륨을 올린다. “인간은 커다란 고통 속에 있도다(Der Mensch liegt in grosser Pein)….” 말러의 가곡 ‘원광(原光)’이 귓전을 울린다. 모처럼 안락한 시간이지만 하루 동안의 자잘한 과오와 우행(愚行), 사소한 득실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인간은 괴로움을 통해 비로소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인간이 어려운 시간에도 당당할 수 있다는 점은 누구에게나 한결같은 위안이다. 최근 읽은 몇 페이지의 글에서 벼락같은 힘을 얻는다. 세상의 이치를 주어와 서술어, 수식어 몇 개로 드러내는 글의 힘, 상징의 힘. 바로 문학의 힘이다.

 

‘꿈인지 생시인지/사람들이 정치를 하며 살고 있다/경제를 하며 살고 있다/사회를 하며 살고 있다//꿈인지 생시인지/나도 베란다에서/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물 위에 씌어진 3’)

 

이 시를 쓴 최승자 시인은 최근 출간한 시집 ‘물 위에 씌어진’을 정신과 병동에서 썼다. 단 하나 남은 혈육인 외삼촌만이 그를 면회할 수 있다. 시인은 시집의 서문에 쓴 대로(‘하루 낮에도 천국과 지옥을 오락가락하는 게 시인이 아니더냐’) 갈피가 잡히지 않는 세계를 넘나든다. 극심한 불면증, 갑작스러운 환청과 환각이 그의 정신을 착취해 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체중은 어느새 34kg까지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의 새 시집 ‘물 위에 씌어진’에는 고통과 고독, 생사까지도 깔고 앉은 정신의 강력함이 있다. ‘슬펐으나 기뻤으나/그래도 할 일이 없어 오른 산(山)/오른 발을 동에 두고 왼 발은 서에 두고/굽어 보고 굽어 봐도/슬펐으나 기뻤으나의 그림자들일 뿐/세상은 간 곳 없고 부풀어오르는 먼지뿐(‘슬펐으나 기뻤으나’)이라고 말하는 그의 인생관과 존재관에는, 다윈 식으로 말하면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또 하나의 장엄한 정신이 있다. 최승자 시인의 시집이 도착한 그날(7월 14일) 본보 지면에 실린 최인호 작가의 인터뷰를 읽는다. 항암 치료의 후유증으로 손톱이 빠지자 손가락에 골무를 끼워가며 작가는 장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완성했다.

작가는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병(病)의 동굴에 갇혀 있지 말고 푸른 바다 위에 떠 있어라!” 단지 병뿐일까. 일상의 우울이나 무기력의 동굴에 갇혀 있을 이들에게도 두려움 없는 그의 정신은 환한 감동을 준다. 한 독자는 인터뷰를 읽고 종일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최 작가님이 빠삐용처럼 우뚝 일어나시기를 빌었습니다.”

 

인터뷰 끝에서 작가는 “내년 만우절에 기자회견을 열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암에 대해 껄껄 웃으며 소리치겠다고 했다. “뻥이야!” 그 폭소는 장엄하다. 모차르트가 삶의 마지막을 예감하는 속에서도 환한 밝음으로 써낸 마지막 교향곡 ‘주피터’의 마지막 C장조 화음만큼이나 그러하다. 생사를 앞에 놓고 이렇게 장엄하고 존엄할진대, 일상의 과오와 우행이 문제이겠는가. 두려움이 무슨 필요겠는가.

 

두 권의 책, 시집 ‘물 위에 씌어진’과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이번 휴가 트렁크에 넣으려 한다. 모처럼 머리를 쉬는 시간,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드는 텍스트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쉬는 시간이기에 비로소, 인간의 운명적인 괴로움과 극복에 대해 거리를 두고 음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고대훈(논설위원)-20110804목] 골드 러시

 

황금(黃金)에 대한 욕망이 없었다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빠져 ‘황금의 땅’을 동경했다. 책에서 동방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금이 나오고, 순금으로 뒤덮인 멋진 궁전이 있는 곳”으로 묘사됐다. 1492년 콜럼버스의 탐험은 황금 찾기를 위한 인도 항로 개척이 목적이었다. 그는 “황금은 영혼이 낙원에 가는 것까지도 도와주는 보물”이라고 했을 정도다. 그해 10월 12일 ‘성스러운 구세주의 섬’이라는 뜻의 산살바도르에 상륙함으로써 대륙 개척이 시작됐다. 이후의 역사가 말해주듯 그의 황금 욕망은 노예무역, 잉카와 아즈텍 문명 파괴라는 엄청난 결과로 이어졌다.

 

예나 지금이나 황금은 권력과 부귀(富貴)를 상징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황금은 태양신의 분신이었다. 파라오 투탕카멘의 관은 110㎏짜리 순금으로 제작됐고, 미라 얼굴에는 황금 마스크를 씌웠다. 황금으로 장식함으로써 파라오가 신과 동격임을 알린 것이다. 중국인의 황금 사랑은 정평이 나 있다. 청(淸) 왕조 건륭제는 밥그릇도 황금으로 만들어 썼다고 한다. “중국인의 최대 종교는 황금”이란 말까지 있다.

 

황금은 탐욕의 대상이었다. 황금을 독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에 피로 얼룩진 약탈 전쟁이 수없이 벌어졌다. 19세기 미국 서부의 ‘골드 러시(gold rush)’도 황금에 관한 집착과 광기를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나라에서도 1930년대 골드 러시가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광복 전까지 3000개 금광에서 300여t의 금을 채굴해갔다. 노다지와 벼락부자의 꿈을 좇는 열풍이 불었다. 무지렁이 농사꾼이 낫 대신 곡괭이를 들고 금맥을 찾겠다며 논밭을 파헤쳤고, 김유정·채만식 등 당대의 문인들까지 금광업에 뛰어들던 시절이다.

 

우리에게 황금의 위력은 한동안 잊혀졌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한 돈(3.75g)에 5만~6만원 하던 돌반지를 선물하는 게 인사치레였다. 요즘 금 한 돈에 20만원을 훌쩍 넘는다. 국제 금값도 사상 최고치를 연일 갈아치우는 중이다. 한국은행이 13년 만에 처음으로 금 25t을 사들였지만 금 보유량은 세계 45위에 그친다. 금 부족 국가라는 얘기다. 우리나라에 방치된 금광은 1800여 개를 헤아린다고 한다. 금값 고공행진이 계속된다면 한국판 골드 러시라도 추진해야 하는 건 아닐까.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태관(논서루이원)-20110804목] 동대문 예언

 

옛날 사람들은 서울 동대문을 ‘動大門’이라고도 불렀다. 움직이는 대문이라는 것이다. 땅에 터를 잡은 건축물이 움직인다면 예삿일이 아니다. 예부터 동대문은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한쪽으로 기운다는 속설이 있었다. 이에 대한 야담이 몇 개 전해진다.

 

광해군 말년에 동대문 문루가 북서쪽으로 기울어졌다. 사람들은 변고의 징조라며 쑥덕거렸는데, 과연 얼마 후 인조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이 쫓겨났다. 그런데 반정군은 한양의 북서쪽인 홍제동에서 기병해 세검정을 거쳐 북서문(彰義門)을 통해 들어왔다. 동대문은 몸을 움직여 나라의 격변을 예언한 것이다. 임오군란 때도 동대문은 변란을 예고했는데, 이번에는 남동쪽으로 기울어졌다. 군란이 일어나자 민비는 변장을 하고 동대문을 빠져나가 장호원에 피신했다. 장호원은 동대문의 남동쪽 방향이었다.

 

동대문이 움직인다는 것은 옛날 얘기만이 아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가 결정되기 전에도 동대문이 동남쪽으로 기울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잠실 올림픽경기장은 동대문의 동남쪽이다. 호사가들이 지어낸 것인지는 몰라도, 풍수가들은 동대문을 거론할 때 이런 얘기를 빼놓지 않는다. 동대문 현판이 서울의 다른 문과 달리 ‘흥인지문(興仁之門)’의 네 글자인 것도 풍수와 관련이 있다. 풍수가들이 볼 때 동대문이 위치한 곳은 땅이 낮고 지세가 약했다. 그래서 현판의 글자 수를 늘려 지세를 보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대문이 움직인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기도 하다.

 

학자들이 동대문에 측정장치를 부착해 3년 동안(1983~86) 조사해봤다. 그랬더니 동대문은 해마다 10월이면 동남쪽으로 기울기 시작해 이듬해 봄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괴이한 현상이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문루를 지을 때 수축·팽창률이 다른 목재를 섞어서 쓴 탓이었다. 1396년 조선초에 건립된 동대문은 1453년(단종 1) 중수되고, 1869년(고종 6) 전면적으로 개축됐다. 출생의 비밀 탓인지 풍수 탓인지, 동대문이 새로 설 때마다 나라는 격랑에 휩싸였던 셈이다.

 

동대문의 지붕이 폭우에 훼손돼 신고 4일 만에 보수작업을 했다고 한다. “하마터면…”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뉴스다. 동대문이 변하면 변고가 생긴다는 속설을 떠올리면 더욱 예사롭지가 않다. 머리에 상처가 난 동대문은 과연 무엇을 예언하고 있는가.

 

 

[매일경제신문 칼럼-기자 24시/서대현(사회부 기자)-20110804목] 반구대암각화 말로만 보존

 

선사시대를 대표하는 국보 285호 반구대암각화 보존 방안이 원점에서 재논의된다. 울산 식수원인 사연댐 수위를 낮춰 반구대암각화가 물에 잠기는 현상을 해결하고, 부족한 식수를 인근 경북 청도 운문댐에서 끌어오는 보존 방안 전제조건인 `경북ㆍ대구권 맑은물 공급사업`이 사업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났기 때문이다.

 

반구대암각화 보존 논의는 2003년 7월 보존을 위한 용역부터 시작됐다. 이후 9년간 지루한 논쟁 끝에 보존 방안이 마련됐지만 국보 가치는 결국 경제 논리에 밀리고 말았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겨우 마련한 보존 방안이 휴지 조각이 되면서 울산지역 정치권과 문화계는 무기력증에 빠졌다. 더 이상 방법이 없는 것 아니냐는 회의적인 분위기도 팽배하다.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이 보였던 반구대암각화 보존에 대한 관심도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김황식 국무총리가 다녀가고,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까지 가세해 기대감을 높였지만 실망만 주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말로만 반구대암각화를 보존한다"는 비아냥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문화재는 한번 훼손되면 되돌릴 수 없다. 화재로 전소된 국보 1호 숭례문이 복원된다고 해도 건축물 자체로서는 숭례문의 고유한 역사ㆍ문화적 가치를 회복할 수 없다. 반구대암각화는 일부 바위 그림 윤곽이 흐려지고 사라지는 등 이미 훼손이 상당히 진행됐다. 바위 그림이 사라지고 나면 국보로서 가치도 사라질 것이다.

 

문화재를 살리는 데 10년 가까이 협의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문화행정인지 의문이 든다. 지금도 반구대암각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면 1965년 이후 반세기 동안 침수와 노출을 반복하면서 붕괴 위기에 몰린 반구대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나와야 한다. 말로만 보존을 외칠 상황은 분명 아니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로터리/이득춘(지식정보보안산업협회장)-20110804목] 개인정보보호법 정착 하려면

 

3,500만명에 이르는 네이트 포털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충격적인 발표가 있었다. 그도그럴 것이 SK커뮤니케이션즈는 보안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던 우리나라 3대 포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해킹 사고들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개인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오는 9월30일 '개인정보보호법'전면 시행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개인정보보호법에 대해 한 번쯤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개인정보보호란 말 그대로 '개인의 신상ㆍ이력ㆍ재산 등 중요한 정보를 도용 등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을 말하고 개인정보보호법은 이와 관련된 사항을 법으로 규정해 각종 유출 사고들에 대비할 수 있도록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모든 사업자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법 시행에 따라 적용 대상이 기존 50만개에서 약 350만개로 늘어나고 모든 공공기관과 민간사업자ㆍ비영리단체ㆍ개인 등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그런데 연이어 터지는 유출 사고들을 보면 정작 중요한 정보가 모두 유출된 개인 당사자들에 대한 보상이나 대처는 뒷전이다. 그러므로 개인정보보호법 시행과 더불어 구성되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여기에는 단순히 법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닌 보안 분야의 충분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인물들이 참여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 소속의 15인으로 구성된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출범하면 개인정보보호 기본 계획 및 시행계획, 개인정보보호 정책ㆍ법령ㆍ제도개선 등 주요 정책 사안을 심의ㆍ의결하고 개인정보보호법 시행 기본 취지에 맞는 제도가 운영되도록 독립성 보장과 함께 철저히 감시하고 더불어 힘을 실어줘야 할 것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은 보안뿐만 아니라 전산업 분야에 걸쳐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것이지만 이슈화에 그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개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으로 정립되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것임은 분명하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듯 다양한 경우의 시행착오들을 넘어선 뒤에야 비로소 개인정보보호법은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일보 사설-20110822월] 서울시장 신임투표로 변질된 무상급식

 

모레 실시되는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오세훈 시장의 신임을 묻는 양상으로 변질된 것은 유감이다. 오 시장은 어제 기자회견을 갖고 투표율이 33.3%에 미달하거나, 넘더라도 자신의 뜻과 다른 결과가 나올 경우 시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주민투표 결과와 관계없이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내놓았을 때도 정책투표에 지나친 정치적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번 발언은 아예 정치적 신임투표로 삼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오 시장은 주민투표에서 지면 자신의 원칙과 철학이 무너지는 것이기에 시장직을 계속 수행할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이 주장하는 단계적 무상급식 방안을 시민들이 적극 지지해 달라고 당부하면서 이번 투표를 '복지포퓰리즘과의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한마디로 오세훈을 선택할 것이냐, 포퓰리즘에 영합할 것이냐에 대한 선택을 강요하는 형국이다. 정책 결정에 대한 주민들의 판단을 묻겠다는 투표 발의 취지를 스스로 변질시킨 것은 1,000만 시민의 살림을 책임진 시장으로서 경솔하다는 지적이 많다.

