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속 - 장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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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프라 원프리의 십계명
 
1. 남들의 호감을 얻으려 애쓰지 말라
2.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외적인 것에 의존하지 말라

3. 일과 삶이 최대한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하라.
4. 주변에 험담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

5.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라.
6. 중독된 것들을 끊어라.

7. 당신에 버금가는 혹은 당신보다 나은 사람들로 주위를 채워라.
8. 돈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라면 돈 생각은 아예 잊어라.

9. 당신의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지 말라.
10. 포기하지 말라.

 


 

 

대저 오나 월의 명검(名劍)을 가진 자는
그것을 상자에 넣어둔 채 함부로 쓰지 않는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은 무엇일까?
내가 가진 재주일까?
내가 아끼는 물건일까?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일까?

누가 뭐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자신을 함부로 굴리지 않는것,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하고 개발하는 것,
그것이 모든 이들의 최우선 과제다.

인품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이
온갖 명품으로 몸을 치장한다고 해서 돋보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비웃움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내면의 명검을 가진자,
인생에서 불굴의 신념을  획득한 자는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가 명품을 입었을때,
명품이 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명품을 돋보이게 한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라.
이것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를 함부로 대한다.

이것은 남을 함부로 대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일이다.
자신의 가치를 알고 자기를 소숭하게 여기는 사람,
그가 바로 진정한 보물을 간직한 사람이다.


- 김창일, '장자, 성공을 말하다' 중에서


A씨는 보통아이로 자랐다. 그나마 다른 애들보다 더 잘하는 게 있다면 그림 그리기 정도였다. 부모는 그를 미술학원에 보냈다. 몇 달 동안 그는 미술학원에서 데생 수업을 받았다. 단조롭고 재미도 없는 일이었다. 그는 어머니와 갈등을 겪다가 곧 미술학원을 그만두었다.

성 적이 남달리 좋아지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였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반에서 일등을 했고, 졸업반 때는 전교 일등을 했다. 어머니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종달새 같은 목소리로 ‘우리 아들, 우리 아들 …’ 했다. 등하교에 한 대뿐인 자가용이 그에게 배정됐고, 청소를 비롯하여 집안의 모든 일에서 그는 언제나 제외됐다. 특별취급을 받기로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선생님이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모든 동료들이 머리 좋은 그를 우러러보았다.

고등학교 이학년 때 잠시 진로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갑자기 미술대학을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펄쩍 뛰었다. 학교 선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전교 일등짜리가 무슨 미술대학에 가느냐고 말했다. 그로서도 어차피 확신이 있어서 해본 소리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특별취급을 받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영원히 특별취급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는 무난히 일류 대학에 들어갔다.

경 영과였다. 성적은 대학에서도 언제나 상위권이었다. 상위권을 유지하느라 다른 일은 경험할 겨를이 없었다. 여전히 그는 전도유망한 청년으로 특별취급을 받았다. 그는 머리가 좋아서 남이 이맛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 우쭐해하진 않았지만, 속으론 언제나 그 자신이 남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남과 다른 그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취직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동경해 마지않는 회사였다. 연봉도 물론 좋았다. 시집오겠다는 이쁜 처녀들도 줄을 섰다. 공부를 줄곧 일등 해온 것만큼 애썼더니, 회사에서도 당연지사 진급이 빨랐다. 그의 눈엔 세상이라는 게 별게 아니었다. 그는 오로지 회사가 요구하는 길을 갔다. 고등학교 때는 담임선생과 부모가 요구하는 대로 살았고, 대학교 때는 교수와 부모, 사회에선 회사와 아내가 요구하는 대로 살았다. 모든 것이 탄탄대로였다. 그는 진급을 거듭했고, 아파트를 계속 늘렸고, 더 좋은 차를 샀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성공’했다고 말했다. 성공하느라, 한 번도 인생을 뒤돌아볼 기회도 없었다.

그러다가 40대 후반에 그 일이 닥쳤다.

종합건진을 받았더니 무슨무슨 수치가 높다고 했다. 전무로 진급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곧 부사장, 사장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미래의 부사장, 사장이 될 그는 아무런 예감도 없이,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정밀검사를 받았다. 놀랍게도 그의 내장에 똬리를 튼 암 덩어리가 이미 자랄 대로 자라나 있었다.

그는 미칠 것 같았지만 병이 너무 깊어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항암치료를 받고 나면 몸이 끝간 데 없이 졸아들었다. 미술대학엘 갈까 하고 고민하던 시절이 불현듯 떠올랐다. 병원 복도에 걸린 그림 앞에 서면 전에 없이 눈물이 나왔다. 몇 달 지나지 않아 회사에선 그를 대신한 새 전무가 임명됐다. 그는 병상에서 아무도 몰래 울었다.

그는 처음으로 오랫동안 생애를 뒤돌아보았다.

