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사설-20110622수] 토건업자 배만 불리는 지방자치 언제까지
지난해 지방세 수입으로 공무원 인건비조차 감당 못하는 지자체가 전체 246개 중 55.7%인 137곳으로 집계됐다. 강원도 18곳 시·군 가운데 12곳, 전북 14곳 가운데 10곳, 전남 22곳 가운데 16곳의 재정자립도가 20%가 안 됐다. 전남의 8개 군은 10% 아래로 차마 '자치(自治)'라는 말을 붙이기 힘든 수준이다. 전국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1.9%로 2004년 57.2%를 기록한 이래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그런데도 시장·군수들은 중앙 부처로부터 교부금·보조금을 타내고 거기에다 지자체 재정으론 감당키 어려운 지방비를 보태 건물만 지어대고 있다. 경남 산청군은 재정자립도가 14.6%밖에 안 되는데도 2007년 국비 6억원과 지방비 14억원을 들여 박물관을, 2009년엔 국비 6억원·지방비 13억원으로 무형문화재전수관을 지었다. 하지만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휴관 중이다가 최근 한두 달 사이 가까스로 문을 다시 열었다. 강원도 태백시 경우 국비·지방비를 합쳐 130억원을 투입해 2006년 13만㎡나 되는 체험공원의 문을 열었지만 작년 입장객이 하루 평균 12명이었다.
재정에 여유 있는 지자체들이 돈을 흥청망청 써대는 것은 더 꼴불견이다. 경기 성남시는 3200억원을 들여 최신형 비행기 모양을 본떴다는 호화청사를 지었다. 서울 용산구도 연간 예산의 절반이 넘는 1500억원을 들여 휘황찬란한 청사를 지었다. 이런 호화청사들은 유리로 건물을 덮어씌우다시피 해 여름엔 불지옥이고 겨울엔 기름을 먹는 기름도둑이다.
2009년 경우 지자체들이 치른 지역축제가 937건에 달한다. 충무공을 주제로 해 남해안 일대 시·군들이 열고 있는 축제가 6가지다. 인구 5만명짜리, 10만명짜리 지자체들까지 너나없이 공설운동장·시민회관·문화예술원을 이미 지었거나 짓겠다고 나서고 있다. 2009년 지자체 전체 예산이 137조원이었는데 그 가운데 60조7000억원이 '자본지출'이었다. 자본지출 항목의 90% 이상이 시설을 짓는 건설예산이라고 한다.
시장·군수들이 으리으리한 건물들을 지으면서 펑펑 쓴 예산은 건설업자·토건업자들 배를 불렸을 것이고, 그중 일부분이 시장·군수와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뇌물·정치자금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4기(2006~2010년) 민선 기초단체장 230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13명이 비리·부정으로 사법당국에 걸려들었고, 그때마다 보궐선거를 치르느라 예산을 낭비해왔다.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주민들의 생활을 더 윤택하게 만들자고 16년 전 시작한 지방자치제도가 이대로 굴러가면 지자체의 파산을 넘어서서 언젠가는 국가를 주저앉히고 말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10622수] 목사직 매매하는 교회에 구원은 있는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교회, 특히 대형 개신교회에서는 성경 구절처럼 ‘힘들고 짐진 자’들이 ‘편안히 쉬는’ 공간을 찾기 힘들다. 일부 유명 목사 등 ‘교회 권력자’들은 교회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대통령 선거에 개입해 관직 등 ‘전리품’을 챙기며, 현직 대통령을 무릎 꿇릴 정도의 위세를 과시한다. 그뿐인가. 어떤 신도들은 사찰에 난입해 불상을 훼손하는 등 다른 종교를 모욕·멸시하기도 한다. 교회가 공동체를 걱정하고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다수 성원이 교회를 염려하고 질책하는 기막힌 전도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현직 개신교회 목사가 교회 내에서 횡행하고 있는 담임목사직 매매 실태를 고발하면서 자신의 목사직을 반납했다고 한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밝은세상교회의 김성학 교육목사가 엊그제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은 충격적이라기보다는 ‘공공연한 비밀’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A목사는 B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수억원의 ‘헌금’을 냈다. 이 돈은 이 교회에서 물러나는 목사의 ‘은퇴금’으로 사용됐다. 몇 년 뒤 성 추문에 휘말린 A목사는 수억원의 은퇴금을 받았다. 이 돈은 당연히 그의 후임자가 납입한 것이다. A목사는 은퇴금에 웃돈을 얹어 헌금으로 바치면서 C교회의 담임목사가 됐다. 이 돈 역시 C교회에서 물러나는 목사의 은퇴금으로 쓰였다. 목사직을 고리로 수억원의 큰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래된 셈이다. 김 목사는 교인을 포함해 교회를 통째로 사고파는 악습도 고발했다.
