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7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090807금] 쌍용차가 회생할 수 있게 도와주자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공장을
점거, 77일 동안 강경 투쟁해온 쌍용차 노조가 마침내 파업을 끝냈다. '좀더 일찍 이렇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극적인 막판 협상 타결로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긴 파업이 남긴 손실과 상처가 작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쌍용차는 청산가치를
뺀 존속가치(3,890억원)와 맞먹는 3,000억원 이상의 생산손실을 입었다. 견디다 못한 600여개 협력업체가 조기파산
신청까지 했고, 평택 지역경제는 엉망이 됐다. 노ㆍ노 충돌로 동료애는 사라지고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 더구나 강제진압을 시도한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로 양측에서 피해자가 속출하고, 단전과 단수라는 비인간적 수단으로 농성자들을 압박하는 모습이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래서 어제의 노사 합의는
의미가 크다. 쌍용차 가족, 협력업체, 평택시민은 물론 오랜만에 여야 정치권까지 한 목소리로 평화적 해결을 바랐기 때문이다.
쌍용차 노사가 이런 바람을 외면하지 않은 점이 다행스럽다. 노조가 여론에 밀려서, 잇따른 이탈과 내부 분열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쌍용차 사태는 노사문제의
해결책이 '대화와 타협'이며, 강경투쟁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노사는 공동운명체임을 재확인케
했다. 회사의 위기는 곧 노조의 위기이며, 이를 극복하고 상생하기 위해서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합심해야만 한다는 사실도 알게
해주었다.
사실 쌍용차 사태는 세계적
자동차산업의 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불가피한 구조조정을 노조가 인정하지 않은 데서 시작됐다. 오히려 회사의
절박한 상황과 파산이 미칠 경제적 파급효과를 무기로 강경투쟁에 집착하며 정부에 일방적 지원을 요구하는 억지를 부렸다. 늦게나마
노조가 이런 태도를 버렸기에 회사 역시 극단의 수단을 버리고 최종 수정안에서 한 걸음 더 물러설 수 있었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해도
쌍용차는 이제 '회생'으로 가는 길을 만들었다. 쉽지 않지만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듯' 노사와 협력업체, 지역사회가 뭉쳐
최선을 다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당장 협력업체들이 파산신청을 철회하고 공장 조기 정상화에 협력하겠다고 나선 것도 반갑다.
보란 듯이 일어서 회사를 떠나는 동료들을 빨리 다시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도 단순히 한 기업이 아니라 20만 국민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점을 잊지 말고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제부터 쌍용차에 필요한 것은 '매'가 아니라
'사랑'이다.
[한겨레신문 사설-20090807금] 할 일은 않고 견강부회에 열심인 정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관련한 우리 정부 태도를 보면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조차 하지 않은 채 방문 의미를 축소하는 데 급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클린턴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미 사이의 현안 문제들을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허심탄회하게 논의”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기로 “견해일치가
이룩됐다”고 밝혔다. 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클린턴을 직접 만나 논의 내용을 듣겠다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간접 정상회담이 이뤄진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클린턴 방북은 개인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은
북한과의 직접대화에 응하지 않을 것”, “한-미 공조가 잘되고 있다” 등의 말만 되풀이한다. 강경 기조 대북정책을 합리화하려고
객관적 현실까지 견강부회 식으로 비트는 모습이다.
이런 태도가 현안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음은 물론이다. 미국은 여기자 억류 문제를 풀려고 전직 대통령까지 북한에 보냈으나, 우리 정부는 비슷한 시기에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문제와 관련해 개성공단 실무접촉에서 몇 차례 문제를 제기하고 북한을 비난한 것이 전부다. 미국처럼 억류자
문제를 다른 사안과 분리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지난주 북한에 억류된 연안호
문제와 관련해서도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고작이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기본적 책무조차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현안은 당연히 전반적인
대북정책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따라서 대북정책 전환은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현안을 효과적으로 풀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재개를 기대하며 이번 클린턴 방북에 공을 들인 것과 같은 이치다. 자신은 바뀌려 하지 않으면서 북한의
변화만 요구하는 것은 현안을 더 악화시키고 정세변화에서도 소외되는 최악의 선택이다.