그제야 생애의 대부분을 누군가의 ‘노예’로 살았다는 걸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에겐 평생 어떤 것을 요구하고 지시하는 ‘명령권자’가 존재했던 것이다. 한 번도 자기 인생의 지도를 자기 혼자 그린 적이 없었다. 매순간 그는 자신의 좋은 머리로 어떤 걸 ‘선택’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죽음에 앞서 돌아보자 그 모든 건 가짜 자유, 가짜 선택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평생을 바쳐서 올라온 고지는 애당초 그 스스로 원했던 고지가 아니었다.

‘아아, 내가 원했던 게 이 산이 아니었어.’

그는 죽을 때 마침내 회한에 차서 중얼거렸다.

[출처] 한겨레신문 /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나를 보기 위해서

 

오사카에서 부산으로 건너온

 

일본인 여자 친구(애인 사이가 아닌 친구 사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물론 앞으로 나열하게 될 일본인 여자 친구의 태도는

 

'일본인'을 대표하진 않을 것이다.

(일본인으로써가 아니라 그녀로써의 태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적는 이유는 다만 내가 받은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서일 뿐이며,

 

한국 여자와 비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것을 미리 밝혀 둔다.

 

 

1.음식점에서.

 

먹는 행위보다는 대화와 분위기에 집중했다.

 

항상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맛 있는 것은 맛 있다고 표현할 줄 알았다.

 

다소 불편해 보일정도로 자세를 바르게하고 앉아있었다.

 

국과 같이 함께 떠 먹는 음식에는 인색했다.

 

 

2.술집에서.

 

잔을 다 비우지 않아도, 술이 떨어지면 술을 채워주었다.

(유달리 맥주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소식을 해서인지 안주는 그다지 많이 먹지 않았다.

 

하지만 앞접시에 따로 덜어주자 조금이지만 맛있게 먹었다.

 

계산을 할 때, 내가 계산함에 미안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당연히 남자가 계산해야한다는 인식은 없었다.

 

 

3.선물.

 

그녀가 나를 위해서 선물을 준비했다.

 

그런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선물보다,

 

선물을 사기까지의 과정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아왔다는 것이다.

 

선물가게, 그 물건이 진열되어 있는 모습, 다른 물건과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

 

선물은 벨트에 차는 지갑이었는데, 아직 한국에서는 낯선 소품이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유행이란다.

 

 

4.소통.

 

사실 통역을 해준 친구가 있었다.

 

나의 일본어 실력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대화는 잘 통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서로의 기분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꼭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한 관심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5.야사시.(상냥한, 친절한)

 

나는 모든 여자에게 친절하지 않다.

 

하지만 멀리서 나를 보러 온 손님에게 어찌 친절하지 않을 수 있으리.

 

그녀는 시종일관 나에게 젠틀하고, 야사시하다고 했다.

 

음, 내가 그날 보였던 매너라면,

 

그녀와 보폭을 맞추고,

 

그녀의 짐을 들어주고,

 

불고기를 먹을 때, 구워주고, 올려주고,

 

매운 것은 맵다고 말해주고,

 

뭐든 친절한 표정과 어투로 설명해주고,

 

혹시 필요한 건 없는지 챙겨주고,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었는데,

 

그녀의 입장에서는 특별한 대우였던 것 같다.

 

 

6.노래 주점에서.

 

노는 것은 거의 비슷했다.

 

다만 확연한 차이점은,

 

상대방이 노래를 부를 때,

 

자신의 노래를 선곡하지 않고,

 

들어주는 것에 더욱 집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춤을 추고 놀 때는, 정말 땀이 날 정도로

 

진심으로 놀더라.

 

 

7.작별.

 

호텔 앞까지 바래다 줬다.

 

그런데 더 함께 있지 못해서 참 미안한 표정을 짓더라.

 

거의 울 정도였으니까.

 

친구 사이일 뿐인데도, 이 정도의 아쉬움을 표현하는 여자,

 

나에게 있어서 첫 경험이었다.

 

그녀는 내게 자신이 차고 있던 팔찌를 건냈다.

 

소중한 시간에 대한 보답이라며.

 

우리는 그렇게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 날의 하루는

 

내게도 색다른 경험이었고,

 

그녀도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이리라.

 

 

 

그녀의 나이는 한국 나이로 34살이다.

 

하지만 나는 소녀같은 그녀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뭐든 감동하고, 즐겁게 받아들이는 그녀의 마음은 진정 소녀가 아닐까?