배금주의, 성장지상주의, 극우반공주의, 공격적·호전적 선교 방식, 타종교에 대한 적대감 등 한국 개신교계가 앓고 있는 병증은 너무 많고 깊어서 어디부터 메스를 들이대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그러나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현 상황을 애써 무시하거나 개탄만 해서는 희망이 없다. 교회 구성원들은 교회가 사회의 빛과 소금이기보다는 사회의 병인(病因)으로 지목받는 현실에 대해 전면적·근본적으로 성찰한 뒤 교회 개혁을 위한 구체적 실천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 이런 점에서 규모지상주의를 극복하고, 교회 운영의 형식과 내용을 민주적·수평적으로 일신하자는 ‘작은 교회 운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목사직을 포기하면서까지 내부고발에 나선 김 목사의 결단에서 역설적으로 개신교회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한다. 그가 제기한 문제의 시작은 미미할지 모르겠지만, 그 결과는 창대할 것이라고 믿는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유병선(논설위원)-20110622수] 회장님은 출장 중
요즘 대기업 총수의 해외출장은 여간해선 뉴스에 오르지도 않는다. 사업 영역과 기회가 세계로 넓어지다 보니 출장이 일상화되기도 했거니와 총수들의 발로 뛰는 경영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도 한몫하기 때문이다. 물론 비즈니스와 무관한 해외출장도 없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거철이면 신문지상에는 ‘회장님은 출장중’이란 표제어가 단골로 등장했다. 정치헌금으로부터의 도피성 출장이었다. 검은 돈줄을 막은 2004년 정치자금법 개정 이후 선거철 총수의 집단 해외출장은 옛날 이야기가 됐다.
선거철 말고도 총수의 해외출장 사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패턴이 있다. 1988년 국정감사가 도입된 이래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회에 출석해야 할 상황이 닥치면 대기업 총수들은 거의 예외없이 해외로 출장을 떠나는 것이다. 2002년에는 현대그룹 특혜 지원과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2004년엔 대생 인수 문제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2007년에는 비정규직 대량해고와 관련해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이 해외출장을 이유로 국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갑자기 해외출장을 떠난다고 국회에 통보했다고 한다. 국회는 6개월째 극심한 노사갈등을 겪고 있는 한진중 사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22일로 예정된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조 회장을 참고인으로 불렀다. 조 회장도 지난 17일 환노위에 나가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회의 이틀을 앞두고 20일 느닷없이 말을 바꾼 것이다. 3일 사이에 국회와의 약속을 뒤집을 만큼 다급한 해외출장건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한진중은 해명도 하지 않았다.
조 회장이 환노위 출석을 약속했을 때만 해도 한진중 노동자들은 귀를 의심했다. 지난해 12월 사측의 400명 정리해고 발표로 파업이 시작됐고,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35m 크레인 위에서 22일 현재 168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지만, 조 회장은 노조와 단 한차례도 대화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조 회장과 노조의 첫 대면이 기대됐다. 노조를 응원하는 시민의 ‘희망버스’가 방문하고, 국회가 중재에 나서고, 김 위원과 170명의 해고 노동자가 “회장님, 제발 우리 얘기 좀 들어주세요”라고 외치고 있다. 그런데 한진중의 대답은 ‘회장님은 출장중’이다.
조선일보 사설-20110623목] 홀로 살다 홀로 죽는 일본인, 내일 우리들의 모습
그제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 일본' 특집은 독자를 으스스하게 만든다. 일본에선 사망 후 4일 이상 지나 발견되는 고독사가 한 해 1만5600명에 달하고, 죽어도 시신을 인수할 가족이 없는 무(無)연고 사망자가 3만2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도쿄에선 죽는 이 10명 가운데 3명은 이른바 직장(直葬), 장례식 없이 곧바로 화장터로 가고 있다. 현재 일본 30대 남성 10명 가운데 3명, 여성 10명 중 2명은 50대가 될 때까지 결혼을 못할 거라고도 한다. 결국 일본은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가족 울타리'가 약해지고, 급속하게 진행된 저출산·고령화로 돌봐줄 자식이 없거나, 자식이 있다 해도 20년 경기침체로 부모를 보살필 경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인구 구성 비율은 일본을 10~15년 차이를 두고 뒤따라가고 있다. 오늘 일본의 스산한 모습이 내일의 우리 모습이라는 이야기다.
일본은 지난 20년 인구가 감소하면서 기업 매출이 떨어지고, 일자리가 줄고, 그것이 다시 소비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겪어왔다. 작년 일본의 226개 백화점 가운데 매출이 늘어난 건 3곳뿐이었다. 어린이 인구(0~14세)가 1990년 2248만명에서 작년엔 1648만명으로 줄면서 제과점 파산이 속출했다. 청년실업이 늘어나면서 1990년 780만대였던 신차 판매가 2009년 488만대로 감소했다. 금융자산의 75%(1125조엔·약 1경5000조원)를 가진 노인들은 여생이 불안하다며 갈수록 지갑을 닫고, 일자리를 갖지 못한 젊은이들은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다.
젊은이들 성격도 변했고 이에 따라 사회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직장도 학교도 안 다니면서 하릴 없이 시간을 죽이는 니트족, 뚜렷한 일자리 없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프리터족이 늘면서 자기 체념을 뜻하는 '하류지향(下流指向)'이란 말이 유행어가 돼버렸다. 30~34세의 직장인 가운데 결혼한 비율은 정규직 60%, 비정규직 30%, 프리터 17%다. 일자리가 불안한 젊은이들은 결혼을 기피하고 이것이 다시 저출산과 경기침체를 악화시키고 있다.
일본은 1996년부터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2008년부터는 총인구 자체가 감소했다. 우리도 2017년 생산연령인구가 줄기 시작하고 2019년부터 총인구가 감소할 것이다. 일본의 65세 이상 노인이 1990년 1489만명에서 2010년 2941만명(전체 1억2800만명의 22.9%)으로 늘었다. 지난해 우리의 노인 인구는 535만명이었는데, 2030년엔 1180만명(전체 4860만명의 24.3%)이 된다.
