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8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090608월] 남북 모두 개성공단은 지키는 게 득이다
남북이 11일 개성공단 관련 실무회담을 갖기로 지난 주말 합의했다. 북한의 2차 핵실험과 잇단 도발적 언동으로 긴장이 고
조된 상황에서 남북이 어떤 수준에서든 마주 앉아 얘기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특히 우리 근로자 억류문제와 북측의 일방적 공단계약 무
효화 선언이 맞물려 4월의 1차 접촉이 접점 없이 끝난 데 비춰 이번 만남은 개성공단과 남북관계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각별
한 의미가 있다.
북측이 실무회담을 먼저 제의한 의도에 대한 해석은 엇갈린다. 먼저 북측이 계약 무효화 선언과 함께 인상을 요구한 임금ㆍ토
지사용료 등의 구체적 수준을 일방적으로 통보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많다. 북측이 1차 때처럼 '실무접촉' 용어를 쓴 것은 애
초 협상 여지를 배제할 속셈이라는 풀이다. 6ㆍ15 남북 공동선언 9주년을 며칠 앞두고 회동을 제안한 것도 남쪽을 압박하려는 움직
임이라는 관측이다.
반면, 정치적 효과를 노리면서도 개성공단 자체는 계속 협의할 뜻이 있음을 내비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개성공단에서 얻
는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포기할 처지가 아닌 만큼, 전반적 정세흐름과 연결해 시간을 두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
다. 따라서 이번 회동에서 북측이 어떤 태도로, 어떤 수준의 요구조건을 내놓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억류 근로자 문제에 어떻게 나올
지 주목된다. 조심스러우나마 북측의 변화를 기대한다.
때맞춰 우리 정부가 "안보리 대북 제재결의안이 개성공단에는 영향이 없도록 미국 등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바람직하
다. 군사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의 안정적 운영 의지를 확인한 것은 지혜로운 행보이다. 앞서 억류 근로자 문제에 단호한 입장
을 밝힌 만큼,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우리 입주업체의 우려를 덜어주는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
변화무쌍한 북한이 순리를 좇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개성공단은 남북 모두에게 득이라는 인식을 우리사회부터 다져야 한다. 그러자면 군사ㆍ외교적 긴장과는 조금 떼놓고 보는 안목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한겨레신문 사설-20090608월] 사람·생명·평화의 길 일깨운 오체투지
그제 오후, 임진각 망배단에서는 오체투지 순례단 회향식이 열렸다. 지난해 9월4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한 순례단이 계룡
산과 서울을 지나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더는 북쪽으로 갈 수 없는 임진각에 도착한 것이다. 124일 동안 수경 스님과 문규현·전종
훈 신부를 비롯한 순례단은 한없이 몸을 낮추며 400여㎞를 벌레처럼 기어서 왔다. 땡볕에 달구어진 뜨거운 아스팔트를 온몸으로 껴안
고, 몸속까지 파고드는 차가운 빗줄기를 맞으며 순례단은 무엇을 위해 그 험난한 길을 기어 왔던가.
그들이 오체투지 순례를 시작한 것은 이 나라가 국가적 재난과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는 인식에서였다. 우리 선조는 위기 때마
다 백성의 마음과 역량을 하나로 통합해 국가적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하악단(지리산 노고단), 중악단(계룡산 신원사), 상악단(묘향
산 보현사)에서 천제를 지냈다고 한다. 순례단도 오체투지로 한반도를 기어가면서 하악단, 중악단에 올라 사람·생명·평화의 길을 기원
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순례단이 기원했던 길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일방적인 국정운용으로 국민과의 소통
을 거부하고, ‘용산 참사’에서 보듯 살겠다고 몸부림치던 생명을 짓밟고, 남북관계를 전쟁 직전의 위기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급기야
는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오체투지를 시작했을 당시보다 국가 위기상황은 훨씬 심각해진 것이다.
그럴수록 오체투지 순례단이 내걸었던 사람·생명·평화의 길은 더욱 절실해진다. 순례단은 사회 갈등과 모순에 대해 자신부
터 몸을 낮춰 참회하고 성찰하길 권유한다. 살아있는 생명을 존중하고, 권력자와 국민, 가진자와 서민, 남과 북이 서로 대립과 투쟁
에서 벗어나 공존공생하는 평화의 길을 모색하기를 기원한다. 그들 자신이 천릿길을 벌레처럼 기어 오면서 이를 몸으로 보여줬다.