 

주민투표 결과 오 시장의 주장이 무산된다면 앞으로 시정을 수행하는 데 사사건건 발목이 잡혀'식물 시장'이 되어버린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 시의회의 4분의 3을 야당이 차지한 상황에서 무상급식 문제는 시와 의회가 모든 걸 걸고 대립한 상징적인 사안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일치된 지지를 확보하지도 못한 채 그 역시 자연스럽게 신임투표 형태로 이끌려 가는 상황이 된 측면도 있다.

 

결국 서울시민이 판단하고 선택해야 할 문제다. 법률적 논란의 여지가 다소 남아 있으나 24일로 예정된 주민투표는 합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또 모두가 결과에 승복해야 할 상황이다. 무상급식 정책을 결정하는 투표에 이미 정치적 요소가 첨가된 만큼, 유권자들은 그것까지 함께 헤아려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유권자의 선택에 따라 정치적 의미는 새롭게 부여될 터이다. 여야 정치권이 미리 왈가왈부하는 것은 부질없다.

 

 

[한겨레신문 사설-20110822월] 종편이 광고 직거래하면 언론계 난장판 된다

 

‘공정방송 복원과 조중동방송 광고 직거래 저지’를 내걸고 파업 찬반투표를 벌여온 전국언론노동조합이 85%선의 압도적 찬성으로 오늘부터 총파업 일정에 들어간다. 방송의 광고영업을 대행·규제하는 미디어렙 법안 처리를 지금까지 방치해온 의원들은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데 대해 크게 반성해야 한다.

 

조중동 등 보수수구언론에 종합편성 채널을 4개나 허용해준 정부는 거대언론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세계적 흐름과는 거꾸로 종편사에 특혜를 주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총동원해왔다. 여기에 국회에서 미디어렙 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방송사와 광고주의 직거래 가능성이 커지자 언론단체들이 파업까지 하기에 이른 것이다.

 

방송통신위는 지금까지 종편에 특혜를 주기 위해 황금채널 배정 추진은 물론, 광고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등 갖은 방법을 시도해왔다. 최근에는 외주제작사도 간접광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확정해 10월 국회에 내기로 했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들은 시청자의 시청권이나 국민의 건강권을 훼손하고 여론의 다양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물론 광고시장의 파행으로 결국 언론 생태계 전체의 파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의원들, 특히 제1야당인 민주당의 태도는 매우 실망스럽다. 지도부와 의원들의 언론관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오죽하면 그동안 미온적이던 손학규 대표까지 나서서 “그렇게 안이하게 하려면 그만두라”고 문방위 의원들을 질책했겠는가. 원내대표란 사람이 별생각 없이 한국방송 수신료 인상안을 처리해주려다 반발을 샀음에도 언론 환경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연내 개국을 준비중인 보수수구언론 종편사들은 직접 광고영업을 할 수 있게 해줄 것을 정부에 요구해왔다. 이러던 차에 최근 <에스비에스>가 독자적인 미디어렙 설립을 위한 인사발령까지 내자 방송사들이 술렁이는 등 우려하던 바가 가시화하고 있다. 광고시장이 흔들리면 언론시장이 흔들리고, 결국 건강한 언론들의 존립마저 위협받게 된다. 자칫 언론계 전체가 ‘돈’에 휘둘리는 난장판으로 빨려들어갈 수도 있다. 여기에 선거용 정략까지 가세하면 사회 전체가 갈등과 혼돈에 휘말리지 말란 법이 없다.

 

미디어렙 법안 없이 종편 채널을 개국시키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하겠다는 각별한 각오가 민주당 의원들에게 절실하다.

 

 

[조선일보 사설-20110822월] 北 장사정포 대응에 한 치 빈 틈도 없어야

 

우리 군이 북한 장사정포의 기습공격에 대비해 운용하는 대(對)포병 레이더가 숫자도 모자라고 고장도 잦아 대응 능력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겨냥해 서부전선 비무장지대 인근에 170㎜ 자주포와 240㎜ 방사포(다연장 로켓포) 같은 장사정포 340문을 집중 배치해 놓고 있다. 군 당국이 여기에 대비해 운용하는 대포병 레이더 20여대 중 스웨덴제 6대가 작년에 78차례 고장났고, 미국제 두 가지는 지난 5년 사이 98차례와 60차례씩 고장을 일으켰다. 레이더 숫자도 최소한 10대를 더 늘려야 제대로 감시할 수 있다고 한다.

 

북한의 장사정포는 최대 사정거리가 54~65㎞로 서울·인천은 물론 안양·성남·군포까지 타격할 수 있다. 240㎜ 방사포는 유독 가스로 된 화학탄까지 쏠 수 있다. 북한이 툭하면 위협하는 '서울 불바다'의 수단이 바로 이 장사정포다. 우리 군은 평소 미군 무인 항공기와 군사 위성을 통해 북한 장사정포 진지를 파악해 두고 있다. 북한이 장사정포를 일제히 쏘아대는 전면전이 벌어지면 우리 군은 최신예 전투기 F-15K 40여대와 KF-16 130여대 중 일부로 정밀유도폭탄을 투하해 북한 장사정포 진지를 무력화시키게 된다.

 

문제는 전면전 상황이 아니라 북한이 장사정포 몇 발로 서울을 기습 공격할 경우다. 이때는 북한이 장사정포를 발사한 뒤에야 포탄 궤적을 거꾸로 추적해 포를 쏜 진지를 찾아낼 수 있다. 이 공격 원점(原點)을 신속히 추적해 대응공격을 하는 데 필수적인 장비가 대포병 레이더다.

 

지금처럼 그 레이더가 고장이 잦고 숫자도 모자라선 만일의 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미국제는 도입된 지 오래돼서, 스웨덴제는 숫자가 얼마 안 돼 무리하게 가동하는 바람에 고장이 자주 난다고 한다. 만약 서울에 장사정포가 한두 발이라도 떨어지면 포탄에 의한 직접 피해를 입는 것은 물론이고 도시가스관·LPG통·주유소·자동차로 큰 불이 번질 수 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사태를 막기 위해선 대포병 레이더의 24시간 감시에 허점이 없도록 보완을 서둘러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10822월] 해킹 부르는 민감한 개인정보 수집 중단해야

 

한국엡손 홈페이지에 가입한 35만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회사 측은 정보 유출에 따른 2차 피해 사례는 없다고 해명했지만 지금까지 해커의 정체는 물론 발신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말 SK커뮤니케이션즈가 운영하는 네이트·싸이월드 가입자 35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돼 보안에 대한 경각심이 각별히 높아진 상태에서 또다시 터진 해킹 사건이라 국민이 느끼는 불안감은 이만저만 아니다.

 

이번 사건은 해킹의 위험에 기업들이 얼마나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다시금 보여줬다. 한국엡손은 지난 13일 해킹 사실을 확인하고도 1주일 뒤에야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알렸다. 내부에서 조용히 해결하려다 여의치 않자 뒤늦게 신고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더욱 큰 문제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일상화하고 있음에도 기업들이 보안 강화를 위한 투자에 인색하다는 것이다. 초대형 기업조차 자체 보안 점검 결과 취약성이 드러나자 내부 문책과 추가 비용을 걱정해 덮었다고 한다. 관련 당국의 보안 불감증도 이에 못지않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용경 의원에 따르면 올 방통위의 개인정보 보호 예산은 2008년 52억원에서 27억원으로 도리어 삭감됐다. 방통위가 인터넷 실명제 적용 사이트 확대 등 개인정보를 더 많이 수집하고 보관하도록 규제를 강화해온 것을 감안하면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스마트폰 가입자가 1500만명에 이르고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자가 늘고 있어 해킹 위험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다음달 말부터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되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우선 기업들이 보안 시스템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정보를 보호하지 못한 기업은 엄벌해야 한다. 방통위는 정보를 유출한 기업에 과태료나 과징금 부과만 했을 뿐 수사를 의뢰한 사례가 없다. 인터넷 실명제와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폐기하는 문제도 당장 검토해야 한다.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 등 민감한 정보를 모아 관리하기 때문에 해킹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 관련 당국의 정보 보호 노력 강화도 필수적이다. 이런 보안 수준으론 ‘IT(정보기술) 강국’이 아니라 ‘해킹 천국’ 소리를 들어도 싸다.

 

 

[서울신문 사설-20110822월] 김정일 방러 한반도 평화에 도움되기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9년 만에 러시아를 방문한 사실이 확인됐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의 초청으로 시베리아 및 원동 지역을 비공식 방문한다고 엊그제 보도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초청인 만큼 양국 간 정상회담이 조만간 열려 경제협력 방안을 포함한 다양한 현안을 깊이 있게 논의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비록 최근에 남북 외교장관 회담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있었고, 북·미 당국자가 뉴욕에서 회동하였다고는 하나 한반도 주변 정세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대치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이후 남북 간 교류는 전면 중단되다시피 했으며, 미국의 대북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반면 북한은 이에 대응해 중국과 정치·경제 관계를 강화해 왔다. 그러므로 현 상황을 타개하려면 6자회담의 나머지 당사국인 러시아에 일정한 역할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러시아의 등장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2001년 김 위원장의 첫번째 러시아 방문 때 합의한 8개항의 공동선언 실행에 구체적인 진전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 선언문에는 남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설치,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한반도 종단철도(TKR) 연결이 주요 경제협력 사업으로 들어 있다. 이는 러시아가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 쪽에 요구한 사업으로, 만성적인 경제난 탓에 러시아의 원조를 바라는 북한으로서도 더 이상 외면하기는 힘드리라 본다. 그 결과 사업이 구체화된다면 남한-북한-러시아 사이에는 새로운 연결고리가 생겨 경직된 남북관계에도 숨통이 트이게 될 터이다.

 

한반도 정세는 어차피 주변 세력의 견제와 균형으로 무력 충돌 위험성을 줄이면서 남북이 스스로 평화와 통일의 길을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결론이 나도록 정부는 외교력을 총동원해 대처해 나가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10822월] 세계 기업들은 재도약 위한 초경쟁으로 내달리고…한국 정치는 기업 발목 붙잡고 갈라먹자하고

 

세계 산업지도가 재편되고 있다. 20세기형 산업 지도가 폐기되고 21세기형으로 지각변동 중이다. 이것이 금융위기가 만들어 내는 진정한 변화다. 금융위기는 경제위기로 발전하고 경제위기는 필연코 새로운 산업지도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는 아예 체계적으로 경제와 산업의 목을 조르고 있다. 그동안의 조그만 성과에 도취돼 "나눠 먹자, 뜯어 먹자, 같이 가자"며 앞선 자의 뒷다리 잡기에 안달이 나 있다.

 

권력이 내건 목표가 동반성장이며 공생발전이다.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성공을 처벌하는 것이며 타인의 성과를 빼앗는 반기업적 반시장적 선동에 불과하다. 금융시장의 먼지가 가라앉은 뒤 새롭게 출현할 글로벌 경제지도에서 과연 한국의 위치는 어디에 있을지 실로 위기감을 갖게 된다. 당장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산업의 새판짜기 움직임부터 심상찮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되고 있다. 도요타 등은 하반기 생산을 20%나 늘릴 계획이다. 기업 간 제휴와 공격적인 해외기업 인수도 본격화됐다. 전기차에서 닛산과 미쓰비시가 제휴하고,닛산은 러시아의 최대 자동차회사 아브토비스를 인수한다.