일본의 경우 노인요양보험인 개호(介護)보험 지출액이 2000년 3조8000억엔에서 작년 7조9000억엔으로 2배 늘었다. 우리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작년 지급액이 2조5000억원이었는데 2030년엔 15조6000억원으로 6배 늘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있다. 저출산·고령화가 이런 식으로 경제활력을 떨어뜨리면 잠재성장률은 현재 4.1%에서 2020년 1.9%까지 낮아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렇게 되면 작아진 파이를 서로 더 많이 먹겠다고 다투는 계층 간, 직업 간, 세대 간 갈등은 더 심해진다.
저출산·고령화는 한 번 추세가 형성되면 되돌려놓기가 힘들다. 일본도 온갖 몸부림을 쳤지만 실패했다.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고착(固着)되기 전에 흐름을 돌려놓아야 한다. 지금 하늘을 찌를 기세로 부풀어 오르는 중국의 미래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가장 큰 요인도 중국의 급속한 노령화다. 역사상 저출산·고령화의 흐름에 떠밀려가면서도 번영을 누렸던 나라는 한 나라도 없다.
우리 정부는 저출산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 GDP의 0.7% 예산을 쓰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시한폭탄의 뇌관(雷管)을 제거하기에는 어림도 없는 예산이다. OECD 평균이 2.3%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장관들에게만 맡겨놓기에는 너무나 중대한 문제다. 대통령이 10년 후, 20년 후 나라의 운명을 바로 보고 역사적 문제의식을 갖고 임해야 한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유병선(논설위원)-20110627월] SNS 피로증
얼마 전 독일 함부르크에서 희한한 사고가 벌어졌다. 테사라는 16살 소녀의 집앞에 1500명의 생일축하객이 몰린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불청객(不請客)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테사가 페이스북으로 초대장을 보내면서 잘못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한 게 화근이었다. 생일파티는 엉망이 됐고, 경찰까지 출동해야 했다. 한 아나운서의 자살이란 끔찍한 일을 겪은 우리로선 테사의 싱거운 사고에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이처럼 싱겁거나 끔찍한 형태로 사생활을 파고들고 있다.
최근 미국에선 뜻밖의 선언이 나왔다. 페이스북 열풍을 부추겼던 영화 <소셜네트워크>의 각본을 쓴 에런 소킨이 SNS를 끊겠다고 밝힌 것이다. 전 세계 페이스북 가입자가 7억명을 넘고, 손안의 컴퓨터라는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면서 지구촌민이 SNS 사용자와 미사용자로 나뉘는 세태에 비춰 여간 뜨악한 선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소킨의 페이스북 탈퇴선언을 보도하며 ‘SNS에 대한 피로감’을 지적했겠는가. 소킨은 이런 말을 남겼다. “(트위터는) 우리를 너무 즉흥적으로 만들고, 깊이가 없다. 인생은 복잡하다.”
요즘 미국 언론들은 SNS 찬양에서 경계로 돌아서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SNS 대중화가 사람들을 디지털 노예로 만들고 있다며 주말엔 일체의 정보화 기기를 꺼버리는 ‘디지털 다이어트’에 나설 때라고 했다. CNN방송은 이보다 한발 더 나간다. 흡연자들에게 폐암환자의 사진을 보여주듯, SNS 등의 디지털 중독 땐 뇌가 생각 중추인 회백질이 줄어들어 ‘팝콘 브레인’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지난 주말 방송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많이 쓰면 뇌가 팝콘처럼 튀어오르는 것에만 반응하고 현실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쪽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한꺼번에 490만원??SNS는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것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에겐 없어도 그만이거나 있어서 피곤한 정보기술(IT)이다. 새 문명 도구가 나올 때마다 걱정이 따랐지만, SNS의 과도한 열풍과 부작용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지난달 방한한 IT전도사 니컬러스 카는 현대인을 ‘정보의 바다의 표류자’에 비유했다. SNS의 쉴새없는 시시콜콜한 정보가 사고력과 비판력, 집중력과 창의력을 해친다는 것이다. 미래가 IT세상일 것을 의심하지 않는 그는 책을 쓰기 위해 SNS를 끊었다고 했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10627월] 주유소에 기름이 없다는 이야기
주유소에서 재고가 없다며 기름을 안파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ℓ당 100원 할인된 기름값이 내달 7일부터 환원되는 것을 앞두고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주유소들은 정유사가 공급을 줄였기 때문이라고 하고 정유사는 주유소들의 사재기 탓이라고 비판한다. 기름값이 논란인 와중에 지난 3월부터 시행해온 골프장 야간조명 금지 조치는 사실상 해제됐다고 한다. 골프장 업체들이 막대한 매출 손실은 물론 상당수 일용직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며 서울행정법원에 낸 '등화관제'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두 케이스 모두 유가가 급등하자 정부가 서민부담을 덜고 에너지 소비를 줄인다며 급조한 정책이 낳은 결과다. 기름값 100원 인하는 주유소별로 들쭉날쭉이어서 처음부터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고 이제 소비자들이 필요한 기름도 제때 사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골프장 등화관제로는 연간 128억원의 전기료가 절약되지만 골프장 매출 6000억원,세금 755억원이 각각 줄고 정규직 5000여명, 비정규직 연인원 61만명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한다. 소위 서민을 위한다는 정책이 결과적으로 서민에게 불편과 고통만 주었던 셈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건 문제가 생기면 당장 소비억제와 가격통제를 동원해 급한 불만 끄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직접 규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할 뿐더러 경제주체들의 후생을 오히려 감소시킨다는 것은 허다한 사례가 웅변하고 있다. 기름값도 전기소비도 마찬가지다. 특히 전기 과소비 문제는 생산원가에도 못미치는 전기요금 현실화에서 출발하는 것이 맞다.