 

 

동료의식

사람이 세상을 혼자서 살아갈 수 없듯이 직장 생활도 독불장군 식으로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좀더 좋은 본위기를 만드는 것이 업무 능률 향상을 위해서도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직장의 구성원은 실로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연령도 다르고 개성도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는 곳인 만큼 원만한 관계 유지야말로 직장 생활의 기본일 것입니다.
상사, 동료, 부하 직원 등과의 대인 관계를 고루 잘 유지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동료와의 관계는 어려우면서도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스스로가 좋은 동료가 되어 주고 있다고 여기십니까?
영 국의 작가 「골드스미스」는 ‘청년이 세상 물정을 배우는 것은 연장자가 아닌 같은 또래로부터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난 이후 줄곧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 어른들을 통해 여러 가지 지식들을 전수 받습니다. 하지만 정작 세상 물정은 친구나 동료들에게서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직장 생활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처음에 직장에 들어와서는 상사들로부터 전반적인 회사 상황과 업무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회사 업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스스로 일을 처리할 능력을 갖추게 되면 동료들에게서 받는 도움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비슷한 나이, 비슷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많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며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직장 동료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북돋워 주는 바람직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선 동료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즉, 동료는 서로를 발전하도록 끌어당겨주는 선의의 경쟁자이며 협력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다른 동료들이야 어떻게 되든 나 혼자만 잘되고 보자는 식으로 행동한다면 오히려 자신이 따돌림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한 배를 탄 공동 운명체임을 명시합시다.


낙천적 성격관리 5가지 방법

 

 

1. 누구에게도 악한 생각을 갖지 말라.

2. 모든 사람의 행동을 좋게 생각하라.

3. 누구를 만나든 간에 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라.

4. 항상 희망적으로 생각하라.

5.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좋은 것만 보라.

                                             - 노만 V. 필 -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다. 말이 없었다.

잠시 그렇게 있다 전화가 끊어졌다.

누구였을까

깊은 밤 어둠 속에서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가

두근거리는 집게손가락으로 내 가장 가까운 곳까지 달려와

여보세요 여보세요 두드리다

한발짝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

그냥 돌아선 그는 누구였을까

나도 그러했었다

나도 이 세상 그 어떤 곳을 향해 가까이 가려다

그만 돌아선 날이 있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항아리 깊은 곳에 버린 것을 눌러 담듯

가슴 캄캄한 곳에 저 혼자 삭아가도록 담아둔

수많은 밤이 있었다

그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채 나 혼자만 서성거리다

귀뚜라미 소리 같은 것을 허공에 던지다

단 한마디 전하지 못하고 돌아선 날들이 많았다.

이 세상 많은 이들도 그럴 것이다

평생 저 혼자 기억의 수첩에 썼다 지운

저리디 저린 것들이 있을 것이다

두 눈을 감듯 떠오르는 얼굴을 내리닫고

침을 삼키듯 목끝까지 올라온 그리움을 삼키고

입술 밖을 몇번인가 서성이다 차마 하지 못하고 되가져간

깨알같은 말들이 있을 것이다.

한발짝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




사랑을 감추거나 의식 하지 않기는 정말 힘이 든다.

눈앞에 있는 떠나간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서 눈물을 감추기란 어렵다.

"오랫 만이야!" 라는 말 한마디가

천겹의 회안으로 들려 서러움으로 밀려 와,

눈물을 참기 위해서 헛 기침을 하고 부산스럽게 움직여 보지만

이미 처음부터 가슴에선 눈물이 흘러

참아야 하는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릴수 밖에 없다.

차마 얼굴을 보면 쏟아질 눈물 때문에

고개를 들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얼굴을 볼수가 없고.

단지 딴청을 하며 흘깃흘깃 본 그 얼굴은

피가 멈추는듯한 경련을 준다.

한번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지만 아무 말도 할수가 없고

아무 말도 할 이야기가 없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사랑해"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할수 없는 노릇이고

한다 해도 의미 없는 언어일 것이고

그래서 그 말은 계속 가슴에서 메아리 되어 사라진다.

돌아서며 서러움은 더 해 가고 서러움이 악이 되어

증오와 함께 어금니를 앙 다문다.

"두고 보자".

돌아서고 나서 한참을 걸어 가는 길에

다른 아무것도 인지 할수가 없고 사람 많은 걸 인식 할때쯤

볼을 타고 내려온 식어 버린 눈물을 소매로 훔친다.

정말 사랑을 감추기란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재체기를 참아야 하는 만큼 어렵다




나는 달이 사라져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아무리 하찮은 것들이라도 사라져버린 것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 사실을 자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그것들이 간직하고 있던 아름다움과 동일한 깊이의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을.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비물질적인 것이든,

하나의 존재는 곧 하나의 아름다움이며

하나의 아름다움은 곧 하나의 아픔이라는 사실을.

나는 남들이 다 알고 있는 현상을 혼자 모르고 있는 경우보다,

남들이 다 모르고 있는 현상을 혼자 알고 있는 경우가

몇 배나 더 외롭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아가고 있었다.


장외인간 / 이외수

by 최규상의 유머편지 , 자기경영 플러스, solomoon.com, naver, 고도원, 전용석 아주 특별하 성공, 쿨카사노바, all of books I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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