이제 오체투지 순례단이 남긴 과제에 답을 해야 할 때다. 우선 이명박 정부는 국민과의 소통을 재개하고, 한반도 긴장을 완
화해 남북관계를 평화의 길로 이끌어야 한다. 우리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4대강 정비사업’을 당장 포기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
는 행위들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사람·평화·생명의 길을 내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이 바뀌
어야 생명이 존중받는 평화세상이 오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사설-20090608월] 중국, 남북 비핵화 바란다면 對北제재 적극 나서야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응하기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 도출이 막바지 단계로 접어들었다.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과 한국 일본 등 7개국 대표들이 결의안 초안에 잠정 합의한 상태여서 각기 본국과의 협의가 끝나면 최종 조율을 하게 된다. 초안
은 대량살상무기(WMD)를 적재한 북한 선박에 대해 영해의 검색 의무화와 공해의 조건부 검색을 명시하고 있다. 인도적 목적 외
의 대북 금융제재 강화, WMD와 관련된 북의 개인 및 단체에 대한 자산동결 확대, 모든 종류의 북한 무기 수출 금지도 담고 있
다.
이번 초안은 북의 1차 핵실험에 따른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1718호에 비하면 훨씬 강력하다. 문제는 중국 정부의 태도
이다. 중국은 말로는 ‘한반도 비핵화와 핵 확산 반대’를 외치면서도 정작 북의 핵 개발을 막기 위한 실효적 제재에는 소극적인 이중
성을 보인다. 북핵을 저지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한반도 비핵화와 핵 확산 차단,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인
지 이해할 수 없다.
중국 외교부는 북이 2차 핵실험을 강행한 지난달 25일 성명을 통해 이례적으로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중국 정부
가 대북 정책의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홍콩의 한 TV는 중국이 미국 측에 “대북정책을 대폭 조정
할 수 없다”고 전한 것으로 어제 보도했다. 도대체 중국의 기본 태도를 종잡을 수가 없다. 중국의 대북 강경 조치는 ‘잠시 화
난 표정의 가면(假面)으로 바꿔 써본 것’이라는 대만 롄허(聯合)보의 분석이 그럴듯하게 들릴 정도다.
북과 60년간 우호관계를 유지한 중국이 갑자기 대북관계의 기조를 확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의 핵 보유
가 기정사실화하면 동북아에서 자위(自衛) 차원의 핵무장론이 확산될 수 있다. 일본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대만도 움직일 것이
다. 남한에서도 핵무장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이렇게 되면 동북아에서 군비경쟁이 촉발되면서 안정과 평화가 깨진다. 결국 중
국은 핵보유국들에 포위될 수도 있다. 중국이 이런 극한 상황을 피하려면 지금 단계에서 북의 핵 개발을 저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북핵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분명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정말 우리는 (북의) 도발에 대해 보상하는 정책을 계속할 생
각이 없다”고 했다. 중국만 제대로 협조한다면 북핵을 저지하고 북의 변화까지 유도할 수 있다. 북을 진정으로 돕는 길이 무엇인지
를 중국 정부가 현명하게 판단할 때다.
[조선일보 사설-20090608월] 목숨을 이념의 수단으로 삼는 풍조가 걱정된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초대 의장을 지낸 강희남(89) 목사가 6일 "제2의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
을 내치자"는 유서를 남기고 자택에서 목매 자살했다. 범민련은 1997년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단체다. 강씨는 5월 1
일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항의하는 단식에 들어가면서 "양키추방과 련방제 통일만이 이 민족의 살길이라는 신념 하나로…내 집을 양키대
사관 앞이라 여겨 입 대신 몸으로 말하려고 이 길을 간다"며 자살을 예고했었다.
강씨는 목사 신분이면서 친북·반미·반(反)대한민국 이념을 설파하고 실천에 옮기는 데 일생을 걸었던 사람이다. 김일성 사
망 당시 "북(北)에 조문 간다. 길 비켜라"는 문건을 지닌 채 평양에 가려다 구속되는 등 친북활동으로 3차례 구속된 바 있
다. 연로한 최근까지도 "이북(以北) 내 조국이 핵을 더 많이 가질수록 양키 콧대를 꺾을 수 있다"는 식의 친북 발언을 쏟아냈
다. "북조선이 최강 아메리카와 맞대결을 벌이고 있는 것은 정신력에 의한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 영생(永生)주의'
와 '김정일 선군정치'의 리념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평양방송은 그가 창설 주역이었던 범민련을 '애국조직'이라
며 "범민련이 결성됨으로써 해(海) 내외 모든 통일 애국역량이 뭉칠 수 있게 됐다"고 치켜세웠다.
