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8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00318목] 법무장관의 섣부른 보호감호 부활발언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2004년 폐지된 보호감호제의 부활을 예고했다. 연쇄살인범, 아동 성폭행ㆍ살인범 등 강력 범죄자의 장기 격리를 위해 보호감호제 재시행을 포함한 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것이다.

 

이 장관의 발언은 부산 여중생 납치ㆍ피살 사건 등 일련의 흉악 범죄로 커진 국민적 불안과 공분을 명분과 배경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감안한다 해도 보호감호제 부활은 섣부르고 위험한 발상이다. 교정 행정의 주무 장관이라면 강력 범죄자의 교화와 치료, 사회 복귀에 효과적인 방안을 내놓는 게 우선이다. 그런 노력은 뒤로 미룬 채 즉각적ㆍ현시적 효과만 의식해 어두웠던 과거의 낡은 유산을 불쑥 꺼내 드는 것은 무책임하고 사려 깊지 못한 태도다.

 

청송교도소의 사형집행 시설 설치가 "집행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는 언급도 부적절했다. 인권ㆍ문명국으로서의 국격, 국제관계와 경제ㆍ외교적 실리, 헌법재판소의 사형 대체 입법 권고 등을 두루 고려했다면 섣불리 꺼낼 수 없는 발언이었다. 잠재적 강력 범죄자에 대한 경고 차원이라 해도 경솔하기는 마찬가지다.

 

과거 보호감호제의 심각한 부작용과 후유증을 생각할 때 이 제도는 결코 부활시켜서는 안 된다.'재범의 우려'를 이유로 형을 마친 죄수를 다시 감옥이나 마찬가지인 감호소에 가두는 제도는 사회로부터의 격리라는 명분으로 포장한 이중처벌이다. 헌법재판소도 이미 이 제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보호감호제가 수감자의 범죄욕구를 꺾고 사회 적응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면 발전된 형태로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감자의 적개심만 오히려 증폭시켜 재범을 조장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사실은 과거 40%나 되던 출소자의 재범률이 확인해 준다. 실질적 교정교화 효과가 떨어지는 것이다. 법무장관이라면 감정에 치우친 여론을 무기 삼아 위헌성을 피하기 위한 교묘한 법 형식 논리를 동원해 이미 사회적 합의로 폐지한 제도의 부활을 시도할 게 아니라 효과적인 범죄 예방 및 범죄자 교정ㆍ치료 프로그램 마련과 강화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한겨레신문 사설-20100318목] ‘묻지마 교육감 선거’ 조장할 선관위 기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2 지방선거에서 정당과 교육감 후보 사이의 정책 지지·반대 표명과 정책연대를 금지하는 내용의 선거관계법 운용기준을 그제 발표했다. 비현실적인 과잉규제인데다 활발한 정책토론을 위축시킬 요소가 매우 많아, 도저히 그대로 시행하기 어려워 보인다.

 

선관위는 지방교육자치법을 엄격히 해석해 정당, 정당 소속 지방선거 후보자, 국회의원 등이 특정 교육감 후보의 정책을 지지·반대하거나 정책연대하는 것을 금지했다. 심지어 정당이 교육감 후보자의 정책이나 공약을 비교·평가해 정당 누리집이나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공표하는 행위마저 막았다. 기준대로라면 교육감 선거 후보자가 친환경 무상급식을 주장할 경우에도, 정당이나 시·도지사 후보자는 찬반 의견을 밝히면 안 된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교육청에 예산을 주는 시·도지사 후보가 교육감 후보의 정책을 살피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관위 기준은 그 자체로 모순도 안고 있다. 정당이나 지방선거 후보자가 ‘교육 관련 정책을 제시하거나 공표하는 행위’는 허용하면서 ‘특정 교육감 후보자의 정책에 관해 지지·반대’하는 행위는 금지한 게 대표적이다. 같은 정책을 놓고 정당이나 지방선거 후보자의 교육정책이라고 하면 공표가 허용되고, 특정 교육감 후보자의 정책이라고 하면 찬반 의사를 표명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런 모호한 기준을 갖고 감시·단속 활동이 가능할지 극히 의문스럽다.

 

교육감 후보자가 교육감 직무에 속하지 않는 정책으로서 선거쟁점이 돼 있는 정책을 지지·반대할 수 없도록 한 것도 문제다. 선거공간에서는 후보자의 식견과 철학을 되도록 폭넓게 검증하는 게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 문제 등에 대해 교육감 후보자의 견해 표명을 막아야 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입을 봉쇄하려 해서는 유권자의 정확한 판단을 흐리고 ‘묻지마 선거’를 초래할 따름이다.

