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전 2일전 1주일전 한달전 1년전
[알만한 담배 유머하나]
언젠가 선배의 담배 심부름으로
슈퍼에 간적이 있다..
"세븐일레븐 하나 주세요"
"네?"
"세븐일레븐요.."
한 학생이 캠퍼스에서 낮술을 마시고 있길래...
지나가는 교수님께서 보시고 한마디 했다.
교수 :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학생 : 전 고민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술이라도 마셔서 고민과 근심들을 모두 익사시킬려고요..
교수 : 이해는 가네...하지만 소용없을거네..
그 녀석들은 전부 최고의
수영선수들이라네...
세상에 근심 걱정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쓸데없이 너무 많은 근심을 껴앉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민이 많은 분에게 하버드대학의 하워드 가드너의 한마디를 권합니다.
" 불행한 사람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행복한 사람은 가지고 있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지난 주 우연히 만난 이 말 한마디로 저는 지난 일주일동안 행복했었습니다.
이재진님도 이번 한 주.... 가지고 있는 것을 사랑하는 시간이 되시길..
그럼 쓸데없는 근심을 익사시킬려고 노력하실 필요가 없게 됩니다.
우리 인생 화이팅입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없는
돈을 털어서 책을 사라
없는
돈을 털어서 책을 사라.
가능한 한 많은 돈을 쓰라고 말한 것은
그런 마음가짐일 때 사람은 보다 진지하게 책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많은 돈을 쓰라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마음 저 밑바닥에서는 인색하므로
돈을 많이 써버리면 최대한 그 본전을
찾으려는 마음에 보다 성실하게
책을 읽기 때문이다.
- 다치바나 다카시의《지식의 단련법》중에서 -
Shoun and
His Mother
쇼운 스님과 그의
어머니
평역 : 푸른글
4342. 1.19
Shoun became a teacher of Soto Zen.
When he was still a
student his father passed away,
leaving him to care for his old mother.
쇼운 스님(Soham Gempo or Shoun, 1848-1922)은
조동종(曹洞宗)의 사표(師表)가 된 인물로
그에게는 이런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쇼운 스님이 아직 학승(學僧)이었을 때,
스님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께서 스님에게 남긴 유언은
홀로 남겨진 늙은 어머니를 잘 모시라는
것이었다.
Whenever Shoun went to a meditation
hall
he always took
his mother with him.
Since she accompanied him,
when he visited
monasteries he could not live with the monks.
So he would build a little house and
care for her there.
He
would copy sutras, Buddhist verses,
and in this manner receive a few coins
for food.
그 유언을 지키기 위해 쇼운 스님은 선방(禪房)에 갈
때마다
늘 어머니를 모시고 다녔다.
그렇게 늘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다녔기에,
사찰을 방문했을 때는 그는
스님들과 함께 지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작은 오두막집을 지어 그곳에 어머니를 모시고 보살폈는데,
그는 부처님의 말씀인 불경을 필사(筆寫)하여
받은 적은 돈으로 음식을 사서 어머니를
공양하였다.
When Shoun bought fish for his mother,
the people would scoff at him,
for a monk is not supposed to eat fish.
But Shoun did not
mind.
His mother,
however, was hurt to see the others laugh at her son.
Finally she told Shoun:
"I think I will become
a nun. I can be a vegaterian too."
She did, and they studied together.
한번은 쇼운 스님이 어머니께 드리려고 생선을 손에 들고 가자,
그런 그를 보고 사람들은 비웃었다.
그것은 승려가 생선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이 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쇼운 스님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렇지만
노모는 스님이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받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져서
마침내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비구니가 되려고 마음 먹었다. 나 역시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으니."
그리하여 그의 어머니도 머리를
깎은 다음 비구니가 되었고
이제 어머니와
아들은 함께 공부를 하게 되었다.
Shoun was fond of music and was a
master of the harp,
which his mother also played.
On full-moon nights
they used to play together.
한편 쇼운 스님은 음악에 심취하여, 거문고 연주의 달인이
되었으며,
그의 어머니 역시 거문고를 탈
줄 알았다.
그래서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함께 거문고를 연주하곤 하였다.
One night a young lady passed by their
house and heard music.
Deeply touched, she invited Shoun to
visit her the next evening and play.
He accepted the invitation.
그러던 어느 날 밤 한 젊은 여인이
그들의 오두막 곁을 지나가다가 그 음악소리를 듣게
되었다.
깊은 감명을 받은 그 여인은 쇼운
스님에게
다음날 저녁 자신의 집을
방문하여 연주를 해 줄 것을 청하였고,
스님은 기꺼이 그 초청을
받아들였다.