강씨는 목사 신분의 성직자다. 누구보다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는 데 앞장서야 했을 사
람이다.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가 자살을 죄악으로 여기는 것은 생명 그 자체가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하는 가치이기 때문이
다. 그가 어째서 이념과 정치투쟁의 노예가 됐고 끝내 그 이념과 투쟁을 위해 목숨을 수단으로 삼기에 이른 것인지 안타깝다. 그
의 유서에선 죽음을 자기 하나의 문제를 넘어 남은 이들의 투쟁을 선동하는 도구로 삼으려는 의지가 읽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택한 비극적 결말을 계기로 야당과 노동운동권, 시민단체 등이 대대적인 6월 반정부 투쟁을 예고하고 있
는 상황이다. 강씨의 자살이 사회를 더 극심한 혼란과 분열로 몰아넣는 불씨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미 야당 등에서는 "긴장뿐
인 남북관계와 정권의 비민주적 통치에 대해 마지막 남은 육신마저 저항과 희생의 뜻을 담아 스스로 던져버리신 것"이라며 강씨 죽음
을 미화하고 나섰다.
안 그래도 우리 사회는 OECD 국가 중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며 생명경시 풍조가 심화되고 있다. 어린 학생들이 성적 비
관이나 감상적 허무주의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도 심각한 터에 자살까지 정치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죽음의 굿판'이 사회
를 휩싸지 않을까 걱정된다.
[서울신문 사설-20090608월] 불법도청도 서슴지 않은 인터넷 매체
민영 뉴스통신사인 아시아뉴스통신 소속 기자 J씨가 지난 4일 저녁 수원의 한 식당에서 강희락 경찰청장 주재로 열린 만찬장
에 소형 녹음기를 달았다가 경찰에 발각됐다.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강 청장과 경기경찰청 간부들의 대화 내용을 녹음하려고 식
당 천장에 녹음 기능이 있는 소형 MP3를 몰래 설치한 이 회사 소속 기자 J씨와 취재를 지시한 N씨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
의 혐의로 현장에서 긴급 체포했다. 아시아뉴스통신 측은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과잉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도·감청
은 법이 금지하고 있는 중대 범죄행위이다.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으면서까지 취재를 하는 것은 그 결과물에 관계없이 언론의 정도가 아
니라는 게 우리의 견해다.
통신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3조 1항은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녹취하지 못한다.’고 명시
하고 있다. 대화에 원래부터 참여하지 않은 제3자가 대화를 하는 타인들 간의 발언을 녹음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경찰에 따르
면 J씨는 “시국도 안 좋은데 경찰간부들이 술 먹는 부분을 취재해라. 녹음기를 설치해도 된다.”는 선배 기자의 지시를 받고 도청
을 시도했다. J씨의 MP3에서는 병원과 백화점, 공무원 등 취재과정에서 불법으로 녹음을 한 파일이 추가로 발견됐다고 한다.무
슨 용도로 녹음을 확보한 것인지 저의가 의심스러울 뿐이다.
시민으로서 기본적인 준법의식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의 등불이 될 자격이 없다고 본다. 방송사들이 심심치 않게 사용하
는 몰래카메라도 마찬가지로 지양해야 할 취재방식이다. 이번 사건이 절차의 정당성 없이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식의 한탕주의에 경종
을 울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090608월] 남북접촉, 분명한 우리 입장 제시해야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된 남북간 실무회담이 오는 11일 열린다. 북측이 지난주 먼저 회동(會同)을 제안해왔고 우리가 별다
른 전제조건을 달지 않은 채 동의하면서 합의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어떤 입장을 보일지는 고사하고 구체적인 회담의제조차 정해
진 것 없이 이뤄지게 돼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두고 볼 일이다.
북에 억류중인 남쪽 근로자 유모씨의 신변문제 등 현안에 대해 아무런 진척이 없는 상황에서 의제도 모른 채 우리가 북의 제
안에 즉각 응한 것에서부터 그렇다. 또 최근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이르기까지 매번 상궤를 벗어나는 북의 일방적인 태도를 언제까
지 그냥 수용할 것인지도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물론 이번에도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올지,또다른 계산된 제안으로 옆구리를 찔러올지
도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회담을 외면할 이유도 없다. 남북 관계에서 개성공단이 갖는 의미를 봐서도 그렇고,그간 조성된 남북간
의 대립과 긴장도를 감안할 때도 그렇다.