이제 장마가 끝나면 다시 폭염과 전력 과소비,그리고 전력비상이 되풀이될 것이다. 정부는 당장 욕을 먹더라도 시장원리를 적용해 요금을 현실화하는 것만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기름값 역시 수급으로 결정되도록 하면 된다. 그래야 에너지 소비도 줄어든다. 시장이 해결할 일을 정부가 나서면 부작용을 만들어 낼 뿐이다. 물론 에너지바우처와 같은 저소득층 보완책도 함께 강구돼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포럼/온기운(논설위원)-20110705화] 原電 놓고 갈라지는 세계
"세계가 원전 찬·반으로 양분TMI나 체르노빌 사고 후여론 악화됐으나 다시 회복한국 에너지믹스 다시 짜고 중장기 대응책 강구해야"
3월 11일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자연재해가 인간이 상정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이른바 `베키분포`에 따라 발생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를테면 규모 8의 최대 지진이 있고, 규모 1의 최소 지진이 있다면 그 중간인 4 정도의 지진이 주로 발생할 것이라는 관념은 여지없이 깨졌다.
자연 현상이 과거 200년 동안 과학자들의 사고를 지배해온 정규 분포에 따라 발생하는 게 아니라 프랑스 수학자 베누아 만델브로가 강조한 것처럼 통상의 확률 분포를 벗어난 범위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류가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원으로 사용해온 원자력에 대해 새삼 겁을 집어먹게 됐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은 사고 발생 직후 원전 폐기 정책을 서둘러 발표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주선거(3월 27일) 패배 후 종전 견지했던 원전 지지 입장을 폐쇄 쪽으로 180도 바꿨다. 인접국인 스위스 정부는 5월 "2034년까지 국내 5개 모든 원자력발전소 문을 닫는다"고 발표했다. 이탈리아는 6월 국민투표를 통해 원전 재추진 정책을 백지화했다. 유권자의 94%가 원전에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프랑스 러시아는 원전 기치를 더욱 높이 치켜들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3일 만에 "탈(脫)원전은 논외다"고 선언했다. 프랑스는 오히려 원전 증설 추진으로 탈원전을 선언한 국가에 전력을 팔아 외화를 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탈원전 움직임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인류가 가까운 장래에 원전을 중단할 수 없다. 요구되는 것은 안전성 확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2025년까지 세계에서 30기 이상의 원전을 건설해 세계시장 점유율 20%를 차지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미국과 중국도 원전 정책 불변 입장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6일 만에 성명을 발표하고 "원자력은 장래 중요한 에너지원 중 하나"라며 원전을 유지할 방침을 밝혔다. 그 대신 안전성 기준 강화를 강조했다. 중국은 지진 발생 가능성이 높은 내륙지역 원전계획 수정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원전 지지 입장이다. 실제로 최근 장더장 부총리 등 정부 고위 관리들이 원전 확대 방침에 흔들림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잇달아 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는 갈라져 있다. 일본 원전 사고 이전과 비교해 보면 반대 여론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 미국 스리마일 섬(TMI) 원전 사고(1979년)나 옛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1986년) 후 각국의 여론이 일제히 악화되다가 2000년대 들어 국제 유가 급등 속에서 여론이 호전되고 `원전 르네상스`가 전개됐던 점을 감안하면 반대 분위기가 어느 정도 지속될지 지켜볼 일이다.
한국은 아직 정부가 원전 정책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고 국민 여론조사 결과도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한국은 원전 21기를 가동하고 있는 세계 5위의 원전 대국이다. 전력 공급의 40%를 원전이 담당하고 있다. 원전을 중단한다면 화력발전이나 신재생에너지로 전력 공급을 충당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수단은 전력생산비가 높기 때문에 전력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세계에서 가장 싸게 전력을 소비하고 있는 국민은 경제적 부담 증가를 감수해야 한다.
일본 국민이 전력 부족으로 올여름 찜통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너무 편안하다. 정부는 전력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에너지믹스를 다시 짜고 그 안에서 원전을 어떻게 할지 장기 마스터플랜을 제시해야 한다. 자연재해나 인재, 테러 등에 대한 안전 대책을 철저히 강구하는 게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원전 문제를 악용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20110706수] 한국 내 중국 동포 50만명 돌파의 빛과 그림자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중국 동포(조선족)가 50만명을 넘어섰다. 5월 말 현재 중국 국적을 갖고 체류 중인 동포가 45만2000여명, 한국 국적을 회복하거나 귀화한 중국 동포가 7만5000여명으로 합치면 52만7000여명에 달한다. 중국 동포들은 건설현장 노동자, 가사 도우미, 식당 종업원 같은 3D 업종의 노동력 공백을 메우고 있고, 이들이 없으면 이런 업종은 제대로 돌아가기 힘들 정도로 의존도가 크다. 그런가 하면 1992년 한·중 수교 당시200만명이던 중국 내 조선족 인구는 최근 180만명 수준으로 줄었다. 옌볜 조선족자치주의 조선족 비율은 1949년 63%에서 2009년 37%로 뚝 떨어졌다. 현지 동포 사이에선 이러다간 '조선족 자치주'라는 간판을 내리게 되는 사태가 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다.