 

교육감 선거의 특수성을 고려해 정당의 과도한 개입을 규제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선관위 기준은 숱한 마찰과 혼란을 야기할 게 불 보듯 뻔하며 정책선거를 위축시키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들도 선관위가 지방교육자치법 개정 취지를 과도하게 해석했다고 지적한다. 선관위는 비현실적인 기준을 재검토하기 바란다.

 

 

[동아일보 사설-20100318목] 학교현장 개혁, 교육당국 체질부터 바뀌어야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첫 교육개혁대책회의에서 “이 중요한 시기에 교육의 변화를 주도하고 기본을 잡는 것을 당분간 제가 하려 한다”며 교육 문제를 직접 챙길 뜻을 다시 천명했다. 졸업식 알몸 뒤풀이와 자율형사립고 입시 비리, 교육청의 만연된 부패 등 충격적인 교육 관련 뉴스가 연일 전해지면서 교육 현장의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교육 문제는 이제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위기 상황에 몰려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교원 교장 교육청 교육과학기술부 등 교육의 ‘공급자’들을 강하게 질책했다. 교원평가제에 대해서는 “엄격한 신상필벌이 중요하다”고 언급해 교원평가 결과를 교원들의 인사와 급여에 연계할 뜻이 있음을 시사했다. 이 대통령은 교과부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교육이 바뀌려면 교과부가 바뀌어야 한다”면서 “교과부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과거의 사고를 다 바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체질 개선을 촉구했다.

 

‘교육대란(大亂)’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교사와 교육당국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번 교육청 비리에서 드러난 것처럼 상당수 교사들은 철밥통 의식에 안주하며 승진과 ‘물 좋은 학교’로의 이동에만 매달리고 있음이 드러났다. 대부분의 국민이 지지하는 교원평가제를 거부할 정도로 교사들의 소명의식이 얇아진 것도 사실이다. 폭력적인 졸업식 뒤풀이는 우리 교육이 중증(重症)의 총체적 위기에 빠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교과부는 문제가 발생하면 발뺌을 하거나 희생양을 앞세우기에 바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교육현장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욕심만은 버리지 않고 있다. 일선학교 교장에게 대폭 자율권을 주는 방안이 어제 대책회의에서 보고됐지만 교육행정 관료들의 체질부터 바뀌지 않으면 실질적인 권한 이양이 이뤄지기 어렵다. 교과부는 대학에 대해서도 입시 관련 3불(不)정책 같은 제한적인 규제 이외에 자율을 거의 넘겨줬다고 주장하지만 대학들은 ‘대학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토로한다. 교과부가 초중고교에 대해 같은 태도로 나온다면 자율은 허구에 불과하다.

 

공교육의 위기를 타개하려면 교육당국부터 학교 현장에 실질적 자율권을 대폭 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주재하는 대책회의를 아무리 자주 열더라도 현장으로부터의 교육개혁은 말에 그치기 쉽다.

 

 

[조선일보 사설-20100318목] 대법관 수 늘린다고 대법원이 제 역할 할 수 있나

 

한나라당은 14명인 대법관 수를 24명으로 늘리고 대법관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24명 가운데 3분의 1은 법관이 아닌 외부 전문가를 임명하도록 사법제도를 고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나라당은 대법원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2009년 대법원에 올라온 상고(上告) 사건은 3만2361건이다. 이를 14명의 대법관 가운데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뺀 12명이 맡으면 1인당 연간 2700여건, 매일 7건씩이 된다. 그러다 보니 대법원이 사회적 관심을 끄는 주요 쟁점들에 대해 법적으로 허용되는 부분과 금지되는 부분이 어디까지인지 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대법관 수를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상고 사건은 2000년 1만6492건, 2005년 2만2587건, 2008년 2만8040건 등 매년 평균 1000건 이상씩 늘고 있다. 대법관을 지금보다 10명 늘리면 당장은 대법관들의 부담이 줄어들겠지만 몇 년 못 가서 또다시 사건의 홍수에 치이게 될 것이다. 그때 가서 또 대법관 수를 늘리자고 할 것인가. 세계적으로도 대법관 수는 미국 9명, 영국 12명, 일본 15명으로 우리와 비슷하다. 독일은 123명이지만, 이 나라는 우리와 사법 제도가 다르다. 독일에는 우리의 헌법재판소 같은 연방헌법법원 외에 연방통상법원·연방행정법원·연방재정법원·연방노동법원·연방사회법원 등 분야별로 5개의 대법원이 있다.