 

삼성 타도를 외치는 일본 전자업계의 재편도 속도를 내고 있다. 반도체 역공에 이어 최근 소니와 도시바, 히타치는 휴대폰용 LCD 패널사업을 전면 통합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합집산은 다른 산업으로도 급속히 확산된다. 히타치와 미쓰비시는 에너지 및 발전사업에서, 신일본제철과 스미토모금속은 철강에서, 후지필름과 미쓰비시상사는 제약에서 통합, 제휴, 공동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산업은 미국의 견제와 중국의 추격으로 구조적인 위기에 직면해 왔다. 미국의 변화는 더욱 그렇다. 애플 구글 등은 IT산업의 생태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고 있다. 전후방 IT 가치사슬의 전부를 장악하겠다는 의도는 더욱 분명하다. 세계 특허를 쓸어담으며 대대적인 특허공세에 나서고 있는 것도 그렇고, 소프트웨어에서 하드웨어에 이르기까지 수직 통합을 강화하는 것도 그렇다. 사생결단식의 행군이다. 한국을 추격하고 있는 중국은 선진국 기업을 대거 인수하는 방법으로 뜀박질을 하고 있다. 지난해 188건이던 중국의 해외기업 M&A는 올해 214건에 이를 전망이다. 가전 석유화학 자동차 등 업종을 불문하고 쓸 만한 기업은 다 쓸어담는다.

 

일본의 부활, 미국의 적극적 공세, 중국의 추격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위기 구조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기업들의 창의와 상상력 발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이 요구된다. 그러나 국내 기업 환경은 정반대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은 경쟁적으로 기업과 기업가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국가의 장기적 생존 전략 등은 안중에도 없다. 세계 산업의 재편에 대비해야 할 지경부 등은 기름값을 내리겠다며 주유소와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 결국 한국의 산업 발전은 여기서 멈출 것인가. 이것이 한국인의 한계일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10822월] '소비기한 표시제' 빠를수록 좋다

 

지난 26년간 유지해온 식품의 '유통기한 표시제' 대신 '소비기한 표시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어 관심을 끈다. 결론적으로 말해 소비기한 표시제는 유통기한 표시제에 따른 식품의 무차별 폐기 등 사회적 낭비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식품가격 하락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는 점에서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물가장관회의에서 "식품에 대한 현행 유통기한 표시제는 자원의 효율적 활용, 식품ㆍ유통산업 발전, 소비자들의 인식수준 개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대안으로 미국ㆍ일본 등과 같이 소비기한 표시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비기한 표시제가 도입될 경우 원자재가 상승으로 오르고 있는 식품가격의 안정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사회적 낭비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현행 유통기한 표시제는 유통기한이 판매기한을 의미하는 데도 소비자들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들을 폐기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신선도가 매우 중요한 우유의 경우 냉장보관만 잘하면 유통기한보다 2∼3일 정도 지나도 위생 면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유통기한이 곧 소비기한'이라고 오해하는 소비자들은 유통기한이 지나면 무조건 폐기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식품의 경우 이 같은 유통기한에 대한 오해로 발생되는 반품비용만도 한 해에 6,500억원, 폐기처분에 따른 음식물 쓰레기는 19조6,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소비기한 표시제는 이 같은 낭비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가격인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식품업체들이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폐기하지 않고 어느 정도 가격을 할인해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짧은 유통기한에 여유가 생길 경우 가격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소비기한 표시제의 성공을 위해서는 식품안전성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식품업체들은 식품의 안전성을 더 높임으로써 소비자들이 소비기한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김순덕 칼럼/김순덕(논설위원)-20110822월] 똑똑한 남학생들은 다 어디 갔을까

 

“똑똑한 여학생은 너무 많은데…”

 

대기업 인사담당자가 개탄하듯 말했다. 채용 기업으로 보나, 나라 장래로 보나 박수칠 일인데도 그는 그러지 않았다. “토익이나 학점, 말주변도 남자들이 여자 못 따라간다. 간신히 성별 안배하고 나면 여직원들은 주로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인데 남자들은 아니다. 아예 지원을 안 하는 모양이다.”

 

“그럼 똑똑한 남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내가 묻자 옆에 있던 교수가 말했다. “외국유학이나 다국적 기업을 가지요.”

 

아니나 다를까 LG전자가 4월 미국 새너제이에서, 지난주엔 일본 도쿄에서 엘리트 엔지니어와 유학생들을 초청해 글로벌 연구개발(R&D) 인재영입 행사를 열었다. 삼성이 이건희 회장의 특명에 따라 며칠 전 모셔온 S급(슈퍼급) 인재들 역시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이다. 산업화시대의 유학생은 학위만 따면 조국에 돌아와 봉사하는 걸 영광으로 여긴 애국선배였다. 요즘은 다르다. 웬만하면 안 오려고 해 임원들이 삼고초려해야 할 판이다.

 

2007년 동아일보는 ‘5년 뒤 한국과 5대 도전’이라는 창간 87주년 기념특집 중 ‘엘리트를 길러라’ 편에서 ‘평준 고교에 대충 대학…쓸만한 인재가 없다’고 걱정했다. 당시 포스텍 박찬모 총장은 “5년 뒤 고급인력이 없어 한국경제의 엔진이 멈출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 우려가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 4년 전 신문기사 “두뇌유출 우려”

노무현 정부야 평등을 최고가치로 삼은 좌파정권이라 어쩔 수 없었다 치자. 그러나 ‘글로벌 창의인재 육성’을 국정목표의 하나로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가 교육정책의 최우선을 사교육 억제로 돌리면서 인재들의 해외탈출을 증가시킨 건 납득도, 용서도 하기 어렵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여개 회원국 중 유학생 최다 배출국이 됐다. 외국 대학 석·박사 과정까지의 유학생은 2004년 15만 명이 안 됐지만 5년 뒤인 2009년 18만 명으로 늘었다. 국력의 상징이 아니라 ‘교육 엑소더스’다. 세계경제포럼(WEF) 교육경쟁력 순위에서 고등교육체제의 질은 2007년 19위에서 2010년 57위로 추락했다. 정부는 2009년에는 과학고 입시에서, 2010년엔 모든 대학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올림피아드 성적을 못 쓰게 시시콜콜 간섭했다. 덕분에 그 전까지만 해도 늘 5등 안에 들던 우리 고교생들의 국제 수학올림피아드대회 성적이 올해는 13등으로 북한(7등)에도 뒤지고 말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박사학위를 딴 뒤 미국에 남겠다는 이들이 늘어난 점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두뇌유출지수를 보더라도 국가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유출 정도가 더 심해졌다.

 

글로벌 인재들이 귀국을 원치 않는 주된 이유도 교육에 있다. 교수로 가고 싶은 국내 대학엔 철밥통 교수들이 버티고 있어 가기 어렵다. 국책연구소라도 갈라치면 “애들 학교 때문에 안 된다”고 아내가 결사반대다. 귀국할까 말까 하던 미혼 석·박사들도 교포 여성들에게 생포당하면 차라리 잘됐다며 주저앉기 십상이다.

 

인재 부족에 정보통신(IT) 빅뱅까지 겹치면서 삼성 같은 기업만 흔들리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와 비슷한 두뇌유출지수인 이탈리아를 보면 한국의 미래가 보인다. 이탈리아는 중등학교 학업성취도 평가도 않고 무시험 대학 입학에, 전 대학의 학위를 동일 평가하도록 강제한 반(反)실력주의 정책을 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 전교조가 주장하는 교육과 닮았다. 그 결과 생산성 경쟁력은 추락했고 오늘날 청년실업률 27.8%에 디폴트(국가부도) 위기다. 똑똑한 남자가 사라지는 나라에선 여자들 고생도 심해진다. 당장 한국에서도 고학력 미혼여성들이 신랑감을 못 구하는 비극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작년 3월 1일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인공임신중절(낙태) 예방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그 결과가 10대 미혼모 증가(19일자 동아일보 보도)다. “낙태만 줄어도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던 전 전 장관에게 그래서 지금은 행복하신지 묻고 싶다. 낙태금지는 임신기간이 열 달이어서 벌써 비극적 정책 결과를 목격했다. 교육정책은 MB 취임 때 학생이었던 세대가 죽을 때까지 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돼 있어 더 무섭다.

 

* 교육과 R&D에 평등은 없다

 

내 자식은 엘리트가 못 되더라도 나라에는 엘리트가 있어야 국민이 먹고 살 수 있다. 삼성이 밉더라도 이 나라에 삼성 같은 기업은 있어야 한다. IT 빅뱅시대를 살아남으려면 고학력 고숙련 인력이 필수인데도 정부부터 공부 열심히 하는 걸 죄악시하는 나라가 또 어디 있는지 궁금하다.

 

저소득층을 위한 비영리 교육단체인 벨웨더교육의 창립자 앤드류 로더햄은 “대학교육이 계층상승의 가장 효과적인 도구”라고 했다. 정부는 좌파교육의 비극을 겪고도 더 못한 교육정책을 편 죄를 어떻게 갚을 작정인가.

 

 

[중앙일보 칼럼-분수대/강혜란(문화스포츠부문 기자)-20110822월] 덕수궁 석조전

 

1968년 한운사의 소설 『대야망』엔 이런 대목이 있다. 한때 외교관을 지낸 한 인사를 모델로 했다는 주인공은 덕수궁의 이곳저곳을 담은 사진을 외국 실력자들에게 뿌리며 자기 집이라고 자랑한다. ‘내 집이 이 정도니 한국에서 내 위치를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도였는데, 곧잘 통했다. 석조전·정관헌 등 고풍스러운 양식 건물이 자아낸 분위기 때문일 터다. 실제로 당시 해외 펜팔 하던 어느 언론인이 석조전 앞에서 사진을 찍어 제 집인 양 소개했다는 일화가 전해 온다.

 

 석조전은 조선 궁궐 내 지어진 첫 서양식 전각이다. 1897년 고종은 경운궁(덕수궁의 원래 이름)을 황궁으로 정하고 황제에 오른 뒤 궁역을 넓히며 전각을 신축했다. 석조전은 정전(正殿)인 중화전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워졌는데 실내공사까지 완료된 것은 한일합병 해인 1910년이었다. 덕수궁 전체가 제국의 영욕을 함께한 곳이지만 석조전은 특히 애달픈 데가 있다. 유학을 명목으로 일본에 볼모로 잡혀 있던 이은(훗날의 영친왕) 왕세자 부부가 22년 일시 귀국했을 때 생후 8개월 된 아들 진이 이곳에서 급사했다. 고종 독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인(이방자 여사)의 피가 섞인 아들을 독살한 것이라는 설이 돌았다.

 

 조선 궁궐 양식을 따르지 않은 석조전은 일제에 의한 식민 근대와 맞물려 곱지 않은 눈길을 샀다. 건축재료인 석조를 기반으로 한 성의 없는 작명이라느니, 전통 조경에 없는 분수대 정원이라느니 하는 비판이다. 총독부 치하에서 일본 미술품 진열 전시장으로 쓰이다가 해방 후 미·소 공동위원회 건물로 쓰이는 등 외세에 시달린 쓰임새도 부정적 인식을 강화했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석조전 건립이 고종의 근대 국가 구상이 투영된 것이었다는 데 비중을 둔다. 전통에 없던 돌집을 짓고 그 정체성을 이름으로 한 것 자체가 서구 문물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덕수궁』 안창모 지음, 2009).

 

 석조전의 최초 설계도(1898년)가 한국 건축공학자에 의해 발굴됐다는 소식이다. 일제에 의한 훼손 운운하지만 ‘석조전 미술관과 박물관 사이 2층 복도에 민간인이 경영하는 실내 축구장이 설치’(본지 1968년 6월 4일자)됐을 정도로 우리의 문화재 인식도 별 볼 일 없었다. 제대로 된 원형 복원을 통해 석조전과 덕수궁에 서린 근대 제국의 꿈과 아픔의 역사를 곱씹게 됐으면 한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태관(논설원)-20110822화] 프레네미

 

‘친구이자 적’을 한 단어로 줄일 수 있을까. 난센스 퀴즈라면 “바로 너”라며 웃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전에서 그런 단어는 찾기 힘들다. 그런데 영어의 신조어에 그런 게 있다. ‘프레네미(frenemy)’, 즉 친구(friend)와 적(enemy)의 합성어가 그것이다. 올해 초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미국 언론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친구이자 적’인 양국관계는 이제 ‘오월동주’ 등 기존의 점잖은 단어로는 표현하기 힘들어진 모양이다. ‘프레네미’라는 조어는 ‘오월동주’보다 훨씬 더 노골적이다.