조선족 연원(淵源)은 조선조(朝) 말인 18세기 후반 무렵 기근을 피해 그때까지도 우리 땅으로 여겨지던 새섬(사잇섬) 간도(間島)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이후 일본에 의해 나라가 망하자 독립 투쟁의 근거지를 마련하려고 혹은 일제의 수탈을 피해 새 운명을 개척하려던 사람들이 그 뒤를 이었다.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이 만들어진 이후에는 조선총독부가 앞장서 만주의 산업 인력 보충을 위해 소작농민들의 등을 떠밀기도 했다. 중국 동포는 굴곡 많은 민족사가 만들어낸 아픔의 소산인 셈이다. 중국 동포를 대하는 우리 정책은 중국 동포의 역사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깔려 있어야 한다.
중국 동포의 눈앞에 닥친 숙제는 비자 시한 문제다. 정부는 2007년 중국과 옛 소련 지역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편하게 우리나라를 드나들거나 취업할 수 있도록 방문 취업제를 도입했다. 올 3월 말 현재 중국 동포 29만7000명이 방문 취업 비자를 받았다. 2007년 받았던 5년 비자 시한이 올해 말로 끝난다. 중국 동포들이 내년부터 해마다 6만~7만명씩 우리나라를 떠나야 한다는 이야기다. 상당수 중국 동포들은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라도 더 머물며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과 건설현장 등에서는 이들이 떠난 이후의 인력난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외국인 관리 원칙과 중국 동포의 현실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춘추/피터 페레토(서울대 건축학과 교수)-20110714목] 숫자는 잊어라
오늘날 우리 행위는 수치와 순위에 의해 계량화된다. 항공 마일리지부터 고객 충성도 지수까지, 우리는 모든 것이 통계화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요즘은 우리 사회성마저도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 있는 친구 수에 따라 평가된다.
나는 숫자나 퍼센트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 늘 의구심을 품어 왔다. 수치 정보를 근거로 사용하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정보를 조정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유리한 숫자들만 뽑아서 세고, 주장을 위태롭게 할 숫자들은 과감히 버리고 나면 논지와 근거는 탄탄해진다. 누가 감히 숫자에 대항하겠는가?
숫자 놀음은 사실 그리스 소피스트들이 언술을 연마하던 시절부터 흔히 이용하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는 수치화할 수 있는 자료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이 유사과학적인 논쟁술이 남용되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우리 직관, 창의성, 틀을 벗어나 사유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현상 유지에 의문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을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서울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우수한 지적 역량을 갖춘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적 토론에 나서기보다는 데이터 뒤에 숨어서 주장하려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이들은 데이터를 나열하면서 자기 생각은 잠재워 버린다.
이런 현상을 학생들 탓으로 돌리기 쉽지만, 사실 그들이 받은 교육과 한국 문화의 산물이라고 보아야 한다. 수직화된 위계질서에 순응하도록 교육받기 때문에 윗사람 앞에서 자기 생각을 드러내기를 꺼리는 습성이 몸에 밴 것이다. 한국 대학생들이 교수와 수평적인 관계를 즐기면서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때, 그들의 열정이 내일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나 같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문제에 대해 지적만 하고 대안을 내놓지 않는 것에 대해 한국인들은 피곤을 느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근래 내 생각을 전환시킨 한 책을 추천해 보려고 한다. 다국적 광고회사 `사치&사치`를 이끌었던 폴 아덴이 쓴 `네가 무엇을 생각하든지, 그 반대를 생각하라(Whatever You Think, Think the Opposite)`는 책이다. 이 책은 틀에서 벗어나 생각하는 것에 관한 짧고 직설적인 선언이다. 한국 사회 발전을 위한 신선하고 대안적인 관점을 원하고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10720수] 4대강 저주하던 자들은 지금도 말이 많고…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성과가 입증되었다. 기록적 장마에도 불구하고 4대강 유역에서는 농경지와 가옥 침수 소식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사업에 반대하던 일부 농민들도 이제는 홍수 걱정에서 해방됐다며 이 사업에 대한 종전의 인색한 평가를 바꾸고 있다. 이번 장마는 강우기간이 평년보다 1주일이나 길었고 강우량도 642㎜에 달해 동일기간 평균 강우량 249㎜의 2.5배에 달했다. 강우량이 평년의 5배가 넘는 곳도 허다했고 특히 한 시간에 30㎜ 이상 내리는 폭우가 전국에서 65차례나 쏟아졌다. 예년 같으면 강이 범람하고 농경지와 가옥이 침수하는 피해가 엄청난 규모였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흔히 물받이라고 불렸던 지역들에도 피해가 적었고 하천 유역 근처 농경지나 가옥들의 피해도 보고된 사례가 눈에 띄게 줄었다.
피해 총액도 1500억원(17일 기준)에 불과하다. 1999년에는 10일 동안 95~633㎜의 호우로 1조원이 넘는 피해가,2004년엔 불과 300㎜의 비로 2041억원의 피해가 있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의 결과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세세한 설명이 필요없다. 현재 4대강 준설량은 7일 기준 4억3000만㎡로 목표의 94%를 완료한 상태다. 4대강 사업의 성과가 아니라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홍수기에 두고보자"며 4대강 꼬투리 잡기에 몰두해온 사이비 자연정령 숭배자들은 지금도 반성은커녕 사소한 문제들을 침소봉대하며 거짓을 전파하기에 여념이 없다. 일부 지역에 토사가 다시 쌓이는 현상이나 지류의 제방이 유실되는 등의 부분적인 문제를 마치 전체의 문제인양 호도하는 낡은 선전 수법에 머리를 박고 꼬투리 잡기에 골몰하고 있다. 대체로 이들은 처음부터 과학적 방법론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드러난 증거를 외면하고-이는 천안함도 마찬가지다-주술적 자연정령주의를 환경철학으로 가장하면서 반대 투쟁만 해왔을 뿐이다. 호우가 닥치면 두고보자던 뒤틀린 자들의 태도가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이다. 국민들이 사실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태관(논설위원)-20110720수] 여름 화로
쓸모없는 짓이나 불필요한 물건을 가리켜 흔히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고 한다. 여름날의 화로나 한겨울의 부채질은 생각만 해도 뜬금없다. 그런데 선가(禪家)에 들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름 화로와 겨울 부채는 ‘병 속의 새’처럼 쉽게 깨치기 힘든 화두가 된다. 중국 당나라의 선승 동산양개 화상의 일화다.