정부는 한-미 공조가 모든
문제의 해법이라도 되는 듯이 말한다. 미국에 의존해 대북 압박을 계속하면 모든 문제가 풀릴 수 있다는 논리다. 이런 비현실적인
태도를 빨리 버리지 않으면 사태는 개선되지 않는다. 스스로 만든 굴레에서 빠져나와 새롭게 출발하면 현안들을 풀고 정세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데 왜 남의 눈치만 살피는가.
[동아일보 사설-20090807금] 인구 12억 印度시장 교두보 될 ‘경제동반자협정’
우리나라가 오늘 인도와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에 서명한다. CEPA는 교역 자유화 등을 담아 자유무역협정(FTA)과 사실상 똑같다. 세계의
성장주도 그룹인 브릭스(BRICs) 중 한 나라와 맺는 협정이어서 의미가 더 크다. 예정대로 내년 1월 협정이 발효되면 구매력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4위, 12억 인구의 인도시장이 우리 앞에 더 가까워진다. 우리로서는 미국에 이어 6번째로
서명하는 FTA이며 유럽연합(EU)까지 감안하면 세계 주요 시장의 허브마다 FTA 거점을 확보하는 셈이다.
인도는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올해 6.5%, 내년 5.4%의 경제성장이 예상되는 역동적인 시장이다. 일본과 EU도 인도와 FTA 협상 중이고 중국은
공동연구 중이다. 그런 인도와 우리가 먼저 손잡게 된 것은 개방경제를 통해 지속적 성장을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발전 전략에도
부합한다. 국제사회에서 개발도상국의 이익을 강조하는 인도와 맺는 동반자 관계를 잘 활용하면 우리의 입지를 더 넓힐 수 있다.
한-인도 CEPA는 시장개방
수준이나 속도가 낮은 편이지만 현재 인도 관세가 우리 관세보다 높아 함께 낮춰갈 경우 우리의 실익이 크다. 전문인력의 상호 진출
길이 열려 내년부터는 인도인 컴퓨터 전문가나 경영컨설턴트, 영어보조교사, 자연과학자를 국내에서 더 많이 만나게 될 것이다. 양국
간 제조업 투자도 자유화돼 상호 이익을 꾀할 여지가 넓어진다.
무역과 투자로 먹고사는
우리가 선진국 문턱에서 신흥국들의 추격으로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고 한탄만 할 일이 아니다. 주요국과 FTA를 먼저 맺고
활용하는 자체가 경쟁력 강화다. 우리는 칠레와의 FTA에 서명하던 2003년까지는 FTA 후진국이었으나 이제 FTA 선진국으로
나아가고 있다. 보호무역주의 부활 조짐 속에서 현재 진행 중인 11개국 6개 경제권과의 FTA 협상에도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세계 230개 FTA 중 절반이 넘는 120개가 2000년 이후 체결됐을 정도로 지금은 FTA 경쟁시대다.
FTA는 협정에 서명해도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지 못하면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인도와의 CEPA는 9월 국회에 상정된다. 어렵게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를 통과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은 야당의 표변과 막무가내식 반대에 부닥쳐 본회의 문턱에서 세월만 허송하고
있다. 국회의 직무유기 탓에 FTA가 낳을 시장 확대 및 국내 산업구조 개편 효과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두 협정의 비준 동의를 9월 국회에서 처리해 FTA 선점 효과를 거둬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20090807금] '외국인 200만명시대' 내다보고 정책 리모델링해야
국내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
올 5월 1일 기준으로 110만6884명으로 조사됐다. 작년(89만1341명)보다 24.2%가 늘었다. 한국 인구의
2.2%이고, 울산이나 수원만한 규모다. 외국인 인구 증가는 점진적이 아니라 폭발적이다. 첫 조사 때인 2006년엔
53만6000명이었는데 3년 사이 두배가 됐다. 앞으로 몇년 내 외국인 200만명시대가, 다시 또 몇년 후엔 외국인
300만명·400만명 시대가 올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저(低)출산
경향이 심화되면서 외국인 인구의 유입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지금 추세대로면 인구는 2018년 4934만명을 고비로 줄어들기
시작해 2050년엔 4234만명이 된다. 인구 감소분, 특히 생산 인구의 감소를 대체할 인력은 외국인 노동자밖에 없다. 우리보다
몇년 앞서 저출산을 겪은 일본의 경우 향후 50년 안에 인구의 10%를 외국 이민으로 채우자는 슬로건이 중요 정책 흐름이 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외국인 유학생 숫자를 현재 12만명에서 2020년엔 30만명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해외의 젊은
인력을 끌어들여 '늙은 나라' 일본의 경제를 살리는 활력소로 삼겠다는 것이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의
52%가 산업현장 근로자이고 11.4%가 결혼 이민자다. 한국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험한 직종에서 일하러 왔거나 쇠락해가는 농촌에
시집와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외국인 며느리들이다. 우리가 수십년 전 중동으로, 유럽으로 돈 벌러 가서 무슨 설움을 받고 어떤
눈물을 삼켰는지를 생각하더라도 언어와 관습이 다르고 경제적으로 처지는 나라에서 왔다고 해서 그들을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
호주 같은 나라는 전국에
70여 곳의 이주민지원센터를 설치해 외국인 이주자들의 직업 교육, 사회 적응, 무료 법률 상담, 의료 혜택 알선 등의 서비스를
해주고 있다. 이주민들의 고국 언어로 뉴스를 전해주는 라디오 채널과 TV 방송도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 인구비율이 16%인 일본
군마현(縣) 오이즈미(大泉)에선 브라질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통역센터를 두고 매달 포르투갈어(語)로 된 정보지를 배포한다고 한다.