 

미·중 관계를 함축했던 기존의 한자어는 ‘오월동주’ 외에도 많다. 워싱턴 정상회담 때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동주공제(同舟共濟)’라는 성어를 썼다. “같은 배를 타고 함께 어려움을 건넌다”는 뜻이다. 한 배를 탔으면 함께 노를 저어야지, 딴 방향으로 젓지 말라는 견제구였다. 후진타오 주석은 이에 “구동존이(求同存異·차이를 인정하고 공통점을 추구함) 정신으로 등고망원(登高望遠·높은 데서 멀리 바라봄)하자”고 응수하기도 했다.

 

클린턴 장관은 지난 5월 방중 때 ‘수도동귀(殊途同歸)’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길은 달라도 이르는 곳은 같다”는 뜻이다.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양국관계는 풍우동주(風雨同舟·비바람 속에서 같은 배를 탐)”라고도 말했다. 중국 측의 대답은 ‘예상왕래(禮尙往來)’였다. 즉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중국은 도광양회(韜光養晦·재주를 감추고 때를 기다림)를 내걸었던 때와는 달라졌다. 1980년대 덩샤오핑은 ‘영불당두(永不當頭)’라는 유훈으로 미국과 대적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제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미국과 맞서고 있다. 그런데 지난주 중국은 미국을 향해 머리가 아니라 아예 주먹을 내밀었다.

 

베이징에서 열린 미국과 중국의 친선 농구경기가 난투극으로 엉망이 됐다는 소식이다. ‘핑퐁외교’ 40주년을 맞은 양국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1971년 3월25일 미국 탁구팀이 중국땅을 밟았을 때 언론은 이렇게 표현했다. “만리장성에 탁구공만한 구멍이 뚫렸다.” 40년이 흘러 양국이 함께 탄 배에는 농구공만한 구멍이 뚫렸다. 그 구멍 사이로는 또다른 풍랑이 밀려들어오고 있다. 안 그래도 G2가 함께 타기에는 이제 배가 좁다.

 

 

[매일경제신문 칼럼-특파원 칼럼/임상균(도쿄특파원)-20110822월] 닌텐도가 부러운 이유

 

세계 최대 게임기업체인 닌텐도를 두고 일본인들은 `히토리카치(一人勝ち)`라고 부른다. `혼자만 잘나간다`는 뜻이다. 도요타, 소니 등 쟁쟁한 기업들조차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닌텐도는 최고 실적을 거듭하며 성장해 왔다.

 

그런 닌텐도가 돌연 위기에 빠졌다. 지난 분기(3~6월) 매출 989억엔에 영업적자 377억엔을 기록했다. 영업적자는 창사 이래 처음이다. 매출액도 1년 전보다 반토막이 났다.

 

스마트폰 하나면 얼마든지 싼 값에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이다. 소셜네트워크는 또 얼마나 재미있는가. 몇 십만원씩 하는 게임기를 사야 할 이유가 없다. 2008년 1조8386억엔 매출에 30%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초우량 기업이었지만 지금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결국 지난 11일 충격적인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닌텐도 3DS`의 판매가격을 2만5000엔에서 1만5000엔으로 40%나 내렸다. 올초 미래를 책임질 주력제품이라며 출시한 지 반 년 만이다. IT 조사기관인 아이서플라이재팬에 따르면 3DS의 하드웨어 제조원가는 103.25달러다. 경상비용을 고려하면 1만5000엔의 판매가격은 사실상 원가 수준이다.

 

삼성이 갤럭시폰을, LG가 평면TV를, 현대차가 쏘나타의 가격을 단번에 이만큼 내린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다른 기업은 상상도 못할 카드를 꺼낸 닌텐도의 뱃심이 궁금했다.

 

닌텐도의 2010년 결산서를 뜯어보니 주력제품인 `닌텐도 DS`의 경우 지난해 하드웨어 판매량은 1750만개였지만 DS 소프트웨어 판매는 이보다 7배나 많은 1억2100만개였다. 가정용 게임기인 Wii는 하드웨어(1500만개)보다 소프트웨어(1억7130만개) 판매량이 11배나 많다. 지난해 매출액 중 소프트웨어 판매비중이 40%를 점했다.

 

그들은 애초부터 게임 기계보다는 제조원가가 거의 들지 않는 게임 소프트웨어를 수익의 원천으로 삼아왔다. 소비자들에게 일단 게임기 한 대씩을 갖게 해놓고는 지속적으로 매력적인 게임 소프트웨어를 출시해 닌텐도를 찾아오게끔 만드는 전략이다. 1983년 게임시장에 들어온 이후 포켓몬스터, 슈퍼마리오, 두뇌트레이닝 등 `세상에 없는 것`들을 수없이 창출해온 혁신의 경쟁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원가로 제품값을 내린 닌텐도에서 패배자의 굴욕감보다는 "몇 년만 버티면 세상은 또 바뀐다. 그때 보자"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유타 노무라증권 게임담당 애널리스트도 40% 가격인하에 대한 분석보고서에서 "과연 닌텐도가 자신의 길을 잃은 것인가"라는 평가를 내놨다. 구글의 모토롤라 인수를 계기로 소프트 경쟁력이 부족한 한국 IT기업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다. 하지만 닌텐도는 "소프트 경쟁력은 성장의 원천일 뿐 아니라 이제는 당장 살아 남기 위한 필수조건이 돼 버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국 기업들에 묻는다. "휴대폰, TV, 자동차가 갑자기 쓸모없어진다면 당신네 기업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라고…

 


[한국일보 사설-20110823화] 북, 금강산 관광 파국으로 얻을 게 없다

 

북한이 어제 금강산관광지구 내 남측 재산을 실질적 법적으로 처분하겠다고 밝혔다. 금강산관광 중단 사태 장기화를 빌미로 새로 제정한 금강산관광 특구법에 근거해 재산권 처분 단행이라는 최종 조치를 취한 것이다. 북측은 그 동안 현대아산의 금강산관광 독점권을 취소하고, 남측에 국제관광 참여나 재산의 임대ㆍ양도ㆍ매각을 요구하며 응하지 않으면 처분하겠다고 위협해왔다. 금강산지구의 남측 재산은 투자 기준으로 4,841억원 상당에 이른다.

 

북측이 남측 재산권을 자의적으로 처분해 버리면 금강산 관광은 파국이다. 1998년 11월 남북화해와 공존의 상징으로 시작된 금강산 관광이 2008년 7월 관광객 총격 피살 사건에 따른 파행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12년 8개월 만에 완전히 끝장나는 셈이다.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북측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의사가 전혀 없는 남측 정부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관광객 피살 사건 진상조사 및 재발 방지, 신변보장 등 3대 전제조건을 외면하고 관광 재개를 요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더욱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2차 핵실험 강행, 천안함ㆍ연평도 포격 도발 등으로 남북관계를 최악으로 몰아 넣은 것은 북측이다. 그러면서 금강산 관광을 정상화하자는 것은 이만저만한 이율배반이 아니다. 당국간 합의와 사업자간 계약 위반인 일방적 재산권 처분을 철회하고, 천안함ㆍ연평도 사건과 핵 문제를 포함한 전반적인 현안 진전 속에서 금강산 관광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옳다.

 

우리 정부도 보다 적극적이고 유연한 자세로 임할 필요가 있다. 북측의 재산권 처분 단행에 대해 국제사회에 부당성을 알리고, 국제상사중재위 제소 등 외교적ㆍ법적 조치를 취한다지만 공허하다. 벌어진 사태 대처에 급급할 게 아니라 종합적이고 창의적인 비전을 갖고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에 선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김정일의 중국 방문에 이은 러시아 방문, 북미 대화 재개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소극적인 태도로는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어렵다.

 

 

[한겨레신문 사설-20110823화] 금강산 관광, 이대로 좌초시킬 순 없다

 

북한이 어제 금강산지구 남쪽 기업의 재산권에 대해 법적 처분을 하겠다며 남쪽 인원의 철수를 요구했다. 금강산 관광에 대한 현대아산의 독점권 취소를 거론해온 북쪽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응 수위를 높이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 교류의 상징이며 평화의 디딤돌 구실을 해온 금강산 관광이 좌초 위기를 맞았다.

 

북쪽의 행동에는 이해할 구석이 없진 않다. 2008년 7월 남쪽 관광객 피격사망사건으로 관광이 중단된 지 3년이 흘렀다. 남쪽은 사건 뒤 북쪽에 사과와 재발 방지, 관광객 신변안전 보장 등의 3개항을 요구했다. 북쪽은 유감 표시와 함께 필요한 후속 조처를 할 뜻을 비쳤다. 하지만 구체적인 협의가 진척되지 않은 가운데 천안함·연평도 사건마저 일어나면서 관광 재개는 더욱 멀어져갔다.

 

남쪽 정부는 최근 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 협의를 제안했다. 그러나 관광을 재개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담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의 정책 기조가,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대북 교류·협력을 전면적으로 단절한 5·24 조처의 테두리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북쪽으로선 이런 상황이 불만스러울 수 있다. 어디까지나 북쪽 영역에 속하는 관광자원을 활용하지 못해 상당한 경제적 불이익을 보는데 뒷짐만 지고 있을 순 없다고 판단할 법도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북쪽의 행동은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무엇보다 현대아산에 관광사업 독점권을 부여한 남북 당국간 합의와 사업자간 계약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처사다. 국제사회의 상거래 규칙과 도의에 당연히 어긋난다. 북쪽은 최근 중국과 미주 지역에 새로운 금강산 사업자를 선정하고 독자적인 관광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관광객 모집이 잘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상황이다.

 

지금 남북 양쪽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남쪽은 발상을 근본적으로 바꿔 관광 재개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북-중 정상회담에 이은 최근의 북-미 대화와 북-러 정상외교 등으로 한반도 주변 정세가 변화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남쪽이 금강산 관광을 선도적으로 재개한다면, 우리의 정세 주도력을 강화할 수 있다. 북쪽 역시 남쪽이 요구하는 관광 재개 3대 조건과 관련해 문서 보장 등 전향적인 조처를 마다해선 안 된다. 특히 금강산내 남쪽 재산을 제3자에게 매각하는 극단적인 조처는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20110823화] 北, 금강산 남측인원 추방하며 제 발등 찍나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2일 "금강산 국제관광특구의 남측 재산에 대한 실제적인 법적처분을 단행하겠다"면서 "특구(特區)의 물자·재산에 대한 반출을 21일 0시부터 중단하며, 특구에 남아있는 남측 성원들은 72시간 안에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금강산에 남아 있는 현대아산 직원과 골프장 관리담당 등 14명을 내쫓겠다는 것이다.

 

북측은 작년 4월 금강산 관광단지 내 우리측 부동산의 몰수·동결을 선언했고, 지난 4월엔 2052년까지로 돼 있는 현대아산의 금강산 사업독점권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5월엔 금강산 사업을 북이 자기들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금강산특구법을 채택했고, 7월엔 미국의 한국계 사업가에게 금강산 사업을 위임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북이 금강산 내 우리측 재산권을 강탈하는 조치를 이처럼 잘게 쪼개서 밟아온 것은 우리측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여가며 금강산 사업을 재개토록 하겠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우리 정부는 금강산 사업을 다시 시작하려면 2008년 7월 우리측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 경비병에 의해 피격 사망한 사건에 대해 유감표명과 재발방지 약속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민의 신변안전과 관련된 일인 만큼 당국 간에 약속이 필요한데 북은 김정일 위원장이 현대아산 현정은 회장을 만나 "다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한마디 한 것으로 해결됐다는 주장이다.

 

북은 이제 우리측 금강산 시설을 빼앗아 독자적으로 관광사업을 해 보겠다는 마지막 협박 카드를 꺼낸 모양이다. 그러나 북 계산대로 될 일이 아니다. 북측이 우리측 발전(發電) 설비까지 가로채 전기를 생산해 보려 해도 발전설비를 가동할 기름값을 대려면 하루 수백명의 관광객이 금강산을 찾아야 한다. 1998~2008년 금강산을 찾은 관광객 193만4662명 중 외국인은 1만2817명으로 1%도 안 된다. 1년에 1200명, 하루 평균 4명꼴이다. 남측 관광객은 가로막힌 우리 땅을 밟아 보겠다고 휴전선 넘는 통과비용까지 따로 지불하며 금강산을 찾았지만, 외국인들에게 금강산 관광은 신기한 오지(奧地) 체험일 뿐이다.

 

대북 투자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저울질하던 외국 자본들은 금강산 사업을 처리하는 북한의 일방통행적 방식에 화들짝 놀랐을 것이다. 현대아산과 맺은 50년 독점 계약서를 휴짓조각처럼 찢어버리고 법까지 새로 만들어 다른 사업가와 계약을 맺는 나라와 어느 자본가가 사업을 하려 하겠는가. 북이 제 발등을 찍는 막가파식 행태를 바꾸지 않는 한 김정일이 러시아로 달려가 가스관 파이프 연결 문제를 꺼내본 들 헛일일 뿐이다.