 

대법원이 제 역할을 하게 하려면 하급심 재판에 대한 국민 신뢰를 높여 무조건 대법원까지 가고 보자는 풍토를 개선하고, 전국 5개 고등법원에 가벼운 사건에 한해 대법원 역할을 하게 하는 상고부(上告部)를 설치한다든지 하는 다른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00318목] 요미우리發 독도 논란은 日에 말려드는 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발언이라고 주장한 요미우리신문 보도와 관련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2년 전 오보로 매듭지어진 사안이 어제 서울중앙지법 356호 법정에서 진행된 변론을 앞두고 뒤늦게 재점화됐다. 요미우리 측에서 보도가 사실이라며 관련 자료를 제출한 사실이 공개되자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일본 정부가 오보라고 해도, 청와대가 공식 부인해도 사태가 진정되지 않는다. 논란은 법정에서, 정치무대에서, 인터넷 세상에서 확산되는 추세다. 일본이 독도 분쟁을 키우면 키울수록 좋다는 입장임을 감안하면 우려스러운 형국이다.

 

문제의 보도는 2008년 7월15일자 한·일정상회담 관련 기사다.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가 “교과서에 다케시마라고 쓸 수밖에 없다.”라고 했고, 이 대통령은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고 답했다는 내용이다. 인터넷에선 “제2의 3·1운동”이라는 등 폭발적인 수준의 댓글이 쏟아지고 있다. 흡사 온라인 집단시위 같다. 야권은 이명박 정부 흠집내기에 호기라고 판단한 듯 정치 쟁점화를 시도하고 있다. 민주당은 소송 참여 의사를 밝히고, 일부 의원은 탄핵감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현 상황을 차분히 되짚어보자. 정상회담에서 합의가 안 된 내용은 비공개하는 게 관례다. 요미우리가 취재된 내용을 그대로 보도했든, 확대 해석해 옮겼든 출처가 어디겠는가. 청와대일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런 내용이 공개돼 논란거리가 되는 건 일본이 원하는 바다. 우리가 대처해야 할 방향은 자명해진다. 정략이 아닌 국익 차원에서 접근할 일이다.

 

야당은 논란을 키우면서도 국익 운운한다. 강력한 시정조치 요구나 제재조치를 해서 반박 사료를 남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외교전은 물론 먼 역사에서 요미우리신문의 기사만 증거자료로 남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면 수긍이 간다. 그래서 청와대도 무대응으로 일관하다가 어제 대변인을 통해 오보임을 거듭 확인하는 절차를 다시 밟았다. 일본 정부는 이미 공식 부인한 상태다. 논란을 확산시키는 건 현명한 게 아니다. 일본의 일개 신문 보도를 놓고 우리 내부에서 티격태격하는 건 자존심 문제다. 국익을 해치는 자해행위가 될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00318목] 청년실업률 10%, 고용대책 총체적 재점검을

 

암흑 같던 고용시장에 작지만 희망적인 조짐이 나타났다. 통계청이 어제 발표한 2월 고용동향을 보면 전체 취업자는 2286만7000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2만5000명 늘었다. 지난 1월에 이어 2개월 연속 증가한 것이다. 실업률은 4.9%로 전월보다 0.1%포인트 떨어졌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실질적인 고용사정이 개선(改善)됐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 또한 현실이다. 2월 실업자는 116만9000명으로 100만 실업시대가 2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특히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은 10.0%로 뛰어 2000년 2월 10.1% 이래 10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시기적으로 막 대학을 나온 젊은이들이 구직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청년층 실업률이 높아진 측면도 있지만 실업은 고착되는 성격이 있어 이만저만 걱정되는 게 아니다.

 

전체 취업자가 늘어난 것도 1월의 경우 임시직 감소폭이 12만1000명이나 됐던 반면 2월에는 2만4000명으로 둔화된 게 큰 이유이다. 임시직은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벌여놓은 임시방편적인 공공 일자리 등이 대부분이다. 이런 일자리는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게다가 임시 일자리에 하루 생계를 의존하는 사람들과 일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쉬었다는 사람 등 고용취약계층을 감안한 사실상 실업률은 20%에 육박하는 실정이다. 고용통계의 부분적 호전에 방심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도 정부의 고용정책은 매끄럽지 못하다. 중소기업들이 추가로 인력을 채용하면 1인당 300만원씩 법인세를 깎아준다지만 현장에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 등을 대상으로 한 유연근로제 시범사업도 호응이 크지 않다. 창업을 장려하기 위한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가입허용도 시행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고용대책을 다시 한번 종합점검,효율적인 대책을 세우기 바란다. 그 핵심은 결국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주체인 기업들의 투자가 활성화(活性化)되도록 하고 창업 환경을 개선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00318목] 현대차 노조위원장이 고백한 값진 '충격'