그런 만큼 기왕 만난다면,4월에 이어 열리는 이번 2차 회담이 경색된 남북관계를 어떤 식으로든 완화하는 계기가 되었으
면 하는 것이 우리 바람이다. 그러기 위해선 북의 전향적인 자세전환이 선결요건이다. 5월에 일방적으로 전해온 개성공단 법규와 계약
의 무효선언을 철회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단내 임금 · 임대료 · 세금도 터무니없이 올리려 해선 안된다. 유모씨의 안전도 분명히 확
인돼야 하고 최대한 빨리 석방돼야 한다. 이 점은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의 본질적인 문제"라며 중요 사안임을 거듭 밝힌 바 있
다. 이번에 회담제안을 해온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란 데서 다시 자기들 소관이 아니라는 식으로 응답을 피한다면 남북대화는 더 진행되
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점 북이 숙고하고 현명하게 대처하길 거듭 촉구(促求)한다.
우리 정부도 이번 회담이야말로 선전같은 북의 장광설이나 듣고 오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의 입장을 좀더 단호하게 전하는 자리
로 삼아야 한다. 유씨 문제는 최대한 빨리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공단의 유지발전이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면서까
지 연연해하지는 않겠다는 점,당치않은 안보위협에 절대 흔들리지 않고 분명히 대응할 것이라는 점을 다시한번 명확하게 전해야 할 것이
다.
* 오늘의 칼럼 읽기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나리(경제부문 차장)-20090608월] 용서받지 못할 죄
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를 보러 갔다. 제목이 생뚱맞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뭘 잘 모른다는 걸까, 궁금증 때문인
지 볕 좋은 토요일 100석 남짓한 예술영화관이 제법 찼다. 딱히 줄거리를 잡아내기 어려운 얘기인데, 의외로 곳곳에 웃음 폭탄이
다. 관객은 등장인물들이 뭘 잘 몰라 당하거나, 뭣도 모르고 떠들거나, 남들은 모르려니 과장과 거짓말을 일삼을 때마다 킥킥대며 웃
었다. 옆자리 여성이 동행자에게 속삭였다. “이거, 민망하네.”
그럴 만도 하다. 영화 속 군상들의 언행은 마치 보통 사람의 일상을 캠코더로 찍어 올린 듯 리얼하다. 자기도 모를 이유
로 오해 받고 괴로워한다. 자기도 잘 모르면서 ‘똥폼’을 잡는다. 최악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삶에 함부로 점수를 매기
는 것이다. 게다가 그 판단의 잣대란 게 얄팍한 경험과 지식에 기초한 통념 내지 편견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 놓곤 “똑바로 살
라”고 꾸짖기까지 한다. 영화 말미, 주인공 구경남(김태우)이 좀체 뜻대로 안 되는 여자 고순(고현정)에게 한 소리 한다. “그렇
게 살지 말아요. 나중에 외로워져요.” 고순이 산뜻하게 받아친다.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딱 아
는 만큼만 안다고 해요.”
그러고 보면 이 영화의 메시지는 오만에 대한 경계일지 모른다. 단테는 『신곡』에서 오만을 모든 죄의 어머니, 곧 ‘용서받
지 못할 죄(unpardonable sin)’로 규정했다. 너대니얼 호손의 『주홍글씨』에도 같은 표현이 나온다. 소설 속 가
장 큰 죄인은 불륜을 저지른 헤스더와 딤즈데일 목사가 아니다. 신분을 숨기고 7년이나 목사와 함께 살며 그의 영혼을 서서히 말
려 죽인 남편 칠링워스다. 복수심에 불타 신과 도덕의 이름으로 ‘인간 마음의 신성함(sanctity of human heart)’
을 냉혹하게 짓밟았기 때문이다. 오만한 인간은 사랑하지도, 용서하지도 못한다. 복수를 완성한 칠링워스가 외려 가장 비참한 최후
를 맞는 연유다.