 

 

[경향신문 사설-20110823화] 금강산 관광을 역사의 뒤안길로 내몰지 마라

 

지난 3년 동안 벼랑 끝에 걸려 있던 금강산 관광사업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북한은 그제부터 남측 부동산 및 설비에 대한 법적 조치에 들어갔으며 체류 남측 인원 전원에게 72시간 내에 떠날 것을 요구했다. 금강산 남측 인원이 모두 철수한다면 금강산 관광사업이 1998년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북한의 이러한 조치에 맞서 정부는 외교적·법적 조치로 맞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한반도 평화와 화해의 문을 열었던 금강산 사업이 남북 당국의 변변한 재개 노력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금강산 사업이 이 지경이 된 데는 남북 모두의 책임이 크다. 정부는 3년 전 관광객 피살사건이 발생하자 관광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진상규명·신변안전보장·재발방지’를 내세웠다. 갓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이를 계기로 관광 재개보다 북한 길들이기에 주력했다. 정부의 입장은 지금도 변화가 없다. 북한은 당국 차원의 책임있는 조치보다는 대화다운 대화를 거부한 채 무조건적 재개를 요구해오다 지난해부터 아예 남측 재산 몰수·동결 조치에 이어 독자적인 국제관광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남북이 금강산 관광사업이 갖는 역사적·민족적 의미보다는 상호압박에만 관심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양측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제 갈 길을 고집하는 한 해법이 없어 보인다. 앞으로 예상되는 현실적 결과를 미리 그려볼 수는 있다. 북한은 미국 등 외국 사업자들과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 스스로 해외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그동안 금강산을 다녀간 관광객은 196만명으로 이 중 외국인은 불과 1200명이었다. 여기에다 미국은 대북 경제제재를 계속하고 있다. 또 일방적인 북한의 계약 파기는 북한이 추진 중인 해외 투자유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은 불문가지다. 북한의 계획이 현실적이지 못하다. 여기에다 금강산 관광 사업 폐기로 인해 남북 사이에 더욱 깊은 생채기가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남북 당국이 자신의 입장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금강산 관광을 재개한다는 대전제 아래 우선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남북이 강한 의지를 갖고 전략적으로 접근한다면 해결책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을 듯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 북한이 국제관광특구 추진을 포기하고 정부는 적극적 자세를 보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지금 남북 당국에 필요한 것은 솔로몬의 지혜가 아니라 금강산 사업에 대한 믿음과 의지다.

 

 

[서울신문 사설-20110823화] 마침내 비참한 최후 맞은 리비아 카다피

 

리비아를 42년간 철권통치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붕괴가 임박했다. 리비아 반군은 어제 수도 트리폴리 입성에 성공했다. 카다피의 차남과 3남은 생포됐다. 트리폴리는 카다피의 최후 거점 도시다. 이에 앞서 반군은 카다피 5남이 지휘해온 트리폴리 외곽의 친위 정예부대 기지를 접수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휴가지인 마서스 비니어드섬에서 성명을 통해 “카다피 정권에 대항하는 힘이 정점에 달했다.”면서 “트리폴리는 독재자의 손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6개월여간의 지루했던 내전은 미국, 영국 등 다국적군의 지지와 지원을 받은 반군의 승리로 사실상 끝이 났다.

 

지난해 말부터 아프리카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불어닥친 ‘피플파워’는 24년간 통치했던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을 축출하고, 30년간 이집트를 강압 통치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내쫓은 데 이어 카다피를 끌어내리는 데도 사실상 성공했다. 총과 대포로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찾겠다는 시민들을 굴복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불가능할 것 같던 일이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을 시작으로 북아프리카에서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카다피의 몰락에 따라 민간인들에 대한 유혈 진압도 서슴지 않고 있는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퇴진 압력도 높아지고 있다.

 

이제 리비아에서는 ‘포스트 카다피’ 체제를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반카다피 진영의 대표기구인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의 역할이 보다 중요해졌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리비아에 민주정부가 수립돼 하루빨리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카다피 정권의 몰락을 가장 우려스러운 눈으로 볼 대표적인 정권은 아무래도 3대째 세습을 준비하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일 것이다. 북한 정권은 주민을 억압만 한다고 해서 제대로 굴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정부와 군은 북한의 움직임을 보다 면밀히 점검해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또 정부는 교민 안전은 물론 카다피 이후에도 리비아의 건설사업에 우리 건설업체들이 계속 참여할 수 있도록 차분하면서도 내실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10823화] 대한민국,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길을 묻다

 

서울시 초 · 중등학교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가 내일 실시된다. 서울시민들은 이번 투표를 통해 오세훈 시장이 주장하는 단계적 실시와 민주당이 지배하는 시의회에서 요구하는 전면실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그렇지만 투표 결과는 서울이라는 특정 지역이나 무상급식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선별적 복지론과 전면적 복지론이 정면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렇다. 국가 복지정책의 향후 진로가 판가름나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무상급식이지만 다음에는 무상의료,무상보육,무상교육으로 전선이 확대될 게 틀림없다. 이대로 넘어가면 여태껏 축적한 결코 크지 않은 성과를 미래세대로 넘기지 않고 당장 써서 즐기고 보자는 공짜 파티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복지비용은 한 번 쓰고 마는 것이 아니라 매년 계속해서 지출해야 하고 그것도 누적적으로 늘어나는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처음 시작하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지속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복지 포퓰리즘이란 독배를 삼킨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지금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국가들의 재정이 파탄날 지경에 이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세훈 시장의 고군분투는 보기에 민망하고 안타깝다. 그가 투표결과에 시장직까지 걸면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던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정체성을 잃고 계파별 이해득실에만 몰두한 나머지 오로지 오 시장 한 사람에게만 책임을 지우고 뒷짐을 지고 있는 꼴이 한심하고 딱한 것이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투표에서 지면 오 시장의 사퇴가 불가피해 서울시장을 야당에 넘겨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하지만,그것은 그들만의 문제일 뿐 우리의 관심대상이 아니다. 이렇듯 무책임해서야 언제 어떤 선거를 한들 별로 나아질 것도 없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을 뻔히 알면서 재정건전성을 고려치 않는 정책을 쏟아내고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는 여당은 야당만도 못하다. 불량 정당,나쁜 정당일 뿐이다. 한나라당이 이번 투표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착각이요,오판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10823화]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 시급하다

 

금융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가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연착륙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ㆍ4분기 가계부채는 전분기에 비해 19조원이나 늘어난 876조3,000억원에 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가계부채 증가속도가 빠른 것도 문제지만 내용면에서도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2ㆍ4분기의 경우 마이너스 대출을 비롯한 기타 대출이 무려 4조1,000억원으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급전수요가 그만큼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식투자 등을 목적으로 하는 대출수요가 늘고 있는 가운데 생활자금 마련을 위한 대출수요도 크게 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생활자금을 위한 가계대출의 경우 경기가 나빠지면 상환능력도 떨어져 부실위험이 커진다는 점이다. 앞으로 경제침체가 심화돼 소득증가율이 떨어질 경우 연체율이 높아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계부채발 금융불안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시에 가계대출을 중단하거나 무리하게 회수에 나설 수도 없는 실정이다. 며칠 전 금융당국이 일부 은행의 가계대출을 전면 중단하는 초강수를 뒀으나 혼란과 부작용에 부딪쳐 철회한 것이 좋은 예다.

 

금융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점진적으로 풀어야지 충격적인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위험수위에 이른 가계부채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해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총량억제도 중요하지만 가계부채의 내용을 정확하게 분석해 대출조건별 리스크를 산출하고 그러한 위험성을 감안한 대출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하는 것은 물론 가계대출의 전반적인 위험성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소득부채비율 또는 주택담보비율을 더 엄격하게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최근 급증하고 있는 카드론이나 2금융권 대출 추이에 대한 금융당국의 관심이 요구된다. 이들 대출은 대부분 고금리일 뿐 아니라 주식투자 등의 목적이 많아 대출 부실화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가계대출발 금융불안이 가시화되기 전에 연착륙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횡설수설/정성희(논설위원)-20110823화] 청소년 유해물 심사

 

내가 커피를 마시는 걸 보고 초등학생 아들이 노래를 한다.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좋아∼” 이 노래는 여성가족부 음반심의위원회가 16일 청소년 유해물로 지정한 인디밴드 10cm의 ‘아메리카노’다. ‘여자 친구와 싸우고서 바람 필 때/다른 여자와 입 맞추고 담배 필 때/마라톤하고 간지나게 목축일 때/순대국 먹고 후식으로∼’ 후렴만 들을 때는 몰랐는데 전체 가사를 보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 따라 부르기엔 부적절해 보인다.

 

▷음반심의위가 최근 아이돌 그룹의 일부 노래와 뮤직비디오에 청소년 유해물 판정을 내린 이후로 여성가족부가 오빠부대의 전화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음반심의위는 14일 그룹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에’를 유해물로 결정했다. ‘취했나봐/그만 마셔야할 것 같애’라는 부분이 음주를 권고한다는 이유였다. 비스트 멤버 양요섭이 트위터에 ‘앞으로 동요를 부를 생각이다. 진짜 너무 하네요’라는 글을 올리자 소녀 팬들이 “오빠를 괴롭히지 말라”며 여성가족부에 항의전화를 걸고 있다. ‘아메리카노’와는 달리 ‘비가 오는 날에’의 이 한 소절이 음주를 부추긴다고 보기는 어렵다.

 

▷2008년 동방신기의 노래 ‘주문-MOROTIC’의 가사 중 ‘넌 내게 빠져’ 등이 청소년 유해물로 판정되자 당시 청소년 유해물 심의를 맡고 있던 보건복지가족부 홈페이지가 팬들의 항의로 마비되다시피 했다. 동방신기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제기한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은 “은유적으로 성행위를 표현한 것으로 느낄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 청소년의 성행위를 조장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동방신기의 손을 들어줬다.

 

▷음심위는 매년 3만 건의 음반을 모니터해 유해음반 여부를 결정한다. 유해음반으로 판정받은 노래는 2008년 653건에서 2010년에는 1057건으로 늘어났고 올해 상반기에만 516건에 달했다. 음심위의 모호하고 자의적인 심의기준이 장르음악을 죽이고 창작의욕을 꺾는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가 주도의 심의제도가 존재하는 한 이런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미국은 1990년부터 미국음반회사연합(RIAA)이, 일본은 1983년부터 일본레코드협회 산하 레코드윤리심사회가 유해물을 판단한다. 음반대국의 자율심의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심상복(논설위원)-20110823화] 유통기한

 

식품은 변한다. 특수처리를 해도 한계는 있다. 정부가 1985년부터 유통기한제를 운용하고 있는 이유다. 사랑도 변한다. 하지만 변질방지법 같은 건 없다. 상온에서 사랑은 얼마나 오래 변치 않을까. 미국 코넬대 인간행동연구소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8~30개월이라고 한다.

 

‘내 남자의 유통기한’. 2006년 제8회 서울여성영화제에 초청된 독일 영화다. 원제(The Fisherman & His Wife)보다 훨씬 센스 있는 제목이다. 성공 지향의 여자와 작은 행복에 만족하는 남자가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데, 그들의 감정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차분하게 다뤘다.

 

사랑을 측정할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대뇌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신경물질과 호르몬으로 사랑의 크기를 잴 수 있다고 말한다. 연애에 빠지면 뇌에서 도파민·페닐에틸아민·옥시토신·엔도르핀이 다량 분비되고 사랑이 식으면 이런 호르몬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2년 코넬대 연구팀은 남녀 간의 뜨거운 애정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500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대략 1년 반이 지나면서 대뇌에 항체가 생겨 사랑의 화학물질 생성이 더뎌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정도가 심해진다는 결과를 얻었다. 사랑의 유통기한이 다한 것일까. 그렇다고 다 깨지는 건 아니다.

 

식품도 비슷하다.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해서 다 변질되진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은 유통기한을 넘긴 식품은 무조건 판매를 금하고 있다. 만든 기업이 다 수거해 폐기해야 한다. 그런 비용이 한 해 6500억원쯤 된다고 한다. 의약품이나 화장품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업계에선 유통기한이 너무 엄격하다고들 한다. 냉장고가 흔치 않을 때 정해진 기준이라고도 한다. 우유의 경우 유통기한이 5~7일인데, 냉장시설에 잘 보관하면 20일 정도는 문제 없다고 한다. 과자와 라면은 보통 6개월 안팎인데 이보다 한두 달 늘어난다 해도 국민건강을 해칠 일은 별로 없다고 말한다.