A few days later he met the young lady
on the street
and
thanked her for her hospitality.
Others laughed at him.
He had visited the house of a woman of
the streets.
그로부터 몇 일 후 그는 우연히 길에서 그 여인을
만났고
그때 환대를 받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쇼운 스님을
비웃었다.
스님이 방문했던 그 집은
창녀의 집이었던 것이었다.
One day Shoun left for a distant temple
to deliver a lecture.
A few months afterwards he returned
home to find his mother dead.
Friends had not known where to reach
him,
so the funeral
was then in progress.
어느 날 쇼운 스님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절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후,
집으로 돌아와서야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알게되었다.
마침 그 때, 그와 연락할
방법을 찾지 못한
동료들에 의해 어머니의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Shoun walked up and hit the coffin with
his staff.
"Mother,
your son has returned," he said.
"I am glad to see you have returned,
son,"
he answered for
his mother.
"Yes, I am
glad too," Shoun responded.
Then he announced to the people about
him:
"The funeral
ceremony is over. You may bury the body."
쇼운은 앞으로 나아가
지팡이(禪杖)로 어머니의 관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서 자신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아들아, 나도 네가 돌아온 것을 보니 기쁘구나."
"네 어머니, 저도 기쁘답니다." 다시 쇼운이 대답했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이렇게
알렸다.
"장례식이 다 끝났으니, 이제
관을 묻어도 좋습니다."
When Shoun was old he knew his end was
approaching.
He asked
his disciples to gather around him in the morning,
telling them he was going to pass on at
noon.
Burning incense
before the picture of his mother and his old teacher,
he wrote a poem:
어느덧 세월이 흘러 쇼운은 늙었고,
그는 자신이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어느 날 아침
제자들을 모두 불러 자신의 주변에 둘러
앉혀놓은 다음,
그들에게 자신은 정오에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어머니의 영정과 옛 스승의 영정 앞에 분향을 하고,
다음과 같은 임종게(臨終偈)를
적었다.
For fifty-six years I lived as best I
could,
Making my way in
this world.
Now the
rain has ended, the clouds are clearing,
The blue sky has a full moon.
이 세상 속에 나만의 길을 만들며
56년 동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살았네.
이제 비도 그쳤고 구름들도
사라져
푸른 창공은 보름달을
머금었네
His disciples gathered about him,
reciting a sutra,
and
Shoun passed on during the invocation.
그의 제자들은 주위에 모여 불경을
외우는 사이,
쇼운 스님은 부처님께 예를
올리다가 이 세상을 하직했다.
몇 년을 사귀었지만
늘 여자 친구에게 시달렸기 때문에
지쳐있던 그는
우연히 한 여자를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자신을 지치게 했던 애인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좀 더 어른스러웠으며,
자신을 이해해줄 줄 알았고,
잔소리를 늘어놓기 보다는 지혜롭게 대처했다.
(거의 모든 것이 그녀와 달랐다. 여자 친구와 함께할 때의 스트레스를 그녀가 풀어주었던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그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고,
대신 그 여자와 사귀게 되었다.
사실 새로 사귄 그녀는 예전 여자 친구보다
외모도 별로였고,
소개팅에서 만났더라면 그저 잊혀질 상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상황이 둘을 연인으로 만들어주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상황'은 변수이기도 하면서 관계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현재 자신과 상대방의 상황에 따라
객관적인 기준은 말살 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전혀 답이 없다면,
상황을 한번 살펴 보도록 하자.
어쩌면 답이 보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 상황만 아니었더라면...하지만 이미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1.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2.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갈망하던 내일이다.
3.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4.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5. 공부할 때의 고통은
잠깐이지만 못 배운 고통은 평생이다.
6. 공부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7. 행복은
성적순이 아닐지 몰라도 성공은 성적순이다.
8.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인생의 전부도 아닌 공부 하나도 정복하지 못한다면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9.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즐겨라.
10. 남보다 더
일찍 더 부지런히 노력해야 성공을 맛 볼 수 있다.
11. 성공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노력에서
비롯된다.
12. 시간은
간다.
13. 지금 흘린 침은 내일
흘릴 눈물이 된다.
14. 개같이
공부해서 정승같이 놀자.
15.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
뛰어야 한다.
16. 미래에
투자하는 사람은 현실에 충실한 사람이다.
17. 학벌이
돈이다.
18. 오늘 보낸 하루는 내일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19. 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
20. no pains no
gains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21. 꿈이 바로 앞에 있는데,
당신은 왜 팔을 뻗지 않는가?
22. 눈이 감기는가? 그럼 미래를 향한 눈도
감긴다.