 

이경훈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이 미국의 자동차 중심지 디트로이트를 돌아보고 느낀 충격은 우리 노동계에 던지는 산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월 노조 간부들과 함께 현대차 해외공장 실사와 연수차 미국에 갔다가 디트로이트를 둘러본 그는 노조신문 기고에서 "디트로이트는 미국의 5대 도시였지만 지금은 15위권으로 몰락하고 있다"며 "인구가 급격하게 줄면서 도심이 폐허가 되고 무너져가는 건물이 즐비한 현장을 보면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자리가 없어지자 인구는 줄고 건물은 폐허가 되는 산업공동화 현상은 한국의 자동차도시 울산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충격을 받았다는 미국의 몰락한 산업현장은 새로운 장면이 아니다. 그럼에도 관심을 모으는 것은 국내 최대 노조를 이끄는 지도자로서 기업이 망하면 어떤 고통을 당하는지를 목격하고 받은 느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디트로이트의 쇠락은 GM의 몰락에서 비롯됐다. 11개이던 디트로이트 자동차공장은 지금 2개만 운영되고 있다. 이 지부장은 GM 파산의 원인으로 세계화 전략의 오류를 꼽았다. 세계시장 석권을 위해 값싼 노동력을 좇아 무분별한 해외공장 이전 및 확대와 외형적 성장만 추구한 탓이라는 것이다. 옳은 지적이다.

 

GM은 세계시장 상황과 수요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러나 강경노조로 인한 인건비와 복지비용 부담의 과다한 증가도 몰락의 큰 원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후발업체들의 맹렬한 추격으로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데 노조는 과거 관행에 빠져 무리한 요구를 일삼았다. 퇴직자들의 연금과 건강보험료까지 부담해야 할 정도였다. 이는 경쟁력 저하로 이어져 끝내 파산의 운명을 맞은 것이다. 혹독한 구조조정이 뒤따랐고 그 결과는 이 지부장이 목격한 지금의 흉물스러운 도시 모습이다.

 

그가 받은 충격은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와 노조가 살고 지역경제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상생의 노사관계는 기업과 국가경제의 지속성장을 위한 필수요소다. 이 지부장의 디트로이트 견문록이 노동계의 인식변화와 새로운 노사문화 정착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오늘의 칼럼 읽기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진세근(탐사 2팀장)-20100318목] 사형

 

‘대기근(大饑荒)-중국인이 망각할 수 없는 기억’ 신중국 성립 60주년의 찬가가 한창이던 지난해 말,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이 돌연 빼어 든 제목이다. 기사는 안후이(安徽)성 펑양(鳳陽)현 샤오강(小崗)촌의 한 촌로를 인용한다.

 

“1959년부터 3년간의 대기근 동안 수백 명의 이웃이 굶어 죽었다. 들과 산에는 캐먹을 나무뿌리 하나 없었다.” 『남자의 반은 여자』의 작가 장셴량(張賢亮)도 등장한다. “대기근 동안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는 먹을 것을 찾아 울부짖었다. 인간의 최저선, 야수의 경지였다.”

 

월간지 염황춘추(炎黃春秋)도 가세했다. “펑양현 우마(五馬)공사의 간부는 종자를 먹거나 항의하는 농민에게 매달기(吊), 구타(打), 묶기(捆), 얼리기(凍), 햇빛태우기(曬), 벌금(罰), 감금(關), 굶김(餓), 가옥폐쇄(封門), 생매장(活埋) 등 형벌을 가했다.”

 

대기근으로 3000만 명이 죽어 나갔다. 정부는 재해와 소련 전문가의 철수를 원인으로 들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인재(人災)였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인민공사, 대약진 운동이 주범이다. 중국과 홍콩의 일부 정치학자들이 “대기근 사망자는 사실상 사형당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다.