정부는 '외국인
200만명시대'를 내다보는 종합적인 정책 리모델링에 나서야 한다. 우선 외국인 거주자들을 상대로 그들이 한국에 살면서 뭘 가장
불편해하고, 무엇을 제일 아쉬워하는지를 심층 면접조사를 통해 알아봐 기초적인 외국인 백서(白書)부터 내놓아야 한다. 공공시설을
이용하는 데 불편은 없는지, 행정 혜택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궁한 처지에 놓였을 때 하소연할 채널은 있는지
하는 것들이다. 그 과정을 거쳐 '외국인들이 살기 편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우선 당장은 뭘 고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어떤
제도를 바꿔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체계적 대책을 작성해야 한다.
아울러 고급 외국 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외국인 거주자의 비자를 분류해본 조사에 따르면 단순노무 인력 비중이 61%, 전문 인력은
3.7%에 불과했다. 결혼 이주자도 그들 나라의 사회적 약자 계층이 대부분이다. 우수하고 젊은 인재들이 한국을 찾아와 우리
경제에 기여를 하고 고국에 돌아가서는 친한(親韓)·지한(知韓)의 핵심 교류 네트워크로 활동할 수 있도록 장기 전략을 세워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090807금] 대심도 서울·수도권 연계개발 꾀해야
서울을 동서남북으로 관통하는
6개 노선 149㎞의 소형차 전용 지하도로망을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짓는 계획을 서울시가 그제 발표했다. 자동차가 지하
40~60m 속을 달리는 이른바 대심도(大深度) 도로이다. 지하 20~30m 지하철 아래에 새로운 도로망이 생기는 셈이다.
한계에 부딪힌 지상교통량의 21%를 흡수, 서울 어느 곳이든 30분 안팎에 이동토록 한다니 가히 교통혁명이라 할 만하다.
숨통이 트인 광화문, 종로
등 도심의 2개 차선을 다이어트해 녹지와 자전거도로를 조성한다. 또 동부간선도로를 걷어낸 자리에는 여의도 면적의 70%에 이르는
하천공원이 들어선다. 구상은 장밋빛이다. 하지만 서울시의 계획을 찬찬히 훑어보면 문제투성이다. 먼저 재원확보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11조 2000억원이 투입되는 사업비 대부분을 민자로 조달하겠다는 것이다. 사업의 타당성은 물론 중복투자도 의심받고
있다. 도심 교통난을 없애겠다며 이미 세워놓은 강남순환도로와 7개 노선의 경전철, 5개 민자도로 건설계획과는 앞뒤가 안맞는다.