23. 졸지 말고
자라.
24. 성적은 투자한 시간의
절대량에 비례한다.
25. 가장
위대한 일은 남들이 자고 있을 때 이뤄진다.
26. 지금
헛되이 보내는 이 시간이 시험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얼마나 절실하게 느껴지겠는가?
27. 불가능이란
노력하지 않는 자의 변명이다.
28. 노력의
댓가는 이유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29.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30. 한시간 더 공부하면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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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추상적인 목표보다 구체적인 목표를 정한다.
2.목표 달성을 위해 마감 시간을 구체적으로 표기한다.
3.상황에 관계없이 늘 긍정적인 자세을 유지한다.
4."잘 할 수 있다"는 자기 암시의 힘을 활용하다.
5.생각과 동시에 입버릇처럼 반복함으로써 자신을 만들어 간다.
6.지나치게 긴장하지 않도록 주의 하며 자주 웃는다.
7.편안한 상태에서 아이디어와 힌트가 잘 떠오른다.
8.기회가 올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 기화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9."이번에는 모든 것을 건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놀라운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10.뚜렸한 테마나 문제의식을 갖고 생활한다.
11.집중력은 오래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적당한 휴식을 중간중간 취한다.
12.하루종일 일하는 것보다는 며칠에 나누어서 일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13."이 부분만 한다"혹은 "이시간까지만 한다"는 식으로 범위와 시간을 정한다.
14.조금빠른 속도로 걷는다.
15.러닝머신이 아니라 밖에서 걷는다. 사람이나 풍경등이 풍부한 자극을 준다.
16.피곤하면 잠시라도 휴식을 취한다.
17.지나친 공복은 금물이다. 뇌는 하루120그람의 포도당을 필요 로 한다.
18.콜레스테롤은 집중력에 중요한 요소이다.
19.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시작함을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알린다.
20.하체가 튼튼해야 집중력이 생겨난다.
- 나카지마 다카시 <3초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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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이 늦둥이라 저와 나이차가 50 년 넘게 나시는 어머님..
저 시집오고 5 년만에 치매에 걸리셔서
저혼자 4 년간
똥오줌 받아내고, 잘 씻지도 못하고,
딸내미 얼굴도 못보고, 매일 환자식 먹고, 간이침대에 쪼그려 잠들고,
4 년간
남편품에 단 한번도 잠들지 못했고,
힘이 없으셔서 변을 못누실땐 제 손가락으로 파내는 일도 거의 매일이었지만
안힘들다고, 평생 이짓 해도 좋으니 살아만 계시라고 할수 있었던 이유는
정신이 멀쩡하셨던 그 5년간 베풀어주신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제나이 33살 먹도록 그렇게 선하고 지혜롭고 어진 이를 본적이 없습니다.
알콜중독으로 정신치료를 받고
계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제가 10살때 집나가서 소식없는 엄마..
상습절도로 경찰서 들락날락
하던 오빠..
그밑에서 매일 맞고 울며 자란 저를 무슨 공주님인줄 착각하는 신랑과
신랑에게 모든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
글썽이며
한시라도 빨리 데려오고 싶다고 2천만원짜리 통장을 내어주시며,
어디 나라에서는 남의집 귀한딸 데리고 올때
소팔고 집팔아 지참금 주고 데려 온다는데 부족하지만 받으라고...
그돈으로 하고싶은 혼수, 사고싶은거 사서 시집오라
하셨던 어머님...
부모 정 모르고 큰 저는 그런 어머님께 반해,
신랑이 독립해 살고있던 아파트 일부러 처분하고
어머님댁 들어가서 셋이 살게 되었습니다.
신랑 10살도 되기 전에 과부 되어, 자식 다섯을
키우시면서도
평생을 자식들에게조차 언성 한번 높이신 적이 없다는 어머님...
50 넘은 아주버님께서 평생 어머니
화내시는걸 본적이 없다 하시네요.
바쁜 명절날 돕진 못할망정 튀김 위에 설탕병을 깨트려
튀김도 다 망치고 병도 깬
저에게
1초도 망설임 없이 "아무소리 말고 있거라" 하시고는
늙으면 죽어야 한다며 당신이 손에 힘이 없어 놓쳤다고
하시던 어머님...
단거 몸에 안좋다고 초콜렛 쩝쩝 먹고있는 제 등짝을 때리시면서도
나갔다 들어오실땐 군것질거리 꼭
사들고
"공주야~ 엄마 왔다~" 하시던 어머님..