어느 학인이 양개 스님에게 물었다. “더위나 추위는 어떻게 피해야 합니까?” 스님이 답했다. “더위도 추위도 없는 곳으로 가거라.” “네?” “더울 때는 그대를 덥게 하고, 추울 때는 춥게 하라. 그러면 더위도 추위도 없다!” 더위 속에는 더위가 없고, 추위 속에는 추위가 없다는 것이다. 비슷한 선문답이 또 있다. 어느 선사에게 피서법을 묻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끓는 가마솥과 타는 화로 속에서 더위를 피하라. 거기에는 어떤 고통도 없느니라.”
더위를 피하는 길은 더위 속에 숨어 있다. 더우면 더위 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은 마음으로 들어야 들린다. 여름나기에 몸이 지친 선인(先人)들은 마음으로 더위를 다스리고자 했다. ‘여름 화로’는 선방의 수행자뿐만 아니라 옛사람들은 누구나 품었던 공통 화두이기도 하다. 조상들의 피서법을 들여다보면 한 줄기 선풍(禪風)이 느껴진다. 가령 다산 정약용의 ‘소서팔사(消暑八事)’는 상상만 해도 마음에 삽상한 바람이 인다. 다산은 1824년 여름에 쓴 시에서 ‘8가지 피서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즉 솔밭에서 활쏘기, 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타기, 빈 누각에서 투호놀이하기, 대자리 깔고 바둑두기,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비오는 날 시짓기, 달밤에 탁족하기, 숲 속에서 매미소리 듣기가 그것이다. 가히 선경(仙境)이라고 할 여름날의 풍경이다.
부채는 땀을 식히지만 매미소리는 마음을 식힌다. 마음이 시원하면 몸도 시원해진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다.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이리저리 다니지만/ 항(恒) 선사는 홀로 방에서 나오지도 않네/ 선방엔들 무더위가 없으랴만/ 단지 마음이 안정되면 몸도 시원한 것을!” 더위를 다스리려면 마음을 다스리라고 백거이는 노래하고 있다.
긴 장마가 끝나자 폭염이 전국을 덮쳤다. 열대야에 잠을 설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화로를 끌어안은 듯 뜨거운 나날이다. ‘여름 화로’는 저리도 맹렬한데 이를 다스릴 ‘겨울 부채’는 어디서 구해야 하나.
[중앙일보 칼럼-분수대/고대훈(논설위원)-20110804목] 골드 러시
황금(黃金)에 대한 욕망이 없었다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빠져 ‘황금의 땅’을 동경했다. 책에서 동방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금이 나오고, 순금으로 뒤덮인 멋진 궁전이 있는 곳”으로 묘사됐다. 1492년 콜럼버스의 탐험은 황금 찾기를 위한 인도 항로 개척이 목적이었다. 그는 “황금은 영혼이 낙원에 가는 것까지도 도와주는 보물”이라고 했을 정도다. 그해 10월 12일 ‘성스러운 구세주의 섬’이라는 뜻의 산살바도르에 상륙함으로써 대륙 개척이 시작됐다. 이후의 역사가 말해주듯 그의 황금 욕망은 노예무역, 잉카와 아즈텍 문명 파괴라는 엄청난 결과로 이어졌다.
예나 지금이나 황금은 권력과 부귀(富貴)를 상징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황금은 태양신의 분신이었다. 파라오 투탕카멘의 관은 110㎏짜리 순금으로 제작됐고, 미라 얼굴에는 황금 마스크를 씌웠다. 황금으로 장식함으로써 파라오가 신과 동격임을 알린 것이다. 중국인의 황금 사랑은 정평이 나 있다. 청(淸) 왕조 건륭제는 밥그릇도 황금으로 만들어 썼다고 한다. “중국인의 최대 종교는 황금”이란 말까지 있다.
황금은 탐욕의 대상이었다. 황금을 독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에 피로 얼룩진 약탈 전쟁이 수없이 벌어졌다. 19세기 미국 서부의 ‘골드 러시(gold rush)’도 황금에 관한 집착과 광기를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나라에서도 1930년대 골드 러시가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광복 전까지 3000개 금광에서 300여t의 금을 채굴해갔다. 노다지와 벼락부자의 꿈을 좇는 열풍이 불었다. 무지렁이 농사꾼이 낫 대신 곡괭이를 들고 금맥을 찾겠다며 논밭을 파헤쳤고, 김유정·채만식 등 당대의 문인들까지 금광업에 뛰어들던 시절이다.
우리에게 황금의 위력은 한동안 잊혀졌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한 돈(3.75g)에 5만~6만원 하던 돌반지를 선물하는 게 인사치레였다. 요즘 금 한 돈에 20만원을 훌쩍 넘는다. 국제 금값도 사상 최고치를 연일 갈아치우는 중이다. 한국은행이 13년 만에 처음으로 금 25t을 사들였지만 금 보유량은 세계 45위에 그친다. 금 부족 국가라는 얘기다. 우리나라에 방치된 금광은 1800여 개를 헤아린다고 한다. 금값 고공행진이 계속된다면 한국판 골드 러시라도 추진해야 하는 건 아닐까.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심상복(논설위원)-20110823화] 유통기한
식품은 변한다. 특수처리를 해도 한계는 있다. 정부가 1985년부터 유통기한제를 운용하고 있는 이유다. 사랑도 변한다. 하지만 변질방지법 같은 건 없다. 상온에서 사랑은 얼마나 오래 변치 않을까. 미국 코넬대 인간행동연구소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8~30개월이라고 한다.