안전과 환경에 대한 우려도 크다. 대심도 건설의 기술력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이고, 각종 사고와 화재 발생의 개연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서울과 경기도가 따로
놀고 있다. 수도권 광역교통망은 서울과 경기도가 별개로 추진할 사업이 아닌데도 경기도가 지난 4월 수도권 대심도
철도(GTX)계획을 내놓자 뒤질세라 대심도 도로망 구축계획을 발표한 인상이 짙다.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졸속품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서울시의 6개 노선은 경기도의 동탄~고양노선과 겹친다. 한쪽이 양보해야 사업이 가능하다. 두 광역단체는 이 문제를
협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앙정부의 조정기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090807금] 국책사업 때문에 도지사 `소환` 이라니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 일정이 어제 시작됐다. 이번 투표는 지방자치제 시행 15년 역사에 광역단체장 중에서는 처음인데다,제주도가
특별자치도로 성장을 도모하는 와중의 일이어서 주목된다. 특히 내용도 국책사업의 추진과 지역주민의 이해가 충돌한 전형적인 갈등
과제로 인해 해당 광역단체장이 심판대에 오른 격이어서 유심히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번 투표는 3개월 전
제주지역 사회단체가 주민소환을 들고 나왔을 때부터 논쟁거리였다. 단체장의 스캔들이나 명확한 권한 오 · 남용이 아닌 이런 사안이
과연 주민소환의 대상이 되는가 하는 점부터가 논란거리였다. 그러나 지역 사회단체들과 일부 도민들은 소환투표청구에 필요한 절차를
밟아왔고 어제 제주선관위가 투표를 발의하면서 결국 공식 선거절차에 들어가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제주도는 선거일까지
20일간 도지사 직무정지로 주요 행정까지 멈춰설 상황이다.
지방자치제가 이제 겨우
정착단계에 들어서는 국면에서 도지사 소환투표를 보면서 몇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다. 무엇보다 나라장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국책사업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안보와 에너지,산업발전과 교육 등에서 꼭 필요한 국가적 사업이 소수의 이해관계자
의견이나 시민단체라는 제3그룹의 입김에 따라 좌우된다면 국가 전체의 발전은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점에 대한 우려를 하지않을 수
없다.
이번 소환투표도 해군기지에
크루즈선박까지 기항할 수 있는 민군 복합항을 건설하려는 중앙정부의 정책이 발단이 됐다. 때문에 꼭 필요한 국가사업에 동참해
지자체 발전에 보탬이 되도록 하려는 정책적 판단이 심판의 대상이 된 셈이다. 이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따라서 이번
투표는 그 결과를 떠나 주민소환제도에 대한 미비점 등을 재점검하는 동시에 주민들의 자치정신을 한단계 성숙시키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오늘의 칼럼 읽기
[중앙일보 칼럼-분수대/강찬수(환경전문기자)-20090807금] 해파리
그리스신화에서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만든 괴물 중에는 고르곤이라 불리는 세 자매가 있었다. 막내인 메두사만은 아름다운 용모를 갖고 있었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의 신전에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사랑을 나눈 탓에 메두사는 아테나의 저주를 받았다. 추악한 얼굴과 독사 머리카락을 갖게
됐다. 메두사를 쳐다보는 사람은 돌로 변했다. 영웅 페르세우스는 방패에 비친 메두사의 모습을 보며 접근해 메두사의 목을 자르는
데 성공했다.
하늘거리는 촉수를 가진
해파리는 메두사의 머리와 닮았다. 실제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메두사가 해파리를 지칭하는 단어로 쓰인다. 해파리는 산호·말미잘과
함께 자포동물로 분류된다. 주머니에 입과 항문을 겸한 구멍이 하나 뚫린 단순한 구조다.(해파리같은놈, 입,항문 드럽다) 수천 개의 세포마다 작은 침이 하나씩
들어 있어 촉수를 건드리면 침이 한꺼번에 튀어나온다. 해파리에게 쏘이면 상처를 입고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독소로 인해 호흡
곤란과 근육 마비, 심장마비를 겪기도 한다.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자포동물이 식물로 간주됐다. 18세기에는 동물과 식물 중간쯤으로 인식됐고, 19세기에야 비로소 동물로 분류됐다. 해파리는
정약전이 1814년에 저술한 『자산어보』에도 등장한다. ‘다리’라는 표현을 쓴 정약전은 해파리를 동물로 인식했다.
해파리의 생활사는 복잡하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탄생한 플라눌라는 바닷속을 헤엄치다 단단한 물체의 표면에 붙어 꽃처럼 생긴 폴립으로 자란다. 폴립은 호떡을
포개놓은 듯한 스트로빌라로 자란다. 스트로빌라의 마디 하나하나가 해파리로 자란다.
요즘 남해안에는 해파리가
대규모로 출현하고 있다. 해운대 해수욕장에서는 그물·뜰채로 걷어내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해파리 피해가 한 해 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해수욕객이 쏘이는 것뿐만 아니라 그물 훼손이나 조업 포기 등 어업 피해도 적지 않다. 원전 냉각수 취수도
어렵게 만든다.