웹 서핑을 하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온갖 악플(악성 댓글)에 노출된다. 오만과 편견으로 뒤범벅된 악플은 똥보다 더럽고 악귀
보다 흉측하다. 읽는 사람 마음이 이렇듯 다치는데, 쓰는 사람 영혼인들 온전할 수 있을까. 홍 감독의 2002년 작 ‘생활의 발견
’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자, 우리 사람 되는 거 어렵지만 괴물은 되지 맙시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태관(논설위원)-20090608월] 달항아리
땅속에서 달이 나왔다. 서울 종로 한복판, 사람들의 발밑에 묻혀 있던 달덩이가 휘황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흙에서 캐
낸 저 달은 누이 얼굴처럼 뽀얗고,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푸근하다. 피맛골 재개발 현장에서 보물급 조선 백자 항아리 3점이 출토됐다
는 소식이다. 풍만한 몸체에 옅푸른 기운을 머금고 있는 이들 항아리는 15~16세기에 만들어진 최상품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백자대호(大壺)는 흔히 달항아리로 불린다. 둥그런 몸체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것이 보름달을 연상시키기 때문이
다. 희고 깨끗한 살결은 순박하지만 고상하고, 좌우 비대칭의 둥근 몸매는 부정형(不定形)이지만 원형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달항아리
에는 우리 조상들의 단아한 정신세계가 녹아들어 있다. 기교를 지워 기품을 새겼으며, 빛깔을 지워 달빛을 빚었다. 뽐내지 않아 푸근
하고, 억지가 없어 너그럽다. 백자 항아리는 모든 것을 비웠지만 은은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달항아리의 수수한 자태는 볼수
록 우리의 옛 여인네를 닮아 있다.
“불 속에 구워 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 속에 잃은 그날은 이리 순박하도
다.” 백자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초정(草汀) 김상옥의 ‘백자부(賦)’ 제4연이다. 고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려 잘 알려진 이 시조
는 그의 첫 시조집 <초적(草笛·1947)>에 수록돼 있다. 불같이 뜨거운 장인정신이 빚어낸 얼음처럼 맑은 빛깔
은 곧 우리의 누이, 우리의 어머니의 살결이다. 달항아리의 풍만한 곡선은 낮고 둥근 우리의 산하를 닮아 있다. 소박한 자태이지
만 그 기품은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질’ 만큼 고결하다. 백자는 곧 흙으로 빚은 한국인의 마음이다.
1935년 영국의 도예가 버나드 리치는 한국의 달항아리를 구입해 가면서 “나는 행복을 안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 백자
는 현재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백자를 품는 것은 행복을 품는 일이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해는 졌지만, 우리의 ‘달
’은 지지 않고 세계를 비추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출토된 백자대호를 바라보는 마음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백자의 달빛은 조선
시대 그대로이지만, 거리는 옛날의 그 거리가 아니다. 피맛골은 개발의 삽날에 사라져버렸다. 달은 옛 달이로되 사람은 이미 옛 사람
이 아니다.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춘추/이종철(STX 부회장)-20090608월] 혁신과 도전정신
미국 포천지 선정 글로벌 100대 기업의 40년 뒤 생존 가능성이 4%에 불과하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1965년 100대 기업을 40년 뒤에 다시 조사한 결과 단지 12개사만이 100대 기업으로 살아남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통계를 입증하듯 70년 넘게 세계 자동차시장 부동의 1위를 지켜오던 미국의 GM이 최근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1908
년 설립된 100년 기업으로 `미국 제조업의 상징`으로 불렸던 GM의 파산은 2007년 이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
한 소비급감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실질적인 위기는 1970년대부터 내부에서 시작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국 자동차 전문기자인 미쉐린 메이나드는 이미 2003년작 `디트로이트의 종말`에서 미국 `빅3` 자동차 회사가 몰락
을 자초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빅3가 `세계 최대 미국시장은 난공불락`이라는 자만에 빠져 일본 독일 한국 등 수입차 회사들의 시
장전략을 무시하고 노조와의 무분별한 타협,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 개발보다 인수ㆍ합병에 치중하며 자멸의 길로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일류기업들이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해 고객의 기억 너머로 사라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세계 1위 항공사로 이름을 날리
던 미국의 팬암사는 1991년 파산 이후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하는 이가 드물다. 158년 역사를 자랑하던 세계적 투자은행 리먼브러
더스 역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한편 혁신을 통해 성공적으로 변신한 기업들은 여전히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1970년대까지 세계 컴퓨터 시장을 석권했던 IBM은 1980년대 신기술 개발을 등한시하다 1993년 한 해에만 무려 80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제과업체 RJR 나비스코에서 생소한 분야로 옮겨온 루이스 거스너 회장은 직원과의 직접 소통, 현장 중심 경영을 통한 혁신으로 10년 만에 IBM을 연간 80억달러 흑자를 내는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전문가들은 철옹성 같은 시장지배력을 자랑하던 거대기업 몰락의 주 원인으로 현실에 안주하려는 습성을 지적한다. `초우량 기
업의 조건`의 저자 톰 피터스는 최근 방한 강연회에서 무한한 창의력과 기업가정신이 지속적인 성장 및 혁신의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했
다.