 

사실 중국은 사형 집행이 가장 많은 국가다. 중국의 공식 확인은 없다. 국제사면위원회(AI)는 “2006년 1010명이 사형당했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집행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중국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 2~3년 동안 사형 판결 가운데 70% 정도가 완형(緩刑)이다. 2년간 잘못이 없으면 무기로 감형하는 제도다. 1997년 1월 기존의 총살형 외에 주사에 의한 약물형이 형사소송법에 추가됐고, 그해 3월 28일 쿤밍(昆明)에서 처음 집행됐다. 2006년 10월 31일 법원조직법을 고쳐 사형 판결의 비준권을 최고인민법원(대법원)으로 귀속시켰다. 2007년 한 해 동안 증거부족·부당절차·과잉양형 등의 이유로 사형판결의 15%가 뒤집혔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16일 사형집행 검토를 밝혔다. 사형과 범죄예방효과 사이의 연결고리는 취약하다고 판명 난 지 오래다. 중국이 사형 판결을 줄인 이유이기도 하다. 사형 집행은 국민의 격앙된 법 감정만 고려해선 곤란하다. 사회적 구조(救助)의 결여와 무관심, 외교 문제 등 다방면에 걸친 성찰이 뒤따라야 한다. 근본 해결책에 대한 고민 없이 덜컥 사형 집행부터 들고 나오면 경솔하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철웅(논설실장)-20100318목] 농담과 진담, 사실과 허구

 

가벼운 농담을 던졌는데 상대방이 진담으로 들어 얼굴을 붉히면 곤혹스럽다. 이렇게 농담과 진담을 잘 구별 못하다간 ‘고지식하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고지식하다는 ‘성질이 외곬으로 곧아 융통성이 없다’는 순 우리말이다. 쉽게 말해 꽉 막혔다는 뜻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른바 ‘회피 연아’ 동영상을 유포한 누리꾼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 동영상은 한 누리꾼이 TV 영상을 편집한 것으로 밴쿠버 겨울올림픽 후 개선하는 김연아에게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꽃다발을 걸어주고 포옹하려 하자 김연아가 피하려는 듯한 장면을 담고 있다. 이것이 장관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 문화부는 고소장에서 “장관이 마치 성추행을 하려는 듯한 모습으로 편집해 올렸으므로 명예훼손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웃자고 만든 동영상에 수사의뢰라니 어이가 없다. 그것도 문화부란 곳이. 한 누리꾼은 “시민의 유머를 못 이해하고 바로 고발해 버리는 게 정말 코미디다. 외국에 알려질까봐 걱정이다”라고 했다. “생각 없이, 말 없이, 유머 없이 숨만 쉬고 사는 대한민국”이란 푸념과 “세금이 아깝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누리꾼들의 이런 반응은 아직도 사태파악을 제대로 못한 탓 아닌가 한다. 사달은 농담이 농담으로 통할 거라고 오해한 데서 비롯됐다. 농담과 진담을 구별 못해 인생이 고달픈 사람들 얘기를 못들었나. 문화부는 처음엔 그냥 웃어넘기려고 했지만 유머 수준을 넘어서는 악의적인 댓글들이 계속 나와 고소했다고 한다. 이렇게 진지한 장관, 부처 앞에서 농담과 진담을 왜 구분 못하느냐고 따져봐야 소용 없는 일 아니겠나.

 

그렇다면 방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정공법이다. 이젠 진지하게 대응해야 하겠다. 유인촌 장관은 취임 초 전 정권이 임명한 문화 기관장들을 ‘코드가 다르다’며 억지로 내몰았다. 그 결과가 지금 문화예술위원회의 두 수장 사태다. 이런 결과에 대해 책임질 기색은 조금도 없다. 국회에서는 사진기자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작가들을 돈 몇푼으로 길들이려다 ‘저항의 글쓰기’ 운동을 촉발시켰다. 허구(픽션)와 사실을 혼동해 사법처리까지 바란다는 것은 문화 장관으로서 애당초 결격사유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일련의 행태가 문화 장관다운 품격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그만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춘추/김기문(중소기업중앙회장)-20100318목] 기업의 나눔 문화

 

지난 11일 무소유를 몸소 실천한 법정 스님께서 입적하셨다. 모 출판사 사장은 "2월만 되면 스님께서 인세 지급을 독촉해서 오해를 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새 학기에 어려운 학생들에 대한 학비 지원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대구의 한 중소기업인이 지역 저소득층에 일자리를 제공해 달라며 자신이 운영하던 주유소를 대구시에 기부했다고 한다. 이처럼 아름다운 사례는 우리 주위에 너무도 많다. 스님, 추기경 등 종교인은 물론 기업 CEO, 유명 연예인뿐만 아니라 고사리손으로 저금통을 들고 오는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마음의 행복을 실천하고, 사회의 등불로 우리 어두운 구석을 밝히고 있다.