어머님과 신랑과 저, 셋이 삼겹살에 소주 마시다
셋다 술이 과했는지 안하던 속마음 얘기 하다가,
자라온 서러움이 너무 많았던 저는 시어머니앞에서 꺼이꺼이 울며
술주정을 했는데,,,
그런 황당한 며느리를 혼내긴 커녕 제 손을 잡으며, 저보다 더 서럽게 우시며,
얼마나 서러웠노,
얼마나 무서웠노..
처음부터 니가 내딸로 태어났음 오죽 좋았겠나,,
내가 더 잘해줄테니 이제 잊어라.. 잊어라...
하시던 어머님...
명절이나 손님 맞을때 상차린거 치우려면
"아직 다 안먹었다 방에 가있어라"
하시곤
소리 안나게 살금 살금 그릇 치우고 설겆이 하시려다 저에게 들켜
서로 니가 왜 하니, 어머님이 왜 하세요
실랑이 하게 됐었죠...
제가 무슨 그리 귀한 몸이라고 일 시키기 그저 아까우셔서 벌벌 떠시던 어머님.
치매에 걸려
본인 이름도 나이도 모르시면서도 험한 말씨 한번 안쓰시고
그저 곱고 귀여운 어린 아이가 되신 어머님...
어느날 저에게
" 아이고 이쁘네~ 뉘집 딸이고~~" 하시더이다.
그래서 저 웃으면서 "나는 정순X여사님(시어머님 함자십니다) 딸이지요~
할머니는 딸 있어요~?" 했더니
"있지~~ 서미X(제이름)이 우리 막내딸~ 위로 아들 둘이랑 딸 서이도 있다~"
그때서야 펑펑 울며 깨달았습니다.
이분 마음속엔 제가, 딸같은 며느리가 아니라
막내시누 다음으로 또
하나 낳은 딸이었다는걸...
저에게... "니가 내 제일 아픈 손가락이다" 하시던 말씀이 진짜였다는걸...
정신 있으실
때 어머님께 저는 항상 감사하고 사랑하고 잘하려 노력은 했지만
제가 정말 이분을 진짜 엄마로 여기고 대했는지...
왜
더 잘하지 못했는지 왜 사랑하고 고맙단 말을 매일 매일 해드리진 못했는지..
형편 어렵고 애가 셋이라 병원에 얼굴도 안비치던
형님..
형님이 돌보신다 해도 사양하고 제가 했어야 당연한 일인데,
왜 엄한 형님을 미워했는지..
말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사무치고 후회되어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답니다.
밤 11시쯤, 소변보셨나 확인 하려고
이불속에 손 넣는데
갑자기 제 손에 만원짜리 한장을 쥐어 주시더군요..
"이게 뭐에요?" 했더니 소근소근
귓속말로
"아침에~ 옆에 할매 가고 침대밑에 있드라~
아무도 몰래 니 맛있는거 사묵어래이~" 하시는데 생각해보니
점심때쯤 큰아주버님도 왔다 가셨고,
첫째, 둘째 시누도 다녀갔고 남편도 퇴근해서
"할머니~ 잘
있으셨어요~?" (자식들 몰라보셔서 언젠가부터 그리 부릅니다)
인사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아침 7시에 퇴원한
할머니가 떨어트린 돈을 주으시곤
당신 자식들에겐 안주시고 갖고 계시다가 저에게 주신거였어요.
그리곤 그날 새벽 화장실
다녀왔다 느낌이 이상해
어머님 코에 손을 대보니 돌아가셨더군요....
장례 치르는 동안 제일 바쁘게 움직여야 할 제가
울다 울다 졸도를 세번 하고
누워있느라 어머님 가시는 길에도 게으름을 피웠네요...
어머님을 닮아 시집살이가 뭔지
구경도 안시킨 시아주버님과 시누이 셋.
그리고 남편과 저.. 서로 부둥켜안고 서로 위로하며,
어머님 안슬퍼하시게
우리 우애좋게 잘살자 약속하며
그렇게 어머님 보내드렸어요..
오늘이 꼭 시어머님 가신지 150일
째입니다..
어머님께서 매일 저 좋아하는 초콜렛, 사탕을 사들고 오시던 까만 비닐봉지.
주변에 널리고 널린 까만
비닐봉지만 보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님이 주신 꼬깃꼬깃한 만원짜리를 배게 밑에 넣어두고..
매일 어머님 꿈에
나오시면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말해드리려 준비하며 잠듭니다.
다시 태어나면 처음부터 어머님 딸로 태어나길
바라는건 너무 큰 욕심이겠죠...
부디 저희 어머님 좋은곳으로 가시길..
다음 생에는 평생 고생 안하고
평생 남편 사랑 듬뿍 받으며 살으시길 기도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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