 

 정부가 유통기한(sell-by date)보다 긴 소비기한(use-by date)이라는 새 용어를 만지작거리는 배경이다. 언제까지 소비하라는 날짜다. 일본과 영국이 이렇게 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유통기한은 지났지만 소비기한이 남은 제품의 값을 왕창 낮추면 물가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아원·양로원에 식품 보내기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제도라고 한다.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을 일이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손동우(논설위원)-20110823화] 평화의 비행기

 

집회나 시위의 분위기는 대체로 엄숙하고 비장했다. ‘민중 애국가’로 불리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지면 군부독재에 대한 분노가 서서히 끓어올랐고, ‘나부끼는 깃발’ 아래서 ‘산 자는 따라가야’ 했다. 사회자가 ‘열사의 뜻 이어받아 군부독재 타도하자!’고 외치면 참가자들은 ‘타도하자, 타도하자, 군부독재 타도하자!’며 구호 뒷부분을 4음절, 4음절, 8음절로 끊어서 후창(後唱)하는 방식도 일종의 매뉴얼로 굳어졌다. 시위 진압경찰의 최루탄 발포나 진압봉 공격에 맞서 쇠파이프나 죽창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 같은 시위 양태는 억압적인 군부독재에 대항하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천편일률적인 진행방식이 거부감을 일으켜 일반인의 참여를 막는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전투적 시위 문화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 계기는 바로 2008년의 쇠고기 촛불시위였다. 이때도 극우보수세력들은 ‘좌파세력 배후’를 운운하며 예의 색깔론을 들먹였다. 그런데 ‘주축세력’의 하나였던 젊은 주부들은 유모차를 몰고 나왔고, 여중생들은 한바탕 축제마당을 연출함으로써 색깔론자들의 시대착오적 음모론을 분쇄했다. 올해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한진중공업 사태에서도 색다른 시위·집회 방식이 빛을 발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출발한 ‘희망버스’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크레인 농성 중인 부산 영도조선소에 몰려가 정리해고의 부당성을 고발하면서 연대의 힘을 과시했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기 위해 ‘평화의 비행기’가 뜬다고 한다. 참가자들은 다음달 3일 김포공항에서 항공편으로 제주에 도착한 뒤 강정마을 주변의 올레길을 걷고 평화 콘서트를 열게 된다. ‘희망버스’가 시민사회의 큰 호응을 얻었고, ‘평화의 비행기’도 그럴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러한 성과가 단지 집회 방식의 기발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희망버스’에서는 김진숙이라는 여성 노동자의 눈물겨운 헌신과 진정성이 평범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을 울렸기 때문에 폭발적인 호응이 가능했다. ‘평화의 비행기’에서도 의미있는 성취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까닭은 행사를 주관하는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인권·평화를 위해 펼쳐온 성실한 활동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역시 외형보다는 ‘콘텐츠’가 더 중요하다.

 

 

[매일경제신문 칼럼-글로벌포커스/남영숙(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20110823화] 외국 진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얼마 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기업윤리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글로벌 관점`이라는 세미나에 참석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북남미에서 온 참석자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 규범과 사례에 대해 발표했고, 필자도 한국 내 CSR 활동 흐름과 동향에 대해 발표했다.

 

그런데 참석자들은 국내가 아니라 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CSR에 대한 질문을 집중적으로 했다. 남미에서 온 한 참석자는 2000년대 초 멕시코에 있는 나이키 하도급공장을 운영하는 한국 기업이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의하던 직원들을 대량 해고하고 아동노동 등 인권유린 혐의도 받으면서 미국 내에서 나이키 불매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던 사태를 언급하면서 그동안 이런 문제와 관련해 변화가 있는지를 물었다. 아프리카에서 온 참석자는 아프리카 현지에서 한국 기업들이 대량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있다면서 토지는 아프리카 주민 생존권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므로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기업의 국외 투자 확대에 대한 기대와 염려가 동시에 섞인 이러한 반응은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영이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기업 활동과 관련된 이해관계자 범위도 글로벌화하는 것을 반영한다고 하겠다.

 

1990년대부터 낮은 임금을 좇아 중국에 대량으로 진출했던 한국 기업들은 중국 내 급격한 임금 인상에 따라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미얀마 등 다른 아시아 국가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현지에서 노사관계나 환경보호 관련 문제를 일으키고 갈등을 겪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몇몇 한국 기업이 일으키는 문제는 한국 기업 전체에 대한 이미지 훼손과 반한 감정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동안 한류로 쌓은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쉽게 무너뜨리는 것이다.

 

OECD는 1976년에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여 고용, 인권, 환경, 소비자, 정보공개 등에 있어 다국적 기업의 사회적 책임 원칙과 절차적 요소들을 정립했고 최근에는 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해 왔다. 유엔도 2000년 유엔 글로벌콤팩트를 제정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와 더불어 개발도상국 개별 국가 차원에서 노동, 인권, 환경 관련 기준도 강화하는 추세다. 인도네시아와 같이 CSR 활동을 법적 의무로 규제하기 시작한 사례도 있다.

 

외국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이 이런 국제적ㆍ국내적 규범에 부합하는 기업활동을 하는 것은 이제는 선택사항을 넘어 생존전략이자 글로벌 사회적 책무를 이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연구는 사회적 책임 관련 규범을 자발적으로 준수하는 것이 기업의 중장기적 경영 성과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과 달리 외국 진출 중소기업이 현지에서 법적ㆍ윤리적 책임을 다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비용적 측면에 더하여 현지 상황과 법규제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오는 문제도 크다. 이런 점에서 외교통상부가 최근 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CSR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주로 아시아와 남미에 진출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시작한다고 하는데, 너무 드러나는 관 주도 CSR 지원활동은 주의해야겠지만 한국 기업이 현지에서 `착한 기업`으로 자리 잡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는 CSR 활동이 기부나 봉사활동에 의존한 보여주기식 표면적 마케팅 수단으로 주로 활용됐는데 한걸음 더 나아가 실질적인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무한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글로벌 경영환경에 요구되는 외국 진출 기업의 지속 가능한 경영에 대해 중장기적이고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2011년 8월 30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10830화] 곽노현 교육감 사퇴하고 검찰조사 받아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그제 교육감 후보단일화 상대였던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 원을 몰래 건넨 사실을 시인하고도"어려운 처지를 외면할 수 없어 선의의 지원을 했을 뿐"이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지지자들조차 "말이 안 되는 얘기"라며 혀를 차고, 반대자들은 "내게도 선의로 2,000만원만 지원해 달라"며 조롱하고 있다. 검찰은 두 사람이 오랫동안 돈 문제로 다툰 정황을 밝혔으며, 박 교수의 측근도 곽 교육감의 주장을 일축했다. 곽 교육감은 즉각 서울시민에게 사과하고 사퇴한 후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게 좋겠다.

 

곽 교육감은"범죄인지 아닌지, 부끄러운 일인지 아닌지 사법 당국과 국민의 판단에 맡긴다"는 묘한 말을 하며 사퇴를 거부했다. 오히려"합법성만 강조하고 인정을 상실하면 몰인정한 사회"라거나,"정치적인 의도가 반영된 표적수사"라면서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이다. 법원의 선거사범 신속재판 규정에 따르더라도 검찰 수사와 1심 재판 6개월, 2ㆍ 3심 각 3개월을 합쳐 그럭저럭 1년 이상'합법적'으로 교육감 노릇을 더 할 수 있다고 계산했을 수 있다.

 

하지만 거대 서울시의 교육행정을 책임진 교육감이 중대 범죄혐의를 받으면서 그대로 자리에 머무는 건 옳지 않다. 서울시 교육감은 한해 6조원 예산과 5만5,000명 교원의 인사를 좌우하는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다. 곽 교육감은 "학교는 자유와 민주, 법과 자율, 자치의 체험교육장이 돼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학생들에게 법의 엄정함을 일깨우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해괴한 논리를 앞세워 시간을 끄는 것은 그 자신에게도 더욱 욕될 뿐이다.

 

검찰은 곽 교육감의 진퇴와 별개로 엄정한 수사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10ㆍ26 재보선에서 전개될 우리 사회의 복지 논의를 왜곡시키지 않도록 수사를 조속히 매듭짓기 바란다. 특히 2억 원의 출처와 후보 단일화 뒷거래의 전모를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그 것이 교육자치의 미래를 위한 길이다.

 

 

[한겨레신문 사설-20110830화] 곽노현 교육감, 권위와 도덕성 이미 잃었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데는 ‘부패’에 대한 단호한 척결 의지가 크게 작용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전임 공정택 교육감이 인사청탁 대가로 1억46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들통나 구속된 것에 대한 심판의 측면도 있었겠지만, 곽 교육감이 법학 교수 시절 등을 통해 보여준 깨끗하고 도덕적인 이미지가 단단히 한몫을 했다. 삼성그룹 편법승계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그가 힘을 쏟은 ‘스톱 삼성’ 운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부패 전사’를 자임했던 곽 교육감이 후보 단일화를 이룬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원을 건넨 혐의로 검찰 소환이 임박했으니 참으로 유감스럽고 잘못된 처신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이유로든 곽 교육감이 2억원을 건넨 것은 합리화되기 어려운 행위다. 돈을 전달한 방법이나 횟수, 금액 규모 등을 고려할 때 ‘선의’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박 교수의 처지가 아무리 어려웠다고 해도 후보 단일화를 한 특수관계자에게 거금을 준 것은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서 용인되지 않는다. 단일화의 대가로 비칠 소지가 크다. 이런 상황이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이라는 말로 설명되리라 판단했다면 수도 서울의 교육수장이라는 자리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고 할 것이다.

 

설령 선의를 인정한다 해도, 곽 교육감은 또다른 불법 시비에 휩싸일 수 있다. 당장 ‘2억원에 대한 증여세를 냈느냐’는 질문이 나오면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고위 공직자들이 자녀에게 수천만원을 줬다가 인사청문회에서 증여세 탈루로 곤욕을 치르는 게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도덕적 잣대는 그만큼 엄격해졌다.

 

이번 사건으로 국민들이 반부패 교육 등에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곽 교육감 당선에 애를 쓴 진보·개혁 진영의 정치적·도덕적 상처 또한 적지 않다. 사법 처리의 관건인 대가성 여부와 관계없이 그가 교육감 자리를 지속할 수 있는 권위와 도덕성을 잃었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정치권은 물론 교육감 선거에서 그를 지지했던 시민사회단체들까지 나서서 사퇴를 요구한 것은 시민의 지지라는 근본 토대가 무너졌음을 보여준다. 곽 교육감은 스스로 물러나는 게 옳다. 이와 별개로 서울시민들이 곽 교육감 선출을 통해 표출한 교육부패 추방, 학생인권 강화, 교육복지 확대 등의 가치들이 이번 사건으로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조선일보 사설-20110830화] 민주당 복지 플랜은 '舊式 복지모델' 아닌가

 

민주당은 29일 무상 급식·무상 보육·무상 의료에 반값 등록금을 합친 소위 '3+1 복지 플랜'을 실현하기 위해 매년 평균 33조원의 재원을 조달하겠다고 발표했다. 33조원의 복지 비용은 예산 지출 삭감을 통해 12조3000억원, 건강보험료율 인상을 비롯한 기존 복지제도 개혁을 통해 6조4000억원, 조세부담률을 올해 19.3%에서 2017년 21.5%로 올려 14조3000억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복지공약만 찍어내던 정치권이 뒤늦게나마 구체적인 비용 마련 계획을 내놓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국민과 전문가들이 이런 비용 조달 계획이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것인지 점검할 차례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취약 계층에 기본 생계를 보장하는 정책을 '선택적 복지'라고 이름 붙이고,모든 국민에게 기본 생계비는 물론 의료·교육·일자리·주거까지 제공하겠다는 자신들의 정책을 '보편적 복지'라고 선전해왔다. 그러나 민주당이 내건 '만인(萬人)을 위한 복지', 이른바 '보편적 복지'라는 단어는 이미 선진국에서는 사어(死語)가 돼버렸다. 1950~60년대에 걸쳐 등장한 만인을 위한 복지는 '영국병' '네덜란드병' '스웨덴병'을 차례로 불러왔고, 요즘은 EU 전체가 실업률은 올라가고 성장이 하락하는 'EU증상(症狀)'에서 어떻게 탈출하느냐를 놓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민주당이 내건 보편적 복지란 앞서간 나라들이 넘어진 자리에서 우리도 넘어지겠다는 '구식(舊式)모델'이다.

 

민주당이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예산 지출을 삭감하고 각종 복지 제도를 손보겠다고 나선 것은 옳다. 우리 경제 성장률이 3%대(臺)로 하락했고 걸핏하면 금융위기에 빠지는 현실에서 그동안의 씀씀이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년 조달하겠다는 33조원은 올해 정부 예산 309조원의 11%에 가까운 금액이다. SOC사업비부터 산하기관 출자금까지 민주당이 삭감하겠다는 예산 항목들은 모두 지역 주민, 공무원은 물론 민주당 의원을 포함한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얽힐 대로 얽혀 있는 프로젝트다. 민주당이 과연 이런 예산을 과감하게 삭감할 각오라도 되어 있는가.