 

중소기업계도 굳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하지 않아도 로터리활동과 사회봉사활동 등 나눔의 문화를 실천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필자는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중소기업 사랑나눔 봉사단`을 구성해 정기적으로 소외계층을 방문하며 봉사활동과 기부 금품 전달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나눔의 문화 확산에 다소나마 기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관의 노후화로 인해 증축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레미콘 업계에서 한 업체당 레미콘을 한 트럭씩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기부운동이 전 중소기업계로 확산되고 있다.

 

크고 작은 회원 단체에서 각자 생산하는 제품과 성금을 십시일반으로 기부하겠다는 요청이 꼬리를 물고 있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공사이지만 벽돌 하나씩 성의가 합해져 큰 힘이 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중소기업의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따뜻해진다.

 

기부 형태가 다양해지고 많아질수록 건강한 사회임에 틀림없다. 매년 12월 15일을 `사회기부의 날`로 정하자는 법안도 제출되어 있다. 그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 공동체인지는 남을 배려하고 돕는 손길이 얼마나 많은가에 달려 있고, 봉사와 기부가 그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인 것이다.

 

봄의 전령과 기운이 온 대지에 퍼져 나가는 속도만큼이나 나눔과 기부의 문화가 중소기업계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해 본다.




시도하지 않으면 자신감은 솟아나지 않는다.


세상 누구에게나 이루고 싶은 소망이 몇 가지는 있을 것이다.

개인 사업을 시작하고 싶을 수도 있고,

공부를 더 해서 다른 분야로 나가고 싶을 수도 있고,

멋진 대본을 써서 유명한 영화감독이 되고 싶을 수도 있다.

나름대로 정말 열렬한 소망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그런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가?

아마 그리 많은 시간을 투자하진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우리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 보면, 아마 이런 저런 변명의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당장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잡혀.”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은 것 같아.”

그리고 항상 마무리는 이런 말로 장식된다.

“아직은 자신이 좀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자신의 꿈을 추구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자신감으로 충만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러나 이 바램은 말 그대로 바램으로 끝날 뿐이다.


책상 앞에 앉지도 않고서 어떻게 작가로서의 자신감을 찾을 수 있을까?

허구헌 날 소파에 누워 TV나 보면서 어떻게 사업을 시작할 자신감을 찾을 수 있을까?

주말마다 집에 틀어박혀 전혀 사람을 만나지 않고서

어떻게 인간관계에서 자신감을 찾을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언젠가는 기적이 일어나 직업을 바꾸거나,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거나,

한 몫 잡을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갈 용기와 확신이 생길 때까지

마냥 기다리기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쪽인가?

스스로를 돌아보라, 어디서 저절로 용기와 확신이 생기지 않나,

어디 하늘에서 뭔가가 뚝 떨어지지 않나 하고 기다리기만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미루어 온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말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기다려 왔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마법의 순간은 일정한 나이가 된다고 해서,

또는 좋은 꿈을 꾸었다고 해서 저절로 오는 게 아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오랫동안 기다렸던 자신감이

드디어 내 몸에 펄펄 넘치고 있을 리는 없다.

아니, 실제로는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많은 사람들이 ‘자격지심’ 때문에 성공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

가정에서건 직장에서건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을 미루면 미룰수록,

그 일을 향한 열정도 점점 줄어만 간다.

그리고 열정이 줄어든 만큼 두려움은 더욱 늘어만 가고 자신감은 사라져 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 사용법을 배우고 싶다고 해 보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저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이 서지 않기 때문에

컴퓨터 구입을 나중으로 미루기만 할 것인가?

컴퓨터를 쓸 줄 안다면 일이 훨씬 편해지리란 건 알지만,

걱정이 앞서는 바람에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미루기만 할 것인가?


언제까지 가만히 앉아서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이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컴맹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막상 저질러보기 전에는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 정말 끝내주는 소식이 있다!

우리의 자신감을 겨우 몇 분 만에,

아니 겨우 몇 초 만에도 확 높일 수 있는 방법 말이다!


그저 무엇인가를! 자신의 목표에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는

무엇인가를 이루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자신감이 금방 솟아날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한 발자국을 내딛는 그 동작만으로도,

부풀어 오르는 자신감과 신뢰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신뢰의 힘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더 잘해낼 수 있다.


- 바바라 드 앤젤리스, '자신감' 중에서


오늘 부터 나는 새로운 나를 창조함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만들겠다.

나는 낭비한 시간.잃어버린 기회를 아까워 하며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겠다.

과거의 일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바꿀수 없다.

나의 미래는 다가온다.

나는 미래를 양손으로 움켜 쥐면서 적극적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가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뭔가 해야 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늘 행동하는 쪽을 선택하겠다.