‘내 남자의 유통기한’. 2006년 제8회 서울여성영화제에 초청된 독일 영화다. 원제(The Fisherman & His Wife)보다 훨씬 센스 있는 제목이다. 성공 지향의 여자와 작은 행복에 만족하는 남자가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데, 그들의 감정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차분하게 다뤘다.
사랑을 측정할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대뇌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신경물질과 호르몬으로 사랑의 크기를 잴 수 있다고 말한다. 연애에 빠지면 뇌에서 도파민·페닐에틸아민·옥시토신·엔도르핀이 다량 분비되고 사랑이 식으면 이런 호르몬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2년 코넬대 연구팀은 남녀 간의 뜨거운 애정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500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대략 1년 반이 지나면서 대뇌에 항체가 생겨 사랑의 화학물질 생성이 더뎌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정도가 심해진다는 결과를 얻었다. 사랑의 유통기한이 다한 것일까. 그렇다고 다 깨지는 건 아니다.
식품도 비슷하다.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해서 다 변질되진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은 유통기한을 넘긴 식품은 무조건 판매를 금하고 있다. 만든 기업이 다 수거해 폐기해야 한다. 그런 비용이 한 해 6500억원쯤 된다고 한다. 의약품이나 화장품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업계에선 유통기한이 너무 엄격하다고들 한다. 냉장고가 흔치 않을 때 정해진 기준이라고도 한다. 우유의 경우 유통기한이 5~7일인데, 냉장시설에 잘 보관하면 20일 정도는 문제 없다고 한다. 과자와 라면은 보통 6개월 안팎인데 이보다 한두 달 늘어난다 해도 국민건강을 해칠 일은 별로 없다고 말한다.
정부가 유통기한(sell-by date)보다 긴 소비기한(use-by date)이라는 새 용어를 만지작거리는 배경이다. 언제까지 소비하라는 날짜다. 일본과 영국이 이렇게 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유통기한은 지났지만 소비기한이 남은 제품의 값을 왕창 낮추면 물가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아원·양로원에 식품 보내기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제도라고 한다.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을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10830화] 국민연금, 가입자가 선택하게 확 뜯어고쳐라
보건복지부가 어제 국민연금 기금운용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기금운용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거래 증권사와 위탁운용사의 세부 평가항목과 선정기준, 평가배점 등을 내년부터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하겠다고 한다. 외부 인사가 포함된 거래증권사 및 위탁운용사 선정위원회를 신설하고 부정행위를 저지른 임직원에 대한 처벌도 강화키로 했다. 이렇게 해서 거래 증권사의 평가점수를 조작하거나 과도한 전관예우를 허용하는 등 비리의 소지를 뿌리뽑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미시적인 대책이 얼마나 통할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국민연금 비리는 내부통제 장치나 시스템이 미비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문제는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데 있다. 국민연금은 국내 증권사를 통해 연간 189조원을 굴리는 큰손 중의 큰손이다. 증권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만도 연간 500억원에 육박할 정도다. 국민연금이 이처럼 엄청난 이권을 손에 쥐고 증권사의 목줄을 잡고 있는 한 아무리 고도의 감시체계를 구축해본들 봐주기와 부정부패에 대한 유혹을 원천봉쇄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봐야한다.
정부가 정말로 비리를 없애고 싶다면 국민연금의 운용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본다. 국민연금은 국민 1945만명으로부터 의무적으로 거둬들인 340조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굴리는 둘도 없는 공룡이다. 이런 커다란 덩치를 그대로 둬서는 관리가 방만해지는 건 오히려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결국 이미 외국에서 도입한 대로 국민들이 복수의 연금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운용사를 스스로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다. 민영화 내지는 복수 경쟁체제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그것이 2060년이면 재원고갈이 예정된 국민연금도 살리고 국민들이 자신의 노후를 보다 잘 설계할 수 있게 하는 길이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김창우(중앙SUNDAY 기자)-20110907수] 카피캣
카피캣의 어원은 확실치 않다. 16세기 영국에서 경멸적인 사람을 지칭한 고양이(cat)라는 단어에 훗날 복사(copy)한다는 의미가 더해져 모방자를 지칭하게 됐다는 설이 있다. 또 새끼 고양이가 어미의 사냥하는 모습을 그대로 흉내 내면서 생존기술을 익히는 모습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어쨌든 19세기에 처음 등장한 이 단어는 모방범죄(copycat crime)나 모방자살(copycat suicide) 같은 식으로 많이 쓰였다.
이 말이 일반인들에게 익숙해진 것은 1995년 동명의 할리우드 영화가 나오면서부터다. 내용은 저명한 범죄심리학자가 모방살인범을 붙잡는다는 것이다. 앞서 나온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에서 한 손에 화염방사기를 장착한 기관총을, 다른 한 손에 어린 소녀를 안고 외계 괴물을 물리치던 강인한 여전사의 모습을 보여줬던 시거니 위버가 광장공포증에 시달리는 연쇄살인범 전문 학자로 변신한 것이 이채롭다.