 

금융파생상품 거래에 세금을 부과하고 기존의 비과세·면세 혜택을 대폭 축소해 새로운 세금을 신설하지 않고 조세부담률을 21.5%까지 올리겠다는 구상도 지켜봐야 한다. 전 국민이 건강 보험료율을 올리겠다면 선뜻 동의하겠는가. 민주당은 애타게 구원의 손길을 원하는 계층에 먼저 복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복지의 원점(原點)에 서서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10830화] 민주당 복지재원 방안이 ‘복지국가 비전’ 되려면

 

민주당이 어제 보편적 복지재원 조달 방안을 내놓았다. 올해 초 발표했던 ‘3(무상급식·무상보육·무상의료)+1(반값 등록금)’ 재원조달 방안을 보완한 것이다. 2013년부터 5년 동안 연평균 33조원의 재원을 마련해 17조원은 ‘3+1’ 정책을 위해 쓰고, 여유재원 16조원은 취약계층 지원·일자리·주거복지 등에 활용한다는 것이 큰 줄기다. 16조원의 사용 계획은 추후 내놓기로 했다. ‘재원 없는 복지는 선거구호’라는 비판을 의식한 탓인지 복지재원을 현행 국가예산의 10% 가깝게 늘린 것이 눈에 띈다.

 

33조원은 재정지출 절감으로 12조3000억원, 복지체계 개혁으로 6조4000억원, 감세철회·비과세감면 축소 등으로 14조3000억원을 조달하게 돼 있다. 민주당은 국채를 발행하거나 세금 신설은 없이 재정·복지·조세 등 3대 개혁을 통해 소비성·중복성·선심성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나라살림을 최대한 아껴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낭비를 줄여 복지에 쓰겠다는 민주당의 원칙에 반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내놓은 몇몇 복지정책을 위한 재원마련 차원을 뛰어넘어 복지국가 비전을 제시하려면 복지국가에 걸맞은 틀이 갖춰져야 한다. 소득재분배를 강화하는 경제성장 구조, 지속가능한 복지를 떠받치는 재정 구조, 직접세 비중 상향 등 공평과세를 담보하는 조세체계 등 국정의 다양한 측면에서 명실상부한 복지국가의 모습이 제시돼야 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중요한 재정확대 문제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재정확대는 증세와 연결된다. 민주당은 “국민 세부담은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세부담률이 현재 19.4%에서 2017년에 21.5%로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증권거래세 확대를 제외하면 감세철회·비과세 축소가 세부담 증가의 전부다.

 

더 걷고 더 쓰는’ 혹은 ‘더 내고 더 받는’ 적극적 복지국가의 틀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면 복지 청사진과 함께 국민이 부담할 몫과 부담 방식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는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공고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무상급식·무상보육과 달리 보장범위와 투입비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크게 마련인 무상의료 부문에서 이런 정직한 접근이 필요하다. 재정 개혁은 더 과감해야 한다. 57조원에 이르는 경제사업 예산을 5%(2조8000억원) 절감하는 것은 지역개발 공약이 판치는 정치현실에 대한 개혁의지가 부족함을 보여준다. 토건사업 등 과도한 경제사업 비중을 선진국 수준으로 낮추는 것은 재정지출의 효율성뿐 아니라 복지국가의 틀을 갖추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서울신문 사설-20110830화] 장애인 채용 대신 돈으로 막겠다는 대기업

 

송승환, “문화부장관 하라” MB가 제의하자…오세훈 굴욕 “한달간 공관 사용하려면 관리…日 새 총리 ‘보수 우파’ 노다‘빅뱅’ 대성 무혐의 처분레이디가가 맹비난한 여성부 위원장 결국..…165㎝ 육상계의 김연아 얼마나 예쁘기에...대기업들의 장애인 고용부담금이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장애인 고용부담금이란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장애인 의무 고용비율(공공기관 3 %, 민간기업 2.3 %)을 지키지 못해 대신 정부에 내는 돈을 말한다. 기업들의 장애인 고용부담금이 늘었다는 것은 장애인 고용을 하느니 차라리 돈으로 때우겠다는 인식이 여전하다는 방증이다. 씁쓸하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제 한 국회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대기업들은 총 1652억원의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납부하겠다고 신고했다. 지난해 1246억원보다 24.5 % 늘어난 수치라고 한다. 지난 4년간 납부현황을 보면 삼성전자가 307억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LG전자 108억여원, LG 디스플레이어 98억여원, 하이닉스반도체 70여억원이다. 법적으로는 장애인 채용 대신 벌금 성격의 부담금을 내는 것이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생각한다면, 일의 능률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장애인 채용을 기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이 이익 추구를 위한 집단인 것은 분명하지만, 따뜻한 사회를 만들고 윤리경영과 상생번영을 실천해야 하는 책무도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장애인 고용에 좀 더 열린 자세를 가져 주기를 촉구한다.

 

최고의 복지는 고용이다. 장애인들에게는 더욱 절실한 얘기다. 시혜성·일회성 지원보다 생존권이 위협받지 않도록 일터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공생발전’ ‘상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선진사회일수록 장애인을 동반자로 인식하고 함께 간다. 장애인·비장애인 차별 없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세상이야말로 공정한 사회다. 이제 기업들이 인식을 바꾸어야 할 때가 됐다. 정부도 장애인 미고용 기업에 부담금만 부과할 게 아니라 징벌적 제재를 포함해 좀 더 적극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10830화] 국민연금, 가입자가 선택하게 확 뜯어고쳐라

 

보건복지부가 어제 국민연금 기금운용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기금운용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거래 증권사와 위탁운용사의 세부 평가항목과 선정기준, 평가배점 등을 내년부터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하겠다고 한다. 외부 인사가 포함된 거래증권사 및 위탁운용사 선정위원회를 신설하고 부정행위를 저지른 임직원에 대한 처벌도 강화키로 했다. 이렇게 해서 거래 증권사의 평가점수를 조작하거나 과도한 전관예우를 허용하는 등 비리의 소지를 뿌리뽑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미시적인 대책이 얼마나 통할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국민연금 비리는 내부통제 장치나 시스템이 미비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문제는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데 있다. 국민연금은 국내 증권사를 통해 연간 189조원을 굴리는 큰손 중의 큰손이다. 증권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만도 연간 500억원에 육박할 정도다. 국민연금이 이처럼 엄청난 이권을 손에 쥐고 증권사의 목줄을 잡고 있는 한 아무리 고도의 감시체계를 구축해본들 봐주기와 부정부패에 대한 유혹을 원천봉쇄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봐야한다.

 

정부가 정말로 비리를 없애고 싶다면 국민연금의 운용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본다. 국민연금은 국민 1945만명으로부터 의무적으로 거둬들인 340조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굴리는 둘도 없는 공룡이다. 이런 커다란 덩치를 그대로 둬서는 관리가 방만해지는 건 오히려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결국 이미 외국에서 도입한 대로 국민들이 복수의 연금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운용사를 스스로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다. 민영화 내지는 복수 경쟁체제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그것이 2060년이면 재원고갈이 예정된 국민연금도 살리고 국민들이 자신의 노후를 보다 잘 설계할 수 있게 하는 길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10830화] 가계대출 금리인상 부작용 최소화가 과제

 

다음달부터 시중은행들이 가계대출 금리를 인상할 방침이어서 가계의 이자부담이 가중되고 소비위축 등 상당한 후유증이 예상된다. 위험수위에 이른 가계대출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금리인상이 불가피한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대출금리를 올리게 되면 신용과 담보력이 취약한 서민과 영세 자영업자, 그리고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이 가중된다는 점이다.

 

농협ㆍ신한은행ㆍ우리은행 등은 오는 9월부터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를 0.1~0.2%포인트 인상할 계획이다. 은행들은 이에 앞서 지점장 판단으로 우대하는 전결금리도 없애 대출금리는 실질적으로 0.4%포인트 안팎 올랐다. 가계부채가 경제불안의 뇌관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금리인상은 불가피한 대책이다.

 

분기당 10조원 이상씩 급증하며 900조원에 이른 가계부채가 경제를 흔드는 시한폭탄이 되지 않게 하려면 가계빚을 통제 가능한 수준에서 억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증가율을 월평균 0.6% 이내에서 묶고 은행들이 이자율을 올리면 가계대출 수요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가계대출 억제는 경기부진과 함께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저소득 서민층의 자금사정을 더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 금리인상은 장기적으로 원리금 상환액이 증가해 가계의 가처분소득 감소와 소비지출 위축으로 이어져 경기회복에도 걸림돌이 된다. 특히 금리인상으로 이자부담이 무거워지면 고소득층과 대기업보다는 저소득층, 영세 중소기업들이 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2ㆍ4분기의 경우 빚을 내 생활하는 적자가계 비율이 26.2%에 이르고 올 들어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이자비용이 지난해 동기 대비 11.4%나 늘어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가계부채 억제를 위해서는 금리인상이 불가피하지만 서민들의 금융비용 부담이 과도하게 늘어나지 않도록 보완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예대마진의 합리적 조정을 비롯해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를 기준으로 한 변동대출금리 산정 등에 따른 시장금리 왜곡에 대한 개선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신용카드 등 각종 수수료 인하방안도 검토돼야 한다. 은행의 가계대출금리 인상이 신용경색은 물론 실물경제의 침체요인이 되지 않도록 정책적 관심이 요구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오늘과 내일/권순택(논설위원)-20110830화] 사회적 동정 악용하는 ‘희망버스’

 

서울에서 열린 제4차 ‘희망버스’ 행사의 참가 규모나 열기를 보면 희망버스의 열기도 식어가는 듯하다. 한진중공업에서 8개월째 농성 중인 김진숙 씨는 이제 크레인에서 내려올 수도, 무한정 고공농성을 계속할 수도 없는 난감한 처지에 놓인 것 같다.

 

김 씨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 졸업 후 가출해 1981년 한진중공업 전신인 대한조선공사 용접공이 된 뒤 방송통신고에 가려고 했다. 재직증명서를 떼러간 그에게 회사 대리는 “방통고 나온다고 니 인생에 꽃이 필 거 같나”라며 거부했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글재주에 놀랐다. 그가 방통고를 거쳐 대학에 갔다면 시인이나 소설가가 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여섯에 해고된 뒤 세 번의 남영동 대공분실 조사, 두 번의 구속과 수배생활 5년이란 그의 이력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종북(從北)도 좌파도 아니면서 제 돈 들여 ‘희망버스’에 탄 사람 중에 김 씨의 기구한 인생 스토리에 사회적 동정(social sympathy)을 느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도 짠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에게 측은지심이나 동정심을 느끼는 건 자연스럽다. 겉으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목표로 내건 ‘희망버스’의 동조자가 적지 않은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비정규직이 870만 명이나 되고 직장인이라면 정리해고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니 동병상련을 느낄 만하지 않은가.

 

그러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동정과 법을 무시하면서 불법행동을 지원하는 건 구분돼야 한다. 김 씨는 “악법도 법이니까 지켜야 한다는 쪽보다는,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나쁜 법은 자꾸 문제를 제기해서 깨 버리자는 논리에 더 수긍이 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화된 세상에서 법을 어기면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궤변 법학자’인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라면 사회적 약자가 법을 지키지 않거나, 약자를 돕기 위해 법을 어기는 걸 ‘착한 불법’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설사 ‘착한 불법’이 있다고 해도 그게 합법일 순 없다. 국민이 불법에 무감각해지면 사회의 갈등과 혼란은 악순환할 수밖에 없다.

 

법치 개념이 약한 국민을 이용해 정치적 잇속을 챙기려는 세력은 얼마나 많은가. 뒷감당할 능력도, 책임질 마음도 없으면서 굿판이 벌어지는 곳마다 몰려가는 자들이야 말로 경계해야 할 위선자들이다. 광우병 사태나 용산참사 때 맹활약한 주역들이 희망버스 행사에 열심이다. 순진한 여중생들을 앞세워 정권에 대한 적개심으로 세상을 뒤집으려 한 세력과 한진중공업 사태를 주도하는 세력은 크게 다르지 않다.

 

희망버스를 탄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공개적으로 김 씨에게 이제 그만 내려오라고 말하지 않는 건 참으로 잔인한 짓이다. 8개월 동안 추위와 더위, 비바람을 견디며 크레인 위에서 사는 건 감옥생활보다 나을 것도 없을 게다. 김 씨는 이제 스스로 크레인을 내려올 수도 없다. 희망버스가 저렇게 응원하는데 어떻게 그러겠나.