하는 이 순간을 잡는다.

 

지금을 선택한다.

 

나는 행동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나는 언제나 활발하게 행동하는 습관을 들일 것이고 늘 미소를 잃지 않을 것이다.

나의 정맥 속으로 흘러드는 생명의 피는 행동과 성취를 행하여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라고 권유한다.

게으른 자에게는 부와 번영이 따라오지 않는다.

 

나는 행동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나는 리더이다.

리드하는 것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리드하기 위해 나는 앞으로 움직여 나가야 한다.

늘 달리는 사람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길을 비켜 준다.

나의 행동은 나는 따르는 사람에게 성공의 파도를 일으킨다.

나의 행동은 한결같을 것이다.

이것은 나의 리더쉽에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다.

 

나는 행동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것도 지금 당장.

 

왼쪽으로 오른쪽으로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나의 행동을 기다리고 계신다.

하느님은 나에게 정보를 수집하여 분류하는 머리와 결론에 도달하는 용기를 주셨다.

나는 결정을 잘 못 내릴 것을 두려워 하는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다.

나의 체질은 강인하고 나의 앞길은 분명하다.

성공하는 사람은 재빨리 결정을 내리고 자신의 마음을 천천히 바꾼다.

반대로 실패하는 사람은 결정을 천천히 내리고 자신의 마음을 재빨리 바꾼다.

나는 빨리 결정을 내리고 그것은 나를 승리로 이끌어 준다.

 

나는 행동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나는 과감하다.

나는 용감하다.

이제 내 인생에서 두려움은 더 이상 발붙일 자리가 없다.

나는 두려움이 증기 같은 것이라 생각하며 그것이 다시는 내 인생을 짓누르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

나는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나는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실패는 그만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다.

 

나는 결코 그만두지 않는다.

나는 용감하다.

나는 리더이다.

나는 이 순간을 잡는다.

지금을 선택한다.

 

나는 행동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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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기종으로 연인 富 측정할 땐 신뢰 상실

 

휴대전화가 필수품이 되어 버린 이상 휴대전화가 연애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막강하다.

 

그렇기에 휴대전화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연애의 결과가 달라지길 마련.

 

지금부터 똑똑한 휴대전화 사용법을 숙지해 두도록 하자.

먼저 상대의 번호를 저장할 땐 애칭과 함께 0번이나 1번에 저장하도록 하자.

 

상대가 자신의 전화 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거나, 멀리 100번 대에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면 분명히 서운하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자를 보낼 땐 상대방의 단어 수와 근접하게 보내는 전략이 필요하다.

 

액정 가득히 보낸 문자를 받고 답 문자로 ’응!’이란 한 단어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면 당신의 무성의함에 감정이 상할지도 모른다.

 

 

문자를 보낼 때에는 상대방의 일과를 분석해 상대방이 심심해 할 시간에 보내는 것이 좋다.

 

아침 출근(등교)시간, 점심시간, 퇴근(하교)시간 등에 문자를 보내면 답장을 받을 확률또한 높아지길 마련이다.

 

상대가 자신이 보낸 문자에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고 해서,

 

곧 바로 삐친 듯한 느낌의 문자를 보내거나 폭탄 문자를 보내서도 안 된다.

 

소심하고, 집착하는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휴대전화의 액정 화면에 상대의 사진을 저장하고 다닌다면 더 큰 믿음을 줄 수 있다.

 

남들에게 자주 보여지는 곳에 상대의 흔적을 남겨둔다면, 그것을 본 상대는 당신의 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상대의 전화를 피하기 위해 무작정 휴대전화를 꺼놓아서도 안 된다.

 

상대의 집착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피하고 싶은 상대라도 최소한의 예의를 저버려선 안 된다.

다음으로 의심의 여지가 있는 문자는 사전에 미리 지우는 것도 잊지 말자.

 

친구가 장난으로 보낸 “자기야 뭐해?” 같은 문자는 사전에 지워서 오해의 싹은 미리 짤라 두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 전화를 받기 위해 자주 자리를 벗어나게 된다면 상대방에게 바람둥이가 아닐까라는 의혹을 심어줄 수 있으니,

 

차라리 빨리 끊든가, 전화를 받지 않는 편이 좋다.

 

 

 

끝으로 절대 피해야 할 사항에 대하여 알아 보자.