GM 파산은 끊임 없는 혁신과 도전정신에 대한 교훈을 다시금 우리에게 일깨워주었다. 이제 현실에 안주하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시대는 갔다. 혁신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혁자생존(革者生存)의 시대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서울경제신문 칼럼-송현칼럼/이종열(뉴욕 페이스大경영대학원석좌교수)-20090608월] 게임이론과 남북문제
지금 아주 위태로운 정치곡예를 부리는 북한의 도발이 앞으로 경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이 걱정된다. 경영경제부문의 기초과목
에서 배우는 게임이론을 정립한 토머스 셸링 교수가 4년 전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됐을 때 미국에서 나온 한반도 얘기가 떠오른다.
게임이론이란 쉽게 얘기하면 이렇다. 서로 연관된 위치에서 협상하고, 대적해서 싸우고,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비합리성
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쪽이 유리하다는 의미가 있다. 비합리적인 것의 합리적 유리함, 뭐 그런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 수십년 냉전
상태에서 겨루고 있을 때 매우 중요한 이론으로 국방성에서 복잡한 대소련 전략을 짤 때 도움이 된 것이 게임 이론이다.
다음의 예를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 같다. 더스틴 호프만과 로렌스 올리비에가 출연한 “마라톤 맨”이라는 영화가 있었
다. 거기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컬럼비아 대학의 대학원생인 더스틴 호프만의 형이 미국정보국 비밀요원인데 어쩌다 형 때문에 동생
이 어려운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컬럼비아 대학 동네의 조무래기 깡패들의 도움을 받으려 하는데 그 깡패들에게 적대적
인 상대방 비밀요원이 권총을 먼저 들이댄다.
보통 합리적인 사람 같으면 권총을 먼저 뽑은 사람이 협상(?)에서 우선적인 지위를 점하게 되는데 이런 상식이 조무래기 깡
패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바로 앞에서 권총을 빼어 겨누고 있는 비밀요원에게 여러명의 깡패가 한꺼번에 자기들도 권총을 빼어 겨누
는 것이다. 비밀요원은 그래서 그 장면에서 동네 깡패들에게 밀리고 만다.
여기에 게임이론의 핵심이 있다. 조무래기 깡패들은 그 비밀요원이 자기들에게 그 권총을 쏘지 못할 것이라는 합리적인 판단
을 했거나 아니면 “네가 쏠 테면 쏴 봐라”는 깡패들의 오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임이론에서 상정하
는 것은, 협상에서는 둘 중 누가 봐도 조금 정신 나간 것 같이 보이는 쪽이 유리하게 된다. 왜냐하면 협박이 먹혀들기 때문이
다. 아니 조금 고칠 것이 있다. 정신이 조금 나간 것이 아니라 많이 나갔다고 상대방에서 믿어주면 줄수록 협상이 유리하게 된다.
북한의 대미외교과정을 보노라면 필자는 북한의 김정일이 현재의 위정자들 중 게임의 실제 응용 능력 면에서 단연 타의 추종
을 불허한다고 본다. 그들이 이 게임이론을 알아서 그런지 아니면 김일성 시대부터 워낙 잘 배워서 그런지 몰라도 실제 김정일이 협
상 면에서 뛰어나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미국에서는 마음에 안 드는 타민족이니까 김정일을 살짝 (아니면 많이) ‘미친’ 조무
래기 동네 깡패로 보고 있지만 그것이 핵무기 숫자로는 미국의 0.1%도 안 되는 (그것도 핵무기의 탄도미사일 적용에서 성공했다
고 쳐서) 실력을 가지고 미국과 당당히 대적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실제 핵 대결에서 북한이 한번 핵무기를 썼다가는 미국이 그 정권뿐 아니라 한반도를 불구덩이로 만들겠지만 그것을 알고 합리적
으로 행동하는 위정자라면 북한에게 이롭지가 못한 이유를 게임이론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그래서 게임이론에 따르면 북한에서
는 누가 정권을 잡건 외부에 대해서는 조금 미친척하는 것이 유리한 것이다. 수준이 북한보다 몇수가 떨어지는 남한의 북한정책으로
는 북쪽에 아무리 잘한다고 해봐야 소득이 없는 이유를 게임이론은 우리에게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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