최근에는 잘나가는 제품을 그대로 따라 하는 ‘미투(me too)’ 제품을 지칭하는 용어로 널리 쓰인다. 특히 올 3월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 신제품 발표장에서 삼성전자·구글·모토로라를 싸잡아 ‘카피캣’이라고 비난하면서 유행어가 됐다. 하지만 오데드 센카 오하이오주립대 교수는 저서 『카피캣』에서 모방이 반드시 나쁜 경영전략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잡스조차 제록스 팰로앨토연구소(PARC)에서 본 그래픽운영체제(GUI)와 마우스를 애플 제품에 차용했다”며 “혁신적 모방자(Innovative Imitator), 즉 ‘이모베이터(Imovator)’가 되라”고 조언했다.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고 있는 유럽 최대 규모의 가전전시회인 IFA에서 개막을 앞두고 삼성전자가 신제품 갤럭시탭7.7을 막판에 전시장에서 치우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애플이 “아이패드의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다”며 낸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독일 법원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둘러싼 ‘카피캣’ 문제로 애플과 삼성이 벌이고 있는 일진일퇴의 혈투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카피캣과 이모베이터 사이에 선을 긋기는 어렵다.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그대로 복사(copy)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도용(steal)한다”라고 말했다. 경쟁 제품을 그대로 베끼는 대신 그 장점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모방’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동아일보 칼럼-횡설수설/정성희(논설위원)-20110916금] 박근혜와 나경원
‘인사 실패’의 전과가 많은 이명박 정부에서 그나마 참신했던 인사로 2008년 보건복지가족부 전재희 장관과 이봉화 차관 인사를 꼽고 싶다. 비(非)여성업무 부처에서 처음으로 여성이 장차관에 임명된 사건은 성(性)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은 유쾌하고 창의적인 인사였다. 이 차관이 ‘쌀 직불금’ 파동으로 물러나지 않았으면 전-이 여성 장차관의 행보가 제법 뉴스거리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정부 내 최고위직 여성이었던 장옥주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이 지난달 물러났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사적체 해소를 명분으로 1급 공무원들을 사퇴시키는 차원에서 사표를 받았다. ‘여성 행정고시 2호’인 장 실장은 특유의 꼼꼼함으로 현안을 잘 챙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복지부 안팎에서는 진 장관이 아까운 여성 인재를 배려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들린다. 국회에서는 비례대표 출신 여성 의원들이 여성 보좌관 채용에 소극적이란 말도 나온다.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서울시장 출마가 가시화되면서 친박계의 기류가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 그동안 대통령과 서울시장 후보 모두 여성이 출마하는 것은 전략상 불리하다는 이유로 친박 의원들은 나 의원의 출마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친박계 의원들은 박근혜 전 대표가 나 의원의 출마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해명하고 다닌다는 소식이 들린다. 나 의원 이외에 마땅한 시장후보감이 없다는 현실적 선택일 수도 있지만 ‘여(女)-여(女) 구도’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인식 변화도 작용했을 법하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재임 시절 여성 각료를 한 명도 임명하지 않았다. 집무실이나 각료회의에 등장하는 여성은 “나 하나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여왕처럼 행세하는 그에 대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언짢아했다. 대처 퇴임 후에 여왕은 “무슨 일이든 강하게 밀어붙이기만 하는 그를 싫어했다”고 사석에서 말했다. 반면 여성인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재임 시절 남녀 동수내각을 구성하며 여성 각료 발굴에 적극적이었다. 세계적으로 여성의 정치활동을 제약하는 유리천장이 깨지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는 박근혜와 나경원이 여성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을까.
[한국경제신문 사설-20110920화] 이런 재외국민투표 왜 한다는 건지
해외에 거주하는 교포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한다는 재외국민 투표제는 아무래도 후유증이 심각할 것 같다. 허점이 너무 많아 과연 제도로 성립할지부터가 의문이다. 당장 유권자의 적격 여부를 가리기부터가 어렵다. 장기 거주하는 교민의 경우 외국 국적을 가진 시민권자는 제외하고 영유권을 가진 교포만 투표하게 한다는 것이지만, 새로운 국적 취득을 확인할 수 없는 국가만도 52개국이나 된다는 것이다. 부정투표, 유령투표 같은 해괴한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해외교민들 중에는 북한 국적자도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총련계 교포가 많은 일본과 조선족 동포들이 사는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 유럽 등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유권자를 걸러내지 못하는 투표제를 내년 총선과 대선에 도입한다면 마치 북한 주민들에게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게 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 알 수 없게 된다.
국회가 헌법재판소의 헌법불일치 판결을 계기로 2009년 이 투표제도를 도입했지만 교포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도 논란이 분분하다. 조세 국방 등 헌법에서 정한 국민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해외교포 중에는 불법사범이나 아예 나라가 싫어서 떠난 사람도 적지 않다. 투표제의 취지와 실효성을 살리려면 더욱 엄중하고 세밀한 검토가 뒤따라야 한다. 중국 같은 곳은 투표에 대한 거부감이 큰 탓에 투표소를 설치하기조차 어려운 형편이고 미국은 교민들이 투표하려면 1박2일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한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시민권자를 제외한 재외국민은 작년 말 기준 279만여명에 달한다. 이 중 만19세 이상 유권자는 23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대선조차 50만표 이하로 당락이 결정되는 마당에 중대한 변수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여야는 그저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이라며 도입하는 데만 열중할 뿐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간 도끼로 제 발등을 찍게 된다. LA 등 일부 지역은 교민들이 벌써 정치파당으로 분열되고 있다니 그것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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