 

김 씨를 동정하고 응원하는 사람 누구도 그 대신 구속될 수도, 감옥생활을 해줄 수도 없다. 김 씨가 희생양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면 ‘5차 희망버스’는 그를 내려오게 해야 한다. 야당도 우리가 국회에서 노력할 테니 이제 내려오라고 김 씨를 설득할 때다. 1998년 노사정 합의로 정리해고제를 도입한 민주당이 김 씨의 불법 크레인 시위를 이용해 정치적 이득이나 노린다면 위선의 정치일 뿐이다.

 

 

[중앙일보 칼럼-비즈 칼럼/이재우(동국대 국제정보대학원 석좌교수, 초대 한국정보보호진흥원장)-20110830화] 해킹 방지 1원칙 : 훔칠 게 없으면 도둑도 없다

 

초대 한국정보보호진흥원장해킹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해킹을 당한 기업의 위상은 추락하고, 소중한 개인정보 유출로 인해 불안에 떠는 피해자들은 늘어나고 있다. 해킹에 대한 우려와 피해가 확산되면서 업계의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 관행을 질타하고, 차제에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한 정부의 법 제도 개선과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고로 ‘물 샐 틈 없는 바가지’라야 진정한 바가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물 샐 틈 없는 보안시스템의 구축은 불가능하다. 날로 지능화·고도화하는 해커들의 공격 기술에 대해 100%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보안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최신 기술로 이중, 삼중 안팎을 두르고 인(人)의 장벽을 쳐 막고 감시하는 게 최선의 보안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정부와 기업들은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 관행에 제동을 걸자는 최근의 사회적 논의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해킹 사건이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은 해킹한 정보 자체가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해킹한 정보들은 음성적으로 거래되고, 불법적으로 악용된다. 피해는 국민 개개인에게 되돌아온다. 만약 기업들이 불필요한 고객 정보를 보관하지 않는다면 해커들은 공격 대상을 찾지 못해 스스로 떠돌거나 존재 기반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최근 늘어나는 타깃 해킹의 주요 목표가 되는 개인정보를 최소화하면 기업이 해킹 당하더라도 최소한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2차, 3차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SK커뮤니케이션즈가 해킹 재발 방지 차원에서 ‘9월부터 주민번호를 수집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훔칠 게 없는 집에 도둑이 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9월 말 시행되는 개인정보 보호법과 함께 실효성 있는 시행령들이 뒷받침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정부는 개인정보 수집을 규정하거나 조장하는 법 제도를 정비해 기업들이 불필요한 고객 정보를 수집하지 못하도록 하고, 꼭 필요한 정보는 더욱 안전하게 보호하도록 의무화하며, 이를 위반했을 경우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규제는 과감하게 풀고, 업계에 자율권을 보장하되 업계는 핵심 정보를 반드시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정부는 차제에 해킹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피해를 보는 고객과 국민이 늘어남에도 적절한 처벌과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현재의 모순된 고리를 끊어야 한다.

 

 기업과 기관들은 이러한 노력에 더해 유사시 해킹 피해를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복구할 수 있는 사전 위기대응 지침을 갖춰야 한다. 위기대응 지침에는 해킹 방지 및 피해 최소화, 2차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한 방법들이 구체적이고 일목요연하게 명시돼야 한다. 해킹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정작 해킹 사건이 일어났을 때 신속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일사불란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기적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만 기업이나 고객들이 볼 수 있는 2차, 3차 피해를 예방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객을 최우선 보호하고, 기업도 지속 가능한 경영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태관(논설위원)-20110830화] 10초 인생

 

육상의 100m 달리기는 흔히 ‘10초 드라마’라고도 일컫는다. 뚝딱하는 순간에 승부의 명암이 갈리고, 희비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드라마지만 그 10초가 빚는 감동은 여느 대하드라마 못잖다. 거기에는 희극도 있고 비극도 있으며, 복선도 있고 반전도 있다. 경기는 10초에 끝나지만 그 여운은 평생을 가기도 한다. 100m 스프린터는 한순간에 운명이 좌우되는 ‘10초 인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들 말하지만, 노년(老年)에게 물어보면 대개 100m 달리기와 같다고 답할 것이다. 어어하다 휙 지나가 버렸다는 소감들이다. 세월여류(歲月如流)라지만 인생은 순식간이다. 초음속시대이니 ‘흐르는 물’보다는 광음여전(光陰如箭), 백구과극(白駒過隙) 등의 표현이 더 와닿을지도 모르겠다. 세월은 쏜살 같고, 인생은 흰 망아지가 달리는 모습을 문 틈으로 내다보는 것처럼 잠깐이다. <장자>의 ‘소요유’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하루살이는 밤과 새벽을 알지 못하고,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 내일이 없는 하루살이는 덧없고, 내년을 모르는 쓰르라미는 허망하다. 천년이 하루 같다는 신의 눈으로 보면 백년도 못사는 인간은 하루살이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루살이에게 10초라는 시간은 얼마만큼의 인생일까. 최근 밀리언셀러에 등극한 <아프니까 청춘이다>에는 이런 셈법이 나온다. 대학을 막 졸업한 스물넷 청춘의 인생시계는 아침 7시12분이다. 계산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하루 24시간은 총 1440분이다. 이것을 인생 80년으로 나누면 1년은 18분이고, 10년에 3시간씩 간다. 요즘 정년을 맞고 있는 50대 베이비붐 세대는 인생시계의 오후 3시를 겨우 넘겼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100m 달리기의 10초라는 시간은 팔십 평생의 사흘 정도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은 선수의 평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우사인 볼트 선수의 실격이 화제다. ‘번개’라는 그가 100m 결선을 뛰어보지도 못하는 날벼락을 맞았다. 단 한번의 실수도 용납않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가 빚은 대반전이다. 그런데 볼트의 비극이 남의 일 같지만은 않은 것은 왜일까. 어어하다 하루아침에 일생을 망친 사람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10초 인생’이 아니어도 인생에 리플레이는 없다.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포럼/장경덕(논설위원)-20110830화] 빚쟁이 對 빚쟁이

 

빚쟁이가 찾아올까 겁내는 이는 채무자다. 빚쟁이가 도망갈까 겁내는 이는 채권자다. 빚쟁이는 빚을 준 이를 뜻할 때가 많지만 빚을 진 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러니 우린 모두 빚쟁이다.

 

우리가 진 빚은 1000조원에 이르렀다. 1억원으로 쪼개도 1000만명이 나눠 져야 한다. 일반 기업이나 금융회사나 정부의 빚을 모두 빼고 개인 금융부채만 합친 게 그 정도다.

 

빚을 진 이도 빚을 준 이도 어느 때보다 힘들어하고 있다. 모든 금융자산은 다른 누군가의 빚이다. 돈을 맡기는 이와 돈을 빌리는 이들 사이에 있는 은행은 채무자인 동시에 채권자다. 잔치를 해야 할 처지에 내몰리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밤잠을 설치기는 모두가 마찬가지다. 그럴수록 더 절박한 심정으로 한줄기 위안거리라도 찾아보려 한다.

 

빚쟁이들에게 초미의 관심사는 인플레이션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인플레이션은 원금과 이자의 실질적인 무게를 덜어준다. 빚을 진 이들은 이득을, 빚을 준 이들은 손실을 본다. 1920년대 독일이나 2000년대 짐바브웨에 초(超)인플레이션이 나타났을 때 채무자들은 갑자기 모든 빚이 사라지는 마술을 경험했다. 지금은 아무도 그처럼 초현실적인 인플레이션을 상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30년간 잊고 있었던 인플레이션의 마술이 재현될지 모른다는 생각은 누구나 해볼 수 있다.

 

통화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억누를지 부추길지 가늠하려면 누구 입을 바라봐야 할까. 한국은행 총재일까, 대통령일까. 대통령이 소집한 회의에 한은 총재가 국무위원들과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이 둘을 함께 주목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중요한 입이 있다.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벤 버냉키 연준 의장 입이다. 김중수 총재가 지난주 말 그의 한 마디를 들으러 미국의 머나먼 산골짜기까지 달려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주 세상 모든 빚쟁이들과 통화정책 수장들이 버냉키의 한 마디를 숨 죽이며 기다렸다. 하지만 `헬리콥터 벤`은 생각보다 무기력해 보였다. 지난 3년 동안 헬기에서 돈을 뿌리듯 엄청난 유동성을 퍼부었던 그는 이번에는 말을 아끼고 몸을 사렸다. 일자리를 만드는 재정정책을 촉구하며 대통령과 의회에 공을 넘겼다.

 

화끈한 3차 양적 완화(QE3) 작전을 기대하는 이들은 앞으로도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공화당 유력 대선 주자는 "내년 선거 때까지 돈을 더 찍어내는 건 반역적"이라고까지 버냉키를 몰아세우는 마당이다. 연준 안에서도 버냉키에 드러내놓고 반기를 드는 매파가 많다. 연준의 유동성 파티는 완전히 끝나지는 않더라도 훨씬 더 절제된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연준이 또다시 다른 나라들에 인플레이션을 강요할까 염려했던 이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김 총재도 그중 한 사람일 것이다. 그는 금리 정상화 필요성을 거듭 밝혔다. 물가가 올해 들어 줄곧 한은의 중기목표(3%±1%)를 크게 벗어난 마당이라 다른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

 

하지만 금리 정상화로 가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가만 있을 리 없다. 빚에 짓눌린 가계를 생각해 금리를 낮은 수준에 묶어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그러는 새 인플레이션 압력은 더 커질 수 있다. 물가는 뛰고 성장은 둔화되는 것은 가장 나쁜 시나리오다.

 

그렇다면 빚쟁이들의 계산도 달라져야 한다. 인플레이션으로 쉽게 빚 문제를 풀 생각을 하는 이가 있다면 꿈에서 깨야 한다. 사실 뜻밖에 큰 폭으로 치솟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면 빚의 무게를 더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 인플레이션이 점진적으로 진행되면 돈을 빌려주는 쪽에서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상쇄할 만큼 높은 이자를 요구할 것이다.

 

거의 모든 빚이 변동금리 대출인 데다 상환 만기도 매우 짧은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인플레이션이 빚의 무게를 줄여주지 않고 실질소득만 줄이게 되면 빚을 갚기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빚쟁이들의 불면의 밤은 계속될 것이다. 이들을 위한 마법은 어디에도 없다.

 

 



[경향신문 칼럼-여적/노응근(논설위원)-20111031월] 갑을관계

 

60갑자(甲子)는 천간(天干) 10개와 지지(地支) 12개의 조합으로 이뤄진다. 천간은 하늘의 시간적·계절적 기운 흐름을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로, 지지는 땅의 기운 흐름을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라는 문자로 각각 표현한 것이다. 10천간이든 12지지든 대자연의 기운 흐름을 순서대로 나타내고 있을 뿐, 우열·서열 개념은 포함하고 있지 않다. 차례대로 끝없이 순환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더 낫고 못함이 없는 것과 같다.

 

‘갑을관계’는 이런 의미의 10간에서 유래했으나 뜻은 영 딴판으로 쓰이고 있다. 계약서상 계약 당사자를 단순히 ‘갑’과 ‘을’로 지칭한다지만, 관용적으로는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쪽을 갑, 낮은 쪽을 을이라 부른다. 양자 관계에서 상대방의 생살여탈권을 쥔 강자가 갑이라면, 살기 위해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약자는 을이다. 서류상에만 갑을관계일 뿐, 실질적으로는 상하관계, 주종관계다.

 

갑을관계의 을보다 더 못한 약자를 ‘병’이라 한다. 대기업을 기준으로 1차 협력업체가 을이라면, 2차, 3차 협력업체는 병이다. 을은 직접 하청을 주는 병과 또 다른 갑을관계를 형성한다. 병은 대기업보다 1차 협력업체를 더 무서워할 수밖에 없다. 갑을관계가 먹이사슬처럼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갑을병관계에서 ‘갑을병’은 힘이 강한 순서를 나타낸다. 이런 10천간의 우열 개념은 일제시대 때 초등학교 성적 표시에도 활용됐다고 한다. 성적을 ‘갑을병정’ 식으로 표시했다는 것이다.

세간에는 갑도 을도 아닌 ‘병의 입장’도 있다. 때로는 갑 입장, 때로는 을 입장이 되는 사람을 일컫는다. 상대방에게 뭘 요구하면서도 상대방의 부탁도 들어줘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갑을관계에서처럼 갑이 을에게 일방적으로 힘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갑과 을이 힘의 균형을 이룬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동반성장이 강조되는 것은 대기업과 협력업체간 갑을관계의 폐해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1%의 갑의 횡포에 99%의 을이 숨죽이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재벌 총수는 앞다투어 “협력사와 갑을관계는 없다” “갑을관계의 낡은 생각을 버려라”고 외치지만, 본말이 전도됐다. 현실에서 대·중소기업 간 진정한 동반자 관계가 정립되면 갑을관계란 말은 자연스레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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