해파리는
지중해·북해·발트해·카스피해·멕시코만 등지에서도 골칫거리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 온도의 상승, 육지에서 흘려 보낸 오염물질로
인한 부(富)영양화, 해파리를 먹는 물고기의 남획이 원인으로 꼽힌다. 모두 사람 탓이다. 해파리를 뜯어먹는 말쥐치를 방류하고
있지만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바다를 메두사로부터 구해줄 21세기의 페르세우스가 하늘에서 떨어질 리도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경향신문 칼럼-여적/박성수(논설위원)-20090807금] 세계로 뛰는 한글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6000여개에 이르고, 이 중 2500여개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고 한다. 지난 3세대에 걸쳐 200개 언어가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췄고, 199개 언어는 소멸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유네스코 소멸위기 언어연구 프로젝트 ‘아틀라스’가 발표한
내용이다. 가장 최근에 사라진 언어는 알래스카의 ‘에야크(Eyak)’로 지난해 마지막 사용자가 세상을 떠나면서 사어(死語)가
됐고 프랑스에서도 브르통어, 노르망어 등 13개 언어가 소멸 위기라 한다.
‘훈민정음’ 창제 후 560여년을 이어온 한글을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로 내세우는 것을 자화자찬으로 몰아붙일 일은 아닌 것 같다.
한글은 탄생기록을 가진
유일한 문자로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지 오래다. ‘훈민정음’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됐고,
유네스코는 ‘세종대왕 문맹퇴치 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배우기 쉽고 문맹을 없애는 우수한 글자라는 취지에서다.
세계 언어학자들도 한글의
우수성에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영국의 샘슨 교수는 <문자체계>(Writing Systems)라는 저서에서 인류의
위대한 지적 성취 중 하나로 한글을 꼽았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미국 다이아몬드 교수도 유명 과학지 기고문에서 “세종이 만든
28자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알파벳”이라며 과학적인 표기법 체계에 놀라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문자가 없어 곤란을 겪던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이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할 공식문자로 한글을 도입했다고 한다. 인구 6만여명의 이 부족은 독자적인
말을 갖고 있지만 문자가 없어 고유어를 잃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는 것이다. 이젠 ‘바하사 찌아찌아1’이란 교과서까지 편찬돼
‘부리’(쓰기) ‘뽀가우’(말하기), ‘바짜안’(읽기) 등 모든 텍스트를 한글로 표기하고, 우리의 전래동화 ‘토끼전’도
수록했다고 한다. 한글에서는 사라진 비읍 순경음(ㅸ)도 부활시켰다는 소식이다.
타국에서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세종대왕도 지하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을 것만 같다. 한글은 세계로 뛰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영어몰입교육 등으로 푸대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글사랑,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슬로건이다.
[매일경제신문 칼럼-사이언스플라자/이덕환(서강대 화학과 교수)-20090807금] 과학교육도 달라져야 한다
결국 미래형 교육과정이
확정될 모양이다. 구체적인 개편 내용에 대한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적용 중인 2007년 개정안은 손을 볼 수밖에
없다. 심각한 학력 저하와 공교육 붕괴 원인으로 드러난 과도한 학습량 감축과 과목 쪼개기는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이번 기회에 고질적인 문과와 이과 구분도 없애고, `지식기반` 사회가 요구하는 충분한 지적 역량을 갖춘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공교육이 살아날 수 있다.
과학이 미래형 교육과정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모든 선진국 교육과정이 그렇게 바뀌고 있다. 과학적 소양을 갖추지 못하면 스스로 사회적 권리와 건강을 지킬
수 없고, 그런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남들과 소통하기 위한
어문학적 소양과 미래 사회의 핵심인 과학에 대한 소양을 길러주는 것이 학교가 책임질 수 있는 진정한 현대적 인성교육이다.
국ㆍ영ㆍ수를 가르치면 입시교육이고, 다른 과목을 가르치면 인성교육이라는 황당한 주장은 무의미한 궤변이다.
과학 교육과정도 획기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과목 쪼개기의 폐해가 지나치게 증폭된 2007년 개정안으로는 미래를 위한 교육을 기대할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과도하게 줄어들었던 제7차 교육과정에서 가르치기 어렵다는 내용을 추가로 빼버린 것이 개정안이다. 반도체, 나노, 정보와 같은
새로운 첨단 과학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30년 전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는 내용이다.