 

휴대폰 기종으로 상대방의 부를 측정하기,

 

의심과 집착으로 상대방의 휴대폰을 샅샅이 뒤지기,

 

각종 비밀번호 암기하기,

 

돈 없는 애인에게 휴대폰 사달라고 조르기,

 

자신의 폰 요금 대신 내달라고 하기,

 

상대방이 선물휴대폰 액세서리 하고 다니지 않기,

 

먼저 전화를 걸어 곧 끊고 상대방에게 다시 전화하라고 하기 등과 같은 행동은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그 동안 쌓아왔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행동이니 자신의 연애를 위해서 피하는 것이 바람직한 전략이다.

 

 

연애를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편리한 도구. 그것은 바로 당신의 손에 쥔 작은 휴대폰이다.




우리가 함께 어떤 집을 방문한 적이 있어.

자정도 한참 지난 시간 우리는 담배연기가 자욱해 공기가 푸르게 보이던

어떤 방에 앉아 길고 복잡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나는 너의 얼굴에 떠오른 난 여기에 없어라는 표정을 보았고

나는 너를 사랑했어.

우리가 같이 본 영화를 네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때,

네가 얼마나 다르게 기억하는지,

너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얼마나 다른지 낙담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너를 사랑했어.

나는 네가 톨스토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윗입술을 내밀며 글을 읽는 모습을 보았고

나는 너를 사랑했어.

네가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면서,

너를 바라보는 얼굴이 다른 사람의 것인 양 응시하고,

그러고는 방금 떠오른 것을 찾는 양 핸드백을 뒤지는 모습을 사랑했어.

한 짝은 옆으로 누운 좁은 돛단배,

한 짝은 등이 굽은 고양이처럼 서서

몇시간이고 너를 기다리던 하이힐 안으로 서둘러 발을 넣는 모습을 사랑했고

많은 시간이 흘러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진흙이 묻은 신발을

다시 비대칭적인 외로움 속에 남겨두기 전

너의 엉덩이, 다리, 발이 무의식적으로 했던 능숙한 움직임을 사랑했어.

내가 사랑한 것은 너였어.

다른 사람은 미로같은 계단을 돌고돌아 극장밖으로 나오는데

너는 지름길을 찾아 먼저 인도로 나올때 입가에 어리는 미소를 사랑했어.

자동차들이 거리를 지나는데도 한쪽 인도에서 맞은 편으로

단걸음에 유쾌하게 건너는 너의 모습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너를 걱정했고 너를 사랑했어.

내가 두 손으로 너의 머리를 감싸 안고 너의 눈을 들여다보며,

삶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바라볼 때 나는 너를 사랑했어.

네가 사과를 세로로 잘라

완벽한 별모양을 보여주었을 때 나는 너를 사랑했고,

어느 오후 어떻게 왔는지 이해할 수 없는

너의 머리카락 한 올을 내 책상 위에서 보았을 때 너를 사랑했으며,

어느 날 함께 외출했을 때 만워버스 손잡이를 나란히 잡은 우리 손이

별로 닮지않는 것을 슬프게 바라보았을 때

내 몸을 바라보듯 너를 사랑했고,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기차를 볼 때

너의 얼굴에 나타나는 미묘한 표정을,

그 슬픈 눈길과 똑같이 닮은 것을,

전기가 나가 우리 집 안의 어둠과 밖의 밝음이 천천히 자리를 바꾸었을 때

다시금 너의 미묘하고 슬픈 얼굴을 보았을 때,

내 가슴은 속수무책의 질투심으로 터질 듯 아팠지만

여전히 나는 너를 사랑했어.


오르한 파묵 / 검은 책



그대여, 그립다는 말을 아십니까.

그 눈물겨운 흔들림을 아십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집 밖을 나섰습니다.

마땅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걷기라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함께 걸었던 길을 혼자서 걷는 것은 세상 무엇보다 싫었던 일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잊었다 생각 했다가도 밤이면 속절없이 돋아나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천 근의 무게로 압박해 오는 그대여,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당신을가두고 풀어 주는

내 마음 감옥을 아시는지요.

잠시 스쳐간 그대로 인해 나는 얼마나 더 흔들려야 하는지.

추억이라 이름 붙인 것들은 그것이 다시는 올 수 없는 까닭이겠지만

밤길을 걸으며 나는 일부러 그것들을 차례차례 재현해 봅니다.

내가 그리워한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하나 맞이했다가 떠나보내는 세월 같은 것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만 남아

떠난 사람의 마지막 눈빛을 언제까지나 떠올리다

쓸쓸히 돌아서는 발자국 같은 것.

그대여, 그립다는 말을 아십니까.

그 눈물겨운 흔들림을 아십니까.



바람 속을 걷는 방법 / 이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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