우선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으로 구분된 낡은 과학교육 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분야 간 융합이 강조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대학에서조차 그런 구분이
흔들리고 있다. 초ㆍ중등 과학교육이 대학 학과에 따른 구분을 흉내내야 할 이유도 없다. 지나치게 경직된 구분 때문에 생기는
중복과 선택의 문제도 해결하기 쉽지 않고, 과학교육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학생들에게 물질, 운동,
생명, 에너지, 생태환경, 첨단기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과학 지식을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새로운 과학교육 틀을 찾아내야
한다. 물론 교사 양성 제도도 손질해야 한다. 과학교육 미래를 위해 교과 이기주의는 과감하게 포기할 수밖에 없다.
교육 방법도 바꿔야 한다.
어설픈 과학자 양성 교육으로는 학생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학생들이 직접 실험을 하지 않고도 자연에 대한 탐구의 의미와 가치를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모든 학생을 창의적 인재로 만들겠다는 공허한 욕심도 버릴 수밖에 없다. 과학을 통해 세상을
보는 안목을 길러줘야 한다.
과학이 어려운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학교가 과학을 가르쳐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쉬운 것을 가르치는 것과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학생들 학습 부담과 경쟁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학생들에게 노력하는 만큼 값진 것을 가르쳐줄 수 있는 교육과정과
교수학습 방법이 필요하다. 교육과정에서 `과학`과 `사회`가 반드시 균형을 이뤄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와 일본에서나 존재하는
불합리하고 임의적인 문과와 이과 구분에 따른 결과다. 우리 교육과 사회를 절름발이로 만들고 있는 잘못된 관행은 과감하게 폐기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과학교육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칼럼-기자의 눈/한기석(사회부기자)-20090807금] 마음을 베는 말
6일 오전10시30분 쌍용차
평택공장 정문 앞에서 30~40대 아주머니 20여명이 ‘쌍용차를 살려내자’는 문구가 쓰인 띠를 두르고 나타났다. 이들은
정리해고에서 비껴간 이른바 ‘살아남은 사람’들의 부인들로 곧바로 민주노동당의 천막당사로 찾아가 쌍용차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그동안 맺힌 게 많은 듯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이념과 사상은 그만 풀고 이제 그만 나가주세요” “(농성 중인) 저들만 불쌍하고 우리는 불쌍하지 않습니까” “쌍용차를 한번이라도 팔아준 적도 없으면서 누굴 위한다는 겁니까”
이들은 거세게 항의하며 거듭 나가줄 것을 주장하다 마침내 강기갑 대표를 비롯한 민노당 당원들을 끌어내기 시작했고 경찰이 이를 제지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아주머니들의 ‘한풀이’는
그야말로 절절했다. 이들은 지난 8개월 동안 월급을 한푼도 받지 못한 채 이제나저제나 쌍용차 문제가 잘 해결되기를 기다렸다.
공장 안에서 농성하고 있는 아이 아빠의 동료들에게는 살아남았다는 죄송한 마음만 들 뿐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날은 마침내 거리로
나왔다. 이제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오후1시50분. 파국을 막기
위해 마지막 대화를 시도한 노사가 큰 틀에서 합의했다는 연락이 왔다. 공장 앞에 줄지어 앉아 있던 사측 직원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갑옷ㆍ투구를 차려 입고 대기 중이던 경찰들도 기쁨의 웃음을 보였다. 보이지는 않지만 그동안
생사를 넘나들며 지칠 대로 지친 농성 노조원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쌍용차 평택공장 안과 밖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동안 쌍용차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기를 학수고대했다. 그들의 바람대로 사태는 원만히 해결된 듯싶다. 그럼 이제 다 끝난 걸까.
모든 일은 사람이 한다.
앞으로 쌍용차를 살려내는 일은 쌍용차 사람들이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전에 아주머니들이 한 얘기 중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바로 ‘공장을 불태우는 저들을 쌍용차 직원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더 이상 저들과 같이 할 수는 없다’는 대목이었다.
칼은 살을 베지만 말은 마음을 벨 수가 있다. 마음을 베고 베인 사람들이 한데 뭉쳐 쌍용차 회생이라는 실낱 같은 가능성을 키워낼 수 있을까. 기자의 마음은 여전히 조마조마하다.
20